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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63화 (163/379)
  • 163화

    “오셨네요.”

    “오냐.”

    회의가 있던 날의 다음 날.

    허덕륜이 공략대 캠프에 도착했다.

    허덕륜은 오자마자 헌터들과 인사를 나누고 캠프의 상황을 전달받았다.

    ‘뭔가 마음이 놓이네.’

    드래이그 고흐 때문에 근심이 많던 태운에게 허덕륜의 존재는 천군만마와 같았다.

    “선생님이 오셨으니까… 아마 두 시간 내로 회의가 열릴 겁니다.”

    “그럼 그전까지 대화나 좀 하자꾸나.”

    “좋죠.”

    거대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해 둘 다 먼 곳에 있느라 이렇게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허덕륜은 억눌러왔던 힘을 쓰고 몸을 움직이니 얼굴빛이 밝아진 것 같았다.

    “그래, 드래이그 고흐 녀석의 힘은 어땠나.”허덕륜은 태운을 앉혀놓고 드래이그 고흐의 힘을 물어보았다.

    허덕륜도 과거에 거대화하기 전의 드래이그 고흐와 싸워본 적이 있다.

    그렇기에 거대해진 녀석의 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강합니다. 가죽이 너무 두꺼워서 치명상을 주려면 온 힘을 쏟아부은 공격을 해야만 합니다. 사실상 녀석에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은 전대섭 선생님과 셀 헌터님 뿐입니다.”“하오도 녀석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할 정돈가?”“음… 일전의 전투보다 더 강한 공격을 할 수 있다면 녀석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하오도 드래이그 고흐를 죽일 만한 공격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허덕륜은 그 말을 듣고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거대해지기 전에도 죽이지 못했던 녀석인데 거대해졌으니…. 하오가 녀석에게 치명상을 줄 수 없다면 나도 녀석에게 큰 피해를 줄 수는 없겠구나.”허덕륜도 자신이 하오보다 약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태운은 그런 허덕륜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녀석은 정말 강합니다. 지금의 저도 녀석에게 타격을 주지 못할 텐데….”

    “태운아.”

    허덕륜은 그런 태운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태운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태운, 이거 많이 약해졌네?”

    “네?”

    태운은 현재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불과 2달 전과 비교해도 태운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고 있던 태운에게는 허덕륜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 많이 강해졌습니다. 거대 몬스터랑 칠죄신교 녀석들 죽이면서….”

    “그런 거 말고, 인마.”

    파-앙!

    허덕륜은 태운의 등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많이 나약해졌어. 마나양 10에 신체 능력도 안 좋은 녀석이 한국 최고의 헌터 아카데미에서 3년 차까지 버텼잖나. 그런 놈이 A급 헌터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함을 가지게 됐는데 더 나약해졌어. 아카데미 시절의 네가 더 강해 보인다.”

    “…….”

    태운은 그의 말을 듣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들어가는 건 쉽지만 졸업하는 건 어렵다고 할 정도로 버티기 어려운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서 아무것도 없이 2년이나 버틴 끝에 3년 차에 단물을 마신 태운이다.

    과거의 태운은 최악의 열등생이라고 불리면서도 버티면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쌓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나약해졌지?’

    쟝을 만나 죽을 뻔했을 때, 아카데미 시절의 태운이었다면 쟝을 이기겠다며 강해지기 위한 방법이란 방법은 다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태운은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셀 헌터님에게 감사하다.’, ‘다음에 만나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이런 생각들만 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그때보다 더 오래전부터 나약해지기 시작한 걸까.

    태운은 허덕륜의 말에 한순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때, 태운의 표정을 읽은 허덕륜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넌 이런 게 문제야.”

    “네?”

    “너무 극단적이란 말이다.”

    허덕륜은 한번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태운에게 말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힘든 건 당연한 거고 지치는 것도 당연한 거다. 그렇지 않나?”

    “네….”

    “그럼 지쳐서 잠시 멈추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그걸 나무라는 게 아니다.”허덕륜은 그동안 멈추지 않고 달리는 태운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걱정하고 있었다.

    사람이 아무리 강하고 질겨도 언젠가는 지치기 마련이다.

    지칠 수 있다. 지치는 거야 괜찮다. 언제든 지쳐도 좋다.

    하지만 지쳤을 때의 태운이 선택할 일이 뭘까.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태운이 취할 행동이 무엇일까.

    그를 수년간 지켜본 허덕륜은 잠시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었다.

    태운은 자신이 지쳤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안일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채찍질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넌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상대가 나타나면 그 어떤 방법을 찾아서라도 녀석을 뛰어넘겠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더욱 몰아붙였지.”“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요.”그게 강태운의 강점이자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게 해준 태운의 강함이다.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못할 게 없긴 하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하더구나. 하지만 그렇게 계속 자신을 몰아붙이다 보면 언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단다.”그 말을 하는 허덕륜은 남 일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지금 제가 뭘 해야 하는 거죠?”

    “그건 나도 모르지.”

    허덕륜은 태운의 질문에 장난스럽게 답해주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에는 조금의 장난기도 섞여 있지 않았다.

    “너는 충분히 강하다. 드래이그 고흐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해도 녀석에게 겁먹을 필요는 없어.”

    “…….”

    “지금 네 문제는 그것뿐이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 하지만 방금 드래이그 고흐에 대해 말하던 너에게선 아카데미 시절에 볼 수 있었던 패기가 느껴지지 않았어. 그게 아쉬웠을 뿐이다.”태운은 허덕륜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본인도 왜 그런 것인지 몰랐다.

    별말도 아닌 조언일 뿐인데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태운을 감쌌다.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 그 길 위에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감정이 썩어가던 것일까.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이 자신을 엄청나게 힘들게 했던 것 같았다.

    그것들이 앙금이 되어 쌓여 있었고 그것을 허덕륜이 치워준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태운은 허덕륜에게 눈물 대신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게 허덕륜에게 더 큰 선물이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으니까.

    “그래, 이제야 조금 아카데미 시절의 네가 보이는 것 같구나.”

    “그렇습니까?”

    허덕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금의 네가 드래이그 고흐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건 불가능하다.”갑자기 진지해지는 허덕륜을 본 태운은 장난스럽게 꿍얼거렸다.

    “선생님… 지금 병 주고 약 주고… 또 병을 하나….”“허허, 그러냐. 그럼 이제 약을 줄 차례인가?”허덕륜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재킷의 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건….”

    허덕륜이 꺼낸 것은 걸쇠가 걸린 손바닥만 한 상자였다.

    태운은 열어 보지 않아도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거… 특별한 마정석 아닌가요?”

    “바로 알아채는구나. 정답이다.”

    “이걸 어떻게….”

    “자하르 박사님께서 나에게 전해주시더구나. 이게 너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아….”

    허덕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슬슬 길드장급 헌터들이 날 부를 때가 된 것 같은데….”태운은 허덕륜의 의도를 읽고 웃으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 마정석들, 빨리 흡수하고 강해지겠습니다.”“작전 강행은 이틀 후라고 하더군. 잊지 말고 시간 잘 맞추게.”

    “감사합니다.”

    “오냐.”

    허덕륜은 태운의 천막에서 나갔고 태운은 상자를 열어 마정석을 관찰했다.

    ‘중상급 두 개와 상급 하나. 자하르 박사님이 이걸 그냥 주셨다고?’연구에 엄청난 집념을 보이는 자하르가 이렇게 흥미로워 보이는 마정석을 연구실에서 모니터링하는 것도 아니고 태운에게 그냥 넘겨주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그래도 나중에 감사 인사는 전해야겠네.”

    태운은 중상급 마정석을 손에 쥐고 남은 마정석은 상자에 넣어 아공간에 넣었다.

    ‘셀 헌터님이 녀석의 날개에 손상을 줬어…. 그게 아직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고….’전대섭이 쏘아낸 제우스의 창에 맞은 부위도 여전히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한다.

    녀석에게 그것이 치명상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상처를 입혔고 그게 이틀이 지나도록 회복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승산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이 마정석들을 흡수하고 공격력을 강화해 녀석에게 상처를 입힐 수만 있다면 드래이그 고흐 공략의 성공률은 확실히 높아진다.’태운은 중상급 마정석을 손에 쥔 뒤 마정석 흡수를 사용했다.

    * * *

    태운이 마정석 흡수를 사용하고 눈을 뜬 공간은 어느 호화로운 방 안이었다.

    하지만 어딘가의 귀족이나 왕족이 사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수많은 미라들이 방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번 주인공은 무슨 네크로맨서라도 되나….”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갑옷이나 무기 같은 장비도 훌륭했고 몸도 잘 관리되어 있었다.

    네크로맨서는 실험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빼앗기기 때문에 이런 몸을 가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때, 태운의 머릿속에 몸 주인의 기억이 들어왔다.

    [‘이름 모를 자객’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실험체로 삼았다는 네크로맨서를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고 네크로맨서의 저택에 침입했습니다. 네크로맨서는 사령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고 자신이 수명을 다해 죽더라도 다른 미라의 몸으로 부활해 실험을 지속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두었습니다. 네크로맨서의 연구를 멈추십시오.]

    “흐음… 네크로맨서라….”

    간단히 정리하자면 네크로맨서의 연구를 멈춰야 하는데 그를 죽여도 미라로 부활해 다시 연구를 하기 때문에 죽이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럼 간단하네. 해결 방법이 내 목표랑 부합하기도 하고.”태운은 몸 주인의 스킬을 둘러보았다.

    “음… 쓸 만한 건… 이거다.”

    태운은 은신을 사용하고 저택 밖으로 나와 공격을 준비했다.

    태운이 사용할 스킬은 ‘달빛 추락’이었다.

    달빛을 공격력을 가진 무언가로 만들어 공격하는 강력한 스킬이었다.

    달이 내뿜는 빛이 진할수록 공격력이 강해진다.

    또한 사용하는 마나의 양이 많아도 위력이 커진다.

    “마침 또 오늘이 보름달이네. 달빛 추락.”

    태운이 스킬을 사용하자 저택을 내리쬐던 달빛이 천천히 형체를 가지기 시작했다.

    ‘오버 서플라이….’

    몸의 주인은 오버 서플라이 스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태운의 테크닉으로 커버했다.

    ‘마정석의 보상은 두 개로 나뉜다.’

    몸의 주인이 가지고 있던 스킬이나 특성.

    그리고 마정석이 내어주는 임무를 완수하면서 보여주었던 자신의 행보를 기반으로 하는 보상.

    이렇게 크게 둘로 나뉜다.

    “이렇게 한 번에 강력한 공격으로 임무를 클리어하면 한 번에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스킬이나 특성을 주지 않겠어?”콰가가가가가각!

    환하게 저택을 밝혀주던 달빛은 그대로 저택을 짓눌러 박살을 내버렸다.

    달빛에 의해 짓밟힌 저택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저택은 집도 아닌 나무 쪼가리가 되어 버렸으며 방 안에 있던 수많은 미라들도 형체 없이 모두 곤죽이 되어 있었다.

    아마 그 안에 네크로맨서도 섞여 있을 것이다.

    [클리어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보상이 뭔지나 한번 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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