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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28화 (128/379)
  • 128화

    “라온 레일로프…. 역시 맞았군.”

    태운은 잭로프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느끼긴 했다.

    마치 형제 같던 잭과 레일로프의 이름을 합한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들었으니까.

    “…벨자하….”

    맨 처음 잭로프의 떨림은 분노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토록 강했던 부모님들을 죽인 사람이다.

    평소 그를 마주치기만 하면 죽여 버리겠다며 이를 갈았었지만, 막상 앞에 서니 두려움이 앞섰다.

    벨자하는 오른쪽 팔이 없었다.

    그의 오른팔은 라온과 레일로프가 가져갔을 것이다.

    레오의 마정석을 흡수할 당시에 바의 주인장에게 들었던 이야기에서 라온과 레일로프가 벨자하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고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굉장히 노쇠해 있었다.

    가도가 살아 있었을 시대에도 꽤 나이를 먹은 상태였고 그 이후로 최소 잭로프의 나이만큼의 시간은 더 지났을 테니 그의 나이는 이미 70세는 넘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70대면 길 가다 쓰러져 죽어도 놀라지 않을 정도의 나이다.

    벨자하는 그런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어떤 사람이 달려들어도 그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확실히 강해진 건 알겠네.’

    가도의 마정석을 흡수할 당시 벨자하의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자질은 굉장히 뛰어났지만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최소 20년은 지났다.

    그 과정에서 놀고먹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라온과 레일로프에게 제자들을 잃고 팔이 잘리는 치욕을 당했고 그의 성격상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공격해라. 나무꾼 복장을 하고 있는 저놈만 빼고 싹 다 죽여도 된다.”벨자하의 말 한마디에 병사들이 천천히 전진했다.

    창을 세우고 천천히 전진하며 영역을 빼앗는 병사들, 그리고 그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벨자하.

    “젠장….”

    추적자들은 뒷걸음질을 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되돌아왔던 길로 도망을 칠 수는 없었다.

    이 길을 뚫으면서 모든 몬스터를 죽인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친 몸으로 병사들을 견제하면서 뒤에 있는 몬스터를 뚫고 도망갈 자신이 없었다.

    모두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때, 태운은 달랐다.

    “전격, 중단, 폭풍, 화폭, 가속.”

    “전격의 파편 폭풍.”

    가도의 몸으로 벨자하와 대결을 할 때, 녀석의 메테리얼을 빼앗아 사용했던 마법이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랐다.

    단순히 마나를 조정해 화폭이 날아가는 방향을 한정하고, 가속의 강도를 줄이고, 화폭에 힘을 실어 마나 파편의 수를 늘렸다.

    파파파팍!

    ‘속도는 폭풍에 의해 회전하는 에너지면 충분해. 그리고 굳이 가속으로 속도를 올리지 않아도 병사들이 화폭을 피할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아.’그럼에도 가속을 빼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만들어진 융합 마법에 마법을 하나 빼고 다른 마법을 넣었다면 균형이 망가져 제대로 된 성능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태운이 융합 마법을 즉석으로 만들어서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균형이 망가져도 오버 서플라이를 활용해 강제로 균형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버 서플라이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은 그 방법을 쓸 수 없기에 검증된 융합 마법의 레시피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무슨…!”

    벨자하는 마나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병사들은 그러지 못했다.

    “으갸갸갹….”

    병사들은 갑옷의 틈으로 화폭을 맞고 전기에 감전되어 쓰러져나갔다.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한 20년 전쯤에 넌 이걸 맞고 기절했었는데.”

    “무슨 헛소리를….”

    “정말 헛소리 같나?”

    태운은 태풍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 후 겔릭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종이에 수식을 적어 잭로프에게 건네주었다.

    “그걸 익혀라. 너라면 할 수 있다.”

    잭로프는 50살이 거의 다 되어 마법을 처음 깨달은 벨자하는 물론 지구 최강의 마법사인 전대섭의 재능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잭로프라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네 이놈….”

    벨자하는 태운의 행동에 격노했다.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던 라온, 그녀에게 오른팔을 빼앗긴 후 벨자하는 심한 자격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자신의 앞에서 한눈을 팔고 있으면 라온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이 개 같은 버러지 자식이!”

    벨자하는 순식간에 메테리얼을 6개나 생성해 태운에게 공격을 쏟아부었다.

    ‘실력이 대단하긴 하네.’

    벨자하가 사용하고 있는 마법은 지구에서도 상급 마법이라고 불릴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 마법이었다.

    마법을 처음 발견할 정도의 천재가 20년 동안이나 힘을 쏟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태운도 마찬가지였다.

    “팔랑크스.”

    태운은 수많은 창을 내세운 방벽을 세워 벨자하의 마법을 시전되기 전부터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대로 쏴봤자 창끝에 맡고 폭발해 방벽 자체에도 큰 데미지를 주지 못할 테니까.

    “크윽….”

    벨자하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법을 연구해왔지만, 그건 지구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벨자하의 재능은 지구의 마법을 크게 발전시킨 전대섭에 비하면 범재에 불과했고 지구의 발달된 과학에 기대어 발전해온 마법은 이곳의 마법보다 뛰어났다.

    게다가 자신의 마법을 개척해온 태운도 마나양이 적었을 뿐, 전대섭 못지않은 천재였으니까.

    “흐읍!”

    태운은 팔랑크스 방벽을 밀어내 벨자하를 공격했다.

    방어와 동시에 공격까지 할 수 있는 마법, 그것이 태운이 팔랑크스를 고안한 이유였다.

    요격 마법도 방어와 공격 두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만 태운이 상상하고 있던 공방일체의 느낌은 주지 못했다.

    그때 태운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스파르타 전사들의 전투를 주제로 한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나온 그들의 방진인 팔랑크스는 태운이 상상하고 있던 공방일체의 이미지와 완전히 일치했고 태운은 그것을 모티브로 마법을 만들었다.

    30개의 둥근 방패와 그 사이로 솟아 있는 장창들.

    방패로 공격을 막고 장창으로 찌른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전략이었다.

    “…이 벌레 같은 자식이!”

    벨자하는 이번에 수많은 화염구를 흩뿌렸다.

    ‘오….’

    이번에 벨자하가 시전한 마법에는 파이로 컨트롤이 내장되어 있는 것 같았다.

    벨자하가 생성한 화염구는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태운을 압박해왔다.

    그때, 태운이 만든 팔랑크스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태운이 손짓하자 팔랑크스를 이루고 있던 방패들과 창들이 전부 흩어져 태운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패 30개, 창 30개.

    마력으로 만들어진 병장기들이 태운의 주변을 떠다니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태운이 전쟁의 신과 같이 보였다.

    하지만 벨자하는 그 모습을 보고 재능의 차이를 실감하고 말았다.

    고작 30대의 나이로 보이는 겔릭이라는 저 남자가 마법 실력으로 자신을 능가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열등감이 또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어중간한 재능이라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지.’태운은 갑자기 명운전에서 공진영과 싸웠던 정성현이 떠올랐다.

    그도 익스퍼트 골드 내에서 상위권에 안정적으로 서 있던 사람이었지만 역대급 재능이라고 불리는 동생에게 밀려 그런 자격지심을 가지게 되지 않았는가.

    다들 한심하게 볼지도 모르지만 태운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따라잡히고 밀려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보다 공부도 못하고 마법 수식도 잘 익히지 못하는 녀석들도 스타지에르를 통과하고 다음 등급으로 넘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바로 태운이었으니까.

    ‘하지만 벨자하는 이미 선을 넘었어.’

    태운은 벨자하가 만든 화염구에 방패를 들이밀어 방패와 함께 화염구를 소멸시켰다.

    벨자하는 또다시 화염구를 만들어냈고 다시 방패를 부쉈다.

    ‘이런 소모전으로 가면 내가 불리해.’

    그럴 것이 벨자하의 마나양은 30만이 넘어가는 데 비해 겔릭의 마나양은 10만이 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마나를 상당히 많이 소모하면서 길을 통과했기 때문에 벨자하와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을 때 남은 마나는 5만이 넘지 않았다.

    ‘병사들을 처리하는데 1만 정도의 마나를 썼으니까. 나는 거의 6배의 마나양 차이를 안고 싸우고 있는 셈이네.’다행인 건 벨자하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벨자하가 마나양에 대해 우세하다는 사실을 알면 제대로 승부를 하지 않고 마나 교환 형식의 전투를 이어나갈 터, 그렇게 된다면 태운의 승산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벨자하가 방어적으로 전투를 이끌어나간다면 태운의 작전도 먹히지 않게 되겠지.

    ‘그래도 다행이야. 쉽게 화를 내줘서.’

    벨자하가 생각보다 쉽게 화를 내주어서 태운의 작전도 쉽게 먹힐 것 같았다.

    “겔릭…! 네놈은 왜… 왜… 그런 힘을 가지고도 의적 따위를 하고 있는 거냐!”벨자하에게는 자신보다 뛰어난 겔릭이 의적을 하고 있는 것이 기만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태운은 그것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이용했다.

    “무섭거든. 너처럼 듣도 보도 못한 길거리 의적한테 뒤처질까 봐.”

    “이, 이놈!”

    벨자하는 격노하며 화염구들을 더욱 많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화염구들, 벨자하는 화염구들을 쏟아낸 순간 ‘아차’ 싶었다.

    이 정도 화염구를 소환해봤자 제대로 조종할 수도 없고 단순히 자신의 시야만 가리는 꼴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 순간.

    서-걱!

    벨자하의 남아 있던 왼팔이 땅에 떨어졌다.

    “으…. 으… 으아아악!!!”

    벨자하는 잠깐 동안 자신의 왼팔을 쳐다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범인은 당연히 강태운이었다.

    벨자하가 자신의 화염구로 시야를 가린 순간 오버 부스트를 시전, 방패들을 부딪쳐 불길을 뚫고 그 사이로 들어가 벨자하의 팔을 베어 버린 것이다.

    “끄으… 끄아아악…!”

    벨자하는 고통에 몸부림쳤고 그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져 화염구는 사라졌다.

    “멍청하기는….”

    벨자하가 조금만 침착했더라면 태운이라도 별수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벨자하는 자신과 대등한 상대와 자주 대련을 한 경험이 없을 테니까.’벨자하는 항상 자신과 비슷한 위치까지 올라올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목을 쳐버렸다.

    게다가 자신보다 강한 사람과 싸울 때면 항상 자신의 제자를 데리고 다니며 서포트를 시켰었다.

    ‘그러니 실력이 나아질 리가 없지.’

    태운은 양팔이 잘린 채로 몸부림치는 벨자하에게 다가갔다.

    “이 개 새….”

    퍼-억! 퍼-억! 퍽! 퍼-억! 퍽!

    태운은 벨자하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기도 전에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벨자하의 이빨이 5~6개 정도 입 밖으로 나왔고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잠깐 기절해있어라. 마법 쓰면 곤란하니까.”태운은 병사들의 잔당을 상대하고 있던 추적자들을 불러왔다.

    병사들은 이미 벨자하의 패배를 알아채고 항복한 상태였으니까.

    “이놈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주세요. 뭐, 묶을 곳이 있나 싶긴 한데.”그렇게 말한 후 태운은 잭로프에게 다가갔다.

    “…저에게 이 마법을 익히라고 하신 이유가 뭐죠? 보니까 공격 마법도 아니지 않습니까.”“오, 알아챘구나. 역시 천재는 달라. 혹시 벌써 익혔나?”

    “익히긴 했지만 이런 마법을 어디에….”

    “그럼 벨자하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보자고.”벨자하의 입으로 라온과 레일로프가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듣고 싶었다.

    이제 그걸 들으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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