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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95화 (195/379)
  • 195화

    “뭐?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왜 배신한 거냐고.”

    태운의 물음에 창영우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정말 억울한 사람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운은 거기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 완벽한 연기 속에서도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으니까.

    “변명할 생각은 하지 마. 네가 우리 지하 훈련장에서 나가면서 했던 말들, 그거 다 들었으니까.”

    “…….”

    창영우도 거기까지 듣자 더 이상 변명할 생각을 접은 것 같았다.

    그러고는 바로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창영우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 다음 태운에게 사과했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내가 왜 그랬는지 이유만이라도 들어줬으면 좋겠어.”“…일단 일어나. 남들이 보면 곤란해지니까.”태운은 창영우를 일으키고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창영우도 태운의 숙소로 따라 들어갔다.

    ‘만약에 창영우가 갑자기 돌변해서 날 죽이려고 해도… 내가 쉽게 제압할 수 있으니까 숙소로 데려와도 괜찮겠지.’태운은 창영우를 숙소로 들여보낸 뒤 사일런스 필드를 깔았다.

    “이제 얘기해 봐.”

    “내가 입양되고 여동생이 하나 생겼어. 나랑 같은 입양아였지. 내 양부모들은 불임이라 고아들을 입양해서 키웠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문제?”

    창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문제. 양부모의 사업이 망하면서 우리는 말 그대로 방치를 당하게 되었지. 그뿐이면 다행이지…. 그 이후 나는 맞기만 하면서 자랐어. 밥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술 취한 부모들의 샌드백으로 살았어.”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오히려 그의 부모님은 창영우를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고 아주 아낀다고 들었으니까.

    “아니, 내가 듣기로는 좋은 집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들었는데….”“그것도 양부모의 사업이 망하기 전의 이야기야. 지금 생각하면 좋은 대접도 아니야. 그 사람들은 우리를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듯 자기만족으로 키웠던 거였어. 그러니까 집안 상황이 안 좋아지자 바로 우릴 버린 거겠지.”

    “그런 일이….”

    금시초문이었다.

    창영우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3년, 그사이에 나와 여동생은 점점 야위어 갔지. 그때 내 나이는 14살이었어. 그리고 알다시피 각성을 했지.”

    “알고 있어.”

    창영우의 각성 시기는 14살이 되던 해의 여름이었다.

    창영우는 각성하자마자 엄청난 재능을 보였고, 정규적인 훈련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4살에 현역 D급 헌터를 능가하는 엄청난 센스를 보였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도 입양된 한국인이 미국에서 엄청난 실력을 보인다며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태운도 그것을 보며 뿌듯해하고 친구라며 자랑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대충 짐작이 가지?”

    “갑자기 부모의 태도가 바뀌었겠지.”

    창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때 그 사람들이 엄청나게 역겨웠어.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집을 나왔지. 일주일 전만 해도 날 때리고 담배로 지지고 했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나를 대한다는 게… 생각만 해도 토가 나올 것 같아서 집을 나왔어. 뒷일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지.”대충 무슨 일이 있었을지 짐작이 되었다.

    “내가 사라진 후에 이상한 피해망상에 빠진 그 사람들은 그 분노를 내 여동생에게 쏟아냈어. 그동안 내 여동생 대신 내가 맞아줘서 맞은 적 없는 아이였는데… 해방감과 복수를 했다는 마음에 취해서 집을 나간 지 3일 만에 여동생 생각이 들었어. 멍청하게도….”

    “…….”

    “급하게 집에 들어갔을 때 여동생의 상태는 아주 심각했어. 온몸에 멍과 화상 자국이 가득했고 뼈는 이곳저곳이 부러져 있었지. 고작 10살짜리 애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었어.”태운은 계속해서 창영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병원에 데려갔어. 고작 3일이었지만 각성자인지라 병원비 정도는 벌 수 있었거든. 조금만 늦었어도 위험했을 거라고 하더라. 그래도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계속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지.”“뻔한 이야기네. 그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를 배신했다. 대충 그런 이야기겠지.”창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여동생의 상태가 엄청 나빠졌고 현대 의학 기술로는 손쓸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 그때, 어떤 길드에서 연락이 왔고 여동생을 살려준다면서 내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기 시작했어.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여동생을 고쳐줄 생각은 하지 않더라. 연명 치료만 해주고 있어.”불쌍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태운은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한 번 속였는데 두 번은 속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어…?”

    본 적 없는 태운의 차갑고 냉정한 모습에 창영우도 당황한 것 같았다.

    당황했다기보다는 충격을 받은 것 같다는 게 더 알맞은 표현인 것 같지만.

    “그렇잖아? 이미 날 한번 속였고. 한 번 더 속이기 위해 이런 연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그게 무슨…. 아니, 아니지… 그럴 수 있지….”창영우는 태운의 차가운 말에 슬픈 표정을 지었다.

    “믿지 않아도 좋아. 이제 내가 너에게 피해를 입힐 일은 없을 거야. 네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게.”창영우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태운에게 고개를 숙이고 숙소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태운의 차가운 목소리가 숙소에 깔렸다.

    “누구 마음대로?”

    “…….”

    창영우는 그 자리에 굳어 입도 열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압박감이….’

    창영우는 태운이 쏟아내는 압박감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 같아? 배신한 걸 들켜놓고 친구였다고 봐주길 바라는 거야?”

    “아니, 그….”

    태운은 여전히 적의를 사용한 상태로 압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영우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내가 내 숙소로 데리고 와서 사일런스 필드까지 펼친 이유를 정말 모르겠어?”

    “…….”

    태운은 마스커 레이드를 사용했다.

    “……!”

    “이 정도면 네 얼굴과 비슷하려나? 네가 내 방에 온 걸 본 목격자가 있어도 이 얼굴을 하고 다시 나가면 난 용의선상에서 벗어나지 않겠어?”지금 태운이 보여주는 모습은 창영우가 알고 있던 태운이 아니었다.

    자신이 바뀐 만큼 태운도 바뀐 것일까?

    창영우가 식은땀을 흘리며 태운의 말에 대답을 하려 한 순간, 태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영우에게 다가갔다.

    “미, 미안하….”

    파앙!

    “장난이야.”

    태운은 창영우의 등짝을 때리고는 웃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숙소를 가득 채우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네 말은 믿고 있었어.”

    정확히는 자신이 직접 만든 고성능의 거짓말 탐지 마법을 믿고 있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럼, 왜….”

    “나랑 찬영이가 배신당하고 아팠던 거에 절반만큼이라도 아파보라고 한 말이야.”

    “…미안하다.”

    “됐어. 그럼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태운은 창영우를 다시 자리에 앉혀놓고 말을 시작했다.

    “너에게 일을 시킨 길드의 이름은 러시아의 어드벤처 길드지?”

    “그걸 어떻게….”

    “현대 의학으로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사람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드벤처 길드의 A급 힐러인 켈러 부인밖에 없으니까.”

    “…맞아.”

    “이제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겠네.”

    태운은 창영우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네 여동생의 상태는 정확히 어떻게 되지?”“어… 여기 의사 소견서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창영우는 태운에게 의사 소견서를 건넸다.

    태운은 그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심각하네.”

    “그렇지. 지금까지 살아 있던 것도 켈러 부인이 아니었다면 힘들었을 거야.”“확실히 현대 의학으로는 손을 쓰기 힘든 상황이네.”과거에 양부모에게 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그 갈비뼈가 폐를 찌르면서 죽을 뻔했다고 한다.

    그때는 어떻게든 살려냈지만 그 상처에 악성 종양이 났고 희귀병인 마나 알레르기에 의한 면역력 약화 탓에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면역력 약화 탓에 온갖 병에 걸렸기에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마나 알레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회복 마법으로는 시술을 할 수 없어 켈러 부인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얼굴 못 본 지 꽤 됐겠는데.”

    “응, 나도 각성자라 직접 만나려면 마나 차단복을 입고 들어가야 하는데 일회용에 가격도 100만 원이 넘어서 자주 만나기는 힘들어. 사실 지금 내가 버는 돈으로는 병원비를 내기도 벅차거든.”창영우 정도면 헌터 중에서도 꽤 많이 버는 축에 들 것이다. 한 달에 적어도 1,500만 원에서 3,000만 원은 벌 테니까.

    그 돈이 전부 그녀의 병원비로 넘어간다는 것만 보아도 그녀의 병세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었다.

    태운은 의사 소견서를 전부 읽고는 창영우에게 돌려주었다.

    “네 여동생, 내가 고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창영우는 의사 소견서를 받아들면서 태운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의사는 물론 힐러 중에서도 단 한 명밖에는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칠 수 있다니.

    설령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믿고 싶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말해봐. 뭐든 할 수 있어.”

    태운의 말에 창영우는 결연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지금 당장 어드벤처 길드와의 관계를 끊어 버려.”“그건 할 수 있어. 어차피 여동생을 낫게 하기 위해 맺었던 연이니까. 네가 정말 동생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할 수 있어.”“그다음은 이번 일이 끝나면 창공 길드에서 나와.”

    “…알겠어.”

    창공 길드에서 나오라고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창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을 고칠 수 있다면 사지 중 하나를 떼어줄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이번 일이 끝나고 내가 만들 길드에 들어와.”

    “뭐…? 길드?”

    창영우는 그제야 알아챘다.

    태운은 다른 이유 없이 자신을 용서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태운은 창영우의 이용 가치를 보고 용서했고 그 용서의 대가로 자신의 길드에 들이려는 것이다.

    “그래, 난 이번에 길드를 만들 거야. 왜, 싫어?”창영우는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창영우의 생각은 곧 태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기울었다.

    물론, 창공 길드의 2군 공격대의 메리트와 특혜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창공 길드에서 신생 길드로 넘어간다고 말하면 미친 짓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창영우는 상당히 날카로운 촉의 소유자다.

    ‘앞으로 5년 아니, 3년이면 태운이가 만들 길드는 창공 길드 만큼이나 강력한 길드가 될 거야.’창영우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태운에게 말했다.

    “알겠어. 네 길드에 들어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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