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태운이 설구 마을에 도착하고 약 20분 정도가 지나자 헌터들과 군인들이 도착해 포위망을 형성하고 구출된 주민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또 10분 정도가 지난 후 헌터 협회의 헌터들의 추가 지원 덕분에 배반자 완전 소탕에 성공했다.
사망자는 40여 명, 태운과 김수백 헌터가 힘을 써준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업적이었지만 태운은 이가 갈렸다.
전보다 파견된 배반자 전사들의 수도 적었고 자신의 힘도 강해졌다.
더 적은 피해로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황이 종료된 후 가만히 쉬고 있는 태운에게 김수백이 다가왔다.
“감사했습니다. 오늘도…. 그때도….”
“예? 그때요?”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전 헌터 협회 소속 C급 헌터인 김수백이라고 합니다.”“아, 김수백 헌터님이셨군요. 협회 직원을 통해서 들었습니다.”홍대 테러 사건 당시 자신을 구해준 것 때문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때 당시 태운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 답을 주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난 후에 답을 주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깜빡하고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었는데 답이 없어서….”“아, 죄송합니다. 제가 최근에 일이 좀 많아서 깜빡했군요.”김수백은 태운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덕분에 산 목숨인데….”
“그래서 용건이 뭐죠?”
김수백은 단순히 감사를 표하러 온 것이 아닌 듯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럼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김수백은 순간 표정이 바뀌며 진지해졌다.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예…?”
“태운 씨의 강함은 뭔가 다른 헌터들의 강함과 달랐습니다. 폭발적인 강함과 부드러운 강함…. 게다가 태운 씨라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도 잘할 거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흐음….”
태운은 김수백의 말을 듣고 그를 관찰했다.
김수백
LV: 32
마나 총량: 147,493
체력(54) 근력(53) 민첩(32) 지력(23) 용기(8) 의지(12)
특성
수문장(LV.M)
어리숙한 정의(LV.1)
스킬
중급 검술(LV.6)
초급 마법(LV.3)
용기(LV.M)[S]
“…안타까워.”
“예?”
태운은 그의 상태창을 본 후의 감상이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그만큼 그의 상태가 안타까웠던 것이다.
‘사실 이게 엘리트 코스를 타지 못한 헌터의 표본….’한국의 헌터 아카데미는 명운 헌터 아카데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 체계가 제각각인 헌터 아카데미가 수십 개나 있다.
집에 돈이 없다든가,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교육 체계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다른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간다.
여기서 문제는 다른 아카데미의 교육 체계는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 비해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만약 해당 아카데미의 교육 커리큘럼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크게 줄어든다.
‘이 정도 스킬만 배우고도 C급 헌터가 될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야.’그가 지금 배운 스킬은 평범한 검술과 마법 조금이다.
이 정도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명운 헌터 아카데미에선 챌린저 등급에도 널렸다.
‘명운 헌터 아카데미가 양성이라면…. 다른 아카데미는 양산이다. 좋은 재목을 버려놨어.’태운은 김수백이 안타까워서라도 그를 키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도 걸지 않고 가르쳐줄 생각은 없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전 헌터가 되면 길드를 만들 겁니다. 일반적인 길드와는 방향성이 다른 길드죠. 그 어떤 길드보다도 위험하고 힘들 거고 수익은 그에 비해 훨씬 낮을 겁니다.”
“예.”
“그 길드가 만들어지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제 길드에 들어오세요. 그게 조건입니다.”태운은 배반자들을 죽이고 무너뜨리는 목표를 가진 길드를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길드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선한 성향을 가짐과 동시에 의지가 뛰어난 인재가 있어야 한다.
태운은 그의 숨겨진 특성을 보고 그에 대해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어리숙한 정의(LV.1): 기본적인 성향은 선, 큰 계기가 없는 한 성향이 바뀔 일은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정의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자신만의 정의를 확고히 설정하면 이 특성은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이 정도면 믿어볼 만하지.’
* * *
“나 진짜 각성한 거 맞아?”
“맞다니까 그러네.”
태운은 윤아를 데리고 각성 여부 측정소로 가서 각성 사실을 확인했다.
윤아의 마나량은 약 150,000이다.
딱 대한민국 각성자 마나 평균이었다.
사실 태운은 설구 마을에서 돌아온 후 관찰을 통해 윤아의 각성 사실을 확인했다.
윤아는 굉장히 희귀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특성은 ‘연금술사’다.
무언가를 섞어 다른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주요 특징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만들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포션 같은 걸 만들 수도 있는 거지.’수많은 발명품을 만든 엘레나도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시키는 체력 포션이나 소모된 마나를 채워주는 마나 포션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런 것을 만들 가능성을 보여주는 식물이나 물질이 발견되긴 했지만, 항상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엘레나는 항상 말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무슨 과정이 필요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걸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어쩌면 윤아가 헌터 산업에 큰 파문을 불러올지도….’윤아가 가끔 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나름 똑똑한 편이다.
그녀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연금술사라는 특성이 어떤 보정 효과를 내줄지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들떠 있는 태운과 달리 윤아는 뭔가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그럼 나도 헌터 되는 거야?”
‘아….’
윤아는 각성자가 되면 헌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인터넷을 보면 각성자가 되고도 헌터가 되어 국가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가진 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였다.
“지금 지구의 인구는 100억이 넘었어.”
던전에서 나온 물질 덕에 인류의 삶이 풍요로워졌고 마찬가지로 인구수가 17년 만에 대폭 상승했다.
“각성자는 10명에 한 명꼴로 나와. 그 사람들이 전부 헌터가 된다면 헌터가 10억 명이나 되겠지?”
“음…. 그렇지.”
“하지만 전 세계에 등록되어 있는 헌터의 수는 3억 명, 그중에 실질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헌터는 1억 명이 안 돼. 아무리 헌터라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니까.”태운은 윤아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있다.
“헌터가 되지 않아도 돼. 각성자라고 모두가 헌터가 되는 게 아니니까.”윤아가 헌터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방금 대화로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한번 제안하고 싶은 것은 있었다.
“하지만 누구는 얻고 싶어도 얻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해볼 거야?”윤아는 생각보다 자존심이 강하다.
그리고 태운을 닮아 학구열 또한 매우 높았다.
“각성자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헌터가 아니라 다른 일이 있다면 어떡할래?”
“그게 뭔데?”
“내년에 명운 공방에 입학하는 건 어때?”
연금술을 하기에 앞서 재료의 이해가 가장 중요하니까.
“공방…!”
공방이라는 말을 듣자 윤아는 눈을 반짝이며 태운을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윤아였으니 예상된 반응이었다.
“그럼 내년에 명운 공방 입학을 목표로 노력해보자.”고작 3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연금술사라는 희귀 특성이 그녀를 합격으로 이끌 것이다.
* * *
“태운아, 준비 됐느냐.”
“마정석도 넉넉하고 견갑… 돌검… 쓰레기창…. 네, 준비 끝났습니다.”설구 마을 테러 사건이 있던 날로부터 2주가 지났다.
자하르와 던전에 들어가 마정석을 입수하는 임무가 진행되는 날이었다.
물론, 태운과 자하르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협회에서 지원되는 20명의 베테랑 헌터들과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20명의 헌터 중에는 태운의 부탁으로 두 명의 헌터가 참여하게 되었다.
“태운아, 오랜만이다.”
“태운아, 잘 봐줘. 내가 배운 걸 잘 활용하고 있는지”그 둘은 믿음직한 B급 헌터인 김현우와 최근 태운에게 다양한 것을 배우고 있는 김수백이었다.
김수백과는 2주간 상당히 친해져 말을 놓게 되었다.
물론, 김수백만 놓고 태운은 존댓말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둘 다 고마워요. 제 부탁에 응해줘서.”
“상관없어. 어차피 이거 아니었어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일했을 테니까.”“동감이야. 게다가 나는 너한테 받는 게 있잖아.”그때 자하르가 던전 입구 앞에 서서 스피커폰을 들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의 목표는 연구에 사용할 마정석들을 구함과 동시에 던전 안 몬스터의 개체 수를 조정하는 것이다.”평소엔 몰랐지만 이렇게 사람들 앞에 서니 상당히 카리스마 있었다.
“던전은 C급의 영구 던전이다.”
영구 던전은 안에서 실제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변수가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실제 난이도보다 더 높은 등급이 매겨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기에는 없겠지만 허둥거리다가 죽음을 자초하는 녀석은 없길 바란다.”자하르는 그 말을 끝으로 스피커폰을 내려놓았다.
출발이다.
“갑시다.”
태운과 김현우, 김수백도 다른 헌터들을 따라 던전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들어갔던 명운 던전과 달리 이건 영구 던전이다.
보스를 공략하고 던전의 핵까지 제거해도 닫히지 않아 던전 클로징을 할 수 없는 던전이기에 꾸준한 소탕과 감시가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골칫덩이지만, 던전 자원이라 불리는 희귀한 자원들을 대부분 이 장소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잘 쓰면 복덩이가 되기도 한다.
“라이트.”
후위의 마법사들이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 어둠을 밝혔다.
라이트가 켜지자 주변에 보이는 것은 어두운 돌벽이었다.
‘역시…. 전체적인 전력은 떨어지지만, 조직력만큼은 탑이라고 여겨지는 협회의 헌터들인가.’라이트로 불을 밝힘과 동시에 전위의 탱커와 검사들이 사방을 경계하며 후위의 웨퍼와 버퍼들을 보호했다.
그 움직임이 조금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연계되었다.
“좌측, 이상 무.”
“우측, 이상 무.”
“정면, 이상 없다. 나아간다.”
이번 공격대의 대장을 맡은 강인철 헌터가 정면을 주시하며 움직였다.
그렇게 5분 정도 움직이자 앞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이 던전의 이름은 우중충한 늪, 이 긴 동굴을 지나면 나오는 곳의 정체는 들어서자마자 사람을 찝찝하게 만드는 늪지대다.
“조심해라.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던전에 들어가서 정신을 놓는 순간 목숨을 잃는다.
늪지대에 도착하자 협회의 헌터들은 진형을 물 흐르듯이 바꿔 자하르를 둘러쌌다.
그 순간,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젠장…. 초입부터 크록커다!”
“전투 준비!”
여느 던전이라면 보스로 나올 법한 거대한 악어 모양의 몬스터 크록커.
그런 몬스터가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등장했다.
쿠구구구구!!!
“저 녀석 왜 이리 흥분했어!”
“후위 공격! 전위 버텨라!”
강인철 헌터가 오더를 내린 순간
“잠시만요!”
태운이 그들을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