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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08화 (108/379)
  • 108화

    태운은 F급 헌터인 상태에선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곧 있으면 B급 헌터로 올라갈 것이고 그때까지 F~E등급 던전을 전전해봐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었으니까.

    “오빠, 또 어떤 길드에서 계속 전화 오는데?”“하…. 나는 길드 들어갈 생각 없는데….”

    아직 제대로 된 헌터 생활을 시작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명 길드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아왔다.

    사실 명운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전에도 계속 러브콜을 받았다.

    개중에는 유명한 외국 길드들도 많이 있었다.

    태운의 외국어 실력도 유명했기에 그들도 태운이 매우 탐났다.

    헌터들이 실력이 있어도 외국 길드에서 스카웃하는 데 고민하는 이유가 대부분 의사소통의 문제 때문이다.

    스포츠계에서도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고생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종종 나올 정도니까.

    하지만 헌터계에 있어 그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된다.

    던전 안에서 전투 중 의사소통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는 순간, 그것은 바로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외국 길드 입장에선 실력이 뛰어난 헌터가 언어의 장벽까지 허물었으니 탐나는 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럴 거면 그냥 협회 들어갈까…. 계속 스카웃 제의 오는 것도 귀찮고…. 협회 들어가면 이미지도 좋아지니까.”많은 길드들이 내거는 유리한 조건과 천문학적인 액수의 계약금을 버리고 협회에 들어간다면 일반인들에게 비치는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다.

    많은 시련을 겪고 나이에 비해 성숙한 태운이라지만 아직 갓 스무 살이었기에 사람들에게 비치는 모습을 신경 쓰지 않기는 어려웠다.

    그때, 태운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혼데. 휴…. 또 어디 스카웃 제의겠지…. 번호 바꿨는데 어느새 알아낸 거야?”태운은 구시렁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받자마자 태운의 귀에 중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의 헌터 길드들은 하나같이 규모가 엄청나다.

    중국은 인구수가 많은 만큼 A급 헌터들의 수도 많았고 큰 자본으로 타국의 헌터들을 끌어모아 힘을 크게 불렸다.

    게다가 정부에서 정부와 계약을 맺은 몇몇 헌터 길드들을 밀어주어 중소 길드는 죄다 망하고 4대 대형 길드만이 남아 중국을 지키고 있었다.

    ‘그만큼 엄청난 금액의 연봉을 나에게 내밀 수 있었지.’그 큰 시장을 독점하는 길드들이다.

    자본력이 어마어마한 만큼 중국 길드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금액의 연봉을 불렀다.

    심지어는 1조 원을 넘게 부른 길드도 있었다.

    물론 거절했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거절을 하려 했다.

    -안녕하십니까. 전 창공 길드의 인사부장 텐신이라고 합니다.

    “예, 전화 주셔서 감사하지만 스카웃은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태운은 최대한 귀찮음을 어필하며 직설적으로 거절했다.

    그러자 인사부장 텐신이라는 사람이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창공 길드는 A급 헌터를 11명이나 데리고 있는 초대형 길드다.

    물론, 전대섭 정도 되는 최고 수준의 헌터는 없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길드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 길드의 인사부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거절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을 것이다.

    -그, 그래도 계약 조건을 읽어보심이 어떠하신지….

    “엄청난 액수의 돈과 길드 내 입지 보장, 장비 지원, 거처 지원, 탈것 지원 등등 일반 헌터가 들으면 눈이 돌아갈 정도의 엄청난 조건이겠죠. 하지만 저는 절대 길드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만에 하나 제가 길드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한국 길드에 들어갔다는 소식일 겁니다.”태운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때, 태운의 손을 멈춘 것은 전화 반대편에서 들리는 익숙한 한국어였다.

    “음…? 어딘가 익숙한 목소린데?”

    “오랜만이라도 어릴 적 부랄 친구 목소리는 알아듣나 보네?”

    “어…?”

    “나야, 창영우. 나 내일 한국 도착하는데 오랜만에 볼까?”전화 반대편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과거 태운과 구찬영의 친구였던 창영우였다.

    * * *

    전화를 받은 다음날, 창영우와 태운은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창영우는 어렸을 때의 모습이 얼굴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태운의 얼굴에는 어릴 적 모습이 남아 있었는지 창영우는 태운의 얼굴을 멀리서 보고도 알아차렸다.

    “크…. 진짜 오랜만이네. 근데 우리 변성기 오기도 전에 헤어졌는데 어떻게 알았어?”“이야…. 근데 네가 창공 길드에 있었다니…. 이름이 달라서 꿈에도 몰랐어.”제임스 트레일, 창영우의 현재 이름이다.

    창영우는 어릴 적 유럽권 국가로 입양을 간 후 미국, 러시아를 거쳐 헌터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의 창공 길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하…. 너도 우리 길드에 와서 나랑 같이 싸우면 좋을 텐데….”“허…. 길드 얘기는 집어넣어. 나 길드 안 들어갈 거야.”

    “알았어, 알았어.”

    창영우는 시킨 커피를 홀짝이곤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너 명운 헌터 아카데미 나왔잖아?”

    “응. 그건 왜?”

    “거기에 구찬영이라는 애 있지 않아?”

    “응, 있어. 둘이 친구였다며.”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

    “아…. 그냥…. 어떻게 이야기하다 보니….”태운은 창영우에게 훈련장에 대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릴 적 친구이긴 했지만, 지금의 그는 잘 알지도 못하고 설령 그가 변하지 않았다고 해도 큰 자본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얻는 것으로 유명한 창공 길드의 소속인에게는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태운의 기우였다.

    “흠…. 둘이 연관이 있다면 우리끼리 만든 비밀기지뿐인데? 혹시 나 입양 가고 거기 아직 한번 안 가봤어? 하…. 너라면 한 번쯤은 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망이야…. 뭐 아무렴 어때. 그럼 그곳의 비밀을 알려줄게. 사실 그곳 지하에 훈련장이….”

    “뭐야…. 너도 알고 있었어?”

    창영우는 그 훈련장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입양을 가기 전에 어떤 허리 굽은 할아버지가 만들어주고 갔어. 내 눈앞에서.”

    “만들었다고?”

    “음…. 그때는 만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원래 있던 장소를 옮긴 것 같아.”아마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는 처칠일 것이다.

    “뭐야…. 괜히 숨긴다고 까불었네.”

    “그리고 원래 입양 가기 바로 전날에 내가 제일 친했던 너랑 찬영이를 불러서 서로 소개시켜주고 비밀기지 밑에 있는 기지를 소개해주려고 했는데…. 비행기 일정이 바뀌어서 하루 빨리 가게 됐지.”분명 그런 기억이 있었다.

    소개해줄 사람이 있으니 내일 만나자고 했는데 갑자기 취소된 일이 있었다.

    “아, 맞아. 그때 너 못 봤다고 엄청 울었었는데. 크크.”“그래서 일단 비밀기지 위치를 모르는 찬영이한테만 급하게 지하의 비밀기지를 알려주고 비행기를 탔지. 너는 비밀기지 위치도 알고 한 번쯤은 가볼 거라 생각했거든. 뭐 과정은 좀 다르지만 둘이 만났으니 다행이네. 그래서 둘 좀 친해졌어?”창영우는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친하지. 나는 졸업하고 찬영이는 아직 익스퍼트 등급 수료 중이야. 지금은 기사단이라는 동아리의 단장을 맡고 있어.”“오…. 대단한데? 그런 명문 아카데미에서 나름 잘하고 있나 보네?”“아마 지금 익스퍼트 골드 A반 1위일 거야.”정일준이 마스터 등급으로 올라가며 찬영은 자연스럽게 1위에 안착, 순위를 잘 유지하고 있었다.

    “크…. 나는 인복이 넘쳐나는 거 같은데? 무슨 어릴 적 친구 둘이 쌍으로 잘나가냐?”

    “너도 만만치 않잖아.”

    창영우도 만만치 않은 실력의 소유자였다.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헌터 세계에 뛰어들어 시작부터 C급 헌터로 인정받았다.

    그렇게 착실히 실력을 쌓아 2년 후인 지금 B급 헌터가 되어 창공 길드의 2군 공격대의 핵심 멤버로 평가받고 있다.

    “고작 2군인데. 뭘….”

    “창공 길드 2군이면 웬만한 길드 1군 공격대 수준은 되잖아? 애초에 1군 공격대에 A급 헌터만 8명인데.”

    “상관없어. 나도 곧 올라갈 거니까.”

    창영우의 눈빛에서 건전한 승부욕이 느껴졌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 감각이 창영우는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 A급 헌터는 될 수 있겠는데?’이런 불타는 승부욕에는 장작을 넣어줘야 더 활활 타오르는 법이다.

    “그럼 누가 먼저 A급 헌터가 되는지 내기 한번 해볼까?”태운은 창영우에게 먼저 내기를 제안했다.

    “거절할 이유는 없지.”

    “늦은 사람이 비싼 밥 쏘는 걸로 하자.”

    “오케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창영우였지만 하나 거슬리는 게 있었다.

    “네 실력이 굉장하다는 건 아는데…. 너 F급 헌터잖아? 치고 올라와서 나까지 따라잡을 자신 있어?”

    “아, 그게 걱정이라면….”

    띠-링.

    그때, 딱 타이밍 좋게 태운의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그 문자는 서류 처리가 완료되어 B급 헌터가 되었다는 문자였다.

    “드디어 B급 헌터로 등록됐네.”

    태운은 그것을 창영우에게 보여주었다.

    “호오….”

    헌터 협회는 태운의 등급 측정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반각성자의 안전을 생각해 만든 매뉴얼로 인한 행정적 실수라고 인정했고 조속히 매뉴얼 개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게, 태운처럼 A급 헌터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F급 헌터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한국 헌터 협회는 일처리가 빠르네?”

    “중국은 어떤데?”

    “중국은 인구가 많은 만큼 각성자가 하도 많아서 간단한 업무도 2주는 기다려야 해. 그런데 등급 측정 오류 같은 복잡한 업무가 일주일도 안 돼서 해결되네. 중국이었으면 세 달은 걸렸을 텐데…. 이건 부럽다.”“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라서 이 정도 속도가 나온 걸 거야. 뭐, 내가 아니었어도 한 달 이상은 안 걸렸겠지만.”사실 이 정도 속도로 일 처리가 된 것은 그 상대가 태운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B급 헌터는 많은 편이지만 A급 헌터의 수는 적은 편에 속했다.

    그렇기에 태운이라는 A급 원석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한 것이다.

    ‘뭐…. A급 던전까지 나타난 마당에 나까지 놓치면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겠지.’이 시국에 타국으로 떠나면 태운도 욕먹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태운은 대화 주제가 헌터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느끼고 화제를 돌렸다.

    “모처럼 한국 왔는데 찬영이도 한번 볼래?”“오, 좋지! 찬영이 번호는 찾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아카데미 측에서 외국 길드를 상대로 정보 보호를 하고 있는 거야. 유망주들에게 해외 길드가 미리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서지. 한국 헌터 협회에서 먼저 협상을 해야 하니까.”태운은 대충 설명을 해주고 휴대폰을 들어 찬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찬영아 지금 시간 되냐?”

    -어, 지금 훈련 한 세트 끝내서 씻으려고 했어.

    “그럼 잠깐 보자.”

    “그래, 근데 무슨 일 있어?”

    역시 찬영의 직감은 굉장히 뛰어났다.

    태운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평소와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정도니까.

    “어, 무슨 일 있어. 근데 그게 좋은 일이야. 빨리 오기나 해. 여기 우리 자주 만나는 그 카페야.”태운은 창영우를 보고 깜짝 놀랄 찬영의 표정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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