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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90화 (190/379)
  • 190화

    “뭐, 뭐야?”

    게이치로는 물론 자칭 Z라고 하는 사람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이곳에 태운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이겠지.

    “태운아! 무슨 일이냐!”

    “이게 무슨….”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각성계 형사들과 헌터들이 벽이 부서지는 굉음을 듣고 급하게 올라왔다.

    태운을 걱정하며 올라온 그들이었지만 사체 파편 사이에서 태연히 서 있는 태운을 보고 당황한 것 같았다.

    ‘당연하지. 내가 저런 놈한테 당할 리가 없잖아.’태운은 녀석이 달려들자마자 브레인 부스트를 사용한 후 마나로 수많은 칼날을 만들어 녀석을 찢어 버렸다.

    ‘네까짓 놈이 강해져 봐야 내 발밑이지.’

    녀석이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그 근본은 카츠다.

    마약으로 근육이 극도로 활성화되고 다룰 수 있는 마나의 양도 늘었다.

    출력도 두세 배로 늘었지만 카츠는 그걸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다.

    ‘C급에서 A급 정도의 힘이라면 단순히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지…. 하지만 A급에서 그 이상이라면 얘기가 달라져.’A급 헌터가 평소에 사용하던 힘의 두세 배 이상의 힘을 쏟아내는 것부터가 어렵고 쏟아낸다고 해도 공격력에서 큰 이득을 보지 못한다.

    ‘애초에 원래 가지고 있던 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놈이니까.’카츠가 태운의 10배에 해당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카츠는 태운을 이길 수 없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그보다 저놈들입니다. 체포하세요.”

    “저놈들이라고?”

    “잠깐…. 저거 익숙한 얼굴인데?”

    Z라는 사람의 얼굴은 처음 볼 테지만 게이치로는 달랐다.

    시원시원한 사이다 발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해 한국에서도 밈이 되어 돌아다니는 게 게이치로였으니까.

    잘은 몰라도 얼굴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익…!”

    “잡아!”

    Z는 태운과 같이 온 형사들의 얼굴을 보고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운은 눈 앞에서 녀석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화폭”

    펑!

    간만에 사용하는 마법이지만 감각만큼은 확실했다.

    녀석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태운의 마법 중에 가장 약하면서 확실한 마법을 사용했다.

    가장 약한 마법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인이 화폭에 맞으면 온몸을 야구 방망이로 구타당한 정도의 상처는 입을 것이다.

    ‘자… 한번 실력 좀 볼까?’

    태운은 Z의 실력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이내 당황하게 되었다.

    “끄아악!”

    “엉?”

    Z가 화폭에 맞는 순간 앞으로 고꾸라져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흐아아악! 끄으윽…. 으아아….”

    “뭐야…?”

    태운과 형사들을 30일이 넘도록 괴롭혔던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는 각성자는커녕 일반인보다도 허약한 약골이었다.

    * * *

    “이 씨발….”

    “야, 너 뭐냐?”

    태운은 이미 쓰러져 있는 Z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물론, 게이치로도 체포해 일본 경찰에게 넘긴 후였다.

    지금까지 확보한 증거를 일본 경찰과 언론과도 공유할 계획이니 쉽게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그렇고… 이놈 도대체 뭐지?’

    각성자도 아닌 놈이 이런 마약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부터가 의문이었다.

    “일단 서로 연행합시다.”

    “그래, 이미 일본 경찰 측에는 허가를 받았으니까. 바로 한국으로 가자.”Z를 연행하려는 순간 녀석이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들아!!!”

    단순한 욕설이었지만 그 순간 모두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 욕설에 담긴 그의 살기와 의지를 모두가 느꼈기 때문이다.

    “이게 뭐라는….”

    “다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것까지 빼앗아 가려 해?! 이 개새끼들아!!!”

    “닥치고 따라….”

    “잠시만요.”

    태운은 그의 입을 막으려 하는 형사를 말렸다.

    그에게 참작의 여지는 없지만 이 이야기를 들어야 현실에서도 녀석을 쉽게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헌터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난 왜 각성자가 아닌 거지?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각성자를 찾을 수 있었다. 각성자이면서도 회사원이나 하는 겁쟁이도 있었다…. 그런 겁쟁이도 각성자인데 왜 나처럼 준비된 사람이 각성자가 아닌 것이냐!!!”

    “그건….”

    “운이 안 좋았다고? 그딴 소리를 듣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라고? 난 그렇게 살기 싫다…. 아니, 그렇게는 못 해!”안분지족(安分知足).

    어떻게 보면 삶을 살아가는 데 아주 좋은 마음가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삶을 살아가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태운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안분지족, 내가 가장 싫어하던 말이었으니까.’“그래서 과학을 배우고 마력학을 배웠다. 이런 나라도 마법을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약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힘들어도 헌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 몸은 애초에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못 하는 몸이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헌터들에게서 마나를 받아들이는 권능을 없애겠….”퍼억!

    태운은 이미 온몸이 부서져 있는 Z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으윽…. 너희 각성자들은 폭력, 폭력, 폭력밖에 모르는 야만….”퍼억!

    Z가 각성자들을 조롱하는 말들을 내뱉었지만 태운은 멈추지 않았다.

    퍼억! 퍼억! 퍼억!

    쓰러져 있는 녀석의 복부를 계속해서 걷어찼다.

    “저기… 태운아…?”

    옆에 있던 형사들은 말리지도, 말을 쉽게 걸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태운의 얼굴은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살기를 내뿜고 있었으니까.

    “커억… 허억…. 살려…줘….”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던 Z가 슬슬 소리 지를 힘조차도 잃은 순간 태운의 일방적인 폭행은 멈췄다.

    그 대신 태운의 입이 열렸다.

    “제 분수에 맞게 살아라. 그게 내가 가장 싫어하던 말이야.”

    “…….”

    “나도 한때 일반인보다도 약한 몸을 가지고 있던 때가 있었으니까.”고작 마나양 10.

    일반인도 제대로 된 무기를 갖추기만 하면 클리어할 수 있다는 F급 던전에도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조금만 뛰어도 공기 중의 마나를 흡수해 픽픽 쓰러지곤 했으니까.

    지금에야 일반적인 마나와 감응할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 그런 단점은 없어졌지만 말이다.

    “너, 지금 25살인가?”

    “…….”

    태운은 그를 회복시켜줌과 동시에 한 번 더 걷어찼다.

    “대답해.”

    “끄으…. 24살이다….”

    “넌 고작 24살에 전 세계 과학자들이 머리를 모아서 달려들어도 이룰 수 없던 업적을 이뤘어.”각성할 때부터 정해지는 마나의 총량, 그것을 늘리는 일은 오래전부터 연구되어온 일이다.

    하지만 그 일에는 조금의 진전도 없었다.

    그 일을 눈 앞에 있는 범죄자가 이뤄낸 것이다.

    그게 너무 분하면서도 아까웠다.

    “그 재능으로 고작 이딴 끔찍한 일이나 벌이고 있던 거냐!!!”퍼억!

    지금껏 Z를 공격했던 그 어떤 공격보다 강한 공격이 녀석의 복부에 꽂혔다.

    아마 녀석의 내장이 죄다 터져 버렸을 것이다.

    “흐어억….”

    “너에 대해 알아야 할 게 많으니 살려주는 거다. 안 그랬으면 넌 지금 죽었다.”태운은 마법으로 녀석의 내상을 회복시켜주었다.

    “한심한 새끼.”

    태운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라고 내가 헌터가 되지 못했을 때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야.’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는 무조건 이뤄낼 테니 차선책은 생각하지 않아.’ 같은 생각은 만화나 영화 속 주인공이나 하는 생각이다.

    태운은 고작 마나 총량 10이라는 절망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헌터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연습했다.

    헌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머릿속에 박아두고 살았었다.

    ‘하지만… 반년에 한 번씩, 마음이 약해질 때면 헌터가 되지 못했을 때 뭘 하며 살아야 할까, 라는 고민을 했었지.’태운은 그때마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 헌터가 되지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었다.

    자신의 조력으로 헌터들이 칠죄종들을 봉인하고 부모님의 누명을 벗겨준다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한심한… 새끼….”

    Z를 욕하던 태운의 목소리가 천천히 작아졌다.

    2년째가 되던 해의 겨울, 태운은 자신이 만든 위험한 마법들을 세상에 풀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중에는 시전자 조차도 제어할 수 없는 폭발 마법, 시전자의 마나와 생명력을 모두 빨아들이면서 주변을 얼려 버리는 얼음 마법도 있었다.

    말 그대로 무분별한 테러를 일으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만 했을 뿐, 실행하지는 않았다.

    단순한 생각일 뿐이었지만 그것은 태운의 흑역사로 남아 있었다.

    한심한 새끼라는 말, 그것은 오로지 눈앞의 Z만을 향한 게 아니었다.

    “제가 너무 감정적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연행하죠.”태운은 스스로가 너무 감정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Z를 회복시킨 후 연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에 이놈의 부하로 보이는 놈들이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제가 계속 동행하겠습니다.”

    “……!”

    Z가 태운의 말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며 몸부림을 쳤다.

    Z는 태운의 실력을 눈치채고 지금 당장 올라오지 말고 태운이 멀어지면 습격해 자신을 빼 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태운이 눈치를 챈 이상 더 이상 이 작전은 의미가 없다.

    “다들 올라와! 약을 빨든 뭘 하든 뭐라도 해서 날 구해!”두두두두두!

    그러자 계단에서 수십 명의 조직원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모두 올라오면서 마약을 투약한 것 같았다.

    ‘아까 말을 들어보면 부작용과 마약의 쾌락 효과는 일부러 넣은 것 같았으니까… 지금 저들에게 주어진 약은 부작용이 없다고 봐야 해.’부작용이 없으니 그만큼 저 약을 투약한 경험이 많을 것이고 커진 힘을 다루는 게 그만큼 익숙할 것이다.

    “마스터급 선배들이랑 대련한 게 쓸모없게 되진 않아서 다행이네.”태운은 Z를 뒤의 형사들에게 넘기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녀석들이 공격하면 전부 맞아주면서 싸워도 될 겁니다.”태운은 형사들에게 성벽 갑주를 씌워주었다.

    “죽여!!!”

    태운은 빠르게 달려드는 조직원의 주먹을 피했다.

    ‘A급 헌터 수준…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낮다.’퍼억!

    태운은 녀석의 공격을 피하고 하이 부스트를 사용해 녀석의 얼굴을 가격했다.

    뒤로 날아가던 녀석의 팔을 잡아당겨 한 번 더 안면에 주먹, 그 후 뒤통수를 잡고 안면을 무릎으로 가격.

    그렇게 녀석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화폭.”

    “프로텍트!”

    태운은 화폭을 사용해 녀석들의 방어를 이끌어냈고 그 틈을 파고들어 가 마법사로 보이는 녀석 둘을 빠르게 처리했다.

    “둘러싸!”

    “멍청한 놈, 이 정도 수를 상대로 한가운데에 들어오다니.”그 탓에 조직원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지만 태운에게는 생각이 있었다.

    “블라인드 필드.”

    태운은 블라인드 필드를 사용했다.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야를 막는 마법이었다.

    단점은 자신의 시야도 막는다는 것이었지만 태운에게 그것은 더 이상 단점이 아니었다.

    “크윽!”

    “눈이!!!”

    싸움에는 익숙해도 시야가 없는 상황에서 싸우는 것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태운은 달랐다.

    시야가 없는 상태에서 수십 번이나 목숨을 건 싸움을 해본 경험이 태운에게는 있었다.

    “너희들, 항복하려면 지금뿐이야.”

    태운을 중심으로 얇은 마력 실이 천천히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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