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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53화 (153/379)
  • 153화

    태운은 전대섭과의 통화를 끝내고 호텔 룸 서비스를 받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들어오는 음식의 가짓수를 보니 대접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

    평범한 성인 남성 두세 명이 와도 다 먹지 못할 양이지만 각성자인 태운은 다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반나절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태운이 빠르게 음식을 해치우고 있을 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 통화의 상대는 허덕륜이었다.

    “여보세요.”

    -오냐. 몸 상태는 어떠냐.

    “괜찮습니다. 피로가 좀 쌓이긴 했는데 하루 자면 다 풀릴 정도예요. 선생님은 식사하셨어요?”-그래, 방금 브라질 헌터 협회장이랑 겸상하고 왔다. 너는?

    “저도 먹고 있었습니다.”

    태운과 허덕륜은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을까 싶은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몇 분간 통화를 하다가 허덕륜이 본론을 꺼냈다.

    -그래, 배반자 녀석들… 아니지. 이제 칠죄신교라고 해야겠구나.

    태운이 던전 안에 있는 동안 지속되는 테러에 전 세계 헌터 협회 연합에서 배반자들을 테러 단체로 지정했고 전 세계 헌터들의 주적으로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명확한 호칭이 필요했고 배반자, 악마 추종자, 악마 숭배자, 칠대죄교 등등 많은 호칭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가장 명확한 뜻을 가진 칠죄신교로 정했다.

    ‘호칭이 같아야 창을 같이 겨누기 편하지.’태운은 호칭을 통일한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칠죄신교라는 이름이 사이비 종교라는 부정적인 프레임까지 씌울 수 있다는 이유도 칠죄신교로 호칭이 통일되는 데 한몫했다.

    -칠죄신교의 고위 원로가 너에게도 갔다고 들었다.

    “네, 그렇습니다.”

    -어땠나?

    어땠냐는 말. 평소라면 추상적인 말이었겠지만 허덕륜의 말투를 보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을 상대하는데 어느 정도의 힘을 썼는지.

    녀석들의 힘은 어느 정도였는지.

    너는 얼마나 강해졌는지.

    그 짧은 질문 안에 많은 질문이 담겨 있던 것이다.

    “두 명이 왔습니다. 한 명은 덩치가 큰 놈이었고 한 놈은 은신이 특기인 녀석이었습니다.”-흐음….

    “처음에는 녀석들을 압도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압도하고 있었구요. 하지만 녀석들이 저를 놀리던 것이었습니다.”-놀려?

    “예, 저에게 일부러 당해주면서 놀리더군요.”허덕륜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녀석들, 쟝의 직속 부하일 거다.

    “쟝…? 그게 누구죠?”

    -대원로에 대해서는 들었지?

    “네, 칠죄종 중 하나씩 맡아 섬긴다고 들었습니다.”-그래, 그중에서도 리더가 있다. 그게 바로 오만의 좌, 루시퍼를 섬기는 쟝이다.

    “근데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대원로들은 자신이 섬기는 칠죄종에게 힘을 하사받는다. 그 과정에서 그 칠죄종의 성향도 가지게 되지. 쟝이 섬기는 루시퍼의 죄는 오만이야. 그 성향을 가지게 된 거지. 대원로 직속 고위 원로들은 그 대원로들에게 힘을 하사받으니 그 성향에 영향을 받게 되는 거지.

    “아….”

    -원래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되긴 하지만 그 성향이 고정되고 더욱 강해지지.

    태운은 허덕륜의 말에 그동안 있었던 의문들이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그렇군요.”

    -그럼 문제가 있다.

    “문제요?”

    태운은 허덕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만약, 네 정체를 쟝에게 들켰다면 어떻게든 너를 죽이려고 할 거야.

    “네?”

    -자세한 건… 말해주고 싶지만 말해줄 수 없단다. 하지만 분명히 그럴 거야.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작년 초에 전대섭과 처음 만났을 당시 아버지에 대한 말을 꺼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조심하거라. 넌 한국의 미래야.

    태운은 허덕륜이 그렇게 말해주니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칠죄신교의 일이 모두 끝나면 제가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오냐. 그때까지 다 같이 몸 건강히 있자꾸나.

    그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까?

    태운은 간절히 바랐다.

    * * *

    “다음은… 우크라이나네.”

    태운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전과 달리 이번은 좀 긴장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죄다 C급 몬스터가 거대화했지만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날뛰고 있는 녀석은 무려 B-1티어 몬스터다.

    그 몬스터의 정체는 몬플랜트다.

    지금까지 발견된 몇 안 되는 식물 형태의 몬스터.

    평소에는 평범한 넝쿨나무로 보이지만 주변에 생명체가 지나가면 강철보다도 질긴 넝쿨을 활용해 잡아먹는다.

    원래도 굉장히 강한 몬스터인데 그것의 크기가 수십 배나 거대해졌다고 하니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곤란한데.”

    거대 몬플랜트는 지금까지의 거대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함을 지니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헌터 인력의 50% 이상을 갈아 넣어서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기는 게 힘들 것 같지는 않지만… 한 번에 피해 없이 끝내기는 좀 무리가 있겠는데.”태운의 목적은 큰 피해 없이 거대 몬스터들을 막아내 혼란 수치의 수확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냥 막으면 안 된다.

    압도적으로 피해 없이 끝내야만 한다.

    “일단 가서 해봐야지.”

    여기서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어도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가서 발로 뛰어봐야 어떻게 할지 방법도 나올 테니까.

    “지금까지 민간인 피해는 400여 명… 헌터 피해는 70여 명… 끔찍하네.”이것도 대처가 빨라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었다.

    거대 몬플랜트가 나타난 지 30분 후에는 민간인 피해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헌터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들의 피해 규모는 이례적인 일.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태운은 그런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태운은 최대한 빨리 가서 몬플랜트를 쓰러뜨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전용기를 타고 빠르게 날아간 태운은 우크라이나 공항에서 우크라이나 헌터 협회의 직원과 만났다.

    “신정훈 씨, 먼 길 오셨는데 죄송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바로 앞장서시죠.”

    우크라이나 헌터 협회의 직원은 인사를 끝내자마자 즉시 태운에게 몬플랜트가 있는 곳으로 가주기를 부탁했다.

    그들의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 알 수 있었다.

    태운은 거기에서 헬기로 갈아탄 후 바로 거대 몬플랜트를 향해 날아갔다.

    “놀랍군요….”

    거대 몬플랜트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켤 필요도 없었다.

    헬기가 조금 높이 뜨자 녀석의 모습이 훤히 보였으니까.

    “높이는 100m가 넘고 넝쿨의 굵기는 지름이 30cm 정도 되고 개수는 수천 개가 넘습니다. 강도는 티타늄 합금보다도 단단하고 더 유연하며 약점인 불에도 약간이지만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평범한 몬플랜트와 다른 특징들이 상당히 많았다.

    “단순히 크기만 큰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네, 그렇습니다. 게다가 녀석은 넝쿨을 휘두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넝쿨과 열매를 쏘아내기도 해서 접근조차 힘듭니다.”“헬기는 사정권 밖까지만 이동해주시면 됩니다. 그 이후부턴 제가 가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태운은 헬기를 타고 거대 몬플랜트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

    점점 가까워지니 녀석의 거대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정말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다른 A급 헌터들을 기다렸다가 협력하시는 게….”“괜찮습니다. 더 이상은 위험할 것 같으니 저 혼자 가겠습니다.”

    “그럼 여기 주변에 착륙을 하겠….”

    벌컥!

    태운은 헬기의 문을 열어젖히고 몸을 던졌다.

    ‘하이 부스트, 마나 벽.’

    태운은 마나벽을 허공에 띄우고 그것을 발로 박차면서 공중을 뛰어다녔다.

    그때, 태운에게 무언가가 날아왔다.

    피-융! 터업!

    태운은 건틀릿을 끼고 그것을 잡아냈고 그것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게 열매인가?”

    굉장히 튼실하고 맛있어 보이는 열매였다.

    태운은 그것의 과즙을 조금 짜서 목에 발라보았다.

    그러자 금방 반응이 왔다.

    목 주변으로부터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트롤의 피를 활성화하자 독은 금방 해독되고 증상도 사라졌다.

    ‘이거 미쳤는데?’

    원래 몬플랜트의 열매는 달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거대 몬플랜드의 열매는 맹독이 들어 있었다.

    트롤의 피를 가지고 있는 태운도 고작 피부에 발라본 정도로 이 정도의 반응이 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한입이라도 먹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태운은 헬기에 무전을 쳤다.

    “아아, 여기는 신정훈 헌터입니다. 거대 몬플랜트의 열매에는 강력한 맹독이 들어 있습니다. 절대 접촉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전달 부탁드립니다.”군대는커녕 보이스카웃도 안 해본 태운은 어색하게 무전을 전달했지만 태운에게 답신이 날아왔다.

    알겠다는 내용이었다.

    태운은 그 답을 듣고 안심하고 거대 몬플랜트에게 접근했다.

    빠른 속도로 좁혀지는 녀석과의 거리에 다시 한번 장비를 점검했다.

    준비는 완벽했다.

    태운은 그대로 거대 몬플랜트에게 달려들었다.

    “염라의 검, 열화.”

    태운은 염라의 검 위에 열화를 씌웠다.

    태운의 마나가 허락하는 한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열화와 순간적으로 엄청난 위력을 보이는 염라의 검은 지금 태운이 할 수 있는 검을 활용한 최강의 공격이었다.

    콰아아아-.

    태운은 그대로 검을 휘둘렀고 태운의 공격은 몬플랜트의 기둥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하지만 몬플랜트는 수천 개의 넝쿨로 방패를 만들어 방어해냈고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열화를 알아채고는 그 넝쿨을 잘라냈다.

    “똑똑하기까지 하네….”

    태운이 그 공격을 날리자 몬플랜트는 모든 신경을 태운에게 쏟기 시작했다.

    태운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공격력을 가진 존재임을 깨달은 것 같았다.

    슈욱!

    태운의 얼굴 옆으로 몬플랜트의 넝쿨이 지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서 수백 개의 넝쿨이 날아오는 것을 순간적으로 포착했다.

    ‘사고 가속, 오버 부스트.’

    태운은 그것을 목격한 순간 사고 가속을 사용했고 오버 부스트도 사용했다.

    그 후, 돌검에 마나를 주입해 절삭력을 높였다.

    ‘온다.’

    서거거거거걱!

    태운은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을 보이며 넝쿨을 전부 피하거나 토막 내는 데 성공했다.

    “후우….”

    그 이후로는 바로 열매 총알이 태운에게 퍼부어졌다.

    “마나 램파드.”

    태운은 열매의 수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 바로 마나 램파드를 사용해 열매를 막아냈다.

    “라바 스피어.”

    태운은 마나 램파드를 방패로 삼아 몸을 숨긴 뒤, 몬플랜트에게 라바 스위프를 날렸다.

    태운이 넝쿨을 많이 잘라낸 덕분일까?

    10개 중 6개는 넝쿨에 의해 막혔지만 4개는 몬플랜트의 몸에 정확히 박혔다.

    몬플랜트에게는 작고 약한 공격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그때.

    쩌저적!

    몬플랜트의 넝쿨 공격에 태운의 마나 램파드가 산산조각이 났고 넝쿨은 태운을 향해 날아왔다.

    “벌써 깨져…?”

    태운은 마나 램파드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느라 검을 휘둘러 막거나 피할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흡수해놓은 마나는 많지 않아 마나 램파드를 생성할 수도 없었다.

    태운이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은 하이 솔리드 아머 두 개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맞고 회복한다!’

    하이 솔리드 아머를 생성하고 녀석의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멈춰라.”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사내의 말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거대 몬플랜트의 공격이 멈췄다.

    그리고 태운은 방금 그의 목소리를 듣고 오한이 들었다.

    “실망이군.”

    그 말로 확신할 수 있었다.

    “강한 적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더니… 내 애완동물에게 쩔쩔매고 있으니 말이야.”태운은 식은땀을 흘렸다.

    마르기가스보다도 강력한 힘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참, 내 소개를 하지. 나는 칠죄신교, 대원로장인 쟝이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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