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으으….”
태운은 병실의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어? 선생님! 환자가 눈을 떴습니다!”
옆에서 태운의 상태를 체크하던 간호사는 태운이 정신을 차린 것을 보고 의사를 불렀다.
‘많이 놀랐는데…? 내 상태가 그렇게 심각했나?’의사가 병실에 들어와 태운의 상태를 확인했다.
“허… 이거 정말 기적이군요.”
“제 상태가 그렇게 안 좋았나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주요 장기들이 죄다 파열되어있었습니다.”쟝의 주먹에 뚫린 건 복부뿐이었는데 장기가 죄다 파열되었다?
‘성벽 갑주가 공격을 대신 받아주면서 충격이 분산되었나 보네.’안 그랬다면 내부 장기가 파열되는 게 아니라 아예 사라져 즉사했을 테니 다행이었다.
‘사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지 실감도 안 나.’그만큼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정도만큼 자신의 부족함도 깨달을 수 있었다.
압도적이란 말도 꺼내기 어려울 만큼의 차이, 절망적이라고 해야 할 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입니다. 3일 만에 깨어나다니….”“3일…? 혹시 거대 몬스터들에 대한 소식을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3일이나 일을 하지 못했다.
헌터의 수가 적어 거대 몬스터를 격리조차 하지 못하는 헌터 약소국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데블스 에이지가 엄청나게 당겨졌을 거야.’“아프리카에 나타난 거대 몬스터는 첫날에 전부 처리되었습니다.”
“예…?”
“신문 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태운의 요구에 간호사가 태블릿을 가지고 왔다.
“셀, 아프리카 대륙의 거대 몬스터들을 전부 해치우다…?”그것도 6마리의 거대 몬스터들을 23시간 30분 만에 모두 처치했다고 한다.
“셀 님이 태운 님을 들쳐메고 오셨을 때 잠깐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셀 님은 헌터도 돈도 없는 국가를 돕기 위해 이곳으로 온 거라고 하시더군요.”“…다행이군요…. 유럽권 국가는 어떻게 됐나요?”“뭐, 유럽권 국가는 셀 님이 도와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죠. 자국 헌터를 총동원해서 잡거나 다른 국가에 거금을 주고 지원을 요청해 처리했습니다.”태블릿에 떠 있는 기사의 다음 페이지에 바로 그 내용이 나왔다.
“하여간….”
그 내용은 간단했다.
중국 헌터 협회와 대형 길드들이 유럽권 국가에 헌터들을 파견하면서 천문학적인 금액을 챙겼다는 것이다.
‘괘씸한 것들….’
전대섭이 중국의 거대 몬스터들을 전부 처리해주자마자 이런 행보를 보인 것이다.
자신들처럼 무보수로 일을 하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돈이 많다는 유럽권의 국가들이 예산을 재조정할 정도로 돈을 빼먹다니.
태운의 입장에서는 괘씸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나 윗대가리들이 문제지…. 뭐, 여기서 이러고 있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하지만 중국이 이러고 있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 녀석들의 사업을 좀 망쳐봐야겠다.
태운은 우크라이나 헌터 협회의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 회견 소집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 *
“갑자기 무슨 기자 회견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강아지도 아니고….”
“우리도 바쁜 몸이라고.”
“특종 하나 잡아보겠다고 신나서 온 놈들이 무슨….”“하여간 저런 놈들이 연예인 꽁무니 따라다니면서 사생활이나 캐고 다니지.”신정훈 헌터가 소집한 기자 회견장. 그곳에서는 기자들의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너희처럼 작은 방송사 사람들은 모르지. 우리 같은 프로들이 어깨로 얼마나 큰 무게를 버티고 있는지.”“언제부터 WBS가 우리 FFC보다 프로패셔널해 졌지?”
“방송 규모 역전한 게 언젠데?”
“하여간 돈돈! 실력은 한참이나 떨어지는 것들이….”
“뭐?”
“조용히 해라. 시작이다.”
태운은 단상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아, 일단 이곳에 모여주신 기자 여러분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태운은 마이크를 잡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성의를 담아 말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편이 좋다. 신나서 신정훈에 대해 나쁜 기사를 써댈 테니까.
‘어차피 이 이름은 곧 버릴 거니 기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어.’태운은 기자들을 집중시킨 뒤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3일 전 거대 몬플랜트와 싸우던 중 칠죄신교의 우두머리 격 간부와 만나 죽을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그때 셀 님이 나타나 구해주셨습니다.”이건 기자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런 정보를 얻겠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태운도 이런 말을 하자고 이곳에 기자들을 모은 게 아니었다.
“그 후 셀 님은 아프리카 대륙에 나타난 거대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해주셨습니다. 전 그 모습에 감탄했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구해줘서 감사한 것은 맞지만 존경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도 비슷한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현재 유럽권 국가들은 헌터들의 인력 부족으로 거대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은 국가로부터 수천억의 돈을 들여 헌터를 데려온다고 들었습니다.”태운은 은근슬쩍 중국을 겨냥했다.
지금 중국이라는 나라 하나만 거대 몬스터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는 유럽권 국가의 거대 몬스터를 무상으로 해치워드리고 싶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기자들은 눈이 돌아가서 사진을 찍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질문이 쏟아지자 태운은 스킬 ‘적의’를 아주 조금 개방했다.
그러자 기자들은 동시에 몸을 떨며 말을 멈췄다.
그리고 그사이에 태운의 말이 끼어들었다.
“가장 앞에 있으신 기자분부터 질문받겠습니다.”태운은 가장 앞에 있는 기자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신정훈 헌터님께서도 거대 몬스터를 셀 헌터님처럼 잡을 수 있는 힘이 있으신 건가요?”태운은 그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듭니다. 저와 셀 헌터님의 사이에는 벽 같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셀 헌터님처럼 모든 몬스터를 일격에 해치우지는 못하겠지만 저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거대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다음 질문?”태운은 그 옆에 있는 기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3일 전까지만 해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입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도 거대 몬스터를 잡으실 수 있는 겁니까?”태운이 그 질문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합니다.”
“몸 상태가 완전히 호전된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서 있는 것도 힘든 상태입니다.”“신정훈 헌터님의 지금까지의 전투를 봤습니다. 검과 주먹을 주로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몸 상태가 심각한 지금 같은 상황에 어떻게 거대 몬스터를 해치우시겠다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태운은 일부러 건방진 웃음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한국 헌터 협회 사이트에서 제 특기 사항은 보지 못하신 것 같네요.”
“네?”
기자들이 당황한 사이에 태운은 말을 이어나갔다.
“전 마법이 특기인 웨퍼입니다.”
“예…? 그게 잘못 기재된 게 아니라….”
“예, 잘못 기재된 것이 아니라 진실입니다.”그 말이 끝나자 셔터의 불빛이 터지기 시작했다.
“다음 질문 있으십니까?”
이번 기자 회견은 조금 길게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았다.
* * *
“이젠 기자를 이용할 줄도 아는구나.”
신정훈의 기사가 나오자마자 중국 헌터 협회와 중국 대형 길드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약속하고 헌터들을 요청했던 유럽권 국가들이 죄다 계약을 파기했다.
중국은 순식간에 수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을 벌 기회를 잃어버렸고 신정훈에 대한 노골적인 언론 공격을 감행했다.
신정훈은 사실 범죄자였다느니, 이 일을 빌미로 나쁜 제안을 할 거라느니, 그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다느니, 셀이 한 일의 공적을 신정훈이 빼앗은 거라느니….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 같은 찌라시를 퍼트렸고 한국 헌터 협회에 압력을 넣는 등 다양한 공격을 해왔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전대섭이 있는 한국 헌터 협회이기에 중국의 압력 정도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중국이 벌인 그 모든 일들은 허사로 돌아갔고 결국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국격만 깎아 먹는 일이 되었다.
“재밌구나.”
전대섭은 신정훈의 기사를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대섭도 중국의 행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자신이 중국에 나타난 거대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해준 직후 저런 장사를 시작했으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앞으로 중국은 알아서 하도록 놔둬야겠구나.”중국은 빼놓고 동남아시아 쪽에 나타나는 거대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데 힘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어차피 스스로 거대 몬스터들을 처리할 만큼의 힘이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땅도 넓기 때문에 인구수와 영토의 크기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동남아시아 쪽 국가에 신경을 쓰는 게 혼란 수급을 방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만에 하나 중국이 도와달라고 한다면 무상으로 도와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은 똑같이 당해봐야 하는 법이니까.
“흠… 오늘은 무슨 술을 먹어 볼까…. 저니워커 블루….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이 정돈 먹어줘야지.”전대섭은 18시간 만에 15마리의 거대 몬스터를 처리한 후, 자신의 별장에서 쉬고 있었다.
“그나저나… 셀의 말대로라면 쟝이 나타난 것 같던데….”쟝은 마르기가스나 다른 대원로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쟝은 힘을 하사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원로와 싸웠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오만의 힘을 하사받으며 그 자격 조건인 ‘압도적인 강함’이라는 요소도 강화되었다.
“지금이라면 셀이나 내가 녀석을 이길 수 있겠지.”하지만 데블스 에이지가 열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원로들은 자신이 모시는 칠죄종이 자신이 사는 세상에 강림하면 더욱 강해진다.
아니,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화한다.
대원로들은 칠죄종이 이 세상에 강림하는 순간 악마종으로 진화해 일반적인 헌터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타격조차 주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A급 헌터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어야 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B급 헌터 수만 명이 달려들어도 악마종이 된 대원로에게는 이길 수 없어.’그만큼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진화하면 종의 ‘격’이 달라진다.
악마종의 마기는 헌터들의 마법을 모조리 소멸시킬 것이고 그 육체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다.
“하….”
전대섭은 답지 않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곧 A급 헌터의 기준이 정해진 이유를 세상에 알려야겠군.”헌터 등급제가 만들어진 진짜 이유, A급 헌터의 기준이 어떻고 왜 그렇게 정해졌는지.
그건 헌터 협회 연합의 최고 우두머리들과 데블스 에이지에 참전했던 사람들만 알고 있는 것이었다.
“…….”
전대섭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술잔을 보면서 말했다.
“내일부턴 금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