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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29화 (129/379)
  • 129화

    라온과 레일로프가 어떻게 죽었는지, 태운은 그것이 궁금했다.

    그것이 궁금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만약 기록과 다르게 라온과 레일로프가 몬스터에게 잡아먹혔을 가능성도 버릴 수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다른 던전에서 그 몬스터를 잡았을 때 라온이나 레일로프의 마정석이 나올 가능성도 있어.’지옥 병정을 죽이고 얻은 마정석처럼 말이다.

    태운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동굴 밖에 나와 벨자하의 얼굴을 봤을 때부터였다.

    다른 사람들은 통로 입구를 마법으로 부수고 병사들을 이용해 몬스터들을 겁먹게 한 후 통로로 밀어 넣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크, 트롤, 빅포, 인면조 같은 녀석들이 고작 병사 몇 백에게 겁을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가능성이 있다면…. 벨자하가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 정도다.’마법이 아니라 특성이나 스킬로 말이다.

    지구에서도 마법으로는 최대 오크 정도의 몬스터를 테이밍할 수 있다.

    빅포나 트롤 급의 몬스터들은 조종할 수 없다.

    그리고 전대섭이라고 해도 테이밍 마법으로는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조종할 수가 없다.

    ‘그럼 특성이나 시그니처 스킬밖에 더 있나. 아무튼 몬스터를 조종해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먹였다면…. 라온과 레일로프의 마정석을 얻을 수 있는 단서가 생기는 거지.’태운은 벨자하의 팔을 치료해주었다.

    물론, 팔을 붙여주지는 않고 단순히 피가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말이다.

    “야, 일어나봐.”

    짜-악!

    태운은 벨자하의 뺨을 때렸다.

    나이도 지긋한 사람의 뺨을 때리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벨자하를 배려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벨자하가 기절해 있는 동안 정신이 멀쩡한 병사 하나에게 들은 바로는 아주 끔찍한 사람이었으니까.

    ‘죄 없는 병사들을 산 채로 반으로 찢거나 그 찢은 병사를 다른 몸이랑 이어 붙이고…. 어후…. 더는 상상도 하기 싫다.’가도가 살아 있던 시절의 벨자하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단순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취해 자존감만 높은 사람일 뿐, 이런 악당은 아니었다.

    짜-악!

    “흐어억!”

    태운이 뺨을 세 번 정도 때리자 벨자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일어났다.

    “게, 겔릭…. 끄, 끄으으윽….”

    벨자하는 고통스러워하며 이미 잘려 없어진 부분을 잡으려 했다.

    환상통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사실 환상통이 아니라 실제로 신경계를 타고 뇌로 들어가는 통증이지만 말이다.

    태운은 잘린 벨자하의 팔을 자근자근 밟고 있었다.

    태운이 잭로프에게 알려준 마법은 신경계를 마나로 연결해주는 마법이었다.

    마법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마나 소모가 커서 겔릭의 몸으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잭로프에게 사용하게 한 것이다.

    “끄으으….!”

    잭로프의 마나로 잘린 팔의 신경을 죽이지 않고 살려놓은 후 벨자하의 신경과 연결한다.

    그럼 잘린 팔의 고통이 고스란히 벨자하에게 전달될 것이다.

    직접 몸에 고문을 하지 않고 이런 방법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방법으로 신경과 연결하면 이 잘린 팔로 벨자하의 마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지.’신경과 마나 회로는 굉장히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경계에 신호를 주며 고통을 가하면 마나 회로는 마나 운용에 장애를 안게 되고 마법을 쉽게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이 잘린 팔이 벨자하의 전원 리모콘이 됐다는 거지.’태운은 단검으로 벨자하의 잘린 팔을 찔렀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아무리 강한 강도로 고문을 해도 죽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태운은 메테리얼을 만들어 전기를 팔에 흘렸다.

    “끄아악…. 크으으…. 끄아아악!”

    감전으로 인한 세포의 파괴나 마비 없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벨자하는 일반 감전의 수 배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뭘… 뭘 바라는 거냐!”

    “일단 네 입에서 내가 바라는 말이 나와야 그때 알려줄게.”태운은 벨자하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싣고 있었다.

    태운이 가장 오랫동안 가장 깊게 빙의되어 있던 대상은 가도다.

    그때의 감정은 1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가도는 라온과 레일로프가 죽었다는 것에 원통해했다.

    그리고 그 범인이 벨자하라는 것을 알아채고 태운도 똑같이 원통해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고 벨자하의 목에서는 더 이상 비명이 나오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 그냥 죽여….”

    잔뜩 쉰 목소리로 죽여달라 말하는 벨자하, 태운은 이 말을 듣고 싶었다.

    태운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와 고통을 안겨주고 싶었다.

    라온과 레일로프, 두 명의 목숨값이니까.

    [겔릭과의 동기화율이 60%가 됩니다.]

    “뭐야… 어느새….”

    고문을 생각해냈을 때부터 조금씩 오르더니 고문을 마친 지금 60%까지 올랐다.

    순간 방금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사고에 태운은 깜짝 놀랐다.

    ‘두 명분의 목숨이니까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공포를 준다니…. 내가 목숨값을 매기다니….’태운은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항상 이런 것을 무서워했다.

    동기화율이 오르다 보면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마정석 흡수를 끝내면 원래대로 돌아가니까 다행이지.’태운은 다시 팔을 손에 쥐고 쭈그려 앉아 벨자하와 눈높이를 맞췄다.

    “라온과 레일로프, 정확히 어떻게 죽였는지 말해봐.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 마법으로 알아낼 수 있으니까.”물론 거짓말이었다.

    심박수나 여러 가지 요소를 채집하고 분석해주는 마법은 있지만 정확도가 너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협박을 하는 것이다.

    “헛소리했다간 30분 더 간다.”

    “아, 알겠다.”

    벨자하는 한숨을 내쉬며 그때 상황을 상기했다.

    * * *

    “후우….”

    “아들, 멀리멀리 가야 한다. 조셉 삼촌한테 ‘잭과 콩나무를 넘어뜨려 다리를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렴. 그럼 다 좋게 해결될 거야.”잭로프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행 도중, 괴한에게 엄마와 아빠가 큰 상처를 입었으니까.

    그토록 강했던 엄마와 아빠가 말이다.

    “아들, 지금까지 엄마랑 아빠가 아들을 구해줬었지? 이제는 아들이 엄마랑 아빠 구해줄 시간이야. 멀리 도망가서 조셉 삼촌한테 가. 알겠지?”

    “어…. 어….”

    잭로프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금껏 살면서 부모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가야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잭로프는 그렇게 부모와 마지막 눈인사를 나누고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아빠가 말을 걸었다.

    “아들! 라온 레일로프! 사실 엄마의 이름이 라온! 아빠 이름이 레일로프다!”라온처럼 씩씩하고 영리하게 레일로프처럼 용감하게 살아가라고 지어줬던 이름이다.

    “앞으로 네 이름은 잭로프다! 그 이름으로 네 인생을 살아라!”하지만 이제 부모의 그늘을 떠나 새 인생을,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럴 때를 위해 지어두었던 잭로프라는 이름, 그 이름을 벌써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예!”

    잭로프는 5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알고 있었다.

    자신은 부모를 구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도망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지만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자신이 살아야 부모님의 죽음에 가치가 있으니까.

    “뭐 하나? 쫓… 커억!”

    벨자하의 제자인 테일러가 병사들에게 잭로프를 쫓으라고 명령하려 했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화-륵.

    테일러의 목구멍으로 탁구공만 한 화염구를 넣어 버렸으니까.

    “이 해혜키가…. 쥬글라고….”

    성대가 반쯤 타올라 말도 제대로 못 하던 테일러는 그의 특기인 폭발 마법을 시전했다.

    하지만 라온은 그의 공격을 쉽게 막아냈다.

    “크하하하!!!”

    그 모습을 본 벨자하는 큰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크흐…. 참 재밌더라고.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던 너희들이 짝짜꿍이 맞아서 애까지 낳고 잘 살다니.”벨자하는 그들을 조롱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레일로프는 라온의 허리를 잡아끌었고 라온은 입을 열었다.

    “지금도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는 건 똑같은데. 안 그래?”

    “…그렇지.”

    레일로프는 라온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몸을 떨어뜨렸다.

    “아쉽네.”

    “그러게.”

    그 순간 둘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루만이라도 더 같이 살며 행복해하고 싶었는데.

    카-앙!

    레일로프는 떠돌이 생활 2년, 라온을 만나 결혼한 후 6년, 총 8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왔다.

    테렌 왕국 시절의 레일로프가 아니었다.

    레일로프 또한 라온에게 간단한 마법을 배운 상태였고 검술에 대한 조예도 더 깊어졌다.

    하지만 그의 맞상대인 세트도 마찬가지였다.

    벨자하에게 마법을 배우고 적국 기사들과 싸우는 것이 일상이었던 세트도 상당히 강해져 있었다.

    캉!

    레일로프는 세트의 검을 한 번 받아내더니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약하구나.”

    레일로프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러곤 신체를 강화한 후 등, 팔꿈치, 다리에 매직 미사일을 응용한 부스터를 달았고 말그대로 ‘쏘아졌다.’라온이 알려준 매직 미사일의 활용 방법이었다.

    “이 무슨….!”

    레일로프는 신체 강화로 강해진 근력을 적극 활용해 엄청난 속도로부터 몸을 제어했고, 그 속도를 온전히 검을 실어 휘둘렀다.

    차라락!

    검끼리 부딪혀서는 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싶어 검을 보니 부서진 것도, 잘린 것도 아니었다.

    세트의 애검은 완전히 철가루가 되어 있었다.

    “…약하군.”

    레일로프가 세트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위해 검을 치켜든 순간퍽.

    주먹만 한 돌멩이가 레일로프의 왼쪽 가슴을 관통했다.

    “어….?”

    “야!”

    레일로프는 순간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고 테일러와 시온을 동시에 상대하던 라온은 레일로프를 불렀다.

    하지만 레일로프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라온 쪽으로 돌릴 뿐, 다시 일어나지는 못했다.

    “크하하하! 고작 돌멩이에 가슴이 관통당해 죽다니 이 얼마나 비참한 죽음이란 말이냐!”벨자하는 마법으로 돌멩이를 쏘아내 레일로프의 가슴을 관통시켰다.

    “…….”

    라온은 불꽃 마법을 강하게 쏘아내 시온과 테일러를 밀어내고 레일로프에게로 다가갔다.

    “야…. 너 이렇게 허무하게 갈 거야?”

    라온은 목소리를 떨었고 레일로프는 라온의 얼굴만 바라보고만 있었다.

    레일로프는 검을 쥐고 상체를 일으켰다.

    “당신, 고마웠어. 이제 내 시체를 화장할 때가 된 것 같네.”라온은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응…. 알겠어.”

    레일로프는 왼쪽 가슴이 뚫린 채로 일어났다.

    그 모습을 지척에서 본 세트는 기겁했다.

    “심장이 뚫린 채로 어떻게….”

    사실 레일로프의 심장은 오른쪽에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화염강림.”

    라온은 눈물을 흘리며 레일로프에게 마법을 시전했고 그와 동시에 레일로프의 전신이 불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벨자하는 그들을 비웃기 시작했다.

    “무슨 이건 불장난인….”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서-걱.

    온몸에 불이 붙은 레일로프의 검에 오른팔이 잘려 버렸으니까.

    “끄아아악!!!”

    그뿐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속도로 가속한 레일로프는 세트의 가슴에 긴 검상을 남기고 테일러와 시온의 목을 날려 버렸다.

    파스스….

    그후 레일로프는 한줌 재가 되어 허공을 날았다.

    털썩.

    모든 힘을 다 쓴 라온의 운명도 레일로프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이…. 이…. 개 같은 연놈들이….”

    벨자하는 분노하며 자신의 컬렉션에 있는 몬스터를 하나 꺼내 라온의 눈앞에 꺼내놓았다.

    그 몬스터의 이름은 인면조였다.

    “이 몬스터는 네 아들이다.”

    “아…. 아….!”

    라온도 그 몬스터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포를 내비치지 않던 그녀도 그 몬스터를 보고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인면조의 입이 열렸다.

    [엄마…. 엄마…. 미워…. 엄마 미워….]

    인면조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라온을 산 채로 뜯어먹었고 그 뒤에서는 광기 어린 벨자하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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