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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70화 (170/379)
  • 170화

    허덕륜의 팔에 둘러두었던 불꽃과 태운이 소환한 물이 만나면서 생긴 수증기로 인해 허덕륜의 시야가 가려졌다.

    태운의 시야도 마찬가지로 가려졌지만 이번에는 전과는 달랐다.

    먼지 사이에서의 공방으로 직감이라는 스킬을 얻었고 그 스킬로 허덕륜의 위치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으니까.

    ‘지금 내 공격으로 허덕륜 선생님이 큰 타격을 입을 리는 없지만 계속 밀어붙이면서 공격하면 충분히 5분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다.’태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허덕륜에게 마법으로 공격하며 몸을 뒤로 날렸다.

    “어…?”

    하지만 태운이 직감으로 허덕륜이 있을 거라고 예상한 장소에는 허덕륜이 없었다.

    “수고했다.”

    쾅!

    허덕륜은 어느새 태운의 뒤에 서 있었고 태운은 허덕륜의 주먹에 맞아 그대로 기절했다.

    “많이 강해졌구나.”

    허덕륜은 쓰러진 태운을 안아 올린 후 보건 선생님이 학생들을 보고 있는 자리에 뉘어두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기절한 거니 적당히 봐주시면 될 겁니다.”

    “아, 네… 넵 알겠습니다.”

    보건 선생님도 허덕륜의 새로운 모습에 당황하던 중이었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C급 헌터로 알려진 허덕륜이 지금 보여준 것은 최소 A급 헌터 이상의 힘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곧 내가 C급 헌터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게 되겠군. 근데… 왜 내가 C급 헌터로 살고 있는 거지?’

    * * *

    “으으….”

    태운은 보건실 침대에서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하…. 5분 못 버틴 건가….”

    태운이 허덕륜에게 패배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전력이 허덕륜과 비교해 매우 크게 부족했다는 것이다.

    ‘허덕륜 선생님이 전력으로 한다고 말은 했지만 전력이 아니었던 거야.’허덕륜이 진심이었던 순간은 태운을 기절시키기 위해 뒤로 돌아왔을 때와 마지막 공격을 가했을 때뿐이다.

    “직감의 레벨이 아직 낮아서 제대로 위치를 알아내지 못한 탓도 있지.”태운은 직감을 얻은 직후였고 직감의 레벨은 1이었다.

    애초에 전력을 꺼낸 허덕륜의 속도는 직감 같은 하급 감지 능력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육감 정도는 되어야…. 아니, 사실 육감으로도 감지할 수 있을지 확신은 못 하겠어.’예전에 만났던 쟝도 육감으로 감지하지 못했으니까.

    육감이 성능 좋은 감지 능력인 것은 맞지만 모든 것을 감지해주는 완벽한 감지 능력은 아니다.

    ‘이번 마정석 흡수가 끝나면 더 좋은 감지 능력을 찾아야겠어.’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육감 하나만 믿고 가기에는 살짝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성벽 갑주도 완성은 했지만… 사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고.’성벽 갑주가 완성되면 한동안은 직접 타격을 받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덕륜의 주먹에 성벽 갑주는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지력 스탯이 낮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변이된 마나의 영향도 충분히 있는 것 같아.’현실의 태운이 가지고 있는 변이된 마나는 마나의 질과 순도가 매우 높아 마법의 질과 수준 또한 높여주었다.

    하지만 마정석 안에서의 태운은 그 변이된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성벽 갑주의 성능이 예상하던 것만큼 뛰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현실로 돌아가 성벽 갑주를 사용하면 상당한 성능을 보여줄 것이다.

    “일단 지금 시간이 몇…?”

    태운은 무심코 시계를 보았고 순간 깜짝 놀랐다.

    “11시…? 나 몇 시간 동안 기절해있던 거지?”보건실에 암막 커튼이 처져 있어서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해가 진 지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허어… 하루를 날리게 생겼네.”

    11시니 훈련을 2~3시간 정도만 하고 집에 돌아가 자야 한다.

    지금까지 기절해 있었으니 밤을 새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래도 된다.

    헌터는 3일 정도 자지 않는다고 해서 신체에 큰 무리가 가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생활 패턴이 꼬이고 그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훈련 과정에서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쯧… 별수 없지. 내가 자초한 일이잖아.”

    애초에 얌전히 1분만 버텼으면 기절할 일도 없었고 기절했다 해도 10분 정도만 잠깐 기절했을 것이다.

    괜히 허덕륜의 전력을 느껴보고 싶다는 이유로 허덕륜에게 이상한 부탁을 했으니 이것은 온전히 태운의 잘못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훈련해야겠다. 1시간 정도만 늦게 자는 걸로 하자.”태운은 항상 자신이 정해놓은 생활표에 따라 움직였다.

    물론 2~30분 정도의 변동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하루 시간표에 적힌 일들을 모두 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오죽하면 아카데미에 다닐 때 두 번째 별명이 로봇이었겠는가.

    ‘정확히는 로봇 청소기 같은 이름으로 불렸었지.’로봇이라고 하니 조금 강해 보인다는 게 그 이유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 유치하네. 그 당시에는 굉장히 수치스러웠었는데. 지금은… 마스터키라는 이명이 더 수치스러워….’다른 사람들은 잘 몰랐겠지만 마스터 등급 선배들이 지어준 마스터키라는 이명이 태운을 항상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마스터키라는 이명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걸 팍팍 티 냈으니 곧 다른 이명이 붙겠지.’태운은 보건실에서 나와 교실로 돌아가 가방을 챙겼다.

    가방 안에 있는 휴대폰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문자가 왔었나?’

    태운은 휴대폰을 들어 패턴을 풀고 떠 있는 알람을 보았다.

    ‘문자가 왔었네…. 이 번호는… 전대섭 선생님인가?’현실에서는 당연히 저장되어 있었지만 지금 보고 있는 휴대폰에는 전대섭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눈에 익은 번호라 알아봤을 뿐이다.

    문자의 내용은 간단했다.

    [내일 아카데미 일정이 끝나거든. 다시 한번 교장실로 와주게.]

    전대섭이 직접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허덕륜과 강태운의 대련 소식이 전대섭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허덕륜과 전대섭은 매우 친한 사이니까.

    ‘아직은 내가 만족할 정도로 강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건가.’아마 내일 전대섭과 만나면 전대섭은 여러 가지 제안을 할 것이다.

    한국에서 헌터 생활을 하면 돈을 준다든지 길드를 만들 때 이권을 준다든지… 등등.

    어떻게든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뭐, 거절할 이유는 없지.”

    졸업 이후에는 태운이 마정석 흡수를 완료하고 이 세계에서 떠나갈 테니까.

    “일단 훈련이나 좀 더 하러 가자.”

    태운은 아카데미를 나가 지하 훈련장으로 향했다.

    지하 훈련장에는 역시나 구찬영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찬영의 모습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온몸이 부서져라 훈련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빡세게 하는 거 아냐? 그렇게 하면 몸에 무리가.”태운은 구찬영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라면 그를 방해하지 않고 자신의 훈련을 했을 테지만 지금은 왠지 말려야 할 것 같았다.

    훈련에 있어서는 태운을 능가할 정도로 정석적인 모습을 보였던 찬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거의 매일 같은 공간에서 훈련을 해왔던 태운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어, 안녕.”

    찬영은 어물쩍거리며 태운에게 인사했다.

    태운은 그 모습을 보고 찬영이 지금 왜 그렇게 빡세게 훈련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너, 나 때문에 그러냐?”

    “무, 무슨 소리야?”

    “맞네. 나 때문에 지금 그렇게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훈련하는 거.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야. 열심히 하더라도 정도는 지켜야지.”

    “…….”

    태운은 찬영의 생각을 그대로 읽어냈다.

    현실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찬영은 태운을 라이벌로 생각해왔다.

    시작점은 같으나 속도는 너무나도 달랐다.

    찬영은 항상 태운을 뒤에 두고 있었지만 어느새 태운을 옆에 두고 같이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태운은 찬영을 빠르게 제치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까지도 괜찮았다.

    그 정도는 승부욕이 불타올라 더욱 열심히 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손에 닿지도, 따라잡을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가 버린 태운을 보니 원동력은커녕 질투만 안겨주었다.

    찬영도 스스로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질투는 계속해서 찬영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골백번 마음을 다잡았지만 마음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았다.

    그 답답한 마음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일단 좀 쉬어.”

    태운은 일단 찬영을 말렸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몸이 망가져 버릴 것 같았으니까.

    “알겠어….”

    태운은 의기소침해 있는 찬영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게 다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저런 일이 있지 않았는가.

    ‘내가 명운전에서 이겼을 때 말이지.’

    그때는 서혜연이 도와줬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굉장히 곤란해졌을 것이다.

    사실 찬영은 겉은 굉장히 단단해 보이지만 그 속은 그렇지 않다.

    꽤 예민하고 여린 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태운은 그래서 결심했다.

    ‘내일 말해야겠다.’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는 것만으로 찬영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찬영이가 어디 떠벌리고 다닐 애도 아니니까.’그에게만큼은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았다.

    * * *

    “현금 1,000억, 길드 지원 헌터 1순위 지명권, 헌터 협회 명예 감사관… 등등 이게 뭐죠?”태운은 눈앞에 떠 있는 홀로그램 화면을 보고 그대로 읽었다.

    이것이 뭔지는 알고 있지만 태운은 모르는 척 전대섭에게 물었다.

    “네가 한국 소속 헌터로 남아 있는 것을 조건으로 내가 헌터 협회에서 받아낼 수 있는 보상들이다. 현금 부분은 더 늘릴 수 있다. 네가 성과를 미친 듯이 뽑아내야겠지만.”거절할 이유가 없는 조건들이다.

    어차피 지금 이 조건을 받아들여도 태운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헌터가 됐을 때는 이미 이곳에 없을 테니까.

    태운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전대섭도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나저나 허덕륜과 그렇게 싸울 수 있었다니…. 승급 테스트는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감사합니다.”

    태운은 잠시 감상에 빠졌다.

    ‘예전에 나는 여기서 아버지에 대해 물어봤었지.’마음에 드는 대답을 듣지 못해 분노를 마음에 품기도 했었다.

    ‘다 부질없는 분노였는데 말이야.’

    태운은 혹시 몰라 과거와 똑같은 질문을 전대섭에게 던졌다.

    강철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은 어땠느냐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게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 맞느냐고.

    잠깐 동안 전대섭과 태운이 있는 이곳은 정적에 빠졌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전대섭이었다.

    “너희 아버지는….”

    여기까지는 예상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 전대섭이 한 말은 태운의 예상을 뒤엎어 버렸다.

    “너희 아버지는 모든 칠죄종들이 두려워했던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네?”

    전대섭도 스스로 말하고도 놀란 것 같았다.

    “이걸 내가 어떻게 말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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