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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52화 (152/379)
  • 152화

    “크윽….”

    상반신의 절반이 날아갔지만 헤클레인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전혀 타격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괴랄한 회복력을 가진 A-1티어 몬스터인 트롤킹도 이 정도의 상처를 입으면 회복할 때 체력을 상당히 많이 소모한다.

    하물며 헤클레인의 특이한 회복 능력인 ‘철혈’은 사용자의 체력에 상당한 무리를 준다.

    태운은 방금의 공격으로 헤클레인의 체력을 상당히 깎아낼 수 있었다.

    챙!

    태운이 후속타를 준비하자 셰인은 빠르게 태운을 공격해 태운의 공격을 끊어냈다.

    공격이 가까이 도달하면 육감으로 감지해낼 수 있어 막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태운이 방금 공격을 취소하고 셰인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 그 증거였다.

    “빨리 회복해!”

    “크윽….”

    방금 태운의 공격은 헤클레인의 내장까지 손상을 가했다.

    금속으로 된 조직은 내장의 역할까지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한다.

    철혈의 효과로 회복된 조직은 천천히 원래 육체 조직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수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

    이번 전투와는 관련이 없었다.

    “한 번에 끝냈어야 하는데…. 까다로워졌어.”태운은 헤클레인을 한 번에 끝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힘이 녀석의 전부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대충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온 힘을 쏟아내지도 않았을 거란 말이지….’태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최소 김상연.

    그보다 강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그리고 태운의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네 이놈….”

    헤클레인은 어느새 사라진 자신의 신체 부위를 빠르게 회복한 후 태운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냐…. 이제 널 나와 동급의 강함을 가진 자라고 판단하고 싸워주겠다…. 근육 증강, 철혈, 철인.”헤클레인은 온몸에서 철로 된 피를 뿜어냈고 그 피들은 헤클레인의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헤클레인의 몸은 순식간에 철로 된 근육을 한 겹 입은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더욱 거대해졌다.

    원래도 2m에 가깝던 헤클레인의 덩치가 3m에 가까워져 거인이라고 불러도 될 수준의 크기가 되었다.

    “셰인, 너도 이제 진심을 다해라.”

    “쯧… 알겠다.”

    헤클레인의 말에 셰인은 못마땅해하며 대답했고 그 직후 셰인의 몸은 두 개로 분리되었다.

    ‘셰인의 능력이다.’

    태운은 셰인이 능력을 선보이자 그것에 집중했다.

    지금 헤클레인의 능력은 이미 밑천을 드러냈다.

    하지만 셰인의 능력은 미지수.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가겠다.”

    “그래.”

    헤클레인의 말에 셰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야에서 사라졌고 헤클레인이 태운에게 달려들었다.

    방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공격.

    하지만 태운에게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속도였다.

    태운은 돌검을 두 손으로 받친 후 헤클레인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태운의 예상과는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전력을 내기 시작한 헤클레인의 괴물과 같은 근력이었다.

    부-웅!

    태운은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체중의 수십 배가 넘는 충격량 때문에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는 움직임이 제한되는바, 태운은 순식간에 셰인의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촤-악!

    공중에 뜬 태운은 셰인의 의해 가슴에 긴 자상을 입었다.

    공격을 당하기 직전 공중에 벽을 하나 설치한 후 그것을 밟고 회전해 하나의 공격은 피해냈지만 가슴의 공격은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능력을 활용한 시간차 공격…. 머리 아픈데….’한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서 헤클레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셰인이 태운의 숨통을 노리고 있을 테니까.

    ‘하이 솔리드 아머.’

    태운의 하이 솔리드 아머는 B급 헌터 수십 명이 두드려야 겨우 부서질 정도의 강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헤클레인에게 태운의 아머를 부수는 것은 마치 과자를 부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일 것이다.

    그나마 셰인의 공격에는 유효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검을 사용하는 그의 공격은 아머를 부수는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헤클레인에게 큰 타격을 줬던 그 공방, 셰인은 나의 은신을 완벽하게 간파했어.’방금처럼 인비저블 코트를 사용하고 그대로 들어간다면 셰인에게 등을 찔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녀석을 유도해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인비저블 코트.”

    태운은 바로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또 그 짓거리냐!”

    헤클레인은 태운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불안해하며 두리번거렸다.

    방금처럼 허둥대며 멍청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이런 공격을 막아주고 파훼하는 것은 셰인의 역할.

    헤클레인은 그가 제 역할을 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셰인은 순식간에 태운의 위치를 찾아냈고 바로 태운에게 공격을 시도했다.

    두 명의 셰인은 눈을 마주쳐 서로의 의사를 파악한 후 즉시 태운에게 달려들었다.

    한 명은 태운의 목을 노리고 다른 한 명은 태운의 심장을 노리기로 정했다.

    태운의 목과 왼쪽 가슴에 셰인의 단검이 닿는 순간.

    티딕!

    태운의 하이 솔리드 아머에 셰인의 단검은 힘없이 튕겨 나왔고 태운은 잠깐이지만 셰인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쿵!

    태운은 자신의 목을 노리던 셰인의 팔을 잡고 바닥에 메쳤다.

    “크헉!”

    내장이 진탕된 셰인은 피를 토했지만 태운은 거기에서 끝내지 않았다.

    챙!

    남은 셰인 하나가 태운에게 공격을 날려왔지만 태운은 검을 강하게 휘둘렀고 녀석은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고는 쓰러져 있는 셰인의 심장에 검을 깊게 꽂아 넣었다.

    ‘한 놈은 끝…! 그리고 나머지…!’

    녀석은 그 상태로 절명했고 남은 셰인은 여전히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열화.’

    이 기회에 확실히 끝내야 한다.

    녀석이 멍청하게 넘어와 준 함정, 다음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이 전투를 쉽게 끝낼 수 없다.

    헤클레인은 열화가 활성화된 지금에서야 이쪽의 상황을 알아챘다.

    헤클레인의 방해는 없다.

    “흐아압!”

    태운은 셰인에게 검을 휘둘렀고 그 검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셰인은 그 상태로 증발해 버렸고 헤클레인은 그제야 태운에게 달려들었다.

    “다 끝났어.”

    헤클레인이 아무리 강하고 빠르다고 해도 이젠 태운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강해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적과 어떻게 싸우겠는가.

    ‘나도 육감이 없었으면 셰인에게 그대로 당했겠지.’게다가 태운은 셰인에게 없는 공격력까지 갖추고 있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인 것이다.

    “인비저블 코트.”

    “이 개새끼가…!”

    헤클레인은 빠르게 달려와 태운에게 손을 뻗었지만 이미 태운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 후였다.

    “염라의 검.”

    태운은 어느새 헤클레인의 뒤를 잡고 염라의 검을 시전하고 있었다.

    “다음엔 안 빗나간다고 했어.”

    “이런 씨….”

    화륵!

    이번에는 태운의 검이 헤클레인의 몸에 적중했고 헤클레인의 상반신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전투가 끝이 났다.

    * * *

    “후….”

    태운은 로마에 있는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이탈리아 헌터 협회에서 마련해준 숙소였다.

    원래는 거대 몬스터를 한 마리 더 잡기로 했지만 이런 몸 상태로 더 돌아다니기는 부담스러웠다.

    상처는 물론 체력적으로도 많은 손실이 있었으니 말이다.

    거대 몬스터를 잡는 것은 어렵지는 않겠지만 거기서도 칠죄신교의 고위 원로들이 기다리고 있다면 상당히 위험할 테니까.

    띠리리링!

    그때, 호텔 객실의 인터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지?”

    태운은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고 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지금 올려드려도 될까요?

    50은 넘은 것 같은 완숙한 남자 직원의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넘어왔다.

    “식사를 주문하지 않았는데….”

    -협회에서 비용은 모두 부담하셨습니다.

    “아, 그럼 부탁드립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태운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마침 배가 고팠는데 잘됐네. 호텔 룸서비스 음식은 처음 먹어보네. 맛있으려나?”생각해보니 14시간이나 공복인 상태였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때, 태운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태운은 피곤함에 눈을 감은 상태로 누구에게 전화가 온 건지도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날세.

    태운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전대섭 선생님?”

    -소식 들었다. 너한테도 간 것 같더구나.

    “너한테도…? 설마….”

    -그래. 나에게도 왔고 허덕륜에게도 갔다더구나.

    “허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했지만 생각해보니 자신에게만 왔을 거라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에게 거슬리는 사람은 전대섭과 허덕륜이지 고작 C급 헌터인 신정훈이 아닐 테니까.

    “그럼 계획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이대로 간다. 한두 번 보내다 보면 그만둘 거야.

    “하긴… 그럴 것 같네요.”

    칠죄신교 내에서 넘쳐나는 일반 전사도 아니고 고위 원로다.

    소모품으로 쓰기에는 칠죄신교 녀석들도 부담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심하도록. 만약에… 만약에 대원로급의 적이 나타난다면 즉시 도망쳐라. 네가 절대 이길 수 있는 적이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묫자리도 정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지는 않겠습니다.”-믿고 있겠네.

    전대섭은 태운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전대섭과 허덕륜은 고위 원로 서너 명쯤은 간단하게 해치웠지만 태운은 쉽게 이기지는 못한 것 같았으니까.

    -수고했어. 푹 쉬고 일어나 내일 더 열심히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전대섭은 태운과의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았다.

    “참… 곤란하군.”

    자신에게 온 고위 원로는 8명, 그리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었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온 자의 이름은 쉬이 넘길 수 없었다.

    “분노의 좌… 레이지.”

    전대섭은 그 이름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살아 있었던 건가….”

    전대섭은 과거 레이지와의 전투를 상기해냈다.

    데블스 에이지 시절 레이지와의 전투 당시, 전대섭은 레이지의 심장을 꿰뚫었었다.

    확실히 죽이기 위해 머리까지 깨부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놀라움은 둘째치고… 심란해지는군.’레이지는 대원로 중 과거 연합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자였다.

    전투력 자체는 대원로 중에서도 딱 평균이다.

    특출나게 강하지는 않았지만 분노의 죄, 사탄의 힘을 하사받은 레이지의 능력은 그 어떤 대원로보다 까다로웠다.

    그의 능력은 분노의 전염과 증폭이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을 분노라는 감정으로 증폭시키고 그걸 전염시킨다.

    만일 집단 내에 A라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감정을 증폭하고 전염시켜 A를 그 집단에서 완전히 배제해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레이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분노의 저주를 집단 전체에 내렸다.

    A가 B를 싫어하는 그 감정이 C와 D에게 전염되고 B가 C를 싫어하는 그 감정이 A와 D에게도 전염된다.

    이것이 무한 반복되면 그 집단은 파괴되고 망가진다.

    레이지는 그렇게 수많은 연합을 파괴하고 다녔다.

    전대섭이 속했던 한국 지부의 연합군마저 레이지의 목표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큰 피해 없이 레이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누구의 미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존경과 사랑만을 받았던 신과 같은 단 한 명의 존재 덕분이었다.

    “그곳은 편하십니까.”

    전대섭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 사람을 존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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