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31화 (131/379)
  • 131화

    “제 생각에 방법은… 한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후….”

    일본 헌터 협회는 현재 빠른 선택을 해야만 했다.

    4일이 지난 지금, 쓰시마 섬의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키기는 했지만 쓰시마 섬을 돔 형태로 감싸 몬스터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데에만 A급 헌터 3명이라는 인력을 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일본 헌터 협회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본 헌터 협회는 A급 헌터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B급 헌터 영입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랬기에 지금처럼 A급 헌터가 자리를 비웠을 때 인력이 굉장히 부족했다.

    일본 헌터 협회의 협회장인 마쓰다는 5일 동안 다른 길드에 관리 권한을 넘기 던전 리스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들이 담합을 한 게 분명해….’

    단순 의뢰 형태로 던전 개체 수 관리를 하려 했지만 모든 대형 길드가 하나같이 의뢰를 거절했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던전은 어쩔 수 없이 경매를 통해 헐값으로 관리 권한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 수는 무려 12개.

    협회가 관리하던 던전 중에는 던전 브레이크 주기가 빠른 던전들이 있기에 넘겨야 하는 던전의 수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에 요청한다고 해도 바로 응해주겠나?”한국에서도 A급 던전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자국의 A급 던전을 막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다.

    “게다가… 선언해 버리지 않았나. 우리는 한국의 A급 던전 공략에 참여하지 않겠다고.”외교적인 관계에서 우위에 한 번 서보겠다고 그런 스탠스를 취했다가 큰일이 났다.

    ‘한국이 급해졌을 때 먼저 연락이 오면 온갖 이권과 추후 일본에서 일어날 A급 던전의 공략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조항을 넣으려 했더만….’일본에서 한국을 먼저 찾게 된 일이 올 줄 알았겠는가.

    ‘관계가 좋은 중국과 미국도 하필 이 타이밍에….’중국과 미국은 현재 배반자들의 테러 때문에 헌터를 빼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두 국가 모두 영토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헌터들을 쉴 새 없이 굴려도 배반자들을 막기 힘들었다.

    ‘미치겠군….’

    일본의 A급 헌터는 7명, A급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한 최소 전력이 A급 헌터 10명이다.

    10명이 들어가 클리어를 하더라도 몇 명이 죽을지 모르는 던전이 바로 A급 던전이다.

    A급 헌터를 잃으면 일본의 힘이 굉장히 떨어진다.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최악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대섭이 공략에 참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범한 A급 헌터 5명분을 한다고 알려진 전대섭이 공격대에 참여한다…. 그럼 성공률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지.’전대섭이 일본 A급 헌터들의 보조에 집중하면 A급 헌터들은 몬스터들의 공격에 쉽게 죽지 않게 될 것이고 공격력도 늘어나 체력과 마나도 보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예상하기로는 전대섭이 던전 공략에 포함되기만 해도 헌터의 사망률은 52%에서 3%로 줄어든다고 한다.

    그게 최강의 마법사 전대섭의 힘이었다.

    “후…. 어쩔 수 없겠군. 비행기를 타야겠어. 한국 헌터 협회에 최대한 정중하게 요청을 해보게.”

    “알겠습니다.”

    약 2달 전의 자신의 선택이 미치도록 후회가 되는 마쓰다 협회장이었다.

    그의 비서가 밖으로 나간 후 협회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때, 마쓰다 협회장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의 화면을 보니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가 걸려 있었다.

    “누군가?”

    -접니다. 카츠.

    마쓰다 협회장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일본 최강의 A급 헌터이자 헌터 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헌터인 카츠였다.

    “무, 무슨 일이지?”

    마쓰다는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를 건 사람이 카츠라는 사실을 알자 순간 긴장했다.

    그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의 특성은 ‘흡수’.

    헌터들을 죽이고 그들의 스킬과 특성을 빼앗는다.

    카츠는 그 특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악마와 같이 끔찍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온다.

    그랬기에 마쓰다 협회장이 긴장을 한 것이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거죠?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마쓰다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굉장히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한국 헌터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네. 조금만….”-굳이 돔 형태로 할 필요 있습니까?

    “갑자기 무슨…. 설마….”

    마쓰다는 카츠의 입에서 나온 말의 뜻을 이해하고 말았다.

    “설마 한국 방면의 결계를 해제하겠다는 뜻인가?”-우리는 일본의 국민만 지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제 의무에 한국의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건 없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자네…… 정말….”

    -단순히 생각하세요. 이건 천재지변일 뿐입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천재지변을 막아줄 이유는 없잖아요?

    마쓰다는 지금껏 카츠의 제안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도의적으로 문제가 되는 제안은 많았지만 그 죄책감을 넘는 유혹이 있었기에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이 썩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럼 전 한국으로 떠나겠습니다.

    “뭐…?”

    카츠의 입에서 나온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대충 시나리오는 나왔습니다. 협회가 나에게 강요한 희생들…. 그것에 지쳐 한국으로 떠난다….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그건 네 범죄들을 가려주는 대가로….”

    -그걸 말해보려고요? 누가 믿겠습니까. 증거도 없는데.

    마쓰다는 그 말을 듣고 외통수라는 사실을 알아 버렸다.

    카츠와 마쓰다의 거래는 오로지 둘의 거래다.

    증거는 모조리 카츠에게 넘겼고 증인 따위는 없었다.

    카츠는 두 번째 이름으로 언론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이름으로는 전국적인 야쿠자들을 통합해 거느리고 있었다.

    자신이 이길 방법은 없었다.

    -허락해.

    마쓰다 협회장은 카츠의 장기 말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 * *

    [급보입니다. 현재 부산에 일본 쓰시마 섬 던전에서 나타난 몬스터들과 같은 몬스터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사망자는 23명에 부상자는 60여 명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뭐라고…?”

    트레이닝을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던 태운은 TV에서 나오는 소식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한국 헌터 협회는 이 일에 대해 일본 헌터 협회에 해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또한 쓰시마 섬의 결계를 유지하던 인원을 A급 3명에서 A급 한 명 B급 두 명으로 줄인 정황이 포착돼 의심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태운은 그것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척 봐도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일단 부산인가.”

    태운은 바로 짐을 챙겼다.

    그리고 연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네가 전화를 다 걸고.

    “정아야, 근 일주일 정도 시간 되냐.”

    -그냥 학교 다니는 거 말고는 특별한 일 없는데.

    “그럼 우리 집에서 통학할래? 동생 좀 돌봐줬으면 좋겠는데.”자신은 어쩔 수 없이 부산으로 떠나 있어야 한다.

    밤에 몰래 집에 침입해 사람들을 죽이는 배반자 녀석들도 있는 마당에 조심해서 안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뭐…. 못 할 건 없지.

    “참, 밥은 네가 해 먹어라. 윤아한테 시키지 말고. 요새 요리 실력에 물이 올라서 말이야.”-…? 무슨 소리야?

    “아무튼 고맙다. 나 돌아오면 밥 한 끼 살게.”-어, 알겠어.

    태운은 전화를 끊고 자고 있는 윤아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자신이 일주일 정도 떠나 있겠다는 말과 정아가 온다는 말을 적어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서울역으로 가주세요.”

    태운은 택시를 잡아 서울역으로 향했다.

    부산행 기차의 마지막 기차가 떠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빨리 가달라고 부탁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좌석은 텅 비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히 남아 있었다.

    ‘부산에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부산에 갈 만큼 간이 큰 사람은 웬만하면 없겠지.’태운처럼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서울역은 왜 가세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집에만 있는 게 안전할 텐데.”

    “아, 부산에 가려고요.”

    “부산이요? 뉴스 안 보셨습니까?”

    택시 기사도 깜짝 놀라지 않는가.

    그만큼 지금 부산에 가는 일이 미친 짓이라는 거니까.

    “저 헌터라서요. 가서 뭐든 해야죠.”

    “헌터라….”

    택시 기사는 갑자기 오른손에 낀 장갑을 벗었다.

    그의 오른팔에는 금속으로 된 의수가 달려 있었다.

    “나도 헌터였습니다. D급 헌터였는데 돈이 좀 필요해서 C급 던전 들어갔다가 이렇게 됐죠.”

    “…….”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좋았죠. 억대 연봉을 가장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헌터가 됐다는 사실에 매우 기분이 좋았어요. 각성자는 열 명에 한 명꼴로 나타나고 그중에서도 헌터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50%도 안 되니까요”각성자가 됐다고 해도 성격, 실력, 특성, 스킬 등등 모든 것을 종합해 자신이 헌터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각성한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게 현명하다.

    “드디어 이 집구석의 빚도 갚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헌터가 되자마자 빚 독촉이 들어오더군요. 하지만 헌터라고 순식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더군요…. 첫 달에는 600만 원을 벌었습니다.”적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던 만큼 큰돈은 아니었을 것이다.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들의 가격을 인터넷으로 보며 돈방석에 앉을 생각을 하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실제로 떨어지는 돈은 약 5%.

    ‘목숨을 건 대가치고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생각했겠지. 빚을 갚기에도 턱없이 적은 돈이었을 테고.’“그렇게 전 C급 던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헌터가 죽음과 이렇게까지 가까이 있는 일이었구나… 라는 것을….”D급 던전에서 나오지 않는 즉사급 몬스터들이 C급부터 나온다.

    오크, 트롤, 빅포, 리자드맨, 몬티스 등등.

    실수를 했다가는 바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D급 던전에서의 전투와 비교하면 지금까지의 전투는 소꿉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다음부턴 C급 던전에는 절대 들어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전 오른팔이 날아갔습니다. 깨달음이 늦었던 거죠.”

    “…안타깝네요.”

    “그래도 다행히 제가 있던 길드는 나름 대형 길드였고 산재 보험과 사후 보상도 넉넉히 해주었습니다. 이 의수도 그 길드에서 맞춰준 거였구요. 빚도 덕분에 다 갚았습니다. 생각해보니 팔 하나 날린 거치고는 괜찮은 수입이네요.”태운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태운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런 일들 생각보다 많아요. 다치지 않길 기도하겠습니다.”택시 기사는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지만 그 속뜻은 달랐다.

    ‘조심해라. 너도 나처럼 되지 않으리란 법 없다.’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아닌 오로지 사실일 뿐인 이야기.

    태운은 택시 기사의 말에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았다.

    “감사합니다.”

    태운은 택시에서 내려 서울역에 들어섰다.

    부산에 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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