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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93화 (93/379)
  • 93화

    “션, 돈도 떨어져 가는데 어디 털 곳 없냐?”“내가 아냐? 이마에 구멍 뚫어 버리기 전에 좀 닥쳐봐.”“그냥 돌아다니다가 작은 마을 보이면 털어 버리고 팔다리 멀쩡한 놈들 혀 뽑아서 광산 같은 곳에 팔아버리자고.”이 대륙의 인간 밀렵꾼들은 대부분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만만해 보이는 사람들을 잡아 광산이나 사창가에 팔곤 한다.

    가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작은 마을에 들어가 숙식을 제공받고 돌아갈 때 추적을 막기 위해 모두 죽여 버리기도 한다.

    ‘진짜 엄청난 쓰레기들이네….’

    태운은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 안에 있는 인간 밀렵꾼들의 모습을 보고 이빨이 갈렸다.

    ‘일단 5명…. 생각보다 수가 적은데…?’

    그들이 강하다 해도 마을 하나를 털기에는 부족한 숫자다.

    ‘어디 다른 곳에 동료가 있나?’

    태운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다른 사람이 보이지도, 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흠…. 일단 놓치기 전에 나가자.’

    태운은 몸을 숨긴 풀숲에서 나와 인간 밀렵꾼들의 앞을 막아섰다.

    “뭐야?”

    “야, 지갑 주웠다.”

    “덕분에 오늘은 구걸 안 해도 되겠네.”

    그들은 태운을 보고 천천히 다가왔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뽑지 않는 걸 보니 날 어지간히 무시하고 있나 보네.’그리 강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사냥꾼처럼 보이긴 하나 덩치가 크지 않고 무기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다가오면….’

    태운은 양손을 들고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 덕분에 밀렵꾼들이 태운을 더욱 경계하지 않았다.

    터-억.

    밀렵꾼이 태운의 어깨를 잡은 순간 태운은 그의 팔을 잡아 반대쪽으로 젖히고 등에 숨겨둔 검을 꺼냈다.

    “어…?”

    촥! 푸욱!

    태운의 검은 밀렵꾼의 겨드랑이를 베고 지나간 후 움직이는 방향을 바꿔 밀렵꾼의 목에 박혔다.

    “커…. 커억….”

    한 치의 망설임이나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태운은 검을 뽑으면서 그의 목에 긴 상흔을 남겼고 넘어지는 그를 발로 밟아 움직일 수 없게 했다.

    “뭐 해! 저 새끼 죽여!”

    “매직 미…. 각성자가 아니었나….”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태운은 가장 가까이 달려온 적의 공격을 피하고 그의 얼굴에 검을 박아넣었다.

    당연히 즉사, 직후 검을 버리고 그의 무기를 빼앗아 들고는 앞에 있는 녀석들을 위협했다.

    ‘120cm 정도의 장검, 가장 익숙한 종류의 검이다.’태운은 동료 둘이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은 것을 보고 우물쭈물하는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으…. 으아악!!!”

    카가각….

    밀렵꾼은 겁을 집어먹고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둘렀고 태운은 검을 들어 공격을 흘려냄과 동시에 밀렵꾼을 베었다.

    그의 복부는 깊고 길게 갈라져 안에 있는 것을 토해내고 죽었다.

    “죽어!!!”

    그 직후 다른 녀석에게 날아온 공격은 검을 놓고 자세를 낮춰 피했고 그 상태로 일어나며 적에게 태클을 걸었다.

    자세가 무너지는 적의 뒤로 돌아가 목을 잡고 꺾었다.

    뚜두둑.

    그러자 밀렵꾼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이제 남은 밀렵꾼은 한 명뿐이다.

    “으, 으어…… 이… 개, 개 같은 놈…. 쓰레기 같은 새끼….”그는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겁에 질려 태운에게 욕설만 내뱉고 있었다.

    태운이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죽이는 것조차 꺼려졌다.

    “그나저나 마법을 안 쓰고 싸우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가끔은 이렇게 싸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클리어 알림이 들려왔다.

    [클리어하셨습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흡수.”

    태운이 흡수를 외치자 천천히 세상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때 태운에게 욕을 하던 밀렵꾼의 말에 충격적인 단어가 섞여 들려왔다.

    “레일로프…. 그 기사 놈이 대장을 죽이지만 않았다면 너 같은 녀석한테 당하는 일은 없었….”“뭐…. 레일로프…? 잠깐! 레일로프를 어디서 봤는데!”태운은 가도의 몸으로 가르쳤던 레일로프의 이름을 듣고 급하게 그에게 물었지만 이미 세상은 무너지고 없었다.

    태운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흰 배경과 사냥꾼 칸터의 영혼뿐이었다.

    “…칸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칸터는 자신이 감사를 표하기도 전에 질문을 한 태운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이 대륙에 테렌 왕국과 헤온 왕국이 있었습니까?”“테렌 왕국은 이미 멸망한 지 5년은 더 됐습니다. 헤온 왕국은 헤온 제국이 되었습니다.”

    “역시….”

    지금까지 흡수했던 마정석 중에서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 마정석이 있었다.

    이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은 굉장히 많았다.

    그것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 말고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과 다른 세계에서 만들어진 마정석이 지금 태운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왔다는 것이다.

    “저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빨리 물어보는 것이….”“아, 그렇군요. 음…. 당신이 살던 마을은 대륙에서 어느 쪽에 있죠? 주변에 구분할 수 있는 큰 지형이라든가….”“대륙의 남서쪽에 있소. 대륙에서 가장 큰 산의 입구에서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걷다 보면 큰 강이 나오는데 강의 하류로 2일 정도 걸으면 마을이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 가족들을 죽인 그 녀석들을…. 제가 더 감사합니다….”칸터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태운의 질문에 대답해주기 위해 겨우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다.

    [스킬 ‘함정 제작’을 획득합니다.]

    [스킬 ‘함정 제작’이 특성 ‘정직한 사냥꾼’에 흡수됩니다.]

    [특성 흡수에 따라 특성 ‘정직한 사냥꾼’에 함정 제작의 효과가 포함됩니다.]

    [근력 스탯이 ‘1’ 오릅니다.]

    [체력 스탯이 ‘1’ 오릅니다.]

    그 상태로 흡수가 완료됐고 태운은 자하르의 연구실로 돌아왔다.

    “후….”

    태운은 캡슐 밖으로 나와 자하르에게 향했다.

    “자하르 선생님, 마정석 구하러 던전에 가신다고 했죠?”

    “그럴 생각만 있었네.”

    특별한 마정석은 다른 세상에서 만들어졌다.

    그것이 만약 이 세계로 왔다면 어디를 통해서 왔겠는가?

    “어디로 갈지는 정했습니까?”

    “아직이네.”

    “그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혹시 가도의 마정석과 방금 제가 흡수한 마정석, 같은 던전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어떻게 알았지?”

    다른 세계가 있다면 그곳과 지구를 연결해주는 것은 던전뿐이지 않은가.

    “마정석을 구하러 갈 던전은 그곳으로 정하는 것 어떤가요.”

    “음…?”

    “그리고 저도 그곳에 들어가겠습니다.”

    * * *

    “오빠, 오빠 앞으로 우편물 왔는데?”

    “그래? 뭐 올 게 없을 텐데….”

    “그러게.”

    태운이 간만에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집으로 한 통의 우편이 도착했다.

    마침 집으로 돌아온 윤아가 태운에게 우편물을 던져주었다.

    “근데 한국 헌터 협회에서 왔어. 저번에 던전에 들어갔던 거 때문에 연락 온 거 아니야?”“음…. 하긴 여간 큰 사건이 아니었으니까. 대충 정보 수집을 위해 소환장이 온 거겠지.”지-익.

    태운은 우편을 뜯어 내용물을 꺼내 읽었다.

    “소환장 양식이 아니네? 종이가 엄청 화려한데?”어느새 옆으로 와서 같이 종이를 보고 있는 윤아가 한마디 거들었다.

    “표창장 수여식이 있으니… 와달라는데?”

    “와! 헌터 협회에서 오빠한테 표창장 준다는 거야? B급 헌터들도 헌터 협회에서 표창 못 받던데?”

    “야야, 왜 네가 더 좋아하냐?”

    태운도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류라고 불리는 현역 B급 헌터들도 쉽게 받지 못하는 표창장을 가지고 있으면 헌터로 활동하면서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럼 일단 그날은 일정을 비워놔야겠네.”

    딩동.

    그 문서를 읽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

    “내가 나가볼게.”

    소파에 앉아 있는 태운 대신 서 있던 윤아가 현관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윤아가 현관에서 얼굴을 내밀고 태운을 찾았다.

    “이거 너무 무거운데? 내가 못 옮겨.”

    “알았어. 내가 나갈게.”

    태운이 밖으로 나가자 윤아의 키를 훌쩍 넘기는 큰 상자가 하나 보였다.

    윤아가 못 옮기겠다고 한 이유가 있었다.

    태운이 그 상자를 들자 상자에서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

    태운은 상자를 거실로 옮긴 후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검, 창, 건틀릿 등 다양한 무기가 들어 있었다.

    “이러니까 못 들지…. 근데 이게 다 뭐야?”

    태운은 그중 하나를 들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무기에 박힌 이니셜을 보고 기함했다.

    “L.J.K…. 임정국 장인!”

    한국 최고의 장인, 모든 헌터들이 무구의 제작을 의뢰하고 싶어 하는 장인이다.

    일 년에 두 개씩만 장비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름은 굉장히 유명하지만,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태운은 그중 하나를 들어 관찰했다.

    쓰레기

    등급: B

    종류: 언월도

    대한민국의 무구 장인 임정국이 만든 무기, 청룡언월도를 보고 심심풀이로 만들었지만 평범한 장인들은 일생에 한두 번밖에 만들지 못할 명작을 만들었다.

    하지만 임정국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쓰레기라는 이름을 지었다.

    특성

    *사용자는 무기의 무게를 +-50%까지 조정할 수 있다.

    *사용자는 창 촉의 모양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인챈트의 효과가 증폭된다.

    굉장히 좋은 특성을 가진 무기였다.

    그럼에도 임정국은 이 무기를 쓰레기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한테 왜 무기를….’자신이 유명해진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이다.

    반년에 무기를 하나밖에 만들지 않을 정도로 한 무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 일주일 만에 이렇게 많은 양의 무기를 만들었다?

    ‘아무튼 나야 좋지.’

    자신은 창과 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급의 무기는 검뿐이다.

    이 무기들이라면 현역 헌터로 활동하면서도 꿀리지 않는 무기들이다.

    “이 밑에 편지가 있네.”

    무기들을 하나씩 둘러보던 중 상자 밑에 깔려 있던 편지를 발견했다.

    -돌검의 진가를 알아보다니 만나보고 싶군. 이것들을 줄 테니까 언제 한 번 공방으로 와라.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 것들이지만 쓸 만할 거야.-

    편지라고 하기도 애매한 쪽지에 간단한 용건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돌검을 만든 사람이 임정국이었어?’

    확실히 엄청난 무기다.

    이것을 만든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그것은 임정국밖에 없었다.

    태운은 돌검의 상세 설명을 상기했다.

    돌검

    등급: B- (성장형)

    종류: 도검

    유명한 일류 장인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고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무구전에 출품했다.

    전대섭의 부탁을 받아 출품했다.

    …….

    전대섭과 임정국은 친분이 있으니 부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니 딱 들어맞았다.

    이 무기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도 전에 또 초인종이 울렸다.

    “오빠! 이번에는 헌터 용품인데? 포션이랑 던전 안에서 쓰는 소모품들이 들어 있어.”딩동.

    “이번에는 한우! 누구야? 누가 보내는 거야?”“공기 청정기인데? 필요했었는데 잘됐다.”

    “이건 영양제들인데? 도대체 누가 보내는 거야?”비싼 가격의 물품들이 계속해서 택배로 오자 태운은 이 물건들이 잘못 배송된 것이라 생각하고 택배사에 연락하려 휴대폰을 들었다.

    그 순간 문자가 왔다.

    전대섭- 내 나름의 성의다. 잘 먹고 잘 써라.

    “전대섭 선생님…?”

    이것들은 전부 강원도 던전 사건에 죄책감을 느낀 전대섭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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