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27화 (127/379)
  • 127화

    “벨자하라고?”

    “뭐야. 알고 있는 사람인가?”

    태운은 뜬금없이 나온 그 이름에 순간 당황했다.

    이번에는 드물게 겔릭의 기억에 세상에 대한 정보들이 있었고 거기에 헤온 제국의 이름이 없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의 이름이 나오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대륙이라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네….’벨자하는 헤온 제국의 황궁 마법사다.

    그리고 그가 마법을 사용한 지 몇 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가도의 마정석을 흡수할 때야 그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지 1~2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마법을 사용한 지 몇 년이 지나 실력이 엄청나게 늘어있을 수도 있었다.

    ‘실력이 많이 늘어 있지 않으면 묶어놓고 물어보고 싶은 걸 잔뜩 물어볼 수 있을 텐데.’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평균적인 마법 실력이 어느 정도 올라간 상태다.

    그런데 황궁 마법사의 실력이 바닥일 리가 없지 않은가.

    ‘…최대한 대화를 이끌어내야겠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잡아놓고 패면서 심문할 수 없다면 싸우기 전에 최대한 대화를 이끌어내 정보를 얻어낼 수밖에 없다.

    그때, 잭로프는 왠지 모르게 몸을 떨고 있었다.

    ‘추워서 그런가? 아니면 두려워서?’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었다.

    태운은 그의 등을 쳐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 괜찮을 거다. 어떻게든 내가 너만큼은 살려보내 주마.”

    “…감사합니다.”

    하지만 잭로프는 떨림을 멈추기는커녕 여전히 몸을 떨고 있었다.

    ‘뭐야…. 얘 왜 이래…?’

    태운은 잭로프의 떨림을 보고 순간 알아챌 수 있었다.

    그의 떨림은 두려움이나 긴장 같은 것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이 녀석…. 엄청 화가 나 있는데…?’

    태운이 잭로프의 떨림의 정체를 알아낸 순간 그의 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갸아아아악!]

    “왜 여기 몬스터가….”

    “인면조다!”

    커다란 몸통에 긴 목을 가지고 있는 인면조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긴 목 끝에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조심해!”

    인면조는 지구에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다.

    정확히는 인류의 대혼란을 막기 위해 알리지 않은 5종의 몬스터 중 하나였다.

    ‘녀석의 몸의 구조를 보면 싸우기는 어려울 거 같지만… 녀석은 몸으로 싸우는 게 아니니까.’인면조의 주 전투 방식은 마법이다.

    인면조는 지능이 매우 높다.

    인간이 마법이라는 것의 존재를 깨닫기도 전에 이미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을 정도니까.

    “온다! 잭로프 조심…!”

    태운이 말을 하기도 전에 잭로프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달려든 것은 아니었다.

    인면조의 눈을 마주 보며 의도를 읽었고 정확히 인면조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움직였다.

    [갸아아악…!]

    인면조는 마법을 사용해 불덩이를 쏘아냈고 태운은 잭로프에게 솔리드 아머를 씌워주었다.

    하지만 잭로프는 가볍게 그것을 피해내고 인면조에 시야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도착했다.

    잭로프는 그 상태로 녀석의 심장이 있을 것 같은 곳에 검을 깊숙이 꽂아 넣었다.

    푸-욱.

    잭로프가 검을 꽂아 넣은 곳에 정확히 인면조의 심장이 위치해 있었다.

    촤-아.

    잭로프가 검을 뽑자 인면조의 상처에서 검은 피가 마구 솟구쳤다.

    쿠-웅.

    인면조의 거구가 바닥에 쓰러졌고 잭로프가 빠르게 마지막 공격을 하려는 순간 인면조가 몬스터 도감에 기재되지 않은 이유가 드러났다.

    [잭로프…. 그동안 잘 지냈지…? 나란다. 네 엄마….]

    인면조는 페로몬을 흘리며 잭로프에게 말을 걸었다.

    이게 바로 인면조가 몬스터 도감에 기재되지 않은 이유였다.

    사실 전대섭과 허덕륜이 도감에 기재하지 않은 5종의 몬스터 중 이 몬스터만큼은 도감에 기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투표를 통해 기재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대섭과 허덕륜은 헌터의 입장에서 이 몬스터의 정체를 알고 있어야 빠르게 대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 세계 협회 연합의 위원들은 이미 나타나지 않은 지 10년이 된 몬스터라며 괜한 혼란을 막자는 의미에서 몬스터 도감에 기재를 하지 않았다.

    ‘페로몬에 휩쓸리면 위험해…!’

    잭로프의 눈을 보니 이미 페로몬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이 반쯤 풀려있는 것을 보니 인면조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젠장…! 잭로프!”

    태운이 잭로프에게 솔리드 아머를 씌워주긴 했지만 인면조가 죽기 직전에 날리는 공격은 굉장히 강력하다.

    솔리드 아머로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불분명하다.

    태운은 잭로프를 보호하기 위해 인면조를 공격하려 했지만 인면조의 공격이 더욱 빨랐다.

    솔리드 아머가 인면조의 공격을 버텨주기를 바란 그 순간.

    서-걱.

    잭로프의 검이 쓰러져 있는 인면조의 목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 잭로프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직 페로몬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진짜 내 엄마였다면…. 고작 이 정도에 당하지 않았어…. 고작…. 이 정도가 아니라고….”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내 진짜 이름은 잭로프가 아니야….”잭로프는 그 상태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 * *

    “진정됐나.”

    “예…. 죄송합니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놈이 울기나 하고….”잭로프의 나이는 18살, 이쪽 세계에서는 이미 성인이고 결혼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나이다.

    그런 나이에 운 것이 부끄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태운은 그것보다 다른 것이 신경 쓰였다.

    ‘잭로프라는 이름이 본래의 이름이 아니라는 거….’사실 조금은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어머니가 마법사고 아버지가 기사였다는 것, 그리고 이름이 ‘잭’, ‘로프’라는 것.

    이것들이 과연 우연으로 이루어진 일일까?

    “슬픈 건 알겠지만 급하니까 빨리 가자고.”

    “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지. 한두 명은 크게 다칠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아무런 피해도 없이 넘어갈 수 있었으니까.”추적자의 리더인 중년 여성이 잭로프에게 말했다.

    아마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그녀였던 것 같다.

    그녀는 계속 길을 따라 나아갔다.

    “그런데 이 길에 왜 몬스터가 나타났는지 모르겠어. 이곳은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구조라 몬스터가 들어올 수가 없는데…. 돌아가면 한번 알아봐 달라고 말해야겠군….”

    “삼촌한테 말하면 되나?”

    “그럴 거다.”

    가문에서 하는 일이 맞는 것 같았다.

    호칭이 모두 가족끼리 쓰는 말이었다.

    ‘나중에 다음 마정석을 흡수할 때 대도시에서 깨어나면 이 집단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네.’우중충한 늪에서 찾아낸 특별한 마정석들은 총 3개, 그중 하나라도 이 세계와 이어지지 않겠는가?

    같은 던전에서 찾아낸 마정석이 같은 세계에 있던 인물의 마정석일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이번 마정석 흡수로 확인했다.

    그것을 알아낸 이상 우중충한 늪의 마정석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라온, 레일로프, 잭의 마정석을 찾아내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최근에 의문도 하나 생겼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라온이 귀족의 의뢰를 받고 가도를 찾아왔을 리가 없을 텐데 어떻게 그의 부하가 된 것인지.

    그것도 새롭게 생긴 의문 중 하나였다.

    ‘일단 잭로프에게 물어볼까.’

    태운은 잭로프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아까…. 인면조 탓에 듣게 되었는데… 잭로프가 원래 이름이 아니라고…?”

    “속여서 죄송합니다.”

    “그럴 것까진 없어. 사정이 있어서 원래 이름을 숨기고 사는 것 같은데.”태운은 잭로프의 이름에 대한 것을 알고 싶었지만 왠지 직설적으로 묻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이 길이 끝나기 전에는 반드시 물어볼 것이다.

    “또 몬스터다!”

    “왜 계속 나타나는 거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완전 격리라는 이 길에 계속해서 몬스터가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추적자들의 실력도 뛰어났기에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을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빈도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체력이 버텨줄지….’

    태운이 팩 인 디바인 포스를 사용한다면 그들의 체력을 보충해줄 수 있겠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마나가 더욱 부족하게 될 것이다.

    ‘최대한 체력을 아끼는 방식으로 싸워야겠군,’추적자의 리더인 그녀의 생각도 태운의 생각과 똑같았다.

    “아직 길을 50%밖에 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몬스터가 나올 것 같으니 체력을 보존하며 길을 나아간다. 체력은 스스로 보존해라.”전투에서 체력을 보존한다는 것은 최대한 빠르게 전투를 끝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태운은 체력을 가장 적게 사용하며 전투를 빠르고 안전하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적이다!”

    “오크 8마리! 집중해!”

    좁은 길로 덩치가 큰 오크들이 서로를 밀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 태운은 자신의 마법 중 가장 가성비가 좋은 마법을 사용했다.

    “화폭.”

    펑!

    태운이 오크들의 한가운데에 화폭을 사용했다.

    그러자 오크들은 등 뒤에서 덮쳐오는 통증에 당황했고 그것을 포착한 추적자들은 일제히 달려나가 오크들의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그것을 본 리더는 태운에게 말했다.

    “꽤 하네?”

    “의적이라 불리기가 쉬운 줄 아시나 봅니다.”

    “어쭈, 이제 말장난도 하네?”

    태운은 오크들의 사체를 넘어 길을 나아갔다.

    지금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일관성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죄다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어. 모두 이쪽을 향해서 다가왔지.’태운의 생각이 맞다면 지금 순간에도 격리 구역의 구멍이 뚫린 곳에서 계속 몬스터가 들어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래서 서두르려고 하는 것이었다.

    “일단 빨리 갑시다. 쉬는 건 밖에 나가서.”

    태운은 사람들을 독촉했다.

    태운은 자신이 판단한 바를 리더에게 전달하고 진행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전력 질주까진 아니고 조깅 정도의 속도지만 전투를 이어나가니 그 이상의 체력을 소모했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걷자 모두가 지쳤지만 출구의 지척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더욱 빨리 달려 출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미친놈이 출구를 박살 내놨어? 이러니 몬스터가 들어오지.”출구는 완전히 박살이 나 날아가 있었고 그곳에서 계속 몬스터가 들어오고 있었다.

    “저것만 뚫으면 출구다! 다치지 말고 돌아가자!”리더는 사기를 진작하며 숨을 헐떡이는 추적자들을 이끌었다.

    그들은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몬스터들을 뚫어냈고 출구까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하지만 힘겹게 몬스터들을 뚫어내고 출구로 나간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자유가 아니었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포기해!”

    수많은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크큭…. 참으로 멍청한 놈들이구나. 이 출구의 존재를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한 건가?”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듣기 싫었던 목소리다.

    “벨자하….”

    벨자하는 병사들의 사이에서 추적자와 태운, 잭로프를 조롱했다.

    “아, 참 그리고 내가 찾던 녀석도 이곳에 있더군.”벨자하는 확성 마법을 사용해 소리쳤다.

    “잭로프!”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잭로프였다.

    ‘아니지…. 잭로프가 아니지…. 라온 레일로프! 그게 네 진짜 이름이잖나!’가명을 사용하던 라온과 레일로프, 그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넘겨주었다.

    라온 레일로프, 그게 잭로프의 진짜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의 진짜 정체는 옆 대륙에서 활약하던 기사와 마법사인 레일로프와 라온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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