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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22화 (122/379)
  • 122화

    태운은 신영 그룹의 공방에 도착해 신서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에 신서우가 만들어놓은 부품들을 확인했다.

    ‘정교하게 잘 만들어놨네.’

    잘해내리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원래는 엄청나게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신서우의 실력이 이 정도라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왔어~.”

    “어, 왔냐.”

    부품의 완성도를 살펴보고 있을 때 공방에 신서우가 들어왔다.

    신서우는 부품을 보고 있는 태운을 보고 가슴을 펴고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

    “어때? 내 인생의 역작이!”

    “인생의 역작은 무슨, 수식은 내가 만들었잖아.”“좀 그렇다고 해주면 안 되냐…. 이거 만드느라고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니까.”태운은 서운해하는 그녀를 보고 가볍게 웃어주었다.

    “확실히 역작이라고 하면 역작이긴 하네. 수식은 내가 만들긴 했지만 세세한 수치 조정은 네가 한 거니까.”골렘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조각상을 깎는 과정에 비유를 하자면 태운이 인간의 형상만 본 떠 베이스를 만들어주고 거기에 신서우가 디테일한 표현을 넣은 셈이다.

    베이스가 없으면 시도조차 못 할 일이기는 했으나 신서우의 노력 없이는 이런 완성도를 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근데 실험을 여기서 할 거야? 혹시 잘못되면 여기 완전히 박살 날 텐데…. 아무리 신영 그룹에서 마음대로 쓰라고 했어도 그럼 민폐잖아.”“알고 있어. 그런 민폐는 내 쪽에서도 사절이야.”

    “그럼 뭐 따로 실험할 장소가 있어?”

    태운은 벨트를 두드려 아공간을 열고 부품에 제로 그래비티 마법을 사용해 들어 올린 후 아공간에 넣었다.

    부품을 챙기는 태운의 모습을 본 신서우가 놀라며 말했다.

    “뭐야. 진짜 있어?”

    “내가 인맥이 좀 되거든.”

    “오….”

    태운은 아공간에 모든 부품을 집어넣고 아공간을 닫았다.

    “따라와. 아마 준비 다 해놓고 기다리고 계실 테니까.”

    “흠…. 아, 혹시…. 자하르 박사님?”

    “오, 어떻게 알았어?”

    “네가 자하르 박사님이랑 친분이 있다는 걸 모르는 명운 아카데미생은 없어. 골렘 가동 실험을 할 정도로 튼튼한 연구시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하르 박사님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정상이지.”

    “음…. 그렇겠네.”

    태운이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 다닐 당시에 자하르의 연구소에 다닌다는 이유로 결석계를 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소문이 크게 난 적이 한 번 있었다.

    그 때문에 태운이 자하르 박사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었다.

    “이야…. 근데 친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부탁도 들어줄 정도였단 말이야?”신서우는 태운과 자하르의 관계에 혀를 내둘렀다.

    태운이야 매일 보다시피 한 사람이기에 그의 명성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잠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연구가이자 박사였으니까.

    게다가 태운을 만난 이후 슬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폼을 끌어올리고 있어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부탁이라기보단 조건에 가깝지.”

    태운과 자하르의 협력 관계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태운이 마정석 흡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그 대가로 마정석이나 편의를 제공받는다는 것.

    자하르는 태운이 아니면 특별한 마정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태운은 자하르가 아니면 그 정도의 지원을 받지도 못할 것이다.

    완전한 공생 관계인 것이다.

    ‘근데 그게 끝은 아니지.’

    태운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실험이 있다면 자하르가 해줄 수 있는 한 지원을 해주고 그 실험 결과를 공유받는다.

    물론, 그 실험 결과를 발표할 때는 무조건 태운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보고서에는 태운의 이름이 올라간다.

    ‘자하르의 명성에 도움이 되진 않지만 자하르는 연구 자체에 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이런 부분에 있어 태운은 그동안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자.”

    태운은 택시를 잡아 탔다.

    그리고 자하르 연구소의 주소를 알려주었고 택시는 그곳으로 출발했다.

    * * *

    “흠…. 좀 답답하구나.”

    자하르는 태운이 내려놓은 골렘 부품들을 보면서 말했다.

    “뭐가요?”

    “잘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내 눈으로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사실이다.

    자하르가 아무리 천재에 실력이 뛰어난 연구가라도 각성자도 아닌 사람이 아무런 장치 없이 수식을 읽는 건 불가능하다.

    자하르는 궁금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이런 상황을 참기 힘들 것이다.

    그런 그의 앞에서 태운과 신서우가 수식에 대해 이것저것 토론하고 있으니 자하르는 더욱 답답할 수밖에.

    “그럼 일단 빨리 시작하겠습니다.”

    “조심하거라.”

    “네.”

    태운을 제외한 두 사람은 실험실 밖으로 나가 설치된 카메라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 방은 10m 두께의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방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쿠션을 둘러싼 방이야.’만약 자기장 조절에 실패해 골렘의 팔다리가 발사될 것을 우려해 이런 방을 빌린 것이다.

    이 정도라면 자기장에 의해 골렘의 팔다리가 발사되더라도 안전할 것이다.

    “그래도 안에 있는 나는 스스로 몸을 지켜야지.”태운은 솔리드 아머를 8겹으로 씌웠다.

    사실 태운이 솔리드 아머를 여러 겹으로 씌워도 확실한 방어 수단이 되지 못한다.

    ‘그때는 단검을 날렸는데도 대포를 맞은 것처럼 죽었으니….’약 한 달 전에 들어갔던 던전 안에서 단검을 자기장 레일을 활용해 날렸었다.

    골렘의 가동 실패 시 골렘의 팔이 날아오는 것은 자기장 레일을 사용해 골렘의 팔을 날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손바닥 길이 정도밖에 되지 않은 가벼운 단검을 날렸을 때도 원로급 배반자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었었잖아.’예측을 하고 있었다면 대응을 할 수 있었겠지만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날아오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단검이 아니라 한 조각에 100kg에 가까운 무거운 쇳덩어리다.

    맞았다가는 크게 다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긴장하자.’

    태운은 부품들을 전부 각 위치에 배치했다.

    몸체를 전부 놓고 관절 부분에 철로 둘러져 있는 네오디뮴 자석구를 놓았다.

    이 자석구가 골렘의 동작을 조정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태운은 강력한 자기장이 주변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자기장 차단 마법을 활용해 골렘의 몸체를 감쌌다.

    무거운 철 골렘을 움직이기 위해 오로지 자기력만 사용하면 주변이 난장판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태운은 골렘의 몸체의 연료통에 마정석을 집어넣었다.

    그 후, 몸체에 귀속되어 활성화되어 있는 마나 차단막을 비활성화해 마정석의 마나를 활용, 골렘을 가동시켰다.

    “오오?”

    골렘의 부품은 천천히 공중에 떠올라 골렘의 형상을 갖췄다.

    아직 움직여보지는 않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그렇다.

    절반만 성공한 것이었다.

    쿵!

    태운이 골렘을 조금 움직이려고 한 순간, 골렘의 양팔이 천장으로 날아가 부딪쳤다.

    “오우….”

    참 살벌한 속도로 날아가는 쇳덩어리였다.

    그것에 제대로 맞았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후….”

    천장으로 날아갔으니 망정이지 태운에게 날아왔으면 반응도 못 하고 크게 다쳤을 것이다.

    ‘한 번 구동할 때마다 사고 가속을 준비해야겠는데…? 실패하는 순간 바로 사고 가속을 사용하고 대처해야겠어.’빠르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 스피드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괜찮냐!”

    자하르는 차마 문을 열지는 못하고 밖에서 태운의 안부를 물었다.

    성급히 문을 열었다가 골렘의 팔이 날아가 기계에 충돌했다가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나 정보들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 연구소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

    때문에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태운이 신신당부해 놓은 상태였다.

    태운은 자하르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뒤 심호흡을 하고 다시 골렘의 가동에 시도했다.

    골렘의 부품에 귀속되어 있는 마법의 세세한 수식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치로 조정되어 있었다.

    태운이 할 일은 골렘에게 가벼운 움직임을 시켜 직접 조종해 보고 그에 맞는 매뉴얼을 골렘에 입력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비로소 골렘이 완성되는 것이다.

    “다들 오늘 밤샐 각오는 하고 오신 거겠죠?”태운은 자하르와 신서우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골렘 가동에 집중했다.

    * * *

    “후….”

    태운은 3시간을 내리 골렘 가동에 힘을 썼지만, 아직 골렘의 움직임에 따른 자기장의 값을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다.

    ‘특히 들어 올리고 내리칠 때가 가장 어려워….’수십 번이나 골렘의 팔이 날아들어 사고 가속을 여러 번 사용했더니 두통이 상당히 심하게 느껴졌다.

    “그럼 일단 쉬면서 이거나 분류해 주게.”

    “오?”

    자하르는 기진맥진해 연구소의 소파에 누워 있는 태운에게 마정석 상자를 내밀었다.

    그건 다른 헌터들이 우중충한 늪에서 모아온 마정석들이었다.

    “이상하게 네가 우중충한 늪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더구나. 징크스 같아서 그냥 다른 헌터들에게 맡겼다. 그중에 특별한 마정석이 있다면 따로 분류해두거라.”“오…. 감사합니다. 또 우중충한 늪에 들어가야 하나 싶었는데.”태운이 이렇게 우중충한 늪에 집착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가도의 마정석, 레오의 마정석, 사냥꾼 칸터의 마정석까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던 마정석들이 모두 우중충한 늪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태운은 다른 세계의 마정석이 던전을 통해 넘어온다고 생각했고, 같은 세계관의 마정석들을 흡수하며 의문을 풀고 싶었던 그는 우중충한 늪의 마정석을 얻고 싶어 했던 것이다.

    게다가 가도의 부탁도 있었으니까.

    라온도 레일로프도 잭도 원래 역사대로라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터, 태운은 그들의 넋을 위로해주고 싶기도 했다.

    “찾았다.”

    태운은 마정석 더미에서 특별한 마정석을 하나 찾아내 옆에 분류해두었다.

    그렇게 마정석 더미를 뒤지다 보니 한 상자 안에서 특별한 마정석이 무려 3개나 나왔다.

    과거 마정석 창고에서 수십 박스를 정리하다가 한두 개씩 발견한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많은 양이었다.

    “분류도 다 했겠다…. 피로도 거의 다 날아갔겠다….”태운은 마정석 분류 작업을 전부 끝내고 바로 골렘 가동 실험실로 향했다.

    ‘서둘러야 해.’

    태운이 이렇게까지 골렘 완성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바로 창공 길드가 지하 훈련장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태운은 헌터가 되어 지하 훈련장에 갈 일이 굉장히 적어졌다.

    하지만 찬영이나 서혜연, 신가연에게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지하 훈련장은 일상에 가까웠고 빼앗기기 싫은 소중한 장소가 되어 있었다.

    ‘지하 훈련장 안에 골렘이라도 배치해놓으면 창공 길드 녀석들이 쉽게 넘보지는 못하겠지….’태운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골렘 가동 실험에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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