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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33화 (133/379)
  • 133화

    [케에에엑!]

    퍼억!

    D급 헌터들의 공격에도 좀비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웨퍼가 아닌 근접 전투형 헌터가 많았던 덕분에 밀고 들어오는 언데드에 그나마 대항할 수 있었다.

    ‘이대로는 힘들어….’

    모든 헌터들이 화속성 인챈트를 하고 몬스터들을 공격해 녀석들의 회복이 늦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좀비와 스켈레톤까지는 C~D급 헌터들에게도 숨통이 끊어지고 있었지만 그보다 수준이 높은 몬스터들은 잠깐 그 기세가 눌렸을 뿐, 금세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B급 헌터들이 힘으로 찍어눌러 머리나 코어를 파괴하지 않는 이상은 계속해서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B급 헌터들은 데스나이트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부족했다.

    ‘데스나이트는 각 개체에 따라 편차가 굉장히 큰 몬스터 중 하나지….’개체마다 B-3티어에 해당하는 힘을 가진 데스나이트도 있는가 하면 과거 태운이 싸웠던 데스 나이트 레오처럼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개체가 있기도 했다.

    그래서 쉽게 데스나이트를 처리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단 데스나이트를 처리하는 데 힘을 좀 써야겠네.’태운은 하이 부스트를 사용하고 육감으로 데스나이트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 수는 총 8마리

    ‘검은 필요 없다.’

    태운은 이미 검을 아공간에 넣어둔 상태, 데스나이트를 상대하기 좋은 무기는 둔기다.

    하지만 태운이 잘 사용하는 둔기는 없었으니 주먹으로 때우려는 것이다.

    사실 철로 둘러싸인 주먹은 이미 둔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쾅!

    태운이 데스나이트에게로 달려들어 순식간에 데스나이트의 머리를 깨부쉈다.

    달그럭.

    그대로 데스나이트는 기동을 정지했고 뼛조각은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태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 데스나이트들은 많았으니까.

    쾅! 쾅! 쾅!

    태운은 마치 벌처럼 날아다니며 데스나이트들의 머리를 깨부수고 다녔다.

    그 덕분 데스나이트들을 상대하느라 손이 부족했던 B급 헌터들은 다른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유령 병사들과 함께 밀려나던 전선이 천천히 안정을 되찾았다.

    물론 이래도 플라잉 더치맨의 본체에 타격을 주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연명일 뿐이지만 말이다.

    태운은 마지막 데스나이트까지 처리한 후 플라잉 더치맨을 향해 눈을 돌렸다.

    ‘마법으로 공격해보자.’

    태운은 플라잉 더치맨에 마법을 시전해 보기로 정했다.

    플라잉 더치맨은 그 등장 수가 적어 도감에도 제대로 된 정보가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때마다 조심을 해야만 했다.

    ‘지옥의 칼날 폭풍.’

    태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긴장하며, 여차하면 프로텍트 돔을 사용할 각오를 하고 대형 마법을 플라잉 더치맨의 본체에 때려 박았다.

    콰앙!

    태운의 마법이 플라잉 더치맨과 크게 격돌했고 플라잉 더치맨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뿐, 더 이상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좋았어. 그럼 본체를….’

    태운은 플라잉 더치맨이 본체에 타격을 받고도 아무런 불길한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더 큰 공격을 준비했다.

    빨리 플라잉 더치맨을 처리해 이 언데드 지옥에서 하루빨리 나가고 싶었으니까.

    ‘석우(石雨).’

    태운은 메테오과 비슷한 모습을 한 마법을 시전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 대규모 공격에 휩쓸리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불타는 돌덩이들은 플라잉 더치맨의 본체인 배를 난타했고 갑판부터 시작해 부서져 가기 시작했다.

    약 30초 정도가 지나자 플라잉 더치맨의 본체는 박살이 나버렸고 남은 일은 갈 길을 잃은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것뿐이었다.

    “지원 왔습니다!”

    태운이 플라잉 더치맨의 본체를 박살을 낸 후에야 지원이 도착했다.

    때마침 지금이 가장 인력이 필요한 때였다.

    그것은 바로 잔당 처리 때문이었다.

    데스 나이트들은 이미 다 처리했지만 아직도 듀라한, 좀비, 스켈레톤 등등 많은 언데드들이 남아있었으니까.

    하지만 본체를 박살내 놓았고 더 이상 몬스터들이 쏟아지지는 않을 테니 이 정도면 헌터들의 승리라고 부를 만했다.

    “아직 긴장 늦추지 마십시오! 눈앞의 몬스터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겁니다!”정일준이 소리치며 헌터들의 경각심을 깨워주었고 헌터들은 그의 말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전투에 임하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린 상태로 전투에 임했다가는 자칫하면 약한 몬스터들에 의해서도 전세가 뒤집힐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정일준이나 태운이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약 2시간에 걸친 긴 전투가 끝났고 해운대 해변에는 움직이는 언데드가 없어졌다.

    대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투, 하지만 피해가 없던 것은 아니다.

    유령 병사들이 대신 공격을 맞아주긴 했지만 최초 20명의 헌터 중 8명이 사망했고 지원 온 15명의 헌터 중에서도 3명이라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한국 헌터 협회가 일본 헌터 협회에게 면전에서 욕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 * *

    “일본 헌터 협회가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군.”

    “그러게 말이다.”

    부산에서 대기 중이던 용병 헌터들의 수다였다.

    “지금은 그놈들을 욕하는 것만으로도 입이 부족하지만 많이 이상하단 말이지…. 국가 비상사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국가 관계를 박살 내 버리고 국가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일을 하다니….”그들은 일본 헌터 협회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작정 까고 있지는 않았다.

    ‘용병 아재들 중에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었나 보네. 이런 일에 아재들이 토론하는 건 못 봤는데.’이런 일이 있으면 욕부터 시작해 쪽바리니 뭐니 하는 비난부터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감정적인 중년 용병들도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이번 일본 헌터 협회의 행보는 이상했다.

    한번 고개를 숙이고 한국에 도움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괜한 고집을 부리다가 한국에 국제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주었다.

    ‘한국도 전대섭 한번 파견 보내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지….’일본의 A급 헌터의 수는 7명, 거기에 전대섭이 들어가고 B급 헌터들이 50명 정도만 들어가도 충분히 적은 손해로 A급 던전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런 식으로 국가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데….’그때, 태운은 한가지 이상한 점을 떠올렸다.

    준 보스급인 플라잉 더치맨이 왜 던전 밖으로 나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정확히 해운대에 정박했는지.

    혹시 누군가가 그것을 유인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을 할 만한 놈들은… 역시나 배반자겠지. 그리고 그게 맞다면….’일본 헌터 협회의 고위 간부나 일본 헌터 협회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누군가가 배반자와 손을 잡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 일인데?’

    그때, TV의 예능이 한순간에 긴급 뉴스로 바뀌었다.

    [현재 일본 쓰시마 섬에 있는 던전이 포화 상태에서 벗어나 안정화 상태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원리는 간단하다.

    던전 안에서는 주기적으로 몬스터들과 마나가 생성되는데 그 몬스터들과 마나가 던전 안을 채워 몬스터들이 그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던전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에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A급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의 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다.

    그때 나오는 몬스터의 수와 생성되는 몬스터, 마나의 양이 비슷하기에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해서 던전 브레이크의 원인인 ‘포화 상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즉, 던전 안으로 들어가 던전을 닫거나 개체 수 조절을 하지 않는 한 던전 브레이크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쓰시마 섬 던전이 포화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 뉴스를 접한 태운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자신의 가설이 대강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반자와 손을 잡고 우리나라 쪽으로 몬스터들을 유인한 거다. 던전 브레이크를 해소하기 위해….’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찢어 죽여도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타닥, 타다닥

    태운은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전대섭에게 문자를 보내두었다.

    -선생님, 일본에 배반자와 내통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 * *

    “음…. 그렇단 말인가….”

    태운은 전대섭을 만나 자신이 추측한 바를 그대로 전했다.

    “하긴 플라잉 더치맨 정도의 규모와 힘을 가진 몬스터가 던전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던 일이니까.”“게다가 헌터들이 던전 밖으로 나가면 몬스터들은 헌터를 쫓는 걸 그만두잖습니까. 그런 녀석들을 던전 밖으로 임의로 끄집어내려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해 던전 밖으로 도망을 치게 하거나 엄청나게 달콤한 미끼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죠.”

    “그렇지.”

    “한데 일본 헌터들 중 플라잉 더치맨 정도의 몬스터를 압도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헌터는 없어요. 작년 강원도 던전에서 생포한 배반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몬스터들이 마기에 굉장히 강력하게 반응하는 것도 증명이 되었고요.”확증은 없지만 정황상 배반자들이 개입한 일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일단 자네가 말해준 것을 염두에 두고 일을 진행하겠다. 고맙네”“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부탁할 게 있습니다.”

    “뭐지?”

    태운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전대섭에게 보여주었다.

    그건 태운의 두 번째 신분증이었다.

    C급 헌터로 등록되어있는 태운의 두 번째 신분인 ‘김가도’였다.

    “만약 일본 헌터 협회에 가게 된다면 수행이나 호위의 역할로 절 데려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일본 헌터 협회에 직접 가봐야 배반자들과 내통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걸 위해서는 전대섭의 도움이 필수였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알겠네. 자네가 같이 가준다면 안심이야.”

    “감사합니다.”

    태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나가려 하자 전대섭이 태운을 불러세웠다.

    “참, 이번 활약으로 자네는 A급으로 승급될 게야. 사실 진즉에 A급 헌터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알았지만 드디어 최소 실적이 쌓였다고 판단한 모양이다.”태운은 미소를 지었다.

    금방 올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과거의 자신이 떠오르자 순간 눈물이 벅차오른 태운은 빠르게 정신을 가다듬고 밖으로 나왔다.

    ‘이런 곳에서 만족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플라잉 더치맨과 싸울 때도 자신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휴식 기간 동안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더니 몸이 녹슬었나 보네….’그럴 법도 했다.

    계속 생사를 넘는 전투를 해왔던 태운의 몸은 항상 긴장되어 있었고 감각은 항상 곤두세워져 있었다.

    휴식 기간 동안 그 근육을 쉬게 하고 성능을 더욱 끌어내긴 했지만 그 감각이 사라졌다는 사실 만큼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일주일. 던전을 돌아다니며 전투 감각을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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