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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100화 (100/379)
  • 100화

    ‘일단 내가 강해진다. 대원로 한 명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태운은 속으로 다짐했다.

    허덕륜은 그 마음을 안 걸까? 태운에게 차근차근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태운아, 너는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 누구보다도 재능이 뛰어나. 하지만 너는 어딘가 모르게 너무 급해 보인다. 차분해져라. 급할 필요 없다.”

    “…알겠습니다.”

    태운은 입으론 알았다고 했지만, 마음 깊이 새겨듣지는 않았다.

    이미 배반자들에 의한 비극도 보았고 지금은 그들의 끔찍한 목표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성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질문의 답은 이 정도로 끝난 것 같구나. 더 할 말은 없는 것 같고….”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뭔가.”

    “이번에 마르기가스의 의식이 성공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자신이 막은 의식이긴 하지만 무슨 의식인지도 알 수 없다.

    “그 의식은 마르기가스가 벨제부브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었다. 첫 의식이었기에 상당히 은밀히 준비한 것 같더군. 만약에 그 의식이 성공했다면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식탐의 저주에 빠져 자신을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먹어댔을 것이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말이야.”

    “맙소사….”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다.

    “더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지. 그렇게 죽어간 수만 명의 목숨과 그것으로 인한 혼란 탓에 데블스 에이지는 더욱 빨리 일어났을 거야.”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허덕륜의 태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말하지 않았다.

    식탐의 저주는 7죄악의 저주 중 가장 수위가 약한 저주라는 것을.

    허덕륜은 그 이후로도 태운의 질문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태운의 질문이 멈추었다.

    “그럼 난 이제 가보겠네.”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래, 열심히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태운은 허덕륜을 배웅한 후 바로 자하르의 연구실로 향했다.

    이번 마정석 수급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아직 태운이 흡수할 마정석이 2개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

    * * *

    “괜찮나? 좀 더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하르는 태운의 몸 상태를 걱정하며 마정석 흡수 일정을 뒤로 미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운은 몸 상태는 멀쩡하니 마정석 흡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

    자하르는 태운이 던전에서 나온 후에 모습에 굉장히 불안해했다.

    그동안 바위 같았던 태운의 모습이 그 사건 이후로 굉장히 불안정해졌으니까.

    사실 자하르가 말했던 몸 상태는 진짜 몸이 아닌 태운의 정신 건강에 대한 문제였다.

    태운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태운은 마정석을 들고 캡슐로 들어갔다.

    그것도 예전에 흡수하지 못했던 상급 마정석을 들고 말이다.

    ‘마정석 흡수.’

    그 순간, 태운의 정신은 마정석이 전해주는 이야기 속으로 이동했다.

    * * *

    ‘여전히 아무것도….’

    극한으로 발달된 태운의 관찰력 스탯이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감지하고 피해냈다.

    과거에는 이 공격에 반응도 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흡수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어쩐지….’

    태운은 후속타도 감지하는 데 성공했고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그때는 피하지 못한 게 정상이었군….’

    시각, 후각, 청각이 사라진 상태다.

    느낄 수 있는 것은 촉각뿐이니 그 당시에는 피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불편하군…. 마력 실을 퍼트려서….’태운은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하기 위해 마력 실을 퍼뜨려 적의 위치를 가늠했다.

    ‘뭐야…. 적이 아니었잖아?’

    자신이 있는 공간에 생명체는 자신밖에 없었다.

    태운을 공격한 것은 이 공간 자체였다.

    태운은 마력 실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이 공간의 특징을 유추했다.

    ‘문은 여기서 200m가량 떨어져 있어. 거기로 가기 위해선 많은 함정들을 피해내야 해.’날아다니는 날붙이나, 길 위에서 진자 운동을 하고 있는 거대한 둔기들, 달리기 게임을 연상시키는 함정들이 있었다.

    그런 달리기 게임을 연상시키는 함정이 있는가 하면 팔뚝만 한 가시를 발사하는 함정도 있었다.

    지금은 가만히 있지만 다가가면 함정이 발동할 것이다.

    가시 끝에 상당한 불길함이 느껴지는 걸로 봐선 맹독이 발라져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이 함정이 제일 뭐 같군….’

    이 방의 벽, 천장, 바닥이 모두 태운을 죽이려 들었다.

    시간이 좀 지날 때마다 돌이나 가시를 쏘아내는 이 공간 자체가 함정이었다.

    이것이 태운이 이 공간에게 공격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다.

    ‘뭐….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문을 나가야겠지.’태운은 함정이 득실거리는 길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실험 먼저, 하이 프로텍트.’

    태운은 하이 프로텍트를 사용해 날붙이의 앞길을 막아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막히기는커녕 부딪히지도 않고 통과해 버렸다.

    ‘역시… 쉽게 풀어갈 수는 없나…. 일단 부스트는 통하는 것 같네. 그나마 다행이야.’태운은 간단한 테스트를 끝내고 앞으로 나아갔다.

    이런 함정이 많은 곳에서는 몸의 균형과 긴장감을 항상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공격에 반응할 수 없다.

    태운은 날아오는 날붙이를 고개만 살짝 움직이며 피해냈고 거대한 둔기들도 타이밍에 맞게 걸어가 피해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시 공격해오는, 방이 쏘아내는 바위도 피해냈다.

    ‘문제의 가시다.’

    이 가시는 피할 수 없다.

    앞으로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수십 개의 가시들이 태운을 죽일 기세로 날아들 것이다.

    맹독이 발려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에 스치기만 해도 게임 오버다.

    ‘그럼…. 가시가 닿기 전에 통과한다.’

    태운은 폭발적인 스타트를 위해 다리를 굽혀 다리 근육의 텐션을 끌어올렸다.

    ‘오버 부스트.’

    펑, 소리가 난 것만 같았다.

    태운이 앞으로 조금 나아간 순간 가시들이 날아왔지만, 태운은 엄청난 속도로 그 가시들의 사거리에서 벗어났다.

    태운은 그 상태로 문까지 달렸다.

    그 순간, 함정들은 모두 작동을 정지했다.

    ‘후….’

    태운은 오버 부스트를 해제하고 벽에 기대 한숨 돌렸다.

    ‘역시 오버 부스트는 너무 몸에 부하가 심해…. 3초도 안 썼는데 몸이 욱신거려….’이번 몸의 주인도 신체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시각이 없으니 상태창을 확인할 수도 없고…. 그래도 움직여본 결과 대충 체력과 근력이 30을 넘지는 않는 거 같네. 일단 문을 넘어가 보자.’태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문고리를 잡고 돌린 순간 불이 켜졌다.

    ‘아니, 애초에 시각이 없었으니 시각이 돌아왔다고 해야 하나?’태운의 잃어버린 감각들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각을 시작으로 후각에 청각까지 돌아왔다.

    감각이 모두 돌아오자 태운은 이 공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죽인다!”

    “애송이가 제법인데!”

    그곳은 수많은 관중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콜로세움의 중앙이었다.

    [젊은 도전자! 헥티르! 그가 무감각의 제1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진행자까지 있는 제대로 된 경기의 모습이었다.

    “이게 뭐야…?”

    그 순간, 태운의 머리에 몸 주인의 기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보의 양이 상당해 태운은 두통을 호소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3초도 지나지 않아 모든 기억이 태운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헥티르…. 범죄자였군.’

    헥티르는 도적 무리의 대장이었다.

    도적 무리의 대장이었다고는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의적이었다.

    ‘탐관오리들의 재산을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라의 전쟁이 있을 때마다 의용대를 만들어 전쟁에 참여했다…. 뭐, 이 정도면 범죄자가 아니라 공신이야.’헥티르는 그렇게 살다가 한 부패한 영주를 죽여 지명수배범이 되고 잡혀서 사형수가 되었다.

    사형수가 되어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콜로세움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면 석방이라는 말을 듣고 이곳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때 태운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헥티르의 후회: 헥티르는 인생을 살면서 후회할 선택을 너무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콜로세움을 떠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선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십시오.]

    ‘헥티르의 후회…?’

    태운은 굉장히 추상적인 임무를 보고 당황했다.

    지금까지는 ‘살아남으십시오.’, ‘헤온 왕국을 무너뜨릴 기반을 마련하시오.’ 등의 직관적인 임무들이 나왔다.

    ‘기회를 만들어달라…. 콜로세움을 클리어하라는 뜻인가?’그때, 진행자의 말이 태운의 귀에 꽂혔다.

    [내일은 우리의 헥티르가 무감각의 제2 시련에 도전합니다! 내일도 기대하십쇼!]

    “무감각의 제2 시련…?”

    시각, 청각, 후각까지 막아놓고 더 할 것이 남았다는 것인가?

    ‘함정의 난이도가 더 어려워지는 건가? 아니면 남은 감각도 빼앗는 건가? 아니…. 그건 지금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내일이 되면 알게 되겠지.’태운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헥티르의 인생의 후회는 뭐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뭐지?’현재 헥티르와의 동기화율은 20%.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은 할 수 있는 단계다.

    그는 의로운 일을 하다가 사형수가 되어 죽었다는 것 때문에 이렇게 마정석에 붙어 있을 인물이 아니다.

    헥티르의 감정을 일부분이나마 느끼고 있는 태운은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뭘 하든 하겠지. 일차적인 목표는 그거다.’

    [세이브 포인트에 도달했습니다. 세이브하시겠습니까?]

    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브되었습니다. 다시 마정석 흡수를 사용하면 이곳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크윽!”

    세이브를 완료하자 경비병 4명이 태운을 제압했다.

    창촉이 U자로 된 창으로 태운의 목을 압박하고 양팔을 봉쇄해 저항할 수 없게 만들었다.

    “따라와!”

    태운은 그 상태로 독실에 끌려갔다.

    드르륵! 쾅!

    독실에 집어넣어 진 태운은 나무로 된 딱딱한 침대에 앉아 준비된 식사를 했다.

    식사는 사형수에게 제공되는 것치고는 나름 괜찮았다.

    딱딱한 빵과 조금이지만 고기가 들어간 수프, 거기에 나름 싱싱해 보이는 샐러드까지.

    ‘조금이라도 제대로 먹고 관중들에게 재밌는 볼거리를 제공하라는 의미겠지.’태운은 마침 출출했기에 그것들로 적당히 허기를 채웠다.

    그러고는 침대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아까 감각이 없어지고 마력 실을 통해 세상을 보았을 때… 뭔가 이상하게 편했어.’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기에 생기는 답답함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편안했다.

    ‘눈을 감고 편안하게 마력 실을 퍼트린다.’내일도 무감각의 시련이라 했으니 시각, 청각, 후각은 물론이고 어쩌면 촉각까지도 없어질 수 있다.

    촉각이 없어지면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질 알 수 없으니 마력 실의 감도를 더욱 끌어올려야만 한다.

    태운은 그날 잠도 자지 않고 마력 실의 감도를 높이기 위해 훈련했다.

    그리고 다음 날 9시

    “헥티르, 나와라. 콜로세움에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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