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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54화 (154/379)
  • 154화

    쟝의 존재를 인지한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르기가스를 만났을 때에도 억눌리지 않았던 태운은 쟝을 만난 순간 무릎을 꿇을 뻔했다.

    압도적인 강함은 오만의 기본 자격이다.

    칠죄종들이 데블스 에이지 시절 여러가지 조건을 두고 자신의 힘을 하사할 인간을 찾을 때, 오만의 죄를 가지고 있는 루시퍼는 오로지 ‘강함’이라는 조건만 두었다.

    오만의 좌를 맡을 수 있는 자격은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강함이다.

    저릿저릿!

    태운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저리는 느낌을 받았다.

    온몸의 신경이 위험을 감지하고 도망치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시시하군.”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도망친다고 해도 이곳을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나 램파드, 고정.’

    태운은 마법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고작 숙인 고개를 드는 것뿐인데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호오?”

    쟝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자신을 앞에 두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게다가 쟝은 지금 태운에게 직접적으로 살기를 보내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몸을 떠는 게 아니라 움직인다?

    쟝은 살짝이지만 태운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다.

    “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는 건가.”

    빠득.

    쟝은 이빨을 갈았다.

    강태운을 본 순간 자신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강철운이 떠올랐으니까.

    “널 빨리 죽여야 내가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쟝은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저 손이 다시 내려오는 순간 태운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서 죽을 것이다.

    태운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생을 마감할 생각은 없었다.

    쟝의 손에 내려가는 순간 태운은 몸을 뒤로 던지며 이미 시전해 놓았던 마나 램파드를 소환했다.

    콰차차창!

    쟝의 공격은 마나 램파드를 완전히 박살 냈지만 태운을 죽이지는 못했다.

    “음?”

    쟝은 태운이 움직였다는 것에 의아해하며 다시 공격을 준비했다.

    태운은 다음 공격에 대비해 마정석을 흡수해 저장한 후에 다시 마나 램파드를 시전했다.

    하지만 마나 램파드는 쟝의 공격에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크윽….”

    마나 램파드는 지금 태운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방어 마법이다.

    하지만 쟝은 단순히 힘을 한 방향으로 모아 쏘아내는 것으로 그것을 완전히 박살 냈다.

    “이런 씨….”

    태운은 마나 램파드를 사용하면서 몸을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마나 램파드는 쟝의 공격을 방해해 움직임을 느리게 하거나 굴절해 태운이 피할 시간을 만들어줄 뿐, 쟝의 공격을 막지는 못했으니까.

    “그냥 죽으면 편할 것을… 어리석기는….”

    태운이 마나 램파드를 사용한 후 쟝의 공격을 피하느라 공중에 떠 있었다.

    쟝은 아직 공격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위험이 태운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

    쟝의 명령에 의해 멈춰 있던 거대 몬플랜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 공중에 떠 있는 태운을 공격했다.

    지금 태운이 몬플랜트의 공격을 받게 되면 쟝의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되고 그대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사고 가속.’

    태운은 사고 가속을 사용한 후 방법을 강구했다.

    ‘이미 몬플랜트의 넝쿨이 바로 앞에 와 있어. 팔을 움직일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오로지 마법으로 녀석의 넝쿨에 대비해야 한다.

    ‘마법으로 넝쿨의 공격을 무효화하는 것도 불가능해….’넝쿨과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

    넝쿨의 공격력을 상쇄할 수 있는 마법은 폭발 마법 정도다.

    폭발 마법을 사용하면 태운도 마법의 폭발에 휘말릴 거고 그 과정에서 입은 데미지는 쟝의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만들 거다.

    ‘그렇다면…!’

    태운은 마나 램파드를 시전한 후 즉시 고정했다.

    넝쿨은 태운의 사방에서 태운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즉, 마나 램파드처럼 한 방향의 공격만 막아주는 방어벽으로는 살아나갈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건 태운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태운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에 목숨을 걸었다.

    ‘압축….’

    태운은 마나 램파드의 수식을 변형해 강도와 질량은 그대로 두고 밀도만 높여 압축했다.

    완전하지 않은 수식으로 인한 방벽의 변형은 힘으로 억눌렀다.

    그러자 수식의 계산이 굉장히 복잡해졌고 계산 시간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가속, 사고 가속, 사고 가속.’

    태운은 사고 가속을 연속으로 사용해 시간을 벌고 수식을 완전히 계산해냈다.

    그렇게 성벽 같았던 마나 램파드가 창문처럼 얇아졌다.

    그리고 태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이 솔리드 아머.’

    하이 솔리드 아머를 사용하고 솔리드 아머의 겉에 얇게 만든 마나 램파드를 둘렀다.

    그 순간, 태운의 오른손등의 문신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방어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극한에 다다랐습니다.]

    [특성 ‘수호자’의 조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성 ‘수호자’를 얻습니다.]

    [특성 ‘수호자’가 특성 ‘수호신’으로 진화합니다.]

    [수호신은 다른 세상에서 만들어진 방어 마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태운이 사용한 방어 마법에 대한 정보가 태운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들어왔다.

    수많은 포탄과 마법 세레를 받으면서도 꿈쩍하지 않았던 다른 세계의 대마법사.

    그가 애용했던 방어 마법.

    ‘성벽 갑주.’

    그것이 지금 태운이 사용한 마법의 완전체였다.

    아직 완전하진 않았지만 태운이 지금껏 사용했던 하이 솔리드 아머와는 차원이 다른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투투투퉁!

    미완성인 성벽 갑주였지만 넝쿨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막아냈다.

    “이놈….”

    쟝은 전투 도중 발전하는 태운을 보고 떠올리기 싫었던 얼굴을 다시 떠올렸다.

    “마음에 들지 않아….”

    쟝은 이제 태운을 확실히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대로 녀석을 계속 보고 있자니 스트레스로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쾅!

    “크헉!”

    쟝은 한순간에 뛰어올라 태운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성벽 갑주는 순식간에 박살이 났고 태운은 그대로 복부에 구멍이 뚫려 바닥에 처박혔다.

    “끄어억!”

    목에 진득한 피가 끓어올라 왔다.

    횡경막에도 구멍이 났는지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너 정도의 의지를 가진 자라면 이대로 죽어도 마정석 안에 갇혀 이 세상의 종말을 지켜보게 될 거다. 너무 섭섭해하지 않도록”‘마정석 안에 갇혀 세상의 종말을 지켜봐…?’마정석 안에 있을 때에도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 있는 건가?

    ‘그래… 드디어 말이 되네….’

    태운은 주마등이 스치듯 가도의 마정석을 흡수할 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도는 세라오니의 첫 번째 침공은 막아냈다고 했다. 그 후 5년 뒤에 두 번째 침공에서 가도가 죽었다고 했었지. 그런데 라온과 가도가 만날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어.’처음에는 첫 침공과 두 번째 침공 사이의 5년 동안 라온을 만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라온과 가도가 만난 가장 큰 이유는 가도의 왕국 내의 영향력이 한 파벌 전체의 영향력과 준하는 수준으로 커져 적대 귀족이 암살자로 라온을 고용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겠거니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가도는 죽은 이후에도 자신의 조국이 망가지는 과정을 아주 자세히 계속해서 보고 있던 것이다.

    ‘지금 그걸 알아서 뭐 하나…. 곧 죽을 텐데….’태운은 천천히 멀어져가는 의식을 붙잡으려 했지만 손이 닿질 않았다.

    “그래도 나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니 편히 보내주마.”쟝은 이제 힘을 쏘아내는 짓은 하지 않았다.

    확실히 태운을 죽이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

    ‘윤아야… 미안해….’

    4달 동안이나 혼자 있게 했음에도 돌아와서 같이 있어 주지 못했다.

    ‘구찬영, 서혜연….’

    약하고 보잘것없던 시절부터 나를 차별 없이 봐주던 진짜 친구들이었다.

    그들과 같이 던전을 공략해보지 못한 게 이렇게 아쉬울 줄은 몰랐다.

    ‘연정아….’

    미안했다.

    자신의 제안 때문에 온갖 위험을 다 겪은 그녀지만 자신은 결국 해준 것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가장 간절하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허덕륜 선생님.’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 시절에 허덕륜 선생님만큼은 믿어주고 응원해줬다.

    그 덕분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덕분에 행복할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전대섭, 홍유리, 김현우, 신동연, 신가연, 김철, 공진영, 공전하, 조강현, 임정국….’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태운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인복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쟝의 주먹이 태운의 얼굴로 향하는 순간.

    쾅!

    누군가가 나타나 쟝의 주먹을 검으로 막아냈다.

    터-업.

    “오글거리는 생각 하지 말고 정신 줄이나 똑바로 잡아.”그러고는 태운의 구멍 난 복부에 누군가가 어떤 씨앗을 넣었고 그 씨앗은 자라서 태운의 신체조직을 대신해주었다.

    “그거 1억짜리다. 나중에 갚아.”

    ‘영어…? 것보다 어떻게 내 생각을….’

    태운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30대 후반의 중년에 들어서기 시작한 남자였다.

    수십 년간 단련을 멈추지 않은 듯 탄탄해 보이는 몸과 꿈틀거리는 근육, 그리고 검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을 보고 그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셀…?”

    헌터 랭킹 2위, 마법에 전대섭이 있다면 검에는 그가 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헌터.

    검성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셀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셀.”

    “오랜만이긴 하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말이야.”셀과 쟝은 구면인 듯했다.

    셀도 데블스 에이지 시절에 전선에서 싸웠다고 하니 둘이 만났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이번에야 기필코 네놈의 목을 잘라주겠다.”

    “흥. 마음에 들지 않는군.”

    셀은 검에서 오러를 짙게 뿜어냈다.

    쟝도 그 공격을 쉽게 피해내거나 막아내지는 못하는지 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흥이 깨졌다. 이번에는 이대로 물러나지.”

    “겁을 먹은 건가?”

    “겁이라니. 내가 두려워할 존재는 칠죄종님들 뿐이다.”“12년 전의 그 날은 기억하지 못하는가 보군. 강철….”셀은 말을 멈추곤 태운을 바라보았다.

    “아직 정신 줄은 붙잡고 있는 모양이군.”

    셀은 그렇게 말하고는 검을 들어 올렸다.

    “덤비든 도망치든 빨리 정하는 게 좋을 거다.”“거기서 1년만 기다려라. 곧 네놈의 두 팔을 뜯어 개의 먹이로 줘 버릴 테니.”

    “개의 이빨이 부서질 것 같다만.”

    “쯧.”

    셀의 등장에 쟝은 그대로 사라졌고 다시 몬플랜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 몬플랜트는 태운과 셀에게 공격을 시도했고 셀을 혀를 찼다.

    “성가셔.”

    셀은 오러를 뿜어내고 있는 검을 그대로 들어 올려 가로로 그은 후 다시 검집에 넣었다.

    ‘뭐지?’

    그 순간, 몬플랜트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약 3초 후, 몬플랜트의 기둥이 반으로 잘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일단 병원부터 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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