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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72화 (172/379)
  • 172화

    “감사합니다. 이제 부모님의 복수를 어디에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태운은 그동안 부모님의 누명을 풀어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태운도 스스로의 목표에 회의를 가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믿고 있다고는 말하지만 기억도 흐릿한 부모님을 어떤 근거로 믿을 수 있었겠는가.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한 개인적인 생각을 사실이라고 믿으면서도 스스로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이것을 목표로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막상 역사에 기록된 것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면 태운의 인생은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이니까.

    게다가 누명을 풀어주더라도 누가 그 누명을 씌웠는지도 몰랐다.

    마냥 복수를 하기 위한 힘만 키워왔지 그 구체적인 대상도 모르고 있었던 것.

    그러니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어도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했던 것이다.

    “복수라…. 쉽지는 않을 거다. 녀석은 인류를 전부 집어삼키려던 강한 괴수야.”

    “전 이대로 멈춰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 누가 모르겠는가.

    지금 당장 전대섭과 허덕륜, 셀, 하오, 마이클까지.

    헌터 중에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A급 헌터들을 모두 모아도 칠죄종 중 하나라도 확실히 제압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만큼 강한 것이 칠죄종이었고 인류의 적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잖습니까. 그런 목표는 가지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멋지구나.”

    현실의 전대섭은 태운이 칠죄종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태운도 여러 일을 겪으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시점의 전대섭은 그렇게 말하는 태운을 굉장히 대견하게 여겼다.

    “그럼 너에게는 말해줘도 되겠구나. 어차피… 저주가 아니었다면 모두가 알고 있을 사실이니까.”전대섭은 자세를 고쳐앉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칠죄종의 괴수들을 처치할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겠네.”“칠죄종의 괴수를 처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금시초문이었다.

    칠죄종을 쓰러뜨리면 벌어지는 일 말이다.

    “칠죄종을 쓰러뜨리….”

    전대섭의 입이 열리는 순간.

    [‘칠죄종’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차단됩니다.]

    [전달 정보 허용 수준을 넘었습니다. 강제로 대화가 차단됩니다.]

    [대화가 강제로 끝납니다.]

    태운의 눈앞에 알림창이 연달아 떠오르더니 전대섭과의 대화가 부자연스럽게 끝났다.

    ‘뭐…?’

    전대섭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잘 들었나? 이런 일이 벌어진다네.”

    “아니, 잠시만요….”

    전대섭은 마치 대화가 스킵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전대섭은 말했지만 태운이 듣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태운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다시 전대섭에게 물었다.

    “그… 잘 듣지 못했는데 다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흠… 집중해라.”

    “네, 죄송합니다.”

    전대섭과의 대화는 태운의 의도대로 흘러갔지만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칠죄종’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는 차단됩니다.]

    [전달 정보 허용 수준을 넘었습니다. 강제로 대화가 차단됩니다.]

    [대화가 강제로 끝납니다.]

    똑같은 알림창이 떠오르며 전대섭과의 대화가 끝나 버렸으니까.

    ‘이런 게 있을 줄이야….’

    태운은 이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 해봤자 전대섭의 기분만 상하게 할 뿐,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단순히 계속 물어보는 것으로는 절대 정보 차단이라는 녀석을 뚫을 수 없을 것이다.

    이곳 말고 현실에서 어떻게든 찾아보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래도 성과가 있었으니까.’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으니까.

    ‘복수의 대상도 알게 되었으니까….’

    앞으로는 더욱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구체적인 복수의 대상을 알게 되었으니 복수의 준비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태운은 전대섭에게 인사를 하고 교장실 밖으로 나왔다.

    “질투의 괴수, 레비아탄….”

    질투라는 그 이름에 비추어봤을 때 그가 어떤 이유에서 저주를 내렸을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 최후의 칠죄종은 레비아탄이라고 알려져 있지.’전대섭의 말대로라면 마지막 칠죄종을 쓰러뜨린 사람도 태운의 부모인 강철운과 지소연일 것이다.

    ‘질투…. 둘이 자신을 쓰러뜨리고 영웅으로 추대받을 것을 질투해서 사실을 왜곡한 것인가….’그게 사실이라면 레비아탄이라는 녀석은 생각보다 찌질한 녀석일 것 같았다.

    질투로 인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 날조하고 선동하는 자의 자존감은 낮은 법이니까.

    ‘그리고… 정보 차단이라는 게 있는 줄은 몰랐어….’정보 차단은커녕 지금까지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행동에 제약이라는 건 겪어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알게 된 것도 있었다.

    ‘마정석 속 세상은 단순히 영혼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상이 아니라는 거다.’무언가 틀이 있고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누구의 마정석을 흡수하든 항상 똑같이 무미건조한 말투의 알림창이 떠오르는 것도 시스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이브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보상도 조금 짜여 있는 느낌도 들었다.’최소한의 틀과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 틀과 시스템을 정립한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마정석 안에 갇혀 있는 영혼들일 수도 있고 우리의 인지를 벗어난 신이라는 존재일 수도 있다.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존재한다는 것.

    태운은 그 존재를 찾는 일이 칠죄종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 모르겠다. 일단 좀 쉬자.”

    태운은 말은 그렇게 하고 발걸음은 지하 훈련장으로 향했다.

    태운에게 쉰다는 것은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시간에 지하 훈련장에 있을 사람을 생각해보니 오늘 쉬는 건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운이 지하 훈련장에 들어서자 찬영은 어제처럼 격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몇 날이고 저렇게 훈련을 하면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훈련의 효율과 패턴이 망가질 것이고 두세 달이 지나면 몸이 망가질 것이다.

    ‘찬영이를 위해서라도… 아니, 내가 신경이 쓰여서라도 고쳐줘야겠어.’태운은 찬영을 불러 훈련을 멈췄다.

    “어? 나 설마 지금도 몸을 혹사시키고 있던 거야?”태운은 찬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찬영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을 혹사시키고 있던 것이다.

    “일단 앉아 봐.”

    “그래….”

    찬영은 태운의 옆에 앉았다.

    “네 맘 알아.”

    태운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최고의 유망주라고 불리는 찬영과 달리 태운은 최악의 열등생이었다.

    애초에 태운은 구찬영을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옆에 있는 똑같은 열등생조차 1년 만에 올라가는 챌린저 등급에도 오르지 못하고 도태되고 있었으니까.

    구찬영을 목표로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구찬영을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열심히 했다.

    체육 수업 도중에 공기 중 마나를 흡수해 기절하는 일이 있어도 참았고 근육의 경련이 일어나도 참았다.

    마법 수식을 만들면서 코피가 나는 건 일상이었고 기절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훈련을 하면서 어디 한두 군데 부러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꼴에 각성자라고 회복은 일반인보다 빨랐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과거에는 그렇게 해야만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참 어리석은 일이었다.

    일에는 적정량이라는 것도 있고 한계라는 것도 있다.

    적정량을 넘어서면 효율이 떨어지고 한계를 넘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태운이기에 찬영을 말리고 싶은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마정석 안에 만들어져 있는 가상의 세계일 뿐이지만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나 때문에 그런 거 알고 있어.”

    “…그래, 부정하진 않을게. 처음에는 갑자기 강해진 너를 보면서 원동력을 얻었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하지만 너는 한 달 만에 엄청난 성과를 거두면서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강해졌지.”찬영의 입에서 나온 말에 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한 이유와 정확히 들어맞았으니까.

    “그것을 보면서 난 참….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솔직히 나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나보다 강한 사람은 있지만 나보다 빠르게 강해지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그러던 차에 태운이 나타난 것이다.

    “그게 충격이었던 것 같아. 나보다 월등히 빠른 성장 속도를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는 게 충격이었지.”찬영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부탁이야. 날 위로하려고 하지 말아줘. 내가 더 비참해지는 것 같으니까.”이런 상황이 되니 서혜연의 존재가 절실해졌다.

    그녀라면 이런 상황은 가볍게 해결해줬을 테니까.

    태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구찬영에게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창 들어.”

    “뭐…?”

    태운은 찬영에게 주 무기를 들게 했다.

    “나랑 대련 한번 하자.”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지. 처음 만났을 때는 대련 많이 했었잖아.”승패는 비등비등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태운이 엄청 강해졌고 찬영은 은근슬쩍 태운과의 대련을 피했다.

    자신이 더 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약함을 확인하고 인정하면서 진정으로 성장이 시작된다.’태운은 찬영이 창을 들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명운전을 떠올렸다.

    그때는 태운과 찬영의 힘이 매우 비슷했다.

    승패 또한 예측할 수 없이 치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태운은 현역 A급 헌터로서 겪은 수많은 전투 경험과 발전된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태운이 찬영과 붙는다면 100중 99는 찬영의 패배일 것이다.

    “먼저 들어와.”

    “…신체 강화, 피부 경화.”

    아직 찬영은 마나경을 익히지 않은 상태였다.

    단순한 신체 강화와 피부 경화 스킬만 사용한 채 태운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롭게 세워진 찬영의 창날이 태운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성벽 갑주.’

    챙!

    태운은 성벽 갑주를 사용했고 찬영의 공격은 태운에게 조금의 피해도 주지 못하고 막히고 말았다.

    “하이 부스트.”

    그 직후, 태운은 신체를 강화하고 찬영의 명치를 강하게 가격했다.

    “커억!”

    찬영은 그대로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그 상태로 대련은 끝이 났다.

    압도적인 패배.

    절망해도 좋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였다.

    태운은 쓰러져 있는 찬영을 회복시켜주고 다시 속으로 생각했다.

    ‘이대로 무너지면 그냥 그 정도의 사람인 거다. 더 이상 큰 성을 쌓을 힘도 없는 사람인 거지.’압도적인 패배와 자신의 나약함을 확인한 사람은 절망에 빠진다.

    그 절망에는 누구나 빠질 수 있다,

    최강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전대섭조차도 절망에 빠진 적이 있었을 것이다.

    태운은 그것을 이겨내느냐 이겨내지 못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저 고양이가 될 뿐, 호랑이는 절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운은 찬영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구찬영 본인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태운이 보증하기를, 찬영은 절대 고양이 따위가 아니었다.

    “태운아. 한 번 더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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