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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62화 (162/379)
  • 162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군요.”

    “신정훈 헌터가 사용한 스킬의 위력이 상당했습니다.”거대 몬스터 섬멸 작전이 끝나고 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하기 위해 다시 전대섭의 천막에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혼자 200마리가 넘는 거대 몬스터를 일거에 처치한 걸로 기록되어 있다만….”자이언트 길드의 부길드장인 체이커가 장신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며 물었다.

    잘못 적은 게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다.

    “네, 사실 240마리 정도는 신정훈 헌터가 죽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놀랍군….”

    태운의 활약상을 들은 헌터들은 더 이상 그를 무시하지 않았다.

    전대섭과 셀을 제외한 상위권 A급 헌터들도 거대 몬스터를 동시에 2~3마리 이상 상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혼자 200마리가 넘는 거대 몬스터를 일거에 처리했다?

    태운은 더 이상 무시하려야 할 수 없는 업적을 세운 것이다.

    “어린 나이에 대단한데?”

    “그러게 말이야.”

    태운을 처음 봤을 때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헌터들도 태운은 인정했다.

    하지만 거기에 뿌듯해 할 시간은 없었다.

    “이럴 시간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드래이그 고흐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하여간… 붙임성 없기는….”

    “뭐, 맞는 말이니 빨리 시작하지.”

    이번 작전에서 활약하기 전의 태운이 이런 말을 했다면 온갖 무시를 당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 작전이 큰 피해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래도 태운의 덕분이었으니까.

    태운에 대한 말이 끝나자 전대섭이 입을 열었다.

    “다들 드래이그 고흐의 힘은 충분히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예, 심각할 정도로 전력 차이가 나더군요.”“제 공격에 타격조차 입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A팀에는 전대섭과 자이언트 길드의 케빈, 금호 길드의 하오, 독일 마피아 길드의 알베르토까지.

    전세계 헌터 랭킹 10위 안에 드는 헌터들이 4명이나 있었다.

    그 밑으로도 공격력만큼은 10위 안에 드는 헌터라고 여겨지는 자이언트 길드의 체이커, 버프의 귀재라고 불리는 일본의 나오미.

    지금까지 이렇게 밸런스가 잘 맞으면서 강한 전력을 가진 공격대가 모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이그 고흐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있던 사람은 4명밖에 없었다.

    “사실…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이언트 길드의 체이커가 가진 최강의 스킬을 드래이그 고흐의 이마에 꽂아 넣었을 때 녀석은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았다.

    “게다가 제 버프까지 들어갔었습니다. 녀석의 물리 방어력은… 사실 끝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습니다.”“마법 저항력도 상당하더군. 내 마법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죽기는 하는 놈인 거냐고….”

    대화만 들으면 모두 포기한 것 같았지만 헌터들의 눈은 살아 있었다.

    이곳에 있는 헌터들은 헌터들이 군인 취급을 받았던 시절부터 용병이었던 시절을 지나 지금처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까지.

    밑바닥에서 이곳까지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절망적인 상황을 수없이 넘겨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게 우리 일인 것을.”

    “안 되는 것도 되게 해야지.”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수준의 절망이지만 언제는 그러지 않았겠는가.

    한 단계 짙은 절망을 극복해나가면서 성장했고 그랬기에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헌터들이 장사꾼이 다 되었다고들 하지만 그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전보다 상황은 좋아졌다.”

    전대섭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전대섭과 비슷한 수준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 강자인 셀이 공략대에 참여했고 최근 아메리카 대륙에서 거대 몬스터들을 때려잡고 있던 허덕륜까지 합류 의사를 전해왔다.

    게다가 B팀에 소속되어 있던 강태운과 창공 길드의 길드장인 장신까지 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할 테니 전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일단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은 전대섭 선생님과 셀 헌터님이지.’그 밑으로는 금호 길드의 하오가 있다.

    ‘허덕륜 선생님도 강하시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힘으로만 보면 하오가 허덕륜 선생님보다는 확실히 더 강하다.’하오는 2m의 신장을 가지고 자신의 키보다 긴 창을 들고 전투에 임한다.

    헌터가 되기 전에도 무술 도장 사범으로 일하고 있던 그는 헌터로 각성하자마자 두각을 드러냈다.

    ‘던전 공격대 구출 작전은 유명하지….’

    금호 길드가 천천히 커가고 하오의 이름이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하오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날이 있었다.

    그날 금호 길드의 1군 공격대는 C급 던전에 하오 없이 들어갔다.

    C급 던전을 공략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치는 전력이었고 하오도 딱히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공격대가 그 던전에 들어간 순간 던전 에볼루션이 일어났지.’던전 에볼루션이 일어나 C급 던전은 단숨에 준A급 던전이 되었고 그 안에 들어간 헌터들은 죄다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 소식을 들은 하오는 그대로 TV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뛰쳐나가 단신으로 창만 가지고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 에볼루션이 일어났을 때 그 던전은 90% 이상의 확률로 출입이 불가능해진다.

    그 던전에 들어간 헌터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던전 에볼루션이 일어나면 발만 동동 구를 뿐 별다른 대처가 불가능하다.

    ‘던전의 입구가 막히는 원리는 간단하지. 엄청난 농도의 마나가 벽을 만들어서 이동할 수 없는 거지.’사람들이 마법으로 만드는 마나벽과는 원리나 구성 자체가 다르다.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하오가 그걸 해냈지.’

    하오는 TV 프로그램 녹화장을 박차고 나와 바로 던전으로 갔고 던전의 입구를 막고 있는 벽을 찢어 버렸다.

    하오의 특성은 ‘마나 처단자’.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나의 천적이다.

    아무리 방대한 양의 마나라고 해도 그의 앞에서는 뱀을 만난 개구리에 불과했다.

    하오가 던전의 벽을 찢어 버리는 순간 세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전대섭도 단순한 공격으로 던전 입구의 벽을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을 정도였으니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짜 A급 던전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준A급 던전에서 단신으로 만나는 몬스터들을 죄다 도륙하고 자신의 공격대를 구해왔으니까.

    그 사건 이후 하오의 이름은 하늘로 치솟았고 동시에 금호 길드는 중국의 대표 길드로 성장했다.

    ‘하오의 몸에 있는 수많은 흉터를 얻은 것도, 한쪽 눈을 잃은 것도 그 던전에서 있던 일이지.’하오는 명실상부 중국 최강의 헌터였다.

    ‘물론 허덕륜 선생님도 크게 밀리지는 않아. 오히려 전성기 시절이었다면 허덕륜 선생님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지.’과거 마르기가스와 허덕륜의 대화에서 마르기가스가 허덕륜더러 전보다 많이 약해졌다고 했으니까.

    “전력이 많이 추가된 만큼 이번에는 꼭 녀석을 처치해야만 한다.”전대섭의 말이 끝나자 자이언트 길드의 수장인 케빈이 전대섭에게 질문을 했다.

    “전력의 보강 이야기가 나왔으니 묻고 싶은 게 있다. 허덕륜의 강함은 어느 정도지?”“그래, 허덕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C급 헌터로 활동하면서 힘을 숨기고 있지 않았나.”“거대 몬스터를 해치우는 영상을 보면 충분히 믿음직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확실한 정보를 알고 싶어서 그렇네.”케빈의 질문에 다른 사람들도 궁금했었다는 듯 동시에 말을 꺼냈다.

    “흠… 그 생각을 못 했군. 그래… 허덕륜은 어느 정도일까….”전대섭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오보다는 아래, 신정훈보다는 조금 위라네.”

    “흐음….”

    케빈은 대답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범위가 조금 넓은 것 같은데.”

    “음? 무슨 소린가.”

    “하오처럼 최상위권 헌터보다는 약하고 신정훈보다는 강하다니 범위가 너무 넓은 것 같아서 말이야.”전대섭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케빈을 쳐다보았다.

    “현 시간을 기준으로 캠프 안에 있는 사람 중에 강한 사람 순위를 매겼을 때 하오의 바로 아래 순위는 신정훈 헌터다.”이번에는 케빈을 포함한 모두가 놀라며 전대섭 헌터를 바라보았다.

    “……? 이런 상황에 장난은 용납할 수 없다만.”“장난이라니. 신정훈 헌터가 보여주었던 스킬과 마법을 보지 않았는가.”장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정훈 헌터의 마법을 직접 눈으로 본 내가 봐도 그렇다. 신정훈 헌터는 마법사 헌터로서는 전대섭의 바로 뒤에 설 정도로 뛰어나네. 아, 그의 스승인 강태운 헌터가 더 강할 테니… 그의 뒤에 선 거라고 봐야겠군.”장신은 기분 나쁘게 이죽거리며 태운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본 태운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입을 열었다.

    “누가 더 강한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허덕륜 헌터님의 전력은 하오 헌터님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결론 짓고 넘어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음… 일단 알겠다.”

    케빈은 태운에게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고 언제 한번 대련이나 하자고.’

    ‘그럽시다.’

    하지만 케빈의 바람이 이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신정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헌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테니까.

    “그럼 지금부터 드래이그 고흐에 대한 정보를 모아보도록….”그때부터 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하기 위한 진짜 회의를 시작했다.

    각자 싸우면서 알아낸 드래이그 고흐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생각을 충분히 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든가.

    크기 차이가 엄청나긴 하지만 헌터들 하나하나를 확실히 인지하고 싸우고 있는 것 같다든가.

    일전의 전투에서 드래이그 고흐는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라는 같다는 것 등등이야기할수록 드래이그 고흐의 강함만 강조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전보다 녀석을 처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녀석에게 제대로 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케빈, 하오, 알베르토뿐이었다. 하지만 신정훈, 장신, 셀, 허덕륜까지 4명이나 추가됐다. 그리고 직접적인 데미지는 주지 못하겠지만 녀석의 시선을 끌어줄 C급, B급의 헌터들도 있다.”전대섭은 책상을 가볍게 내리쳤다.

    “우리가 녀석을 이길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하지만 가능성은 존재한다.”아무리 낮은 가능성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가능성을 뚫어야만 한다.

    그게 최정상급 헌터가 해야 할 일이니까.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다. 내일 허덕륜 헌터가 도착하면 그때 다시 회의를 시작하겠다. 드래이그 고흐의 움직임은 별일이 없어도 30분에 한 번씩 보고 부탁하네.”전대섭의 그 말로 회의는 끝이 났고 거대 몬스터 섬멸 작전 성공 소식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중 신정훈 헌터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는 대서특필로 보도되었고 전 세계 사람들은 신정훈 헌터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정보가 나오지 않는 신정훈을 파는 것보다 신정훈이 스승이라고 밝힌 태운의 정보를 기사에 올리는 것이 더욱 잘 팔렸다.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신정훈의 활약으로 강태운의 명성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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