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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02화 (102/379)
  • 102화

    “태운아 괜찮냐!”

    태운이 나오자 상황실에서 모니터로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자하르가 태운에게 달려왔다.

    상황실에서는 마치 태운이 폐인이 된 것처럼 보였으니까.

    “후…. 큰일 날 뻔하긴 했는데…. 일단은 무사합니다.”“그래, 일단은 다행이구나.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태운은 자하르에게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설명했다.

    “똑같은 삶 속에서 엄청난 자극을 준다…. 그 자극을 줄 수 있는 건 자신들뿐이니 그런 식으로 콜로세움의 검투사들을 속박한 거겠지. 추잡한 방법이야.”뒷세계 조직들이 사람들을 속여 마약에 중독되게 한 후 자신들 마음대로 써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그런 것에 누가 당하냐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당해 보니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후…. 정말 위험했군. 잠시 쉬는 게 어떤가.”

    “네, 안 그래도 쉬려고 했습니다.”

    자하르는 태운이 순순히 쉬겠다고 말한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평소의 그라면 잠깐 쉬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바로 들어갈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곧바로 마정석에 다시 들어간다고 하면 뜯어말릴 생각이었으니 다행이었다.

    “다른 마정석 있다고 했죠. 그거 주세요. 쉬는 동안 그거라도 흡수하게.”

    “하…. 예상이 빗나가질 않는군….”

    어차피 이것 말고 남은 마정석은 최하급 마정석이다.

    그리 어려운 임무를 줄 것 같지 않았기에 그냥 순순히 내어주었다.

    말린다고 해서 들을 놈도 아니니까.

    그렇게 태운은 최하급 마정석의 임무를 순식간에 클리어하고 한숨 돌린 후, 다시 헥티르의 마정석을 들고 캡슐로 들어갔다.

    “강태운, 정말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헥티르가 뭘 원하는지 대충 알겠거든요.”동기화율이 70% 이상으로 올라갔더니 헥티르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헥티르의 후회를 일으킨 선택은 본인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헥티르의 마정석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콜로세움의 천장이었다.

    60번째 시련을 클리어하고 몸이 엉망이 되었으니 움직이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갈비뼈는 두 대 정도 나갔고…. 왼쪽 어깨는 탈골…. 나머지는 전신 타박상인가. 심각한 부상이긴 하지만 회복은 할 수 있을 정도의 부상이군.’지금까지 자잘한 상처들을 많이 입었지만, 이번처럼 큰 부상을 입은 적은 없었다.

    자잘한 상처들이라면 무시하고 경기를 잡았겠지만, 지금처럼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의 부상이라면 억지로 경기를 잡지는 않을 것이다.

    콜로세움의 운영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말이다.

    적어도 뼈는 다 붙은 상태에서 경기를 진행할 것이다.

    그때, 헥티르를 담당하는 경비병이 다가와 헥티르를 부축했다.

    “힘들겠지만 일단 일어나게. 죽어도 병실에서 죽어. 여기서 죽었다간 내 봉급이 까이니까.”그의 이름은 호른.

    내색을 하진 않지만 헥티르의 팬 같았다.

    “허, 빨리 병실로 옮기기나 해. 죽을 거 같으니까.”

    “닥쳐라.”

    호른은 태운을 신속하게 병실로 옮기고 밖으로 나갔다.

    병실에는 웬 돌팔이 냄새를 풍기는 작은 체구의 남자 의사가 한 명 있었다.

    “흐음…. 일단 상당히 크게 다쳤구만. 완치까지 최소 6개월은 걸리겠지만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건 2개월이면 될 거다. 네가 워낙에 튼튼하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일단 내가 적어도 2개월은 경기를 잡지 말라고 이야기해 두마.”태운은 앞으로 약 2개월 동안 시련에 도전할 수 없게 되었다.

    동기화율이 70%가 넘으면서 들어온 헥티르의 기억에 따르면 그도 60번째 시련에서 큰 부상을 입었고 부상 회복 기간 동안 엄청난 금단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그다음에 벌어질 일이 헥티르의 후회를 만든 주원인이지.’태운은 그날을 기다리며 병실의 침대에 누워 얌전히 기다렸다.

    그렇게 일주일 후, 태운의 경기 일정이 잡혔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경기 날짜는 정확히 2달 후.

    국왕이 구경을 하러 온다는 소문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헥티르의 기억이 맞다면 2달 후의 경기는 국왕이 참관한다.

    그리고 경기의 내용은 눈을 뜬 황태자와 모든 감각을 차단당한 헥티르와의 목숨을 건 검술 대련이었다.

    마법은 허용되지 않았다.

    “크흐…. 참 토사구팽이 따로 없네…!”

    황태자도 기사 아카데미 수석 졸업생과 비슷한 수준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

    모든 감각을 잃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경기 내용을 보면 둘 다 목숨을 건 대결인 것 같지만 사실상 아니었다.

    황태자가 위험한 것 같다 싶으면 경비병들이 달려들어 시합을 중지시킬 테니까.

    사실상 한쪽은 명예를, 한쪽은 목숨을 건 대결이라는 것이다.

    “후…. 일단 2개월 동안 몸을 최대한 회복시켜야겠군.”뼈만 제대로 된 위치에 붙는다면 팩 인 디바인 포스로 단숨에 회복시키면 된다.

    그때 헥티르의 담당 경비병인 호른이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매우 긴장한 얼굴로 태운의 옆에서 서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헥티르…. 몸이 회복되면…. 도망가라.”

    이건 원래 헥티르의 기억에서도 있던 일.

    그때 당시 헥티르는 금단 현상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호른의 말을 듣고 격노해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꺼지라 말했다.

    이것 또한 헥티르의 후회를 만든 선택 중 하나였다.

    “내가 눈을 감아줄 테니 도망을….”

    “고맙다. 그런데 난 도망치지 않을 거야.”

    “황태자와의 경기는 절대 공평하지 않아! 황태자만 이기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 경기장에는 황태자를 보호할 수많은 장치들이 있어. 여차하면 한순간에 널 죽일 수 있는 장치들이란 말이야.”호른은 태운의 말에 흥분해 말을 쏟아냈다.

    “이번 경기는 여태까지의 경기들처럼 관중들의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야. 이 콜로세움의 주인이 널 제물로 국왕의 눈에 들기 위한 경기지. 네가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아니야.”조용히 호른의 말을 듣던 태운은 여전히 똑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래도 난 도망치지 않을 거야. 계획이 있거든.”

    “계획이라고?”

    “그걸 도와줄 사람이 필요한데…. 어때? 한번 해볼래?”호른은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이란 거, 한번 들어나 보자.”

    그렇게 태운은 자신의 계획에 필요한 퍼즐을 하나 찾아냈다.

    * * *

    드르륵.

    황태자와의 경기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때, 태운이 평소처럼 병실에 누워있자 누군가가 병실의 문을 열었다.

    “누구지?”

    “얼굴은 보이나? 나는 이 콜로세움의 주인, 설리안일세.”설리안, 이 콜로세움의 주인이자 헥티르가 죽인 영주의 형이다.

    “요새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군.”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더군.”

    “크큭…. 곧 죽을 걸 직감해서 밥이 넘어가지 않는 건가?”

    “뭐, 그럴지도 모르고.”

    설리안은 자신의 동생을 죽인 헥티르를 복수심으로 감옥에 넣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콜로세움으로 불러들였다.

    그를 콜로세움으로 데려온 순간부터 복수심은 이미 없었다.

    하지만 곧 죽으러 가는 헥티르를 자극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서 직접 그를 조롱하러 온 것이다.

    “흐음….”

    그런데 헥티르는 분노나 절망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초연해 보였다.

    설리안은 그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왜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 거지?”

    “내가 너에게 왜 화를 내나? 난 오히려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어.”

    “뭐?”

    “처음에는 원망도 했었지. 이런 투견이 된 느낌이 좋지만은 않았거든. 하지만 점점 어려워지는 시련들이 나에게 엄청난 쾌락을 주었어. 나에게 그런 쾌락을 느끼게 해준 네가 너무 고맙다.”

    “호오….”

    설리안은 이런 반응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반응도 나름 마음에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신이 된 것 같았으니까.

    그때, 태운이 말을 꺼냈다.

    “어차피…. 모든 감각을 차단하고 싸운다면 내가 이길 가능성은 없으니 마지막으로 너에게 선물이나 하나 해주지.”

    “무슨 선물이지?”

    “이번 경기 말이야. 국왕의 눈에 들기 위한 경기잖아? 내가 화려하게 패배해줄 테니 넌 그걸 잘 써먹어서 국왕의 비위를 잘 맞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군.”

    “호오….”

    그러자 설리안의 눈에서 경계심이 사라졌다.

    “고맙네. 자넨 죽어서도 콜로세움의 전설의 전사가 되어 칭송받을 것이다.”

    “그거 괜찮군.”

    설리안은 그 말을 끝으로 병실 밖으로 나갔고 태운은 얼굴을 가리고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퍼즐 완성이다.’

    * * *

    [모두가 기다리던 메인 경기! 최강의 도전자! 헥티르와 사밀 제국의 1황자, 폴 님의 경기가 곧 시작합니다!]

    “““와아아아아!!!”””

    콜로세움의 메인 아레나에 태운과 황태자 폴이 양 끝에 서서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경기장의 외곽에는 장창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내가 황태자를 죽이려 한다면 저들이 먼저 날 찔러 죽이겠지.’모든 감각이 차단되고 아레나에 설치된 마법 장치 때문에 마법도 사용할 수 없게 해두었다.

    그 상태에서 수십 개의 창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긴 말 하지 않고 경기 시작합니다!]

    댕-.

    사회자의 말을 끝으로 종소리가 울리자 태운의 모든 감각이 차단되었다.

    오로지 육감만이 남아 황태자의 움직임을 알려주었다.

    태운은 황태자가 다가오는 속도를 계산해 보법을 밟았다.

    ‘수만 번은 이미지 트레이닝한 보법이다. 균형 감각은 필요 없어.’그저 기계처럼 움직이면 된다.

    버튼을 누르면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선풍기나 일정한 힘으로 빨아들이는 청소기처럼 움직이면 된다.

    태운은 보법을 밟음과 동시에 검을 둥글게 휘둘러 황태자의 공격을 치워냈다.

    그와 동시에 검을 역수로 쥐고 황태자의 목을 노렸다.

    육감으로 설리안과 국왕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설리안이 급히 태운을 제압하기 위해 스위치를 당겼지만 이미 늦었다.

    푸-욱!

    태운의 검이 황태자의 목을 관통하는 순간, 태운의 모든 감각이 돌아왔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호른, 성공했군.’

    “끅……끄윽….”

    태운의 검은 황태자의 목을 관통했고 황태자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목을 관통한 검을 뽑아내려 했다.

    “아, 검을 뽑고 싶구나.”

    “뭣들 하느냐! 저 자식을 찔러 죽이지 않고!”태운은 검을 비틀며 황태자의 목에서 뽑아냈고 황태자는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즉사했다.

    “폴!!!”

    국왕은 유일한 적통 계승자의 죽음에 격노했고 병사들은 태운을 죽일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되찾은 태운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염구.”

    태운은 자신의 주변으로 8개의 염구를 소환하고 파이로 컨트롤을 사용해 자신의 주변을 돌게 하여 병사들을 태워 죽였다.

    설리안이 콜로세움의 모든 공격 장치를 가동했지만, 태운은 모든 것을 간단히 막아냈다.

    “저…. 저….”

    설리안은 치밀어오르는 분노 때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설리아아아안!!!”

    태운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소리쳤다.

    “내가 너의 쇼에 어울려주고 있었는데 감히 나의 뒤통수를 쳐!”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부터 헥티르의 후회를 만든 아주 큰 선택을 뒤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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