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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03화 (103/379)
  • 103화

    “헥티르! 그게 무슨 헛소리냐!”

    설리안은 분노에 가득 차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다.

    그에 태운은 확성 마법을 사용해 차분히 대화를 이어갔다.

    “감각 차단, 모두 헛소리다. 난 지금까지 감각이 ‘차단된 척’한 거야.”콜로세움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얻어낸 모든 명성과 명예들이 지금 이 한마디에 모두 무너져 내려가고 있다.

    “무, 무슨 소리냐!”

    “난 지금까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균형 감각들이 차단된 척 연기하며 괴물들과 싸워온 거다. 물론 나도 재밌고 멍청한 네 녀석들이 날 찬양하는 게 우스워서 계속해 왔다. 그런데 저놈이 오늘 내 식사에 리니안이라는 각성제이자 독을 탔더군.”이제부터 말로 설리안의 목숨을 끊어 버릴 것이다.

    “설리안이 내 식사에 왜 리니안을 탔을까?”리니안은 잠깐 동안 엄청난 힘을 내게 해주는 각성제다.

    하지만 그 힘이 다하면 온몸에 독이 돌아 즉사한다.

    “단순히 날 죽일 생각이었다면 청산가리 같은 신경독을 탔겠지. 그런데 왜 효과가 천천히 오는 리니안을 탔을까?”

    “나, 난 그런 적 없어!”

    설리안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설리안은 첩의 자식인 2황자에게 연줄을 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황자가 후계자가 되자 그것이 못마땅했겠지. 설리안에게는 2황자가 황제가 되는 것이 좋으니까.”설리안이 1황자에 비해 2황자와 친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한 말은 죄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 설리안의 말을 믿는 사람보단 태운의 말을 믿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를 이용해 황태자를 죽인 후, 나를 죽여 입막음을 하기 딱 좋은 독이 리니안이다.”“폐하! 저런 범죄자의 억측을 믿으시겠습니까?”“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주일 전에 병실에 있던 나에게 설리안이 찾아왔다. 황태자를 죽여달라고 했지. 자유를 주겠다면서.”그 말이 나오자 콜로세움의 경비병들과 직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 설리안 님이 일주일 전에 범죄자 병실에 들어가는 봤어….”“맞아… 나도 봤어…. 설리안 님이 범죄자 병실에 들어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그럼 설마 진짜로….”

    그들은 일주일 전에 병실에 들어가는 설리안을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미친….”

    설리안은 그들을 보고 자신의 패배와 몰락을 직감했다.

    채-앵!

    국왕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설리안에게 겨눴다.

    “네놈은… 네놈은 쉽게 죽이지 않으마…. 끌고 가라!”“폐하… 폐하!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발! 한 번만 저를 믿어주시면…. 제바아알…! 이 씨이이바알…. 헥티르으으!!!”태운은 목적을 마치고 검을 내려놓았다.

    “저 녀석도 끌고 와라. 저항한다면 죽여도 좋다.”콜로세움의 입구에서 수백 명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순순히 따라와라!”

    병사들은 수십 개의 창날을 태운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허튼짓을 하면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버리겠지.

    물론, 솔리드 아머를 사용하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운은 저항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다 죽는 것보단… 여기서 죽는 게 낫지.’태운은 손을 들어 창대 하나를 부러뜨렸다.

    “찔러!”

    병사들은 그것을 저항으로 받아들였고 태운은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사망했다.

    그때 태운의 눈앞에 알림창이 하나 떠올랐다.

    [‘헥티르의 후회’의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조건 달성 이후 사망으로 즉시 흡수를 진행합니다.]

    * * *

    태운은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텅 빈 흰색 공간으로 들어왔다.

    여느 때와 같이 눈앞에는 헥티르가 서 있었다.

    “…그렇게 해야 했던 거군. 난 내가 이렇게 억울했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어….”헥티르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

    헥티르는 60번째 시련에서 태운보다 훨씬 많이 다쳐 6개월 동안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첫 2~3개월 동안은 금단 현상으로 미쳐 있었지만 4개월쯤 되자 정신을 되찾았었다.

    자신이 여기서 무엇을 위해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6개월이 끝나자마자 황태자와의 경기가 잡혔고 어떻게든 황태자를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기기만 했다.

    황태자를 죽이고 설리안과 같이 나락으로 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얻어낸 명성과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게 없으면 콜로세움에서 지냈던 지난날들이 모두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으니까.

    헥티르는 그렇게 살아남은 후, 콜로세움에서 승승장구하며 설리안의 지갑을 채워주었고, 결국에는 약속된 100번의 경기를 끝마치지 못하고 죽고 만다.

    그리고 헥티르는 죽어서도 명성과 명예를 포기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는 현실 도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멍청했어….”

    “아닙니다. 저였어도 그런 선택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태운은 헥티르를 위로했다.

    “제가 이런 선택을 해서 명성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드셨을 텐데…. 용케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셨군요.”

    “크흑….”

    태운은 헥티르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기화율이 높긴 했지만 남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태운에게는 현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내리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5분 정도가 지나자 헥티르는 마음을 가다듬고 태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맙구나. 정말로. 넌, 큰 인물이 될 거다.”

    “별말씀을요.”

    태운은 웃으며 화답했고 헥티르는 천천히 사라져갔다.

    이제 가장 기대되는 보상 타임이었다.

    [모든 기본 스탯이 3씩 상승합니다.]

    [스탯 ‘관찰력’이 ‘감각’으로 진화합니다.]

    [스탯 ‘감각’의 수치는 1로 초기화됩니다.]

    [스킬 ‘육감’ 얻습니다.]

    [스탯 ‘용기’를 얻습니다.]

    “크으…!”

    힘들었던 것에 비해서도 절대 아쉽지 않은 보상들이었다.

    강태운

    LV: 32

    마나 총량: 10

    체력(73+5) 근력(79+5) 민첩(74) 유연성(37) 지력(97) 변이된 마나(3) 감각(1) 마나친화력(8) 용기(5)

    특성

    상위 특성-명장(3개)

    변이된 마력(LV.M)

    정직한 사냥꾼(LV.M)

    트롤의 피(LV.M)

    스킬

    마정석 흡수(LV.6)[S]

    마정석 저장(LV.4)[S]

    상급 마법(LV.7)

    웨폰 마스터리(LV.4)[S]

    마법 파괴(LV.2)[S]

    명중(LV.3)[S]

    사고 가속(LV.3)[S]

    적의(LV.1)[S]

    고정(LV.4)[S]

    오버 서플라이(LV.2)[S]

    육감(LV.M)[S]

    뛰어난 성능의 특성들과 엄청난 양의 시그니처 스킬들.

    태운은 스킬셋만 봐도 B급 헌터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조금만 더 강해지면 헌터 데뷔 첫 등급 평가 날에 A급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A급 헌터라…. 이거 큰 파란이 일어나겠는데…?’태운은 가장 가까운 목표를 첫 등급 평가 A급으로 정했다.

    태운의 목표 중 하나인, ‘전 세계를 아우르는 초대형 길드 설립’을 이루려면 이 정도 스펙은 있는 편이 좋으니까.

    “박사님, 특별한 마정석으로 의심되는 마정석 좀 보여주세요.”“하여간…. 얘가 쉴 줄을 몰라…. 알겠다!”

    태운은 가까운 목표를 정하고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 * *

    “스읍…. 너무 늦었으려나.”

    명운 헌터 아카데미 졸업 일주일 전, 태운은 잠깐 잊고 있던 일을 떠올렸다.

    임정국 공방에 가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언제 오라고 한 적이 없어서… 깜빡하고 있었어….’태운은 조선 시대의 가택같이 생긴 임정국 공방의 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으아아아악! 어떤 새끼야!!!”

    초인종을 누르고 약 3초가 지나자 안에서 엄청난 크기의 욕설이 들려왔다.

    “으아아! 어떤 놈이야!”

    벌컥!

    안에서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적발의 남자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너냐? 엉?”

    “어… 초인종을 누른 거라면… 제가 맞, 맞습니다.”너무나도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벌어진 일에 태운조차도 당황해 말이 꼬여 버렸다.

    “하아…. 너 누군데 우리 공방 초인종을 누르고 난리야! 너 때문에 집중이 깨졌잖아! 하…. 간만에 망치 잡은 건데…. 그래서 넌 누구고 어떤 용건으로 우리 공방에 온 거냐. 별거 아니라면 각오해.”태운은 속사포처럼 밀어붙이는 그의 말에 당황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 그… 한… 두 달 전쯤에 임정국 장인께서 저한테 시간 날 때 공방에 한번 오라고 하셔서….”적발의 남자는 태운의 말을 듣고 태운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그럴 리가 없어. 스승님이 너 같은 어린놈한테 관심이 있을 리가….”빠-악!

    적발의 남자가 태운을 추궁하자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네가 나에 대해 뭘 그리 잘 안다고 까불고 있냐. 내 손님이 맞아.”근육질의 몸에 개량 한복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자, 임정국이었다.

    “아니…. 스승님 손님 맞다구요? 이런 어린놈이?”

    “인격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은 법이다.”

    “아니…. 나한테는 맨날 어린놈이라고 구박하면서…….”“쓰읍, 빨리 가서 내가 내준 과제나 마저 해.”

    “아, 알겠습니다~.”

    태운은 뭔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자 당황스러워 멀뚱멀뚱 서 있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라.”

    임정국은 태운을 공방 안으로 들였다.

    “많이 늦었군.”

    “아, 죄송합니다. 바쁘기도 했고…. 사실 깜빡했거든요….”태운은 진실을 말하고 멋쩍은 웃음으로 핑계를 대신했다.

    “허…. 우리나라 A급 헌터들도 내 말이면 껌뻑 죽는데….”

    “예?”

    태운은 뭔가 그의 이미지와 말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긴…. 초대장을 포스트잇에 대충 휘갈겨서 택배랑 같이 보내시는 분인데….’어떻게 보면 애초에 성격이 무심하고 섬세하지 못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태운의 머릿속에 있던 대장장이의 이미지들이 무너졌다.

    “일단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별게 아니다.”

    “예?”

    “돌검의 성능을 어떻게 알아챈 거지?”

    임정국의 한마디에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대형 길드의 스카우터, 탑클래스의 장인, 심지어 전대섭도 성능을 알아채지 못한 물건이다. 네가 어떻게 그 물건의 가치를 알아냈는지…. 그게 궁금해서 널 부른 거다.”태운은 임정국이 갑자기 몰아세우자 당황해 거짓말로 얼버무리려 했다.

    “그냥 감정 스킬로….”

    하지만 순간 태운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가 무서워할 게 아니잖아?’

    순간 그의 위압감에 눌려 당황했지만, 태운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 궁금하신 건 알겠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 몰아붙이셔도 되는 겁니까.”

    “뭐?”

    임정국은 태운의 말에 당황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 크하하하하!!”

    임정국은 한바탕 웃어 젖히고는 말을 꺼냈다.

    “역시 전대섭의 제자다워. 그래…. 나한테 대장일 배워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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