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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26화 (126/379)
  • 126화

    태운은 다음 전투에서도 몬스터를 하나씩 잭로프에게 넘겨주었다.

    잭로프는 심부로 다가갈수록 점점 강해지는 몬스터들을 무난하게 상대했다.

    ‘이거 진짜 물건이네….’

    잭로프는 몬스터가 강해질수록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처음 자신보다 신체적 조건이 안 좋은 코볼트를 상대할 때는 공격적으로 나서 한 번에 끝을 내었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하거나 큰 상대를 만났을 때는 방어적으로 움직이며 확실히 찬스가 났을 때만 공격을 했다.

    ‘정석이지. 약한 적에게 방어적으로 대처하다 다치면 손해니까.’전투에 경험이 없고 싸움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싸울 때 본능적으로 한가지 스탠스를 취한다.

    한결같이 너무 공격적이거나 너무 방어적이거나 둘 중 하나의 자세를 취한다.

    초보 중에 잭로프처럼 적에 따라 유동적으로 스탠스를 바꾸는 사람은 없다.

    물론 공격적이던 사람이 큰 적에 겁을 먹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도 있지만 잭로프의 움직임은 절대 겁먹은 움직임이 아니었다.

    “잭로프.”

    태운은 전투가 끝난 후 잭로프에게 말을 걸었다.

    몇 번의 전투 후 대화가 이어지며 태운은 말을 놓게 되었다.

    “예?”

    “잭로프 혹시 검을 배워본 적이 있나? 검이 아니더라도 뭔가 싸우는 방법이라든가….”“없습니다. 아버지가 기사 출신이긴 했지만… 검을 쥐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며….”기사라면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검을 가르치지 않은 거지? 이 정도의 재능이라면 3년 내에 왕국 최고의 실력자가 되어 있을 텐데….’변방 영지의 별 볼 일 없는 기사였다면 그의 재능을 확실히 알아보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

    다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의 재능을 알고도 검을 가르치지 않은 것이라면?

    정확히는 잭로프가 재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검을 가르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시지?”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습니다.”

    “음…. 그렇군. 미안하네.”

    태운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재능을 알아보고 일찍 가르치지 않은 것인가?’그의 재능은 상당하다.

    하지만 그 재능 때문에 몸이 망가질 가능성도 있었다.

    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을 가르친다면 잭로프는 자신의 힘을 감당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몸과 정신이 가다듬어진 후에 가르치겠다는 생각이었다면… 생각보다 안목이 있는 기사였을지도 모르겠군.’태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잭로프에게 건네주었다.

    겔릭의 주무기는 단검이지만 항상 장검을 허리에 차고 다니긴 한다.

    단검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를 만났을 때를 대비한 것이긴 하지만 그의 단검 실력이 너무 뛰어난 탓에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다.

    “이건….”

    “도끼보다 손에 맞을 거다.”

    스릉.

    탁.

    잭로프는 검을 손에 쥐어보더니 평소 가지고 싶어 하던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더 열심히 싸워.”

    태운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 임무를 마칠 때까지 잭로프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될 것 같았다.

    ‘혹시나 기습을 받으면 안 되니까… 솔리드 아머.’태운은 잭로프에게 솔리드 아머를 씌워주었다.

    “어…? 이 방어막은 뭡니까?”

    그러자 잭로프는 자신의 몸에 씌워진 방어막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잠깐…. 방어막이라고…?’

    태운은 잭로프가 각성자일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솔리드 아머를 씌워주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할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잭로프는 방어막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방어막인 건 어떻게 알았지?”

    “그냥 알았는데…. 어떻게라고 하시면…. 그냥 몸에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지고 머릿속에 생각난 게 방어막이었습니다.”

    “…맙소사.”

    마법사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다.

    아무리 계산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마나로 만들어낼 것에 대한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리지 못하면 마법을 발동하지 못한다.

    몸 밖으로 씌워진 마나에 입력된 수식, 그것을 느끼기만 하고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마법도 배워본 적이 없나?”

    “없습니다. 어머니가 마법사이긴 했는데….”

    ‘이 집안은 무슨….’

    잭로프는 기사의 재능에 이어 마법사의 재능까지 가지고 있었다.

    * *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하네.’

    태운은 밤이 되에 나무 위에 올라 잠을 청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처음 자신을 쫓아왔던 추적자에 대해서 말이다.

    ‘엄마, 오빠 이런 호칭을 쓴 걸 봤을 때는 가족인 거 같은데…. 하트 2라는 코드네임도 있었으니 엄마, 오빠가 코드네임 중 하나인 것 같지는 않고….’그들이 가족인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추적자’인 그들이 가족인 것이 수상했던 것이다.

    ‘귀족들이 암살자를 양성할 때 대부분 노예를 들이지…. 그리고 서로 접점이 없는 노예들로 팀을 구성해. 그래야 정에 휩쓸리지 않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으니까.’하지만 그들은 정에 휩쓸려 겔릭을 잡는다는 임무를 무시했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그들은 귀족의 암살자가 아니라 외부 암살자일 가능성이 높아.’그런데 겔릭이 죽인 귀족의 아들이 왜 집안의 암살자가 아니라 외부 암살자를 고용한 것일까?

    ‘보안 면에서도 불안할 텐데…. 잠깐… 보안…?’그때 태운의 귀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발소리로 추측하면 이족

    보행를 하는 생명체다.

    ‘기다려보자.’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면 그 순간 목이 달아날 것이다.

    그때, 태운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살려줘라. 겔릭.”

    의문의 사람이 겔릭이라는 이름을 똑똑히 말하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었나? 나름 은신을 했는데….’태운은 어쩔 수 없이 나무 아래로 내려갔다.

    잭로프도 나무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태운은 고개를 저어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

    “눈썰미가 좋군. 날 찾아내다니.”

    “저기 저 사람을 먼저 찾아내고 그 주변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있더군.”

    “그래서 무슨 일이지?”

    “일단 내가 누군지 먼저 밝혀야겠군.”

    눈앞의 사람은 주머니에서 검은 복면을 꺼냈다.

    “아까 네가 가슴에 고드름을 꽂았던 하트 2다.”아까 태운이 공격했던 추적자가 태운의 눈앞에 나타났다.

    스릉!

    태운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녀석의 목에 겨눴다.

    “뭐 때문에 나에게 말을 건 거지?”

    추적자 집단에 뛰어난 힐러가 있는 것인지 녀석의 가슴에는 아무런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말했지 않나. 살려달라고.”

    “네 녀석들의 실력으로는 이 숲의 심부에서 도망가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을 텐데?”태운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들의 속도와 은신 스킬만 있다면 숲의 심부에서 도망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추적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위험은 숲의 심부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숲은 당연히 빠져나갈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지.”

    “그다음?”

    “일단 단검부터 치워주는 게 어떤가.”

    “너 먼저 말해.”

    태운은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그가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으니까.

    “알겠다. 무서워서 내 말의 전달력이 떨어져도 별수 없지.”

    “겁먹은 거 같지는 않으니 말이나 해.”

    “까칠하기는….”

    태운은 단검에 힘을 빼지 않고 녀석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간단하다. 네가 죽인 세실 왕국의 귀족

    말이다. 다른 대륙에 있는 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대륙?”

    겔릭의 기억에는 없던 정보다.

    “아직 일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정보지. 우리야 귀족들의 의뢰를 자주 받으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조사해보고 알게 되었지만 말이야. 물론 다른 귀족들은 우리가 다른 대륙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지.”

    “호오….”

    다른 대륙의 이야기가 나오자 잭로프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잭로프, 다른 대륙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나?”

    “예? 아뇨. 모릅니다.”

    잭로프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태연하게 말했지만 태운은 알고 있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단 나중에 물어봐야겠군.’

    태운은 잭로프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추적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자 그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번에 네가 죽인 귀족의 아들에게 우리가 다른 대륙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임무를 맡긴 거지. 이 임무를 마무리하고 빠져나오는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말이야.”“흐음…. 그러면 지금 숲 밖으로 나가도 죽는다는 건가?”하트 2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감스럽게도 숲의 밖에 진을 치고 있을 거야. 만에 하나 기습으로 도망칠 생각은 접는 게 좋을걸. 다른 대륙의 제국이 누군가를 찾기 위해 황궁 마법사와 그 제자들을 이곳에 보냈다고 하니까.”“그렇다고 이곳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우리한테 길이 있어.”

    “길?”

    하트 2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길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고 출구는 이 숲과 굉장히 먼 곳에 떨어져 있어. 하지만 그 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력이 부족해. 당신이 그걸 채워줬으면 좋겠군.”“흠…. 함정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추적자는 옆의 나무에 쇠로 된 목걸이를 채웠다.

    그 후, 손에 들고 있는 장치의 버튼을 누르자 목걸이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나와 나무를 부러뜨렸다.

    그걸을 보여주고 나무의 목걸이를 빼 자신의 목에 걸고는 장치의 버튼을 태운에게 건네주었다.

    “이거면 되나.”

    “그래. 믿어주지.”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해.”

    “잠은 나중에 자야겠군. 잭로프, 내려와라.”태운은 잭로프와 함께 출발했다.

    추적자는 발 빠르게 움직이며 그 길을 안내했고 약 1시간 정도를 걷자 그 길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8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 데리고 왔네.”

    “당연하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가 태운에게 말을 걸었다.

    “대충 설명은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뭐…. 그렇습니다.”

    “참, 갑자기 존댓말인가.”

    방금까지 자신을 적대하던 사람이지만 나이가 많은 것처럼 보이니 쉽게 반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럼 빨리 출발하지. 앞에 서서 저 밧줄을 잡게.”이 길은 이 대륙의 유일하게 ‘혈연으로만’ 구성된 암살단인 트럼프의 조상이 만들어놓은 비밀 통로다.

    이 비밀 통로는 10개의 밧줄을 동시에 당겨야만 열리는 문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두 개씩 잡고 당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그런 쉬운 장치가 아니다. 정확한 위치에서 정확한 자세로 당겨야 한다. 10명이 해도 수십 번 해야 열리는 문인데 그렇게 하면 밤을 새워도 열 수 없어.”

    “음…. 그렇군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문은 수십 번 만에 겨우 열렸고 그들은 빠르게 문으로 들어간 후 문을 닫았다.

    “이야…. 신기하네요.”

    “이제 빠르게 걷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정말 말없이 빠르게 걷기만 했다.

    그 분위기가 어색했던 태운은 가장 연장자인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대륙의 제국 황궁 마법사가 와 있다고 하던데 그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까?”

    “우리도 자세한 건 모르네.”

    그 이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태운은 큰 충격을 받았다.

    “헤온 제국의 벨자하라는 것만 알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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