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일본 헌터 협회 본부에 도착한 태운과 전대섭은 리무진에서 내려 본부로 들어갔다.
본부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들이 태운과 전대섭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태운은 그 시선들이 모두 경계의 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후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 태운과 전대섭은 일본 헌터 협회의 이권을 조금이라도 빼앗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으니까.
‘뭐, 팔은 안쪽으로 굽는 게 당연하다지만 조금은 양심이 없다는 생각이 드네.’일본 헌터들도 각자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만 태운의 눈에는 그냥 죄다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일본 헌터 협회는 분명 한국에 큰 잘못을 한 게 분명하다.
일본에 있는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가 한국까지 유출되었고 그 때문에 인명 사고가 났다.
이에 대해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태운의 생각이었다.
그때, 전대섭은 태운에게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자네가 낄 자리가 아닐 게야. 숙소로 돌아가 있게.”사전에 이야기해 놓았던 사인이다.
이젠 전대섭과 태운이 다른 임무를 소화해야 할 때다.
전대섭은 태운과 떨어지기 직전에 태운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다.
‘건물 구조를 스캔해 보니 숨은 방이 하나 있는 것 같다. 증거가 존재한다면 거기에 있을 테니 그걸 우선적으로 찾아봐라.’
‘알겠습니다.’
전대섭은 그 말을 끝으로 회담장을 향해 걸어 나갔고 태운은 전대섭에게 몰리는 시선을 틈타 조용히 사라졌다.
‘편하네.’
태운이 지금 사용한 건 겔릭의 마정석에서 얻은 도적의 기술이다.
이 안에는 십수 개의 뛰어난 도적 스킬이 포함되어있었다.
단순한 은신부터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기술, 누군가의 표정을 읽고 생각을 읽는 방법, 심지어는 처세술까지 담겨 있는 엄청난 스킬이었다.
‘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아주 고마운 스킬이지.’태운은 강하지만 이런 잡다한 부분에서는 좀 떨어지는 면이 있다.
물론 마법을 사용하면 이런 부분을 커버할 수 있지만 언제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정보를 캐내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헌터 협회 본부에 마나 감지기가 없을 리가 없으니까.’혹여나 은신 관련 마법을 사용했다가는 바로 포착되어 그 순간부터 집중 감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랬다가는 일본까지 날아온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태운은 도적의 기술 안에 있는 은신술을 사용해 기척을 줄이고 존재감을 낮추는 것으로 정했다.
은신술로 인해 거의 투명 인간 수준의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실제로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즉, CCTV에는 걸린다는 뜻이다.
‘너무 노골적으로 움직였다가는 일본 헌터 협회 측에서 CCTV를 증거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어.’태운은 육감을 사용해 문 안쪽을 들여다보며 일본 헌터 협회의 복도를 돌아다녔다.
직접 문을 열고 둘러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복도에 돌아다니는 것 정도로는 문제를 제기하려야 할 수 없을 테니까.
‘일단… 1층은 클리어군.’
일본 헌터 협회 본부는 총 1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4층까지는 외부인에게도 출입이 자유롭게 허가되는 공간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5층부터 10층까지는 관계자나 허가된 인물이 관계자와 동행 했을 때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11층과 12층은 고위 관계자들이나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협회장과 이사장, 협회 소속 A급 헌터들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태운은 숨겨진 공간이 있다면 11층과 12층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한 층 한 층 천천히 관찰을 하고 다녔다.
허를 찔릴 가능성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렇게 4층까지 모든 방을 뒤져본 태운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5층에 갈 방법을 모색해보았다.
‘CCTV 사각지대를 찾아보자.’
육감으로 살펴보니 CCTV의 사각지대는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태운은 그곳에 서서 그 사각지대에 누군가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색 정장을 입고 있는 협회의 직원이 그 사각지대에 들어오자 태운은 기다렸다는 듯 걸어가 부딪쳤다.
투-욱.
“죄송합니다.”
그 순간 은신이 풀렸고 태운과 부딪친 남자는 당황하며 사과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인지한 공간에 누군가가 있던 것처럼 나타나 부딪쳤으니 당황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태운은 그에게 사과를 하고 지나쳐나갔다.
그리고 사각지대를 나감과 동시에 은신을 활성화했다.
태운과 부딪친 남자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뒤를 돌아봤지만 이미 태운은 일반인의 눈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수준의 은신을 시전한 뒤였다.
“흐음,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 남자는 다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목적지에 쉽게 도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목에 걸려 있던 사원증이자 통행증은 태운의 손에 들려 있었으니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건 일본을 위해서도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태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5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5층 이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통행증이 있어야지만 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삐-빅.
태운은 통행증을 사용해 쉽게 5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무난하게 5층에 도착했다.
태운은 그곳에서도 계속 육감으로 이상한 것은 없는지 관찰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역시 11층과 12층을 노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때쯤, 태운은 이상한 대화를 포착했다.
8층을 관찰하며 돌아다니던 도중에 생긴 일이었다.
“최근에 협회장님 결제가 많이 느려지지 않았어?”“그러니까. 빨리 올리라고 그렇게 갈구던 기획서를 올렸는데 2주가 다 되도록 허가가 안 내려와서 지금도 진행을 못 하고 있어.”“나도 지금 영구 던전 개체 수 관리 관련해서 보고서랑 작전 기획서를 올렸는데 10일 동안 허가가 안 내려와…. 그래서 지금 그 던전은 브레이크 터지기 직전이야. 소문 들어보니까 아예 보지도 않으신 거 같더라.”
“아예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고….”
협회의 부장급 직원들의 한탄이 섞인 대화였다.
그냥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태운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던전 개체 수와 관련된 사안을 10일이나 방치해 둔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운이 안 좋았으면 이미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 버렸을 수도 있는 시간이니까.
‘음, 알아봐야겠는데….’
태운은 둘의 대화에 집중을 해보려 했지만 그들은 이미 할 말을 다 하고 각자 자신의 업무로 복귀한 상태였다.
“일단 협회장에 대한 이야기면 12층으로 가야겠네.”태운은 전대섭과 일본 헌터 협회 간의 회담이 진행 중인 9층을 지나 10층까지 모든 방을 자세히 관찰했다.
여전히 구조상 이상한 부분은 없던 걸 보면 역시 11층과 12층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태운의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하지만 태운은 아직 11층에 들어갈 만한 방법을 찾지 못했고 10층만 빙빙 돌며 방법을 구상했다.
‘적은 양의 마나라면 하이딩 포스를 사용해서 마나 감지기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마나를 숨길 수 있어. 그걸로 잠금장치를 해킹한다.’도적의 기술 안에는 락픽이라는 기술도 있었는데 그 스킬이 태운이 살고 있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간단한 해킹까지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태운은 조심스럽게 11층으로 가는 문 앞에 서서 하이딩 포스를 사용했다.
‘후… 미치겠네.’
지금은 김가도의 모습이라곤 하지만 자신이 하는 행동은 분명히 외교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렸다.
태운은 하이딩 포스를 사용한 후 적은 양의 전기를 흘려보내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열리는 문을 보며 태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집중해서 찾아보자.’
11층부터 제대로 된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CCTV가 없었기 때문에 육감에 의존하지 않고 이 잡듯 뒤질 수 있게 되었다.
태운은 투명화 마법을 사용했고 그때부터 눈에 걸리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뒤지기 시작했다.
* * *
“후….”
태운은 사람이 없는 화장실에 가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2시간이 넘도록 11층과 12층을 뒤졌지만 아무런 증거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배반자의 ‘ㅂ’ 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러면 자신이 굳이 시간을 내서 일본에 온 의미도 없을뿐더러 일본 헌터 협회가 배반자들에 의해 썩어 문드러져 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게다가 배반자들이 쓰시마 섬의 던전에 브레이크를 주기적으로 일으켜 한국에 지속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도 있다.
“하아….”
태운은 한숨을 한 번 더 길게 내쉬었고 그때, 옆 칸에 있던 사람도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회담이 끝난 건가.’
지금까지는 고위 관계자들이 회담장에 있었기 때문에 11층과 12층의 수색이 쉬웠다.
하지만 회담이 끝난 지금, 그들이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수색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투명화 마법을 썼다고 해도 옆에서 사물함이 열리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사람은 없으니까.
그때, 옆 칸에서 한숨을 쉬던 사람이 말을 걸었다.
“한숨을 쉬는 걸 보니… 일본 협회 이사 중 한 명인가 보군….”대충 휴대폰으로 뉴스를 접했을 때 회담은 일본에게 굉장히 불리한 방향으로 결정이 났다고 한다.
피해 보상금은 물론 쓰시마 섬 던전 소탕을 도와주는 대신 지분의 60%를 한국이 가져가기로 정했다.
게다가 추후에 있을 한국 A급 던전 공략에 일본은 A급 헌터 3명과 B급 헌터 50명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다른 조항도 많았지만 한일 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것만 제외하면 일본의 입장에선 좋은 조항이 없었다.
일본 헌터 협회의 관계자라면 그 누구라도 심경이 복잡할 것이다.
태운은 협회의 이사를 연기하기 위해 상대방의 신분을 물어보았다.
“혹시 누구십니까?”
“나 협회장일세.”
“아….”
그도 고위 관계자일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협회장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태운은 뭔가 얻을 정보가 있지 않을까 싶어 그의 말에 대꾸를 해주었다.
“목소리가 젊은 걸 보니 두 달 전에 이사회에 들어온 타쿠야인가?”태운은 빠르게 일본 협회의 이사들을 떠올렸다.
‘30대 초반, 타쿠야 쇼우…. 성격은 싹싹하고 예의가 바르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태운은 미리 머리에 넣어두었던 정보를 끄집어내 그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네, 맞습니다.”
“허허…. 그렇구만.”
협회장은 한숨을 다시 내쉬더니 난데없이 사과를 시작했다.
“미안하네.”
“무슨….”
“내 멍청한 선택 때문이었어.”
“불가항력이지 않았습니까.”
태운은 타쿠야를 연기하며 협회장의 비위를 맞춰주었고 협회장은 감정에 휩쓸려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불가항력은 무슨. 우린 충분히 한국 방면의 결계를 유지할 수 있었어…. 그 틈에 길드들에 도움을 요청하고 한국에 조금만 고개를 숙였으면 이런 일까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쿵!
협회장은 화장실의 벽을 치고는 힘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카츠 녀석을 받아들였으면 안 됐어. 그때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웠어야 했다고….”태운은 카츠의 이름이 나오자 순간 머리가 번뜩했다.
‘근 2주간 협회장의 이상한 행보, 그리고 카츠에 대한 이상한 정보들….’그 의심들이 뒤섞여 하나의 결론이 나왔고 태운은 그 결론이 진실일 거라고 판단을 하는 데 이르렀다.
“협회장님. 바지 올리십쇼.”
“뭐…?”
쾅!
태운은 화장실 밖으로 나와 협회장이 있는 칸의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 헌터 협회 소속 헌터 김가도라고 합니다.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