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미친….”
경이로운 태운의 움직임에 조강현은 경악했다.
조강현도 생각 없이 태클을 건 것은 아니었다.
태클은 걸기 전에 거대화한 팔을 휘둘러 태운의 움직임을 제약했고 그 후에 빠르게 태클을 시전했다.
하지만 태운은 그것을 전부 예측하고 자세를 낮춰 첫 공격을 피해내고 태클도 과감하게 피해냈다.
놀라운 실력이지 않을 수 없었다.
‘후….’
태운도 반쯤은 도박이었다.
물론,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되는 순간 하이 솔리드 아머를 사용했겠지만 말이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승급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그런 점에서 억지를 부리다가 망할 생각은 없었다.
‘일단 태클을 피했으니까… 많이 당황스러워하겠지.’조강현의 태클은 굉장히 빠르고 피하기 어려운 기술 중 하나다.
그것을 지근거리에서 시전했는데 아주 깔끔하게 피했으니 당황스러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무슨….’
태운의 예상대로 조강현은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고 움직이기는 했으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잡생각이 많아진 탓이었다.
태운이 그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이렇게 하는 거였나…?”
태운은 검을 검집에 넣고 자세를 웅크렸다.
먹잇감을 노리는 범과 같이 조용하지만 위협적이었다.
“야, 설마….”
그 준비 자세를 본 이설아는 순식간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설아뿐만 아니었다.,
공전하의 발도를 본 적이 있는 사람과 지금 태운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었다.
지금 강태운은 공전하의 발도를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발도 호(虎).”
태운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태운의 검이 검집에서 뽑히며 울부짖었다.
“이런 씨….”
그 공격의 대상은 등을 돌리고 있는 조강현이 아닌 조강현이라는 방패를 잃어버린 이설아였다.
‘얼음 마법 상당히 거슬렸어.’
얼음 마법을 쉽게 파훼해내기는 했지만 그녀 때문에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건 얼음 마법의 특기임과 동시에 이설아의 특기였으니까.
그것뿐만 아니라 조강현은 탱커이자 근접 딜러다.
그에게 접근해 공격을 해봐야 막아내거나 맞아도 버틸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가장 거슬리면서도 가장 확실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이설아를 노린 것이다.
촤-악!
태운의 검에 깊게 베인 이설아는 결계의 데미지 측정 시스템에 의해 큰 고통을 받아 리타이어 당했다.
“야, 너 언제 쟤한테 발도술 알려준 적 있냐…?”조강현은 어느새 정신을 차린 공전하에게 물었다.
사실 그 말의 의도는 질문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어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냐. 내 밑천인데.”
지금 시점의 공전하는 태운을 만나본 적도 없을뿐더러 가르쳐 줄 이유도 없었다.
“하…. 무슨 카피 스킬이라도 각성한 거야?”충격적이기는 공전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공전하가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공전하가 자신만의 발도술을 구상해내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들었으니까.
발도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공전하는 잘 알고 있었다.
공전하뿐만 아니라 공전하를 동경해 그의 발도술을 직접 따라 해본 사람들도 알 것이다.
발도술이라는 기술의 난도가 얼마나 높은 것인지를.
“후…. 그래도 원조가 카피한테 질 수는 없지.”공전하는 언제 충격을 받았냐는 듯 빠르게 표정을 지우고 태운을 노려보았다.
태운에게 악감정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빛은 단순히 표적을 지그시 바라보는 양궁 선수의 눈빛이었으니까.
공전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속, 최강의 발도술을 펼칠 생각이었다.
자신의 마나와 체력을 모두 끌어모아 단 한 번의 검에 쏟아붓는 기술. 발도술의 달인인 공전하조차도 성공률이 50%를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지금은 절대 실패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
“조강현, 시간 끌어줘. 30초면 충분해.”
“오케이.”
공전하의 눈빛을 본 조강현은 그의 의중을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30초는 무슨, 천천히 해. 1시간도 버텨줄 테니까.”
“…….”
공전하는 이미 집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그에게는 조강현의 말 같은 건 들리지도 않았다.
‘심상치 않은데…?’
공전하의 자세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를 보아하니 그는 지금 승부수를 던진 것 같았다.
“그럼 나도 거기에 응해줘야지.”
태운은 눈앞에 달려오는 조강현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흡!”
조강현은 태운이 한 번 피해낸 적이 있는 태클을 한 번 더 사용했다.
‘조강현이 학습 능력이 없는 게 아닐 테니…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나보네. 그리고 그건… 조금 얕은 수야.’태운은 조강현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휘-릭!
태운은 조강현과의 거리가 조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조강현의 공격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관중 모두가 그것이 태운의 실수라 생각한 순간.
부-웅!
조강현의 팔이 태운이 머리가 있던 그곳을 정확히 지나갔다.
“큭!”
조강현이 팔을 휘두르면서 생긴 조그마한 빈틈을 태운은 놓치지 않았다.
태운은 회전에 더욱 힘을 실어 균형이 망가진 조강현의 발을 걷어찼다.
그러자 조강현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태운은 그대로 조강현의 목에 검을 찔러 넣으며 그를 리타이어 시켰다.
“조강현! 이런….”
공전하는 단숨에 리타이어 당한 조강현을 보고 혀를 찼다.
30초는커녕 10초도 버티지 못했기에 공전하의 발도는 조금도 완성되지 못했다.
공전하는 원래 사용하려던 발도술의 준비를 취소하고 일반적인 발도술의 시전을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태운은 공전하와의 정면 승부를 바라고 있었는지 발도를 준비하며 가만히 서있었다.
“이 자식 봐라…?”
공전하는 태운의 모습을 보고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태운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자신의 마스터 승급이 걸린 전투에서 말이다.
“그래, 받아주마.”
공전하는 취소했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강의 발도술을 다시 시전하기 시작했다.
‘잡생각은 지워라. 온몸의 힘을 뺀다.’
지금 공전하가 사용하는 발도술은 준비 자세가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 발도술이 왜 이리 준비 시간이 기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간단했다.
엄청난 정신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네.’
태운도 방금 준비 과정을 잠깐 보고 그런 기술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준비 자세도 단순하며 마나의 움직임도 굉장히 잔잔했으니 준비 과정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발도 독사(毒蛇).’
태운 또한 발도술이라는 것을 많이 보아 왔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발도술보다 더욱 유용한 기술은 많았고 저절로 우선순위가 뒤로 물러났다.
그렇다고는 하나 태운은 항상 발도술에 대해 생각을 해왔다.
이런 기술이 있으면 어떨까.
이렇게 움직이면 어떨까.
이런 발상을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항상 발도술에 대한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상상은 마냥 허구된 것이 아니었고 그 상상은 지금 태운의 손에서 구현되었다,
“초속공, 발도 요괴(妖怪).”
공전하의 최강의 발도술이 완성되었고 그와 동시에 태운의 검집에서도 검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태운의 발도술 독사(毒蛇)와 공전하의 발도술인 요괴(妖怪)는 이름만 다를 뿐 굉장히 비슷했다.
피하기 어려운 경로의 공격을 엄청난 속도로 8번이나 사용하는 발도술. 일격에 적을 벤다는 발도술의 개념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공전하와 강태운 모두 이 공격이 자신의 발도술 중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전하는 맥이 풀린 눈빛으로 자신의 검끝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태운은 공전하의 검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시선이 같은 곳을 향한 순간 태운은 한 가지 수를 꺼냈다.
‘브레인 부스트.’
그와 동시에 태운의 검은 엄청난 속도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공전하의 검끝을 주시하며 그 검의 경로를 확인하고 그 검을 쳐냄과 동시에 그의 몸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푸푸푸푸푹!
“크윽!”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정확히 8번이나 공전하의 몸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 상태로 승패가 갈렸다.
공전하는 패인은 단 한 가지였다.
‘적의 검끝이 아닌 자신의 검끝을 봤다는 것.’기술을 완성시키는 것이 어렵다 보니 자신의 검끝을 보며 기술을 완성시키는 데에 신경이 너무 쏠려 있었다.
그 결과 태운의 검을 보지 못하고 모든 공격을 파훼 당한 후 모든 공격을 그대로 맞아주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검이 아닌 태운의 검을 보고 몇 개의 공격이라도 막고 단 한 번의 공격을 적중시켰다면 이대로 허무하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 공전하 리타이어….”
공전하가 리타이어 되는 순간 결계는 완전히 해제되었고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강태운 승리!”
태운은 3명과의 대련에서 승리했다.
* * *
공전하와 이설아, 조강현 모두 바닥에 쓸린 수준의 상처만 남았을 뿐 큰 상처는 없었다.
‘이 결계는 이게 좋단 말이지.’
오로지 충격량으로만 피해량을 측정하는 구버전의 데미지 측정 결계와 달리 인간의 급소와 신체 구조까지 신경 쓴 결계이다.
게다가 검이나 화살이 몸에 들어가기 직전에 원소 단위로 분해되었다가 몸에서 나오며 재조립된다.
이 결계는 오로지 한없이 실전에 가깝지만 한없이 안전한 대련을 위한 결계였다.
‘칠죄신교의 전사와 싸울 때 써봐야 전혀 의미 없지.’마기는 이 결계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
오히려 헌터는 공격을 할 수 없지만 칠죄신교의 전사는 신나게 헌터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전대섭은 이 결계의 수식을 그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자신의 아카데미에서만 사용하고 있었다.
이 결계를 누군가 부수겠다고 한다면 쉽게 부술 수는 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몬스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체를 원자 단위로 분해하는 건 쉬웠지만 몬스터의 신체를 분해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의 이야기였으니까.
‘일단 이겼으니 승급은 처리될 거고….’
승급에 성공한 태운은 이설아와 공전하, 조강현이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굉장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심이 크겠지.’
수년간 단련해 온 힘이 고작 3년 차인 태운에게 꺾여 버렸으니까.
하지만 고작 이런 걸로 그들을 동정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후…. 강현아, 오늘 아카데미 끝나고 대련장으로 와.”자신의 기술을 카피 당한 것도 모자라 발도술로 패배해 가장 상심이 컸을 공전하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그래, 알겠다. 나도 그러려고 했어.”
조강현도 그의 제안에 응했다.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네.”
이설아도 마찬가지로 잠깐의 상심 이후 열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렇게 결정하고는 세 명이 동시에 태운에게 와서 말했다.
“마스터에 온 걸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