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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61화 (161/379)
  • 161화

    A급 중상위권 헌터 50명.

    그들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투의 프로들이다.

    아마 데블스 에이지 이후 이 정도 수준의 강자들이 모인 것은 두 번째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대는 똑같이 드래이그 고흐였다.

    그 크기는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미친. 이거 잡을 수 있는 거야?”

    “일단 버텨!”

    “적어도 B팀에서 승전보가 들려올 때까지는 버텨라!”이번 작전은 드래이그 고흐를 잡는 게 아니었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부수면서 전진하는 거대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

    그게 이번 작전의 첫 번째 목표였다.

    물론 드래이그 고흐를 잡을 수 있으면 잡는 게 좋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녀석을 잡기는커녕 피해 없이 살아 돌아가기만 해도 성공일 수준이었다.

    ‘그동안 헌터들의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는데….’이곳에는 과거 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한 헌터들도 다수 있었다.

    과거에 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할 정도의 헌터라면 지금도 손에 꼽는 강자, 게다가 그들은 더욱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드래이그 고흐와 거대화한 드래이그 고흐는 힘의 차이가 엄청났다.

    “어차피 지금은 녀석을 잡을 수는 없다! 사상자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방어적으로 녀석을 상대한다!”A팀의 지휘를 맡은 전대섭도 시간을 끌며 버티라는 것 말고는 다른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셀… 너라도 있었다면 녀석을 잡는 게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과거 드래이크 고흐를 상대해 봤던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드래이그 고흐의 공격 패턴과 움직임을 무의식적으로 파악해 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로는 녀석과의 힘의 격차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전대섭과 두세 명 정도의 공격만 드래이그 고흐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고 있었고 다른 헌터들은 아무리 공격해봤자 녀석의 비늘에 흠집만 낼 뿐이었다.

    다른 헌터들은 사실상 어그로용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었다.

    “크윽….”

    하지만 그것도 이젠 무의미해졌다.

    착실히 데미지를 쌓아오던 헌터들의 힘이 빠졌고 드래이그 고흐도 슬슬 자신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해 공격하기 시작했으니까.

    이대로 10분만 더 지나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커억!”

    한 명의 헌터가 드래이그 고흐의 날개에 얻어맞고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고작 날갯짓이 얼마나 강하겠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녀석의 몸무게는 수천 톤이나 나갈 것이다.

    녀석이 날 수 있는 이유는 마법의 도움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녀석의 무게를 지탱하는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수천톤의 무게를 지탱하는 강력한 날개에 맞았으니 그대로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젠장….”

    첫 번째 사망자다.

    하지만 고작 한 명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버티던 사람들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죽었다는 건 그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헌터들이 죽는 것 말이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수십 명의 헌터들이 목숨을 잃을 거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라! 더 이 악물고 살아남아!”

    지금 전대섭이 할 수 있는 건 남은 헌터들의 멘탈을 잡아주는 것밖에 없었다.

    ‘강해졌다고 자부해왔건만 이리도 무력하다니….’전대섭이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하던 순간, 한 줄기 빛처럼 누군가가 등장했다.

    “일섬.”

    이곳은 약 200m 상공.

    전대섭이 50명의 헌터 모두에게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주었기 때문에 다른 헌터들도 이곳에서 전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사람은 전대섭이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주지 않았다.

    스스로 플라이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다리심으로만 200m를 뛰어오른 것이다.

    “뭐지?”

    “방금 뭐가 지나갔는데….”

    정체불명의 형체는 순식간에 지상에서부터 날아올라 드래이그 고흐를 지나쳐갔다.

    탑클래스 헌터들이 모인 이곳에서도 그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사람은 전대섭을 포함해 서너 명밖에 되지 않았다.

    [쿼어어엉!]

    레이드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듣는 드래이크 고흐의 포효였다.

    자세히 보니 드래이크 고흐의 날개 익막이 길게 찢어져 있었다.

    “익막도 질기군. 이런 녀석을 나 없이 어떻게 잡으려고 그랬나?”

    “귀찮다고 뻗대더니 빨리도 왔군, 셀.”

    위기의 순간 빛처럼 등장한 사람은 셀이었다.

    셀은 드래이그 고흐가 고통스러워하는 틈을 타서 전대섭에게 돌진했다.

    전대섭은 셀에게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줬고 셀은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플라이 마법을 제어하며 전대섭의 앞에 멈춰 섰다.

    “오는 길에 신정훈 헌터를 만났다. 남은 거대 몬스터의 수는 10마리 남짓. 철수해도 좋다고 말했네.”

    “B팀도 잘해줬군.”

    전대섭은 자신의 발밑에 있는 강태운을 발견했다.

    강태운을 방금 드래이그 고흐의 날개에 맞아 바닥으로 떨어진 헌터를 안고 전대섭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헌터가 지상에 떨어지기 직전, 태운은 하이 솔리드 아머를 씌워 충격을 막아주었다.

    덕분에 그 헌터는 전신 골절에 그쳤고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응급처치는 해놓은 것 같군.’

    전대섭은 확성 마법을 사용해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B팀이 승전보를 전해왔다! 빠른 속도로 하강해 발밑에 있는 신정훈 헌터에게 붙어라!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해 캠프로 전이하겠다!”그 말은 들은 헌터들은 자신의 발밑을 보고는 즉시 하강했다.

    드래이그 고흐는 자신을 공격하던 수십 명의 헌터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도망가자 그곳에 신경을 돌렸다.

    “이때를 노렸어.”

    전대섭은 녀석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신경을 돌렸을 때에 사용하기 위해 고위력의 마법을 준비해두었다.

    “제우스의 창.”

    전대섭의 옆에 거대한 전격의 창이 생성되었다.

    그 크기는 드래이그 고흐를 상대하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셀, 너도 실력 행사 좀 해라.”

    “안 그래도 할 생각이었다.”

    전대섭은 제우스의 창을 던졌고 뒤따라 셀도 오러를 길게 뽑아냈다.

    ‘오러를 사용했는데도 녀석의 익막을 자르는 데 그쳤다.’오러는 사용하면 나뭇가지로도 자르지 못하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사기적인 힘이다.

    하지만 절삭력이 말도 안 되게 올라가는 것일 뿐, 정말로 자르지 못하는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뭐, 실제로 지금까지 자르지 못한 물질은 없지만.’그런 셀도 방금 녀석의 익막을 자를 때 저항감을 느꼈다.

    오러를 사용하면서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러 파일럿.”

    부-웅!

    셀은 짙은 농도의 오러를 쏘아내 드래이그 고흐를 공격했다.

    셀이 오러를 쏘아내는 순간 먼저 날아간 전대섭의 공격이 드래이그 고흐에게 적중했고 그 뒤를 이어 셀의 공격이 드래이그 고흐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셀의 공격은 녀석의 비늘을 벗겨내고 살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했고 전대섭이 사용했던 제우스의 창도 드래이그 고흐에게 통하는 초고압 전류를 가지고 있었다.

    [쿼어어엉!]

    오늘 두 번째로 들어보는 드래이그 고흐의 포효였다.

    “크윽.”

    드래이그 고흐에게 공격을 날린 전대섭이 휘청거렸다.

    “괜찮나. 텔레포트는 쓸 수 있겠어?”

    “그정도 계산은 해놨다. 좀 지치긴 했지만 한계는 아니야.”“하여간 마법사란 족속들은 마나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 말이야.”“마나가 있어도 무식하게 쏴대기만 하는 검사들보단 낫지.”

    “허어….”

    전대섭은 지금까지 50명에게 플라이 마법을 써주고 있었고 방어막도 수시로 사용해주면서도 공격까지 착실히 실행했다.

    그가 사용한 마법의 수와 그 퀄리티를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서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런 일은 전대섭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전대섭이 없었다면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하게 나만 보면 항상 픽픽 쓰러져서 날 피곤하게 하는구만.”“네가 와야만 해결될 정도의 일이면 내가 네 빈자리를 메우려고 어떤 미친 짓을 하고 있겠나. 네가 빨리 오기만 해도 해결될 일인 것을….”

    “귀찮은 걸 어떡하나?”

    셀은 투덜거리면서도 전대섭을 안고 태운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괜찮으십니까?”

    태운은 전대섭이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날면서 전투를 했다는 것은 플라이 마법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는 뜻이며 저런 괴물을 상대로 사상자가 없다는 것은 전대섭이 커버를 엄청나게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자신에게 끌리는 어그로를 받아치면서 드래이그 고흐를 견제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괜찮다. 조금 피곤할 뿐이야.”

    “…….”

    “어서 가자꾸나. 드래이그 고흐가 슬슬 정신을 차리고 이쪽으로 날아올 때가 됐거든.”드래이그 고흐는 그 덩치 덕분에 움직임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지만 그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개미보다 빠르게 발을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개미와 달리기 시합을 해서 질 사람이 없는 것처럼 드래이그 고흐는 사람이 달려서 도망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전대섭의 텔레포트가 있다면 도망치는 게 문제가 되지는 못했다.

    “텔레포트.”

    전대섭은 이곳에 있는 모든 헌터들을 대상으로 텔레포트를 시전했고 그들은 모두 안전하게 캠프로 돌아왔다.

    “우우욱!”

    “구아아악!”

    텔레포트의 부작용으로 구토를 하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지만 말이다.

    “텔레포트는 나 혼자 사용하면 안정적인데 여러 명을 동시에 텔레포트 시키면 이렇게 멀미를 하는 사람들도 생기더구나.”“오호. 원리를 조금 알면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허허, 지금 그건 나도 연구 중이네.”

    전대섭은 뜬금없이 학구열을 불태우는 태운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나는 가서 쉬어야겠네. 보고는 B팀의 장신 헌터에게 문서로 올려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태운은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가는 전대섭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셀을 바라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뭘 또 그러나.”

    셀은 태운을 두 번이나 구해준 은인이었다.

    첫 번째는 쟝에게 죽을 뻔했던 그때의 일이고 두 번째는 지금이었다.

    “셀 헌터님이 없으셨다면 A팀은 더욱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태운이 드래이그 고흐에게 달려가던 중 셀을 만났고 사정을 들은 셀은 태운을 끌고 매우 빠른 속도로 드래이그 고흐에게 달려갔다.

    셀이 없었더라면 태운이 B팀의 승전보를 전하는 게 늦어졌을 것이고 그사이에 A팀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런 인사는 낯간지러워서 못 받아준다. 나중에 술이나 한번 사든가.”

    “알겠습니다. 꼭 사겠습니다.”

    셀은 그런 태운에게 웃음을 지어주고는 기지개를 켰다.

    “내가 쉴 곳은 없나?”

    “아, 전대섭 대장님께서 천막 하나를 비워두라고 하셨습니다. 그걸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디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셀은 A팀에 소속되어 있던 헌터 한 명에게 안내를 받아 한 천막으로 들어갔다.

    태운에게는 시큰둥하게 대했던 헌터도 셀에게만큼은 자신의 은사를 모시듯 깍듯이 대했다.

    셀은 A급 중의 A급이라 불리는 전대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니 어찌 보면 헌터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B팀! 수고했다. 캠프에 들어가 짐을 풀고 몸을 쉬게 하라!”

    “왔나 보군.”

    B팀의 지휘를 맡은 장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B팀도 자신의 맡은 역할을 다하고 돌아온 듯했다.

    어려웠던 거대 몬스터 섬멸 작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직 드래이그 고흐는 멀쩡히 살아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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