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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92화 (92/379)
  • 92화

    * * *

    “야…. 저거 강태운 맞지?”

    “그런 거 같은데?”

    “뭐야, 너도 어제 명운전 봤어?”

    “당연하지. 그걸 안 보면 한국인 맞냐?”

    태운은 버스를 타고 훈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냥 택시 탈 걸 그랬나….’

    본인 나름대로 숨긴다고 선글라스를 쓰긴 했지만 워낙에 임팩트가 커서 숨겨지지 않았다.

    ‘뭐…. 나중에 헌터가 되면 전국에 있는 사람 중에 날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무슨 자신감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무조건 그렇게 될 자신이 있었다.

    태운은 훈련장 근처의 정거장에서 내려 훈련장으로 향했다.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어 있으니 기척을 숨기고 모습을 가리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필수였다.

    태운은 능숙하게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안에는 이미 모두가 도착해 있었다.

    “다들 도착했네?”

    “네가 그렇게 좋은 장비라고 하니까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기대해도 좋을 게야.”

    태운과 찬영이 대화를 하자 처칠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놀랐잖아요.”

    처칠은 항상 느닷없이 나타나고 사라져 사람을 놀래주곤 한다.

    무슨 마법을 쓰는 것 같지만 마나가 느껴지지도 않는다.

    ‘한번 연구해보고 싶은데….’

    “알려주진 못한다네.”

    역시나 처칠은 태운의 생각을 읽고 대답했다.

    “생각 좀 그만 읽어요.”

    “허허, 알겠다네.”

    오늘 처칠은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럼 약속대로 장비를 준비해주겠네.”

    처칠은 캐리어를 열었다.

    그 안에는 붉은 견갑과 푸른색의 보석이 박혀 있는 팔찌, 평범해 보이는 반지와 손바닥만 한 큰 구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와….”

    “와….”

    태운과 신가연의 입에서 동시에 감탄이 터져 나왔다.

    태운은 관찰력으로 인해 이 물건의 비범함을 알아챘고 신가연은 그동안 수많은 명품을 봐왔기에 이 물건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거…. 진짜 저희 줘도 되는 거 맞아요?”

    신가연은 장비들을 보고 처칠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에게서는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긴 했지만, 행색을 보면 그리 잘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딱 적당히 사는 사람 정도의 모습이었다.

    “괜찮네. 어차피 이것들은 내 물건이 아니니.”자신의 물건이 아니다?

    “훔친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누가 맡긴 물건이고 그 녀석도 나눠주는 거에 동의했으니 말이야.”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태운은 처칠에게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장비들이 탐나지 않은 것이 아니었기에 조용히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감사를 전달했다.

    “그럼 강태운 몫부터 주마.”

    처칠은 태운에게 짙은 붉은색을 띠는 견갑을 건네주었다.

    “…굉장하네요.”

    태운은 그것을 받자마자 관찰을 하지 않아도 엄청난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을 받아든 태운은 견갑을 관찰했다.

    용장의 견갑

    등급: A+

    종류: 갑옷

    과거 세상을 구한 영웅의 유물이다.

    본래 C급에 불과한 아이템이었지만 이 갑옷을 착용한 영웅과 함께 수많은 전선을 누비며 강제로 성능이 높아졌다.

    하지만 내구성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오히려 수많은 적의 공격에 적응하여 다양한 공격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한다.

    특성

    *30분에 하나씩 보호막이 생성된다. 최대 5개 중첩 가능*속성 공격을 차단한다.

    *견갑에 충격이 가해지면 적에게 충격파를 발산한다.

    “허…. 이거 진짜….”

    태운은 장비의 세부 특성을 확인하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지는 찬영에게, 팔찌는 신가연에게, 구슬은 서혜연에게 주어졌다.

    “음…. 좋다는 건 직감으로 알겠는데…. 혹시 효과가 어떤 건지….”그들은 태운처럼 관찰력 스탯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감정 스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반지 먼저 설명해주겠네.”

    처칠은 찬영에게 준 반지의 설명 먼저 시작했다.

    “그 반지의 이름은 진화의 반지라고 하네. 자신의 실력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실력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재생해주지. 성장의 길을 찾는 자네에게 적합하다 생각되어 가져왔네.”

    “…! 정말 감사합니다!”

    찬영은 평생 원하던 장난감을 얻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 누구도 쉽게 보일 수 없는 향상심을 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태운조차도 잠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거…. 방심하고 있으면 프로 헌터로 다시 만났을 때는 내가 더 약할 수도 있겠는데?’처칠도 그 눈빛을 읽었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그 팔찌의 설명을 하겠네.”

    그다음은 신가연의 팔찌였다.

    “이 팔찌는 겁쟁이의 팔찌야.”

    “겁쟁이의 팔찌요?”

    이름만 들어서는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겁쟁이는 실행하기를 두려워하지. 자네는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게 지금 자네에게 제일 필요한 걸 거야.”

    “흠….”

    “이 팔찌의 효과는 꽤 재밌다네. 자네가 인지하고 있는 미래를 현실과 매우 비슷하게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지.”신가연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본 처칠의 안목에 경악했다.

    “자네는 재능을 아주 조금도 피워내지 못했어. 시간을 너무 많이 버리고 말았지. 이걸 잘 활용하면 그 버려진 시간을 메울 수 있을 걸세.”지금까지는 각 인물에게 딱 맞는 장비들이 주어졌다.

    다음은 서혜연의 차례였다.

    “일단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군. 자네는 아직 역량이 부족해서 좋은 장비를 주기에는 어렵더군. 좋은 아티팩트를 줘도 지금의 실력으로는 활용하지 못할 테니 말이야.”“아니에요. 죄송하실 거 없어요.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서혜연은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처칠이 서혜연에게 장비에 대한 설명을 해주려 했으나 서혜연이 말을 꺼냈다.

    “근데 이 장비가 뭔지 알 거 같아요.”

    “흐음, 그런가?”

    서혜연의 말에 처칠의 눈이 씰룩거렸다.

    “마나를 저장해놓을 수 있는 구체인 것 같은데 아닌가요? 이렇게…. 띄울 수도 있고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죠.”서혜연은 처음 본 아티팩트도 평소에 쓰던 물건처럼 능숙하게 다뤄냈다.

    그 모습을 본 처칠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자네를 과소평가했군. 오래 불탈 수 있는 좋은 소재를 이미 찾았어.”서혜연은 처칠과 만나 조언을 들은 뒤, 마법 훈련의 비중을 줄이고 자하르의 연구소에서 아티팩트에 관련한 훈련에 더욱 집중했다.

    그녀는 그동안 100개에 가까운 아티팩트를 사용해보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마나양이 적어 특정 아티팩트와 거부 반응을 잘 일으키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훈련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마나양이 적을 뿐만 아니라 마나를 잘 다루는 마법사 계열의 재능을 타고났다.

    마나가 적으면서 마법의 재능을 타고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에 전대섭의 추천을 받고 자하르의 연구소에 갈 수 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필요한 종류의 아티팩트예요.”서혜연은 다양한 아티팩트를 사용하며 싸우는 전투 방식을 구상하고는 있었지만 아티팩트의 가격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그녀는 태운과 달리 엄청 뛰어난 재능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능력을 가지지도 못했기에 자하르의 연구소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니까.

    자신이 연구소에서 받아 가는 것은 아티팩트를 다루는 실력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가장 비싼 종류인 마나 보관 아티팩트를 얻게 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구상하던 자신의 최종 아티팩트 세트에 가장 필요한 것이 마나 보관 아티팩트니까.

    “그럼 전 이거 한번 써보겠습니다.”

    “그럼 나도 한번….”

    찬영은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고 신가연도 팔찌를 찼다.

    그러곤 각 아티팩트의 사용법대로 사용했다.

    그러자 찬영은 잠깐 얼굴이 진지해지더니 깜짝 놀라곤 급하게 창을 들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보이는 이미지가 찬영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신가연도 구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자신이 인지할 수 있는 미래에 있을 전투를 시뮬레이션해주는 팔찌…. 좀 탐나긴 하네.’준비벽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상황을 상상해 보는 태운에게는 탐나지 않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서혜연도 마나 보관 아티팩트에 마나를 저장하고 빼서 쓰는 것을 연습하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네.”

    태운도 그들을 보고 자신만의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처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으니까.

    약 두세 시간 동안 훈련을 한 후, 태운은 자하르의 연구소로 가기 위해 훈련장을 나왔다.

    “허…. 벌써 선선해지기 시작했네.”

    지금은 9월 말, 가을이다.

    3개월 뒤, 익스퍼트 수료를 마친다.

    즉, 졸업이다.

    * * *

    “왔구나.”

    “예, 오랜만인 것 같네요.”

    태운은 훈련이 끝나고 바로 자하르의 연구소로 돌아왔다.

    “마침 네가 흡수할 마정석이 들어왔다.”

    “잘됐네요.”

    앞으로 졸업까지 3개월, 최대한 많은 양의 마정석을 흡수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쉬울 것 같지만은 않았다.

    “흐음…. 곧 마정석이 떨어질 것 같은데…. 측정기를 가지고 던전에 들어가 봐야겠군.”

    “측정기요?”

    태운이 흡수하는 특별한 마정석은 평범한 마나 측정기로는 구분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모아두셨던 특별한 마정석은 어떻게 찾으셨어요? 구분을 못 할 텐데.”“아, 그건 내가 만든 마나 불순물 측정기로 구분했다네. 보통 마정석의 마나는 99% 이상이 순수한 마나로 되어 있지. 하지만 특별한 마정석은 조금이지만 불순물의 비율이 높았지. 나는 그 불순물이 영혼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특이점이 있는 것을 분류해두었네.”

    “오….”

    괜히 세계 최고의 연구가로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세세한 것까지도 놓치지 않고 연구한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일단 확실하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만 자네에게 흡수하게 했네. 나중에 확실하지 않은 것을 보여줄 테니 구분을 부탁하겠네.”“저한테 투자하시는 게 얼만데 그 정도도 못 하겠습니까.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태운은 짐을 내려놓고 기계로 들어가 마정석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마정석을 흡수했다.

    * * *

    “음…. 여기가 어디지?”

    오랜만이다.

    마정석을 흡수했을 때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 오랜만이었다.

    “일단 숲인 건 확실한데…. 무기 상태 좀 확인해 보자.”태운은 자신의 무기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훌륭하진 않았지만, 꽤 깔끔한 장비들이었다.

    철판이 덧대어진 가죽 갑옷과 손잡이 포함 60cm 정도 되는 잘 손질된 검에 나름 잘 만든 투척 무기까지 있었다.

    ‘이런 걸 볼라라고 했나…?’

    볼라, 끈에 돌을 묶어 던져 대상의 다리를 봉쇄하는 무기다.

    ‘예전에 15 소년 표류기에서 본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지….’그때, 태운의 머리로 몸 주인의 기억이 들어왔다.

    “이름은 칸터, 사냥꾼이었고…. 나름 유명했네.”그 순간, 태운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칸터는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치던 중 인간 밀렵꾼들과 마주쳤습니다. 겨우 몸을 숨겨 달아났지만 밤새 자신을 노리는 짐승들과 몬스터 때문에 죽을 고비는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을에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타 버린 마을과 죽어 있는 가족들이었습니다. 칸터는 그렇게 복수의 이빨을 갈며 대륙을 방황했고, 결국 밀렵꾼들을 만나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참…. 들어올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네.”

    마정석을 통해 들어온 몸의 주인 중에 기구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는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인간 밀렵꾼들에게 겁먹지 않고 맞섰다면 죽더라도 자신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이다.

    자신의 눈앞을 지나간 적이 자신의 동료와 가족을 처참히 죽였으니까.

    [인간 밀렵꾼을 마을로 가지 못하도록 막으십시오.]

    “이런 임무라면 어렵지 않지.”

    그때, 마침 태운의 시야에 인간 밀렵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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