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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04화 (104/379)
  • 104화

    “예?”

    난데없는 스카웃 제의다.

    게다가 평소 제자를 쉽게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임정국의 제의다.

    하지만 태운은 그의 제자 같은 걸 할 생각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제자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대장일을 배워 봤자 쓸 곳은 이가 나간 검을 가는 것 정도밖에 없을 것 같아서요.”조금 심하게 말한 것 같긴 했지만 사실이었다.

    태운이 대장장이를 할 것도 아니고 대장일을 시간 들여 배워 봤자 시간 대비 효율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 안 한다고?”

    “예, 시간 낭비하고 싶지는 않네요.”

    “흠…. 아쉽네. 그래도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그냥 돌려보내긴 좀 그러니까 내 제자 실력 좀 보고 갈래?”태운은 아까 본 적발의 남성이 생각났다.

    “그 빨간 머리 하신 분 맞나요?”

    “그래, 이름은 천유성이다. 내가 웬만하면 제자는 받지 않는 편인데 저 녀석은 달라. 내가 지금까지 대장일을 30년 동안 해왔는데 저런 재능을 가진 놈은 한 번도 못 봤다.”임정국은 데블스 에이지가 일어나기 전부터 대장일을 하고 있었다.

    데블스 에이지가 일어나기 전에는 항상 세상의 흐름에 역행한다며 비난을 받고는 했다.

    하지만 데블스 에이지가 일어나고 임정국이 각성을 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대장일의 숙련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저 심혈을 기울여 무기를 만들었을 뿐인데 검에서 불이 나가고 검이 바위를 베어 버리니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무기들이 사람들을 구하는 데 사용되고 있으니 의욕이 더욱 끓어올라 무기를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임정국이 없었다면 데블스 에이지의 전쟁에서 패배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도 나서서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가 만든 장비들이 없었다면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을 테니까.

    그리고 거기서 온 자부심은 그가 제자를 쉽게 받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수만 명의 대장장이들을 내치고 처음으로 받은 제자가 천유성이었다.

    그런 그의 재능은 얼마나 뛰어날까?

    “저 녀석은 내가 망칫밥을 먹은 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의 성취를 고작 1년 만에 이뤄냈다. 저 녀석, 나한테 배우지 않고 포털 사이트의 영상을 보면서 배웠어도 10년 후에는 장인 소리를 들었을 거다.”

    “그 정돕니까?”

    태운은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임정국도 세계 최고 수준의 장인 반열에 들었고 과거에 100년에 한 명 나올 천재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그런 천재를 가뿐히 뛰어넘는 재능이라니.

    태운은 그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까-앙! 까-앙!

    “저기가 천유성의 개인 공방이다. 아, 참고로 저 녀석은 귀가 밝고 예민하니 조용히 하도록. 아까처럼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와….”

    태운이 대장일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망치 소리를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망치 소리에 육감이 반응해 그의 실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말… 대단하네요.”

    눈을 감고 망치 소리를 감상하는 태운은 본 임정국은 의심의 눈초리로 태운을 쏘아보았다.

    “흐음…. 정말 대장일을 배워 본 적이 없다고?”“예, 배워 본 적은커녕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흐음…. 방금 그 얼굴은 좋은 망치 소리를 감상하는 장인의 얼굴이었는데 말이야….”“아…. 그, 그건 제 스킬에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자잘한 건 넘어가시죠.”

    “흐음…. 알겠네.”

    태운은 그곳에서 천유성의 작업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좀 심심하게 끝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만약 임정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제자가 되었더라면 좀 더 알찬 시간이 되었겠지만, 태운은 그럴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천유성이라는 인재를 안 걸로 만족하자.’오늘 태운은 나중에 만들 길드의 공방에 대장장이로 넣고 싶은 사람을 한 명 찾을 수 있었다.

    * * *

    “후우…. 졸업이네.”

    벌써 12월이다.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강당은 졸업 예정자들과 재학생들로 가득 차 북적북적했다.

    수많은 졸업 예정자들 중 태운도 있었다.

    “그게 벌써 8개월 전이라니….”

    부서진 펜던트 사이로 빠져나온 마정석으로부터 마정석 흡수 능력을 얻은 날로부터 벌써 8개월이나 지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마정석을 왜 만졌을까 싶네.’하급 마정석을 만져도 죽을 수 있는데 무슨 생각으로 겁도 없이 만진 걸까.

    덕분에 지금은 변이된 마력이라는 특성 덕분에 마나 개복치는 면했지만 말이다.

    태운은 그동안 있었던 사건들을 되새기며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잊으면 안 되는 일들을 머릿속에 새겼다.

    “태운아!”

    태운이 강당에 혼자 앉아있으니 구찬영과 서혜연이 다가왔다.

    “어, 왔어?”

    “당연하지. 누구 졸업식인데.”

    서혜연은 태운이 틈틈이 알려준 마법들과 자하르의 연구소에서 아티팩트 실험에 참가해 얻은 경험들을 활용해 챌린저 골드 A반으로 급속 성장했고 2년 만에 챌린저를 탈출하고 익스퍼트로 올라가게 되었다.

    서혜연은 그것에 대해 태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내가 나중에 널 찾을 거 같아서 미리 은혜 좀 입혀놓은 거야.”

    “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한 3년 뒤에 찾을 거 같아.”

    “……?”

    둘의 대화에 낄 수 없던 구찬영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근데 올해는 누가 상을 탈까?”

    명운 헌터 아카데미는 5개 부문의 상을 만들어 매년 졸업생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을 뽑아 상을 준다.

    최고 기량상.

    기량 발전상.

    최고 마법상.

    최고 검술상.

    복합 기량상.

    이 5개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뽑아 상을 준다.

    “뭐…. 올해의 기량 발전상은 내가 봐도 나니까….”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게 아니었다.

    최악의 열등생에서 익스퍼트 골드 A급 1위까지.

    이런 성장을 1년 안에 이룬 사람은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량 발전상을 누가 받을지에 대해 토론하는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복합 기량상은…. 시저가 받겠지? 정일준은 졸업 안 하고 마스터 간다고 했으니까.”“마스터에 조강현 선배도 올해 졸업하잖아. 난 그 선배가 받을 거 같던데.”“최고 기량상이 난 기대된다. 올해 마스터에 공전하도 졸업하고 설아 누나도 졸업하잖아.”

    “누구 맘대로 설아 누나래? 친하냐?”

    “아니, 그냥 한 말……”

    재학생들에게는 이 상을 누가 받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들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이제 슬슬 시간 됐네. 졸업식 끝나면 보자.”

    “그래.”

    구찬영과 서혜연은 졸업생석에 앉을 수 없기에 재학생석으로 가서 앉아 있을 것이다.

    [아아, 졸업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국민의례를….]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주신 학부모님들과 내빈분들에게 감사….]

    듣고 있어 봐야 지루하기만 한 의례들이 끝이 나고 이제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올해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학생들에게 상을 주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럼 올해의 기량 발전상은…. 강태운 학생입니다.”짝짝짝짝짝.

    모두가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기량 발전상이 태운이 아닌 다른 사람에 주어졌다면 비리를 의심해 봐야 할 정도였으니까.

    “위 학생은….”

    태운은 단상 위에 올라가 상을 받고 내려와 다시 자리로 향했다.

    “다음은…. 올해의 최고 마법상입니다. 강태운 학생입니다.”

    “음…?”

    태운은 단상 옆에 있는 교사에게 급히 상장을 맡기고 다시 단상 위로 올라갔다.

    “두 개나 받을 줄은 몰랐는데.”

    마스터 등급 졸업자들이 득실거리기에 기량 발전상 말고는 다른 상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뭐, 많이 받으며 좋지.”

    “올해의 최고 검술상은 공전하입니다.”

    짝짝짝짝짝.

    공전하는 태운에게 손을 흔들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태운도 공전하를 보며 박수를 쳐주었다.

    “다음, 올해의 복합 기량상은…. 강태운 학생입니다.”

    “예?”

    태운은 다시 단상 위로 올라가 상을 받고 다시 내려왔다.

    그때부터 좌중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졸업식에서 한 학생이 3개 이상의 상을 독차지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수 수상이 없던 것이 아니었기에 큰 반발은 없었다.

    “잠깐만…. 근데 이러면….”

    기량 발전상도 받았고, 최고 마법상과 복합 기량상도 받았다.

    그가 지금까지 받지 못한 유일한 상인 최고 검술 상은 공전하가 가져갔다.

    하지만 공전하가 검을 매우 잘 쓸 뿐, 태운이 검술에 능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스읍…. 설마….”

    학생들의 불안한 예감은 점점 커져 갔고 그것은 최고 기량상의 발표가 나면서 현실이 되었다.

    “최고 기량상은 강태운 학생입니다.”

    * * *

    인터넷은 태운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와ㅋㅋ 미친ㅋㅋ 명헌 5개 부문 상 중에 4개를 독차지 해버리넼ㅋㅋ 용났네 용났어 ㅋㅋ└드디어 우리나라도 A급 헌터 5명 찍어보나?

    └내 생각에는 A급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임.

    └헛소리 하지마셈 ㅋㅋㅋ 뭔 A급이야 ㅋㅋㅋ 진짜 국뽕쟁이들 겁나 많네.

    └얘 여기서도 이러네 ㅋㅋ

    └얘 강태운 영상 댓글에 악플만 다는 놈임. 병먹금하셈.

    태운은 졸업 후 헌터 등급 측정 날까지 기다리면서 자신에 대한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

    가끔 악플도 있긴 했지만, 그 악플들은 선플들에 깔려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근데 강태운은 진짜 뭐 하는 놈임? 2년 동안 죽만 쑤다가 괜찮은 특성 하나 개화했다고 1년 만에 저렇게 되는 게 가능한 거임?

    ‘나도 될 줄 몰랐어.’

    1년 안에 졸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강해져서 졸업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아, 맞다. 오늘이 동아리 접수 시작일이었지?”오늘은 익스퍼트에 새로 들어올 학생들이 동아리에 가입 신청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태운은 오래 몸을 담그지 않았지만 언더독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언더독을 1년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동아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명운전 당시 그렇게나 이미지를 신경 쓴 것이었다.

    1등을 해도 비겁하게 1등을 하거나 비호감이 되면 다음 연도에 가입 희망자가 확 줄어들 테니까.

    ‘지금쯤이면 아주 가입 신청이 폭발하고 있겠는데. 전화나 한번 걸어볼까?’태운은 휴대폰을 들어 신동연에게 전화했다.

    신동연은 전화를 받았고 전화기 너머로 소란스러움이 전해졌다.

    “형, 지금 바빠요?”

    -어! 엄청 바빠! 지금 가입 신청 건수가 무슨 50명이 넘어! 이걸 내가 혼자 어떻게 처리하란 거야!

    “어…. 그렇게 바빠요?”

    -다른 놈들 다 도망갔어! 라일렌이랑 홍유리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언더독은 태운과 공진영이 졸업해 8명밖에 남지 않았다.

    태운은 남은 사람 중 가장 침착하고 판단력이 좋은 신동연에게 동아리장을 맡기고 나왔다.

    그랬더니 서류 정리를 혼자 떠맡고 있던 것이다.

    -일단 나 바쁘니까 끊어!

    “아, 넵.”

    간만에 건 전화를 끊을 정도니 어지간히 바쁜 모양이었다.

    “애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홍유리한테 맡길 걸 그랬나….”태운은 과거 자신의 선택을 나무라며 전화를 끊었다.

    “뭐, 동연이 형이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태운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달력 앞으로 갔다.

    “1월 1일, 헌터 등급 측정일.”

    바로 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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