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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73화 (173/379)
  • 173화

    찬영은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일어났다.

    “한 번 더 하자.”

    갑자기 눈빛이 바뀐 찬영을 보니 태운은 속에 담아두었던 근심이 모두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

    태운은 찬영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찬영의 고민을 해결하면 자신의 마음도 편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걱정으로 인해 훈련의 집중이 깨질 일도 없어질 테니까.

    이 일이 마냥 찬영만을 위하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신경 쓰여서 하는 일이지.’

    태운은 찬영을 회복시켜주고 다시 거리를 조금 벌렸다.

    “언제든 다시 들어와.”

    “후우….”

    찬영은 방금 첫 번째 대련에서 마인드를 고쳐먹었다.

    자신의 약함을 직시하고 개선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자신의 약함을 눈에 담고 확실히 인지한 지금의 찬영에게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찬영은 태운에게 달려들며 창을 휘둘렀다.

    방금처럼 일격에 태운을 쓰러뜨리려던 기세로 창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첫 번째 대련에서의 찬영은 반쯤은 자포자기하고 태운을 공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반격을 당했고 그대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 과정에서 찬영은 자신을 옭아매던 모든 것을 던져 버릴 수 있었다.

    ‘움직임이 훨씬 좋아졌어.’

    태운은 찬영이 휘두르는 창을 보면서 피해냈다.

    지금의 태운은 성벽 갑주를 해제한 상태였다.

    태운은 찬영에게 절망감을 주고 다시 일어서게 유도하기 위해 성벽 갑주를 시전했을 뿐, 학생 수준에선 치트키에 가까운 성벽 갑주까지 쓰면서 이를 악물고 찬영을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성벽 갑주를 사용하지 않아도 지금의 찬영은 태운을 이길 수 없겠지만 말이다.

    “흐읍!”

    찬영은 휘두른 창을 태운이 피하자 그대로 창의 궤도를 바꿔 다시 태운을 공격했다.

    ‘거봐. 훨씬 낫네.’

    A급 헌터 중에서도 강한 편이었던 태운의 눈에 차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아카데미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움직임이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지 고작 3년 차에 이 정도 성과를 냈다는 건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봤던 찬영은 3년 차 8월쯤에 실력만큼은 3위에 올라설 정도로 성장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현실의 찬영이 이런 종류의 슬럼프를 겪지 않아서 참 다행인 것 같았다.

    ‘이런 슬럼프를 겪기 전에 서혜연이 사전에 챙겨줬지.’태운의 지인 중에서는 굉장히 약한 편이었지만 그녀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약한 사람의 입장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강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때, 그것을 무심히 넘기거나 기만으로 여기지 않는다.

    서혜연은 사람마다 자신만의 괴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2년 동안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내 편으로 끌어들인 거지.’실력은 뛰어나지만 마나양이 적다는 것 때문에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서혜연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에 서혜연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졌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태운이 서혜연을 지하 훈련장에 데려오고 훈련을 시켜주며 도와준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태운은 서혜연의 가능성과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의 재능이 고작 수치화된 마나양이라는 재능에 의해 묻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태운의 손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지만 태운은 서혜연이 그것으로 성장한다면 상관없었다.

    ‘내 바람은 단순히 재능이란 건 수치화 될 수 없다는 걸 증명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야.’세상이 재능이 없다고 판단한 학생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싶다는 그런 거창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단순히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재능은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법이지.’

    눈에 보이는 재능도 실제로는 그 이하일 때가 많았다.

    현실에서 태운이 죽였던 카츠도 그랬다.

    상태창에 보이는 스킬과 특성만 본다면 태운도 능가하는 수준이었지만 태운의 전력을 끌어내지도 못했지 않는가.

    ‘하지만….’

    그 반대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보이는 재능도 뛰어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실력과 재능은 더욱 뛰어난 사람 말이다.

    태운이 아는 한 그런 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지금 태운의 눈앞에 있었다.

    “흡!”

    찬영은 태운에게 창을 휘둘렀고 태운은 가볍게 그 공격을 흘려냈다.

    찬영은 태운이 창을 흘려낼 것을 예측하고 있었고 창을 휘두르는 관성을 활용해 어깨로 태클을 걸었다.

    ‘오호….’

    태운은 찬영이 이런 식으로 몸을 던져가면서 싸우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태운이 스타지에르 등급에 있을 때 현실에서는 찬영이 태운보다 월등히 강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몸을 던지는 싸움 방식을 태운이 썼으면 썼지 찬영은 쓰지 않았다.

    확실한 약자를 상대로 그런 전투 방식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둘의 실력이 비슷해졌을 때쯤에는 각자의 필살기가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어 이런 방식의 전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사실 일정 수준의 강함을 가지면 이런 과감한 공격은 득보다 실이 많다.

    ‘그래도 이런 공격을 해보면서 실력이 느는 거지.’태운은 찬영의 어깨 공격을 손으로 막아내고 찬영을 벽으로 던졌다.

    “크윽….”

    한순간에 벽에 처박힌 찬영은 태운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굉장히 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분한 마음이 찬영의 실력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 태운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태운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찬영은 다시 일어나며 말했다.

    “계속해.”

    * * *

    “드디어 오늘이네.”

    태운은 학교 교문에 들어서며 오늘 있을 승급 테스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태운이라면 조강현, 공전하, 이설아를 동시에 상대해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성벽 갑주 하나만 사용해도 그들은 태운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 생각해 봐야 할 건… 얼마나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느냐인데….”그건 천천히 생각해봐도 될 것 같았다.

    “11시라고 했으니까… 일단 2교시까지는 듣고 갈 수 있겠네.”태운은 딱히 수업을 듣지는 않는다.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게 더 이득이었으니까.

    현실에서도 아카데미 수업 중 상위 헌터들이나 익히는 상급 마법을 공부하던 게 태운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찬영의 실력이 무서울 정도로 늘고 있어.’태운이 이틀 동안 봐준 결과, 찬영은 첫날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실력이 늘었다.

    물론 태운에게 유효타를 먹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태운을 당황하게 할 법한 공격을 한두 번 정도 시도하기도 했다.

    ‘진짜 괴물이라니까….’

    태운이 이런저런 기연을 많이 만나면서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찬영의 성장을 절대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다.

    찬영은 태운이 놀랄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이 정도 속도라면… 2년 후에 졸업하자마자 A급 헌터로 인정받을 수준일 것 같아.’이렇게 생각하다보니 현실의 찬영은 얼마나 강해졌는지 궁금해졌다.

    오러를 얻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성과를 얼마나 얻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태운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는 확실히 강해졌을 거라는 사실이다.

    ‘다음에 만났을 때 대련을 해보면 재밌겠네.’만약 찬영이 어리숙하게나마 오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태라면 태운도 마냥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단순하면서도 압도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러였으니까.

    태운은 찬영과의 재회를 기대하며 교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강태운.”

    그때, 누군가가 태운을 불러세웠다.

    태운이 뒤를 돌아보았더니 13명의 학생들이 험악한 표정을 지은 상태로 태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지?”

    태운은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에게 똑같이 악의를 풍겨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고작 이 정도로 겁먹었다고…? 스킬 ‘적의’를 가지고 있었으면 죄다 오줌 싸면서 도망갔겠네.’하지만 자존심은 있는지 그대로 도망가지 않고 태운에게 다시 접근하며 말을 걸었다.

    “잔말 말고 따라와라.”

    “휴… 그래, 빨리 끝내자.”

    태운은 그들이 누구인지, 왜 그러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익스퍼트 등급의 브론즈 A~C급 학생 중 태운의 특별 승급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특별 승급 테스트 날 아침에 어디 한두 군데 부러뜨리고 테스트에 지장을 주려는 것이다.

    태운은 그들을 따라 제3 체육관 뒤로 들어갔다.

    이곳은 명운 아카데미 내의 유일한 CCTV 사각지대다.

    “왜 불렀어?”

    태운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태운에게 뜬금없이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열등생 새끼가 2차 각성 한 번 했다고 마스터 등급에 간다고? 주제를 알아야지!”

    “그래, 조언 고맙다.”

    고작 학생들의 모욕일 뿐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에 부들거리며 똑같이 받아칠 정도는 아니다.

    “이제 가면 되냐?”

    태운은 그렇게 말하고 뒤를 돌았고 그대로 체육관 뒤를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태운의 앞을 덩치들이 막아섰고 그들은 태운을 붙잡으려 했다.

    “어딜 가려고? 어디 한두 군데는 부러져야 나갈 수 있어!”태운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휴… 그래도 나름 21~22살 먹은 사람들이 왜 이리 생각이 짧을까….’아무리 명운 헌터 아카데미가 실력 있는 교사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고 커리큘럼도 훌륭하다고는 하나, 이런 녀석들의 뇌 구조까지 뜯어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등 쓸모없는 짓인 걸 왜 모르는 거냐….’다친다고 해도 회복 마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단기간에 회복할 수 없다면 미뤄질 뿐이다.

    하지만 태운이 그들의 얼굴만 기억하면 그들은 죄다 아카데미 내에서 징계를 받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지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가장 한심한 것은 따로 있었다.

    “마스터 등급에 올라가려고 테스트를 보는 사람을 너희들이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익스퍼트에 막 들어와 훈련을 하고 있는 브론즈 A~C반 녀석들이 10명씩 달려들어 봐야 태운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

    “잡아!”

    그 말을 시작으로 그곳에 있던 학생들은 죄다 태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흐아압!”

    “으랴!”

    “흐아아아!”

    그들은 괴성을 지르며 정돈되지 않은 공격을 내질렀다.

    ‘올해 올라온 놈들이라 그런지 실력이… 형편없네.’스타지에르와 챌린저 과정에서는 힘의 크기를 키우는 방법과 그것을 활용하는 기본적인 기술을 배운다.

    익스퍼트 등급에 올라와서야 비로소 실력이라는 것을 갈고닦는다고 말할 수 있다.

    ‘서혜연이나 나같이 실력 먼저 기른 경우는 특별한 경우지. 힘의 크기를 키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태운은 눈앞에서 달려오는 십여 명의 학생들을 보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슬립.”

    그러자 그들은 죄다 그 자리에서 쓰러지며 잠이 들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이상한 짓거리를 하려 했지만 고작 그것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특별 승급 테스트 날이니 조금 더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다.

    “빨리 교실에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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