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17화 (117/379)

117화

“잘 가라. 또 보자.”

찬영과 태운은 중국으로 돌아가는 창영우의 마중을 나갔다.

“곧 보게 될 거야.”

원래라면 창영우가 한 말에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태운은 이미 창영우가 한국에 온 목적을 알고 있었고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를 품고 있는지 알았다.

“찬영아.”

태운은 창영우가 멀어져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찬영에게 말을 걸었다.

“출입 권한 해제라면 이미 했어.”

“GPS도 달아놨어. 적어도 일주일은 갈 거야.”찬영에게는 창영우의 진실을 알게 된 다음 날 바로 말해두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을 그런 것을.

“일단 비행기를 타긴 했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올 생각인가 봐.”

“그럼 시간은 벌었네.”

태운은 창공 길드가 한국에 있는 지하 훈련장 따위에 왜 관심을 가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하 훈련장을 얻어 봐야 헌터들을 그곳에서 훈련을 시킬 것도 아닐 테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나는 아까 말한 곳으로 가볼게. 거기에서 해둘 게 있거든.”창영우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출발한 것을 확인한 태운은 공항에서 바로 지하 훈련장으로 향했다.

택시에 탄 태운은 눈을 감고 이를 갈았다.

‘창영우…. 그동안 무슨 삶을 살아왔길래 우리를 배신할 정도의 사람이 되어 버린 거냐.’과거 창영우는 나이에 맞지 않게 고지식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과거의 친구를 배신하게 된 것일까.

‘신경 쓰지 마. 창영우가 아니더라도 한 번은 있을 일이었어. 덕분에 좀 더 확실히 대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자.’태운은 생각을 정리하고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서우야. 내가 보낸 주소로 와줄래?”

이번에 만들 건 신서우의 도움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 * *

“와…. 여기 뭐야…?”

태운은 신서우를 신영 그룹의 공방으로 데리고 왔다.

“갑자기 신영 그룹 앞으로 부르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도움을 받을 게 있거든. 물론 돈은 줄게.”

“근데 신영 그룹의 공방은 어떻게 빌린 거야?”

“내가 신가연 누나랑 연이 좀 있거든.”

신가연은 신영 그룹의 회장인 신영철의 막내딸이다.

신가연이 신영 그룹 공방에 현재 사용하지 않는 라인이 있다고 해서 도움을 좀 받았다.

“그럼 바로 작업 시작하자.”

“근데 그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뭔데?”

“나 여자야.”

“아, 그래?”

태운은 신서우의 생각과는 달리 꽤 무덤덤했다.

“안 놀라네?”

“사실 남자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여자인 것 같기도 했거든.”

“아….”

“미안해. 착각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실례인 거 같네.”

“아…. 아냐. 괜찮아.”

그 정도 실수는 100번도 눈감아줄 수도 있었다.

명운전의 무구전 때 자신의 인생을 구제해준 사람이 태운이었으니까.

‘그때 번 돈으로 엄마 병원비도 냈고 빚도 갚을 수 있었으니까…. 평생 고마워해야 할 은인이지.’신서우는 무구전 당시 1억이라는 감당 못 할 빚과 과로로 돌아가신 아버지, 충격으로 드러누운 어머니 때문에 무구전에서 사기를 치겠다는 멍청한 생각을 한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이 완전 박살이 날 뻔한 그 날 손을 내밀어준 태운은 은인이었다.

태운은 신서우에게 도면을 건넸다.

“일단 저기 있는 금속들을 이 도면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가능하겠어?”“음…. 정형은 내 전공이 아니긴 한데…. 가능은 해.”신서우는 도면을 펴들고는 쌓여 있는 금속 더미 앞으로 다가갔다.

‘내부는 텅스텐으로 무겁게 만들고 외부는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서 경도를 높이겠다는 건가?’태운이 건네준 도면에는 높이 60cm, 밑면 40×40인 긴 직육면체 8개와 두툼하고 넓적한 직육면체 하나가 있었다.

“근데 이걸로 뭘 만들려고 하는 거야?”

“골렘”

“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한 골렘, 하지만 모두 최종 단계에서 큰 사고가 나며 실패했다.

‘도면으로만 보면 자기력을 활용해서 하려는 거 같은데…. 이거 괜찮은가?’지금까지의 골렘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 방법은 골렘의 모양을 만들어놓고 마법으로 금속을 실시간으로 변형해 구동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간단한 방법이지만 느리고 강력함이 떨어졌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사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없을 때, 혹은 약한 사람이 사용해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함이라는 골렘의 제작 목적과 어긋나는 조건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식이 마정석의 마나를 활용해 자기력으로 구동하는 방식이다.

마나가 많이 들고 조정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만, 골렘 제작의 목적과는 적합했다.

이론상 아무도 없을 때 비상 상황이 벌어지면 자동으로 구동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방식은 제작 과정이나 굉장히 위험했다.

자기력의 조정을 실패하면 무거운 골렘의 몸체가 날아들 수도 있고 혹여나 구동축인 네오디뮴 자석에 실수로 마력을 많이 쏟는다면 치명적인 자기력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괜찮아. 너는 만들어주기만 하고 구동 실험은 나 혼자서 할 거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라….”

태운은 말없이 노트를 하나 내밀었다.

그 노트에는 수많은 마법 수식과 어디에 어떤 마법을 인챈트 해야 하는지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이 수식대로 마법을 익혀서 인챈트를 해줘.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대신 구동 실험할 때 나도 끼워줘.”

“위험할 텐데?”

신서우는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도 나도 같이 있을 거야. 방금 노트를 보고 알았어. 네가 골렘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자세히 이론을 만들어냈는지. 이 이론은 완벽에 가까워. 실패한다면 내 탓일 정도니까. 그러니 나도 옆에서 같이 볼 수 있게 해줘.”신서우는 태운을 노려본다고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태운은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인챈터답네. 이 정도 고집은 있어야 장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거 아니겠어?’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실수하지 말 것. 그게 조건이야.”

“알겠어.”

신서우는 도면을 옆에 펴놓고 금속에 손을 가져갔다.

“변형.”

신서우의 손에서 빛이 나더니 금속이 천천히 변형되기 시작했다.

태운은 그 모습을 보며 구동 수식을 머릿속으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 * *

골렘을 만들기 시작한 지 1주일이 지났다.

신서우는 학교에 결석계까지 내고 골렘 만들기에 온 힘을 실었다.

명운 대장장이 아카데미에서도 1~2위를 다투는 인챈터인 신서우가 하루에 부품 하나도 만들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태운이 만들어낸 골렘의 도면이 얼마나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후….”

태운은 땀을 흘리며 팔까지 부들거리는 신서우를 보고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무리하면 작업 완성도도 떨어지는 법이니까.”

“어…. 알았어….”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간 휴식이야. 대신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게 이 도면으로 연습해.”태운은 신서우에게 1/100로 축소한 골렘의 도면과 그에 맞춰 힘을 줄인 마법 수식, 그리고 연습할 금속을 건네주었다.

이 정도면 힘은 들지 않으면서 골렘 제작 작업의 감도 잃지 않을 것이다.

힘이 들지 않는다 해도 신서우에게는 진절머리가 나는 작업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신서우도 상당한 독종이었다.

“이 정도 양의 금속으로는 하루 이틀이면 연습 끝이야.”“쉬라면 쉬어. 집중력을 잃지 말라는 의도로 준 거니까. 너도 보면 참 지독하다니까.”

“지독하다니 그거 맞아?”

“어, 맞아.”

“와…. 개 너무해….”

신서우와 태운은 일주일 사이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둘이 동갑이기도 했고 성향도 비슷했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럼 이제 간다.”

“그래, 나는 정리 좀 하고 갈게.”

신서우는 묵직한 철 덩어리를 번쩍 들어 올려 구석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체구가 작고 약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도 각성자다.

인챈터라고는 하지만 대장장이 아카데미의 학생, 하루에 망치를 수천 번씩 휘두른다.

힘이 약하려야 약할 수가 없었다.

“뭐야. 내일이었네.”

태운은 휴대폰 달력을 보고 우중충한 늪의 재소탕 날짜를 확인했다.

‘아쉽게도…. 장민혁 헌터와 신유승 헌터는 재소탕 임무에 참가하는 걸 거부했지.’사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곳에서 두 명의 동료를 잃었다.

게다가 그들은 태운이 둘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여기고 있으니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싫을 것이다.

“오늘은 좀 일찍 쉬고 내일 던전에 가야겠다.”태운은 그 길로 바로 집에 갔다.

자하르의 연구소에서 할 일도 없고 던전에 가려면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저번에 E급 던전에서 내 안일함 때문에 생긴 위험, 그런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거다.’태운은 벨과의 전투 이후, 그리고 처칠에게 벨트를 받은 이후로는 언제나 바로 싸울 수 있게 준비를 하고 다녔다.

지금도 밸트 안에는 많은 양의 마정석들, 돌검을 포함한 무기와 방어구들이 전부 갖추어져 있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벨이 나타나도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고 가볍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태운은 그런 생각과 함께 내일 갈 던전인 우중충한 늪에 대한 정보를 곱씹으며 집으로 향했다.

한편, 그런 태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크흐…. 드디어 찾았다….”

그는 제주도 호프집 살인 사건의 주범이자 강원도 던전 사건 당시 전대섭이 발견했던 괴한인 김상연이었다.

김상연은 태운의 육감에 걸리지 않는 위치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찾기 힘들었는데…. 고맙다. 장민혁, 신유승.”김상연이 찾기 힘들었던 태운의 위치를 알 수 있던 이유가 있었다.

헌터 협회의 헌터, 장민혁과 신유승이 그에게 도움을 준 덕분이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둘의 양어깨에는 칠죄신교의 전사임을 증명하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김상연은 원로회의 일원이다.

칠죄신교의 원로들은 일반인에게도 세례가 가능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받은 자도 사람을 죽이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김상연은 둘에게 임무를 내렸다.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 30명의 사람을 죽여라. 애초에 힘을 가지고 있던 너희들은 30명 정도만 죽이면 원로회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얻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민혁과 신유승은 고개를 숙였다.

“뭐 하고 있나. 지금 바로 시작해라.”

장민혁과 신유승은 그 말과 동시에 사라졌다.

“크흐흐… 강태운…. 본편은 내일이다.”

김상연의 목표는 오로지 강태운과 싸우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싸우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헌터들이 나타나 싸움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

“저 멍청한 두 놈들이 다른 헌터들을 막아주는 사이에 우린 진득이 싸우는 거다….”김상연은 기분 나쁘게 웃으며 태운을 계속 주시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아파트 한 개 동에 살던 사람들이 모조리 살해당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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