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05화 (105/379)

105화

1월 1일 태운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헌터 등급 측정소로 갔다.

기자들이 달라붙어 귀찮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측정 시작 시각보다 2시간이나 빨리 도착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1년 한 번 오는 특종의 기회를 쉽게 놓치지는 않았다.

‘와…. 징하다 무슨 벌써 100명은 와 있네.’

사실 대충 예상을 하고 있기는 했다.

기자라는 사람들은 기삿거리가 될 것 같으면 하룻밤을 새워서라도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이드.’

태운은 기척을 숨기고 정문으로 들어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 모습이다.

태운은 그 상태로 뒷문을 통해 측정소에 들어갔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난 이렇게까지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사실 태운의 집에서 가까운 등급 측정소는 타 지역의 측정소보다 기자들이 더 몰렸다.

기자들이 어느새 태운의 집 주소를 알아내고 주변 측정소를 찾아 그곳에 집중적으로 진을 치고 있던 것이다.

“여기서 2시간만 기다리자.”

기자들에게 둘러싸이는 건 측정을 받고 A급 헌터가 된 후가 적절하다.

태운이 눈을 감고 육감을 단련하자 순식간에 2시간이 지나갔고 등급 측정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더 대기하자 태운의 이름이 불렸다.

“12번 강태운, 3번 측정실 들어가세요.”

태운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마냥 좋은 시선만 있는 건 아니네.’

누군가는 선망의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누구는 질투와 시기의 눈빛을 보냈다.

‘질투만큼 멍청한 일도 없는데 말이야.’

질투를 할 시간에 더욱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태운은 3번 측정실로 들어갔다.

측정실 안에는 비쩍 마른 중년의 공무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메테리얼을 색깔을 넣어서 생성해보세요.”처음은 메테리얼의 수를 측정하는 시간이었다.

태운은 미리 40,000의 마나를 저장해놓은 상태여서 마정석을 흡수하지 않고 바로 메테리얼을 만들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여, 열한 개?”

태운은 11개의 메테리얼을 만들었고 중년의 공무원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서류의 이름을 자세히 보았다.

“혹시 제가 아는 그 강태운 맞으시죠?”

“음…. 명운 헌터 아카데미 출신의 강태운 말하는 거라면 저 맞습니다.”“와…. 강태운 헌터의 등급 측정을 내가 하다니…. 이거 평생 술 안줏거리네요! 혹시 사진 한 방 가능합니까?”

“아…. 물론이죠.”

태운은 그 순간 자신이 연예인이라도 된 줄 알았다.

“이야…. 근데 20살이 되자마자 메테리얼을 11개나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뭐…. 그냥 어쩌다 보니.”

태운은 이 불편한 공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저, 그럼 다음 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꼭 원하는 등급 받으시길!”

“감사합니다.”

다음 방은 매직 미사일의 파괴력을 측정해 마나의 순도와 마나 운용 능력을 평가하는 방이었다.

“이거 예전에 아카데미에서 했었는데. 그때 1,000을 조금 넘겼었나?”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지금은 얼마나 나올까? 기왕 하는 거 오버 서플라이까지 써보자.’오버 서플라이는 단순히 마나를 과충전해 파괴력을 높이는 것이다.

마나 수식 분석기에는 걸릴 일이 없다.

태운은 매직 미사일을 시전하고 오버 서플라이로 5,000 정도의 마나를 불어넣었다.

쾅!

측정기가 부서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소리가 났고 태운을 지켜보던 측정소 직원이 태운을 나무랐다.

“아니, 매직 미사일을 사용하라니까….”

“저거 봐요.”

태운은 손가락으로 초록 불이 들어와 있는 마법 수식 분석기를 가리켰다.

“예…? 그럼 방금 그 위력의 마법이… 매직 미사일이라구요?”

“예, 수치가 얼마나 나왔나요?”

“180만 정도 나왔는데요…?”

전대섭의 기록인 120만을 뛰어넘는 대기록이었다.

‘아니, 근데… 내가 오버 서플라이를 사용해서 180만이 나왔는데…. 전대섭 선생님은 오버 서플라이도 없이 120만을 찍으신 거야?’태운은 아직까지는 전대섭이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실력자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다음은 방어력 테스트였다.

점점 강한 마법을 쏘아내는 장치 앞에 서서 공격을 받아내면 된다.

마법을 쓰든 스킬을 쓰든 아무 상관 없었다.

‘솔리드 아머.’

태운은 11겹의 솔리드 아머를 생성했다.

“참기 힘들다 싶으면 말씀하시면 됩니다.”

웬만한 탱커들도 80단계쯤 되면 고통을 호소하며 포기를 외친다.

하지만 태운의 솔리드 아머는 이 정도 충격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결국, 장치 설정 최대치인 200단계까지 버텨내는 데 성공했다.

“후…. 생각보다 쉬운데?”

이 정도 성적을 이어가다 보면 충분히 첫 측정에 A급 헌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특성 수치와 스킬 수치를 측정하는 곳이었다.

헌터들의 재산이나 다름없는 특성과 스킬을 공개하지는 않으면서 좋은 특성과 스킬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를 측정하는 곳이다.

사실상 이 테스트의 점수가 헌터들의 등급을 정한다고 할 수 있다.

태운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죄다 굉장한 것들이다.

하위 특성을 3개나 가지고 있는 상위 특성 ‘명장’.

정직한 사냥꾼, 트롤의 피, 거기에 아직 태운도 확실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변이된 마력까지.

스킬셋도 화려했다.

남들은 하나만 가져도 좋다는 시그니처 스킬들을 10개나 가지고 있었으니까.

측정기에 들어간 태운은 온몸에 힘을 빼고 뒤로 누웠다.

이래야 측정이 정확히 잘된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점수는 굉장히 깔끔했다.

특성: A+

스킬: A+

“크흐….”

수많은 테스트를 대부분 만점으로 통과한 태운은 마지막 테스트인 ‘마나양 측정’만 남겨두고 있었다.

“뭐…. 10이라고 나와도 앞의 테스트들을 거의 만점으로 끝냈으니 A급은 떼놓은 당상이겠네.”태운은 마나양 측정기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모니터에 떠오른 마나양은 역시나 ‘10’이었다.

“어…?”

마나양 측정을 하는 직원이 전의 테스트 기록과 마나양 테스트 결과를 보며 당황스러워하자 태운이 말해주었다“전 마나양이 기형적으로 적어요. 특성 덕분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아…. 그럼 이게 잘못 나온 건 아니라는 거네요?”태운은 직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제야 직원은 태운의 마나양 테스트란에 10이라는 숫자를 적어넣었다.

태운은 모든 테스트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자신의 등급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12번 강태운 씨, 계신가요.”

“여기요.”

이름을 부르자 태운은 카운터로 가서 헌터 등록증을 받아왔다.

이제 어엿한 한 사람의 헌터가 된 것이다.

태운은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헌터 등록증을 꺼냈다.

‘A급이겠지…. 설마 거의 다 만점인데 마나양 때문에 B급이 나오겠어?’태운은 긴장을 하며 천천히 헌터 등록증을 꺼냈다.

“?”

등록증을 꺼낸 태운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태운의 등급은 A급도, B급도 아니었다.

‘F’급 헌터였다.

* * *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오….”

태운은 찬영과 서혜연을 불러 신세 한탄을 했다.

“아니, 다른 건 거의 다 만점인데 마나양이 적다고 F급 주는 건 또 뭐야?”태운이 F급 헌터가 된 이유는 이러했다.

헌터 등급 측정 매뉴얼 중 마나양이 1만 이하인 경우에는 반각성자로 판단하여 등급 측정으로 E급 이상의 등급을 매길 수 없다는 항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아…. 김빠지네.”

“그래도 이의 신청해놨다고 했잖아. 다시 평가되면 A급 헌터로 등록될 거야. 뭐…. 솔직히 너 정도면 F급으로 시작해도 금방 A급 달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그래도 F급 등록증 달고 나오니까 길드 스카우터들이 내 시선을 피하더라. 그래서 편하게 나올 수 있었지.”

“스카우터들이 네 얼굴을 모르나?”

“마스크 쓰고 있어서 못 봤을걸.”

“아하….”

태운은 F급 헌터증을 보곤 문득 허덕륜 선생님이 생각났다.

‘강함은 A급 헌터 중에서도 최상위권이지만…. C급 헌터로 등록이 되어 있으시지. 배반자들을 막으려면 이목이 집중되면 안 되니까.’허덕륜은 배반자들을 막기 위해 은퇴한 C급 헌터로 둔갑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배반자들의 많은 계획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이제 얼굴과 이름이 많이 알려져서 그렇게 할 수는 없…. 잠깐만….’태운은 과거 자신이 판타지 소설을 보며 만들었던 마법을 하나 떠올렸다.

이름은 ‘마스커레이드’.

“얘들아, 내 얼굴 봐봐.”

“음?”

“마스커레이드.”

태운의 얼굴이 천천히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야…. 너…. 뭐야?”

“못 알아보겠지?”

“뭐야…? 아니, 마나도 안 느껴져. 환각 마법이야?”

“아니.”

이건 단순히 눈을 속이는 환각 마법이 아니다.

실제로 얼굴 근육을 움직여 달라지는 것이었다.

원리에 대해 설명을 들은 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근육의 위치를 조금 움직여서 바꾸는 거기 때문에 원판에서 확 달라지게 만들 수는 없어.”

“이야…. 대단한데?”

“근데 이걸로 뭐 하려고?”

“별건 아니고. 이중 신분 좀 만들어 보려고.”태운은 바로 전대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링.

“아, 전대섭 선생님….”

-바쁘다. 나중에 다시 거마.

“흠….”

“폼 잡아놓고 뭐야.”

“허덕륜 선생님은 안 바쁘시려나.”

태운은 허덕륜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는 바쁘지 않았다.

* * *

“이중 신분이라…. 좋은 생각이긴 하군. 그 마스커레이드라는 마법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은 하겠어.”허덕륜은 태운의 생각을 듣고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판단했다.

태운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굉장히 유명하다.

그렇기에 태운의 움직임은 배반자들에게 읽히기 쉽기에 위장 신분을 하나 만들어 활동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럼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해보지. 마스커레이드로 바뀐 얼굴로 증명사진을 찍어서 보내라.”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허덕륜은 태운의 성장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3년 전 처음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와 최악의 재능을 가진 열등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도 열심히 노력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넌 할 수 있다고 말해주던 허덕륜도 사실은 태운이 헌터로 이렇게까지 성장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태운의 노력을 보고 헌터가 되지 못해도 다른 직업을 가져 이름을 떨칠 것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헌터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네,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해요.”

태운은 예의로 한 말이 아닌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허덕륜이 없었다면 태운은 진즉에 의지가 꺾여 쓰러졌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태운은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태운에게 허덕륜은 최고의 스승이고 최고의 지지자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자신의 옆에 있어 주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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