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내가 이걸 어떻게 말한 거지…? 분명 저주가 걸려있었을텐데….”전대섭은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태운은 그 이유도 모르고 가만히 있었지만 전대섭은 여전히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태운은 전대섭이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전대섭은 혼란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곧 울 것 같은 얼굴도 하고 있었다.
“왜 그러시는….”
처음 보는 전대섭의 모습에 태운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미디어에 비치는 전대섭은 항상 여유 있는 강력한 헌터의 모습이었다.
사석에서도 비슷했다.
딱히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고 태운도 지금까지 전대섭이 표출하는 감정은 분노밖에 보지 못했다.
“일단 진정하시고….”
태운은 전대섭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전대섭에게 태운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태운이 할 수 있는 것은 전대섭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전대섭은 마음을 가라앉혔고 태운이 앞에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미안하네. 내가 못 볼 꼴을 보였군.”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왜 그러셨는지….”전대섭은 태운의 질문에 다시 강철운을 떠올렸고 그를 떠올리자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후….”
전대섭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고 말을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전대섭의 이야기는 데블스 에이지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네 아버지… 강철운 대장님은 말 그대로 영웅이었다.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웅의 자질을 모두 가지고 계신 분이었지.”강철운은 인망, 리더쉽, 통솔력, 감정 조절 능력까지 뛰어난 명장이자 영웅이었다.
“데블스 에이지가 시작되기 한 달 전,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류가 사용하던 열병기로 제압이 가능한 수준의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그래서 던전의 위치만 파악이 되면 사상자가 없이 막아낼 수도 있었지.”그것은 태운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거충, 고블린, 몬스터 프로그 같은 E~F급 몬스터는 소총도 필요 없이 일반인이 창칼만 들어도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들이니까.
물론 상대할 수 있는 것과 이기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다.
“하지만 2주 정도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소총으로 머리를 뚫어도 바로 죽지 않는 녀석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피부로 총탄을 튕겨내는 녀석들도 나타났지. 인류는 결국 폭발물을 사용하기 시작했어.”
“네, 알고 있습니다. 미사일 같은….”
“미사일뿐이면 다행이지. 인류는 집속탄과 백린탄 같은 최악의 무기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시민의 대피가 확인되지 않은 지역에 말이다.”
“…끔찍하네요.”
이런 것은 다큐멘터리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남아 있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일이다.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 일은 아직 묻히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칠죄종의 괴수들이 나타났지. 그러자 몬스터들의 힘이 매우 강해졌고 집속탄과 백린탄 등의 전쟁 범죄급 무기를 사용해도 몬스터들이 죽지 않자 국가는 국가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그렇게 인류가 망해가던 중 헌터들이 나타났다.”칠죄종의 등장에 숨어지내던 헌터들이 힘을 합쳐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서울을 중심으로 나타난 서울 수비 연합에 나와 강철운 대장님이 있었지.”
“그랬군요….”
아직 태운이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다.
태운이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덕분에 칠죄종의 직속 부하 몬스터들의 침공에도 서울은 함락되지 않았고 국가 기능을 회복한 한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헌터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한반도 수비 연합이다. 뭐, 북한은 진즉에 망했지.”북한은 던전이 나타나자마자 반역이 일어났고 대규모 탈북 등을 이유로 3일 만에 국가 기능을 상실했다.
때문에 한국 수비 연합이 아닌 한반도 수비 연합이 되었다.
“국가 기능을 겨우 회복한 한국은 한반도 수비 연합을 국가 휘하에 두고 싶어 했지만 그게 말처럼 되겠나. 헌터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국가를 대신해 싸우고 있는 것이니 국가 밑에 들어간다는 것이 내킬 리가 없지.”
“그렇겠죠.”
국가 휘하의 부대가 된다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것이고 대통령과 고위직 간부들을 지키기 위해 손발이 묶이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럴 바에는 독립적인 단체로 남아있는 편이 훨씬 좋다.
“그래서 한반도 수비 연합은 따로 대장을 세워 독립적인 단체로 남아있기로 했다.”
“그 대장이 저희 아버지인 거고요?”
전대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망이 깊었던 강철운 대장님은 한반도 수비 연합에서 대장으로 추대되어 사람들을 지휘했다. 애초에 한반도 수비 연합의 시작은 대장님이 만드신 서울 수비 연합에서 시작한 거였으니까.”태운은 조금도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다.
조금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최악의 무능한 대장이라고 불리던 자신의 아버지가 진정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들었으니까.
“그렇게 강철운 대장님은 헌터들을 전국 각지로 파견해 몬스터들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출해 서울로 데려오는 작전을 시작했다. 그때도 강철운 형님의 강함은 압도적이었지. 경기권 사람들을 혼자 구출하셨으니까.”
“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데블스 에이지 당시 나타난 몬스터들은 대부분 C급 이상의 몬스터들이었다.
게다가 칠죄종의 괴수가 강림하면서 몬스터들의 힘은 배 이상 강해졌다고들 한다.
그렇게 강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단신으로 쳐들어가 사람들을 구출했다고 하니 얼마나 강했던 것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전대섭은 태운의 의문을 읽은 것인지 강철운의 강함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와 셀, 허덕륜이 동시에 덤볐을 때도 상대가 되지 않았어. 마력을 싣지 않은 주먹 한 번에 산이 날아갔고 검격 한 번에 건물이 쓰러졌다. 이건 절대 과장이 아니야.”
“…엄청나네요.”
아버지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전대섭이 말하는 이야기는 전부 태운이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니까.
애초에 태운이 가지고 있는 부모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9살 때였고 그마저도 엄청 흐릿했다.
그러니 여느 가정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친밀하게 느껴질 리가 없었다.
“요구조자들을 구하고 난 후, 한반도 내의 몬스터들과 던전을 처리하기 시작했지. 무려 1년이 걸려서야 한반도 내의 던전을 모두 닫는 데 성공했단다.”그 이후 한국은 제대로 된 국가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군인을 모집하고 군용 장비를 확보해 국민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다 한반도 수비 연합 덕분이었다.
“이런 헌터들이 나타난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유럽은 아예 대륙 단위로 연합을 해 거대한 단체를 이뤘었지. 그렇게 인류는 천천히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갔다.”“정말 위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헌터들이네요. 항상 존경하고 있습니다.”“뭐… 당연하겠지만 좋은 사람만 있던 것은 아니란다.”전대섭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인류가 다시 전과 비슷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 순간 칠죄종의 괴수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일들을 전부 데블스 에이지의 전초전이라고 부른다.
인류의 위기는 칠죄종의 괴수들이 직접 나서면서 시작되었으니까.
“칠죄종의 괴수들은 그 강함도 강함이지만 저주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었다.”
“저주요…?”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이었다.
저주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래, 저주 말이다. 특히 사탄이 내린 저주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지.”
“사탄….”
“분노의 괴수라고 불리는 사탄 말이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무분별한 분노를 심어주었다. 옆에 있는 면식도 없는 사람을 분노를 느껴 죽였고 심지어는 가장 사랑하던 가족까지도 제 손으로 죽이는 일마저 벌어졌다.”
“맙소사….”
저주가 풀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가족을 제 손으로 죽인 사람은 얼마나 큰 고통 안에서 살아야만 했을까.
저주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가족을 죽인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또… 식탐의 괴수인 벨제부브의 저주도 끔찍했다. 식탐의 저주에 걸린 사람은 눈에 보이는 음식을 계속해서 입에 집어넣었다. 배가 불러도 집어넣었고 음식이 가득 차 식도로 역류하여 숨이 막혀도 입에 음식을 집어넣었다. 그 사람들은 결국 질식사를 하거나 내장이 파열되어 사망했다. 음식이 없는 곳에서 식탐의 저주에 걸린 사람은… 옆에 있는 사람을 잡아먹기도 했다.”전대섭은 그 말을 하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전대섭은 과거 식탐의 저주에 걸려 자신의 딸과 아들을 잡아먹고도 서로를 잡아먹은 부부의 시체를 본 적이 있었다.
그 트라우마는 지금까지 전대섭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 있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구나. 바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꾸나.”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섭의 표정이 당장이라도 토를 할 것 같이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잠깐 숨을 고르던 전대섭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강철운 대장님이 칠죄종의 괴수를 얼마나 잡아 봉인했는 줄 알고 있나?”
“두 마리 아닙니까…?”
전대섭을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 사람들은 강철운 대장님이 칠죄종 중 두 마리만 봉인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그럼….”
“강철운 대장님은 모든 칠죄종을 본인의 손으로 봉인했다.”
“예…?”
태운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적을 가로채는 쓰레기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인가?
태운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려던 그 순간 전대섭이 태운을 말렸다.
“진정하거라. 사람이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니까.”태운은 전대섭의 말에 잠깐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단 그의 말은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을 가라앉히니 뭔가 걸리는 말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면….”전대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강철운 대장님과 네 어머니이자 대장님의 아내셨던 지소연 부대장님에 대한 사실을 왜곡한 것은 칠죄종의 괴수가 한 짓이다.”
“잠깐만요….”
분노를 표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았다.
아니, 분명 분노를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분노보다 안도의 눈물이 먼저 흘러나왔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사람이 내 아버지가 맞았어….”항상 멋있고 책임감이 넘치며 강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자신의 기억 속 부모님들이 가짜가 아니었다.
그것을 확인받은 태운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 내가 틀린 게 아니었어….”
태운은 눈물을 닦아냈지만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전대섭은 조심스럽게 태운에게 전했다.
“네 부모님들을 죽인 것도, 치욕스럽게 역사에 남긴 것도. 모두 질투의 괴수인 레비아탄이다.”그 말을 들은 순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던 태운의 눈물이 그쳤다.
그리고 전에 없던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부모님의 복수를 어디에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