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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14화 (114/379)
  • 114화

    “아공간이라고요?”

    아공간 주머니라고 해도 대부분 주머니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런데 이건 주머니는커녕 무언가를 넣을 수 있는 입구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게 아공간 주머니가 맞는 거야…?’

    게다가 주머니의 입구도 찾을 수 없는 이 벨트가 20,000L만큼 보관할 수 있다고…?

    대부분의 아공간 주머니들이 큰 냉장고 정도의 크기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크기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는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지? 한번 사용해보게.”태운은 처칠이 손에 들려주는 벨트를 허리에 차보았다.

    촤라라락!

    허리에 차자 순식간에 널널했던 벨트는 길이가 줄어들며 태운의 허리에 착 달라붙었다.

    “오….”

    “그리고 거기 옆에 있는 포켓의 중앙에 있는 보석을 툭툭 두 번 두드려 보거라.”툭툭.

    딸-깍.

    태운이 처칠의 말대로 두 번 두드리자 포켓이 살짝 열리며 은근한 빛이 흘러나와 공중에 주머니 입구를 만들어냈다.

    “와….”

    편의성만 보더라도 굉장히 획기적인 장비다.

    다른 아공간 주머니는 실제 주머니처럼 허리에 달고 다니거나 다른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데, 이건 벨트 형태로 되어 있어 그런 불편함을 99% 이상 개선했다.

    “이 아공간 창고는 다른 아공간 주머니에 비해 굉장히 큰 용량을 자랑하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넣어놓고 꺼내기 힘들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기 쉽지.”확실히 그럴 것 같았다.

    냉장고 정도의 용량을 가진 아공간 주머니도 팔을 끝까지 집어넣어 내용물을 꺼내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벨트는 착용하고 밀착되는 순간부터 착용자의 의도를 읽기 때문에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원하는 물건을 손에 배달해주지.”

    “정말입니까?”

    사실 그런 기능이 없다면 사용하기 정말 어려운 물건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20,000L면 작은 원룸과 비슷한 크기다.

    손을 뻗어서 원하는 물건을 가져오는 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기능이 없었으면 빛 좋은 개살구였겠네.’태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돌검과 견갑, 쓰레기 창, 반쪽짜리 건틀릿을 넣고 꺼내기를 반복했다.

    처칠은 그런 태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드나?”

    “네, 정말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뭐…. 감사까지야…. 그럼 한번 계산에 들어가 보자꾸나….”“아…. 예, 당연하죠. 이런 좋은 물건을 찾아주셨는데.”계산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들뜬 마음이 살짝 가라앉은 것은 사실이었다.

    당연히 값을 치르는 게 맞는데 처칠이 항상 베풀기만 해서 순간 착각했던 모양이다.

    처칠은 열심히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숫자를 그리며 계산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가격을 책정했다.

    “돈으로 받기 싫구나. 지하 훈련장의 경비원으로 고용하겠네.”

    “네?”

    “근로 시간은 자유, 그 안에서 뭘 하든 자유다. 물론, 무급이니 알아서 잘해보게나.”

    “아니, 그게 무슨….”

    처칠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

    애초에 처칠은 태운에게 대가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뭐…. 어떻게 보면 원래 주인을 찾아간 거나 마찬가지이니 말이야.’처칠은 태운과 헤어진 후 어느새 이상한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처칠이 창문을 열 듯 허공에 손짓하자 창문이 생겨 문이 열렸다.

    그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화려한 경치가 아닌 벨트를 얻고 신나서 집으로 뛰어가는 강태운이었다.

    “곧…. 곧이란다. 너라면 잘 막아낼 수 있을 터이니…. 조급해하지 말거라.”처칠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꺼내더니 창문을 닫아 버렸다.

    * * *

    “지옥 병정은 특징은 다양하다…. 인간처럼 다들 개성도 가지고 있지. 예를 들어 4개의 시체가 있다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시체의 뇌를 먹는다. 그리고 개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확실히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팍 오는 특징이 없는데.”태운은 다음날 허덕륜에게 연락해 지옥 병정의 특징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허덕륜은 친절히 알려주었고 태운은 그것을 바탕으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냥 물을 끼얹어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물을 싫어하는 것뿐, 물에 기겁을 한다든가 하진 않는다.

    지옥 병정에게 물을 맞는 것은 맞을 수는 있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그래도 힌트를 얻었어. 드디어 지옥 병정이 누군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태운은 자하르의 연구실에서 마정석을 다시 흡수하기 시작했다.

    부스스….

    태운이 일어나자 천장에 있던 흙먼지들이 떨어졌다.

    “후…. 누워 있을 시간 없다. 다들 일어나.”태운은 빠른 진행을 위해 누워서 자고 있는 녀석들을 죄다 깨웠다.

    “으음….”

    “크윽….”

    “머리가 아프군….”

    태운은 사람들을 모두 깨우고 상황을 설명했다.

    지옥 병정이라 불리는 괴물이 우리 중에 숨어 있다고 말하자, 다들 각자의 주장대로 누군가를 음해하기 시작했다.

    ‘이 패턴은 좋지 않아.’

    태운은 이 상황을 본 적이 있었다.

    8번째 흡수 당시 지옥 병정이고 나발이고 싸움이 나서 다들 자멸하게 되었다.

    “그만!”

    태운은 소리를 질러 모두의 행동을 멈췄다.

    “여기서 의미없이 싸우기만 하면 녀석이 좋아할 거다! 다들 힘을 합쳐도 벅찬 적인데 팀끼리 싸우고 있을 거야?!”태운의 목소리를 듣고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일단 모두가 가지고 있는 식량과 물을 앞에 놔. 5등분 해서 나눠 가지자고.”“아니, 잠깐. 크기가 있잖아! 5등분은 불공평하다고!”덩치는 태운에게 항의했지만 처음 소리를 질러 싸움을 말린 순간부터 이 장소의 임시 리더는 강태운이었다.

    다들 덩치를 노려보며 불만을 표했다.

    그러자 덩치는 조용히 앉아 가방에 있는 식량과 식수를 꺼내놓았다.

    덩치는 자신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알기야 하지만 모두와 싸워 이길 자신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사람이라면 그것이 이유였을 것이고 그가 지옥 병정이라면 항의한 것부터가 연기였을 것이다.

    ‘그래도 알 수 없는 건 똑같지만 말이야….’태운은 가운데에 모인 식량 중 특히 식수를 정확히 5등분 했다.

    “식량은 과반수의 동의가 있을 때만 먹는 걸로 하지.”

    “흠…. 알겠다.”

    태운은 그렇게 10분 정도 지났을 때 멀리서 소리가 난다고 하며 다 같이 가보자고 말했다.

    그리곤 별것이 발견되지 않자 한차례 책망이 오고 갔다.

    하지만 태운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소리가 나는데?”

    “난 못 들었어. 너 혼자 가든가.”

    “혼자 가게 놔둘 거야? 혹시 내가 지옥 병정이어서 그대로 탈출한다면… 어떻게 될까?”

    “…알겠어!”

    태운은 그 이후로도 열심히 뛰어다니며 동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아…. 하아…. 이게 가만히 쉬자고!”

    “하이씨…. 저거 죽이고 시작했어야 했나?”“지금 상황에 왜 힘을 빼고 있어야 하냐고….”다들 태운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고 있을 때 태운은 자리에 앉았다.

    “미안합니다. 제 귀가 이상했던 모양이네요.”

    “이런…. 씨….”

    덩치가 태운에게 욕을 하려는 순간 태운이 말을 끊었다.

    “그런데 왜 덩치 씨는 물을 안 드시죠?”

    가장 힘들어하던 덩치다.

    다른 사람들도 아끼고 아꼈음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 마셨다.

    하지만 덩치는 물을 마시기는커녕 물통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게 왜?”

    덩치는 귀찮다는 듯이 반쯤 눈을 감고 말했다.

    “그냥 귀찮아서 안 먹었어. 왜?”

    태운은 그의 말이 끝나고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서 말이죠.”푸-욱.

    그리고 말을 걸면서 그의 목을 찔러 버렸다.

    “어…. 어이 뭐 하는 거야!”

    남자 창술사는 덩치의 목을 찌른 태운의 행동에 기함했다.

    “다들 공격하세요. 이 사람이 지옥 병정입니다.”태운이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거짓말을 해가며 사람들을 이곳저곳 뛰어다니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힘들게 군 이유는 물을 강제적으로 마시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옥 병정은 물을 싫어해. 다른 사람들이 다들 물을 마시게 되면 구분이 가능하지.’물을 싫어한다는 정보를 보았을 때 생각했던 전략이었다.

    꾸물꾸물….

    태운의 작전이 섬세하지 못하긴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덩치는 지옥 병정이 맞지 않았는가?

    [크르르륵….]

    지옥 병정은 덩치의 몸에서 벗어나 원래 본인의 몸으로 돌아갔다.

    2m가량의 큰 키와 얇은 몸, 그리고 양팔에 붙어 있는 무기.

    ‘상당히 위협적인데….’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만나니 녀석의 존재감이 매우 크게 느껴졌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녀석은 큰 중상을 입고 있었다.

    ‘가슴 부분에 주먹만 한 구멍이 하나 나 있어. 저런 중상을 안고 있다면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지.’

    [크르륵!]

    태운은 지옥 병정의 공격을 방패로 살짝 밀어내면서 피했다.

    그러곤 바로 검을 휘둘러 팔목에 상처를 내었다.

    “큿…. 생각보다 단단해…. 다들 뭐해! 나만 싸워?!”태운이 시선을 끌고 있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치잇….”

    그만큼 지옥 병정이 주는 공포가 큰 모양이다.

    얼어붙어 있는 그들을 움직일 수 있게 해줘야 했다.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나 혼자 잡을 수는 없는 수준이야…. 마법이 이렇게 간절해질 줄이야.’태운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지옥 병정을 유인했다.

    그러곤 지옥 병정이 공격을 하려는 순간 얼어붙어 있는 창술사의 뒤에 숨었다.

    “으으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지옥 병정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 미친 놈이….!”

    “일부러다.”

    태운은 소리쳤다.

    “너희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움직이게 해줄까?”지금 움직이지 않는 멤버들은 검사와 단검을 사용하는 도적이었다.

    하지만 태운의 말을 듣고 지옥 병정을 한 번 바라보더니 경직이 풀려 버렸다.

    ‘공포는 더 큰 공포로 덮어씌우면 대체로 해결돼.’태운은 녀석의 공격을 피해내면서 계속 집요하게 오른 팔목을 공격했다.

    “죽어!”

    푸-욱.

    태운이 시간을 끌어주니 창술사는 등에 창을 정확히 꽂아 넣었다.

    [크르르르륵!!!]

    지옥 병정은 고통에 울부짖었지만, 아직도 쓰러지려면 먼 듯했다.

    푹! 푹!

    도적도 단검을 던지며 열심히 지옥 병정을 공격했고 검사도 태운이 오른팔을 노리는 것을 확인하고 그쪽을 계속 공격해주었다.

    ‘좋아…. 센스가 아예 없지는 않네.’

    쾅!

    지옥 병정의 공격을 막아내자 방패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방패를 착용한 사람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태운은 방패를 이미 벗어놓은 상태였다.

    투칵!!

    태운은 방패를 버리고 바닥에 놓여있던 배틀 액스로 이미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지옥 병정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크르르륵!]

    지옥 병정은 오른팔이 잘린 고통을 호소하며 몸부림쳤지만, 태운은 아무렇지 않게 배틀 액스를 버리고 지옥 병정의 잘린 오른팔을 들었다.

    “괜찮은 무기 하나 얻었네.”

    지옥 병정의 진짜 고통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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