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78화 (178/379)

178화

“라일렌…?”

태운은 갑작스러운 지인의 등장에 당황했다.

게다가 고작 익스퍼트 실버에 불과했던 그녀가 갑자기 마스터 등급, 그중에서도 유망주로 불린다는 게 놀라웠다.

‘애초에 지금은 이 아카데미에 있을 시기도 아닌데?’라일렌은 명운전이 시작하기 1~2달 전쯤에 영국의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보여 명운 헌터 아카데미로 전학을 왔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 너무 많아.’

원래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이 세계의 미래가 바뀌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태운이 미래를 바꿀 법한 행동을 하기 전에도 이미 미래는 바뀌어 있었다.

‘왜지?’

어쩌면 이곳에는 자신의 마나양과 특성 말고 무언가가 현실과 다른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알아내야만 했다.

“아는 사이야?”

“어… 그….”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는데 얼굴 보는 건 처음이네요.”라일렌은 태운을 정말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세계관에서 태운과 라일렌은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어… 음…. 저도 이름만 들어봤어요.”

“아하. 난 또 둘이 구면인 줄 알았지.”

태운은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괜히 이상하게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막내, 너도 19살이라고 했지?”

“그럼 나이도 똑같네. 둘이 말 놔.”

태운은 선배들의 말이 떠밀려 라일렌과 말을 놓게 되었다.

애초에 사람과 만나는 걸 좋아하고 친화력이 엄청난 라일렌이었으니 그러지 않았어도 곧 말을 놨을 테지만.

“그나저나 어쩌다가 마스터 등급 쓰리톱에 막내가 두 명이나 있네. 그것도 19살이.”“쓰리톱? 라일렌이랑 ‘그놈’이랑…. 한 명은 누군데?”

“태운이가 있잖냐.”

“에?”

공전하가 태운을 은근슬쩍 마스터 등급 쓰리톱에 끼워 넣자 다른 마스터 학생들이 반발했다.

“난 인정 못 해.”

“진 건 너희뿐이잖아. 나는 쟤랑 싸워본 적도 없거든?”“야, 솔직히 이설아랑 나랑 조강현. 이렇게 세 명이랑 동시에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 있긴 하냐?”

“그렇긴 하지만….”

“아무튼 난 인정 못 해!”

“어허, 발전은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거란다.”

“헛소리하지 마셈.”

태운은 그들의 말싸움에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태운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마스터 쓰리톱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는 들어 있지 않았다.

‘라일렌이 마스터 등급의 톱 수준이라는 거에는 이견이 조금도 없어.’실력과 동시에 자존심도 높은 그들이 라일렌의 실력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라일렌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단 한 가지 생각만이 태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라일렌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과거에 보여주었던 실력도 상당했다.

19살에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태운이 추측하건대 전 세계에 10명이 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본 것만 해도 뛰어난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지만 그 정도로는 마스터 등급의 톱은커녕 스카웃도 힘들어.’마스터 등급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하락한 게 아니라면 라일렌은 태운이 알고 있던 것과는 수준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스터 등급의 수준이 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은 세 명과의 대련으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즉, 라일렌의 실력이 현실과는 달리 엄청나게 늘어 있다는 뜻이다.

‘이건 못 참지.’

태운은 언쟁을 하고 있는 선배들 사이에 들어가 말했다.

“굳이 이렇게 말로 할 필요 없잖아요?”

태운은 아카데미 제복의 겉옷을 벗어 옆에 걸어두었다.

“너 뭐 하니…?”

“굳이 우리랑 해보려고?”

“이거 참….”

태운의 행동에 마스터 등급 선배들은 당황했지만, 그 자신감과 과감함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설령 본인이 지더라도 충분히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태운의 생각을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먼저….”

“아뇨. 선배님들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

태운은 라일렌을 바라보았다.

“라일렌, 준비해.”

“아, 나였어?”

라일렌은 당돌한 태운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라일렌도 특별 승급 테스트 당시의 영상을 보았다.

태운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3명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는 것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 정도는 나도 해.’

고작 그 정도 가지고 자신을 넘본다는 게 조금이지만 가소로웠다.

‘그래도 재미는 있겠네.’

간만에 나타난 자신과 같은 나이의 실력자.

실력 차이를 떠나 재미있는 대결이 될 것 같았다.

“그래, 한번 해보자.”

라일렌도 자신이 입고 온 체육복 한 겹을 벗어 던지고 태운과의 대련을 준비했다.

“룰은 어떻게 할까?”

“죽이거나 죽기는 싫으니까. 일회용 대련 결계석 좀 쓰죠.”“여기 챙겨놓은 거 있을 테니 그거 쓰면 되겠네.”

“이미 가져왔어. 준비되면 바로 가자.”

“감사합니다.”

공전하는 대련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창고에서 바로 대련 결계석을 가져왔고 이미 사용할 준비까지 마쳐놓았다.

공전하도 어지간히 이 대련의 결과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준비 끝났어요.”

태운은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로 준비가 끝났다고 말했다.

라일렌은 의아해하며 태운에게 물었다.

“검을 쓰던 거 같은데…. 맨손 격투도 자신이 있나 봐?”“검은 내 전투 옵션 중 하나야. 주 무기는 마법이거든.”

“오호….”

라일렌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미안하다. 내가 널 너무 얕본 거 같네.”

“그래?”

라일렌은 태운이 거짓말로 허세를 부릴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일렌의 생각은 정확했고 실제로 태운은 검술보다 마법에 더욱 자신이 있었다.

“나도 마법사야. 근데 체술도 나름 자신이 있는 편이니까 접근만 하면 이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일렌도 태운의 정보를 알게 된 만큼 자신의 정보도 어느 정도 태운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정도 정보는 태운도 잘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 라일렌의 실력을 익스퍼트 탑급으로 끌어올린 게 태운이었으니까.

“잡담은 그만하고 빨리 시작이나 하자고.”

“그래.”

태운과 라일렌은 거리를 벌린 후 서로를 바라보았다.

“준비… 시작!”

공전하의 신호와 동시에 대련 결계석이 활성화되며 대련이 시작되었다.

‘처음은… 직선적인 마법 공격이겠지.’

태운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라일렌의 정보를 끌어와 적용해 보았다.

“샤프니스 아이시클.”

‘역시….’

라일렌은 전투의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빠르면서도 직선적인 공격으로 전투의 포문을 여는 습관이 있다.

특히 샤프니스 아이시클은 굉장히 빠르면서도 정밀하고 적당한 위력을 갖춘 마법이다.

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상대를 당황하게 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마법이라는 뜻.

‘습관은 똑같지만… 마법에 담긴 힘은 수준이 다르네.’태운은 날아오는 고드름을 쉽게 피해내며 라일렌의 힘을 가늠했다.

‘지금 라일렌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20명 남짓…. 그런데 명운전에서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때만큼의 힘을 보여주고 있어.’

라일렌의 특성은 ‘관심종자.’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모든 스탯이 상승하고 집중력도 상승하는 굉장히 특이한 특성의 소유자다.

‘그런데 이 정도 힘을 보여준다라…. 뭔가 달라진 게 분명 있는 것 같네.’태운은 라일렌의 공격을 쉽게 피해내고 라일렌에게 접근했다.

태운이 라일렌에게 빠르게 접근한 순간 라일렌은 태운에게 다시 한번 공격을 날렸다.

이번 공격은 ‘스파이크 아이스’이었다.

투사체의 속도는 샤프니스 아이시클보다는 느리지만 이런 지근거리에서 태운이 피할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그럼… 마나 간섭.’

태운은 스파이크 아이스의 마나에 자신의 마나를 주입했고 그 상태로 디스펠, 마법을 파괴했다.

“무슨….”

태운은 당황하는 라일렌의 명치에 주먹을 내질렀고 라일렌은 당황하면서도 태운의 공격을 막아냈다.

팍!

라일렌이 태운의 주먹을 잡고 가슴 쪽으로 당긴 후 태운의 다리를 걸어 넘겼다.

태운은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바닥에 착지했고 라일렌의 팔을 잡아 엎어 쳤다.

“리버스 그래비티.”

후-웅!

공중에서 뒤집혀 있던 라일렌은 리버스 그래비티를 사용했고 바닥에 엎어 쳐지는 대신 벽으로 날아갔다.

벽에 안전하게 착지한 라일렌은 그 상태로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분하지만 체술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마법의 활용도도 더 뛰어나졌어.’

태운에 의해 엎어 쳐지던 그 짧은 시간에 리버스 그래비티를 사용해 운동 에너지의 방향을 바꾼다는 발상을 했다는 것은 충분히 칭찬해줄 만했다.

“후….”

라일렌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쉰 뒤 마법을 사용했다.

‘8개…. 2개는 방어 마법에 쓰고 있으니 메테리얼을 10개나 쓸 수 있다는 소리야….’태운이 알던 라일렌이 생성, 유지할 수 있는 메테리얼의 수는 5개뿐이었다.

보면 볼수록 현실의 라일렌과 이곳의 라일렌은 힘의 차이가 상당했다.

‘뭐가 다른 건지 꼭 알아내야겠어. 현실의 라일렌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현실의 라일렌이 이 정도까지 강해진다면 한국은 분명 헌터 강국이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칠죄신교와의 전투에서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끝났네.”

라일렌의 모습을 본 마스터 선배들은 태운의 패배를 예상했다.

‘뭐… 충분히 그럴 법도 하네.’

라일렌이 사용한 마법들은 하나하나가 필살기라고 불릴 법한 수준의 마법들이었으니까.

하지만 태운이 라일렌의 공격을 보면서 분석하는 행동은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정도는 여유지.’

약해진 지금의 태운도 강해진 라일렌을 상대로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레인 부스트.’

태운은 브레인 부스트를 사용했다.

‘화력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태운은 마나 간섭을 사용해 모든 마법에 자신의 마나를 주입했다.

‘디스펠, 방향 전환.’

태운은 자신에게 날아올 예정이었던 마법의 수식을 약간 바꿔 라일렌을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어…?”

라일렌은 자신의 공격이 자신에게 날아올 거라는 사실을 직감으로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사방에 떠 있던 마법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으니까.

“…라일렌 리타이어….”

라일렌은 그대로 리타이어당했고 대련의 결계는 해제되었다.

“…….”

“…….”

대련이 끝나자 체육관은 침묵에 빠졌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스치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야, 너 뭐야!!!”

“진짜 괴물이잖아?”

한 선배의 호들갑으로 그 침묵은 깨져버렸고 라일렌도 바로 회복하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하… 머리 아파…. 너 진짜…. 와….”

마스터 등급의 학생들은 태운에게 공격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방금 그거 뭐야?”

“마법 주도권 빼앗는 스킬이나 그런 게 있는 거야?”“체술도 상당하던데 원래는 체술 위주로 쓰다가 마법으로 갈아탄 거야?”

“어… 그게….”

태운은 그들의 질문에 하나하나씩 대답해주었고 그제야 태운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었다.

언제나 위를 바라보면 달리는 그들의 입장에서 태운은 좋은 목표나 다름없었다.

“후…. 그나저나 라일렌, 너는 어떤 임무 끝내고 온 거야? 칠죄신교 테러 막는 임무 같은 거하고 온 건가.”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태운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칠죄신교? 너 몇 년 전 얘기하고 있어? 그놈들은 칠죄종 봉인할 때 죄다 죽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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