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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86화 (86/379)
  • 86화

    * * *

    명운전의 개인 토너먼트는 작년까지만 해도 명운전 성적 상위 8팀의 대표가 한 명씩 나와 8강 전으로 진행되었지만, 올해 명운전은 각 팀 대표가 2명씩 나와 16강으로 확장되었다.

    그 덕분에 토너먼트는 4일 차에서 5일 차로 떨어져 나왔고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명운전의 토너먼트를 더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열광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열기는 태운이 경기장에 서 있는 지금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K……KO! 적사단의 셀 선수가 순식간에 KO 당했습니다!]

    [강태운 선수!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강태운은 트롤의 피 덕분에 늘어난 근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해 셀에게 돌진, 방심하고 있는 그의 턱에 공격을 가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가해진 공격 탓에 셀은 반격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스탯 5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태운은 새로 얻은 특성인 트롤의 피 덕분에 올라간 스탯의 성능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스탯이 올라갈수록 하나의 스탯을 올리기 힘들어지지만, 그만큼 그 스탯은 강함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근력 스탯 30인 사람이 1 얻는 것보다 80인 사람이 1 얻기 더 어렵지만, 그것을 얻음으로써 상승하는 힘의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누구는 하나 얻기도 힘든 스탯을 단번에 10개나 얻었다. 그것도 올리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근력과 체력 스탯이야.’태운은 이 정도 스탯에 자신이 만든 효율 높은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한다면 신체 능력으로 구찬영은 물론 정일준에게도 밀리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경기는…. 뭐, 예상하고 자시고도… 필요 없겠네.”

    [다음 경기는 10분 후 B블록 첫 경기인 시저 선수와 장현수 선수의 경기입니다!]

    적사단의 시저와 월령의 장현수, 사실상 결과가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다.

    애초에 이번 토너먼트는 정일준, 시저, 구찬영, 강태운, 연정아 이 5명이 1위를 쟁탈하는 형세기 때문에 다른 경기는 굳이 볼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한 명은 예외지.’

    [B블록 1경기 직후 A블록 2경기인 마령의 신가연과 흑단의 장민의 경기가 진행됩니다!]

    태운의 현실 세계의 첫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경기는 봐야 하지 않겠는가.

    * * *

    예상대로 시저와 장현수의 경기는 압도적이었다.

    장현수는 룬의 주인으로 작년과는 달리 상대방에게 디버프까지 걸 수 있었지만, 시저는 그것을 전부 무시하고 달려들어 장현수를 KO 시켰다.

    그리고 태운이 기다리고 있던 신가연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신가연은 여느 때와 같이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메테리얼을 소환하고 상대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는 흑단의 리더인 장민, 마법사와 최악의 상성을 가지고 있는 어쌔신 계열의 각성자다.

    어쌔신 계열의 각성자는 대부분 범죄자를 제압하는 일에 투입될 만큼 사람을 상대하는 데 큰 강점을 보인다.

    하지만 강태운이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신가연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중력 강화, 자기력 강화.’

    신가연은 자신의 주변에 중력 강화 마법과 자기력 강화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을 모르고 접근한 장민은 급격히 무거워지는 몸과 바닥으로 끌려가는 무기 탓에 당황했다.

    챙그랑!

    장민은 가볍게 쥐고 있던 단검을 바닥의 자기력 때문에 떨어뜨리고 신가연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다.

    “마나 캐논.”

    신가연은 장민에게 마나 캐논을 사용해 공격했다.

    하지만 장민도 골드 A급에 이름을 올린 상대,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가속.”

    장민은 마나 캐논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신가연을 공격했다.

    물론, 단검을 떨어뜨린 상태라 맨손으로 그녀를 제압해야 했지만, 마법사를 상대로 거리를 좁혔다면 그 정도는 할 자신이 있었다.

    장민은 신가연의 어깨를 파고들어 팔을 봉쇄했고 그 상태로 테이크 다운하려 했다.

    정상적인 테이크 다운 자세는 아니었지만, 체급 차이 탓과 스탯 차이 때문에 넘어지리라 판단한 장민이었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틀린 것이었다.

    “어?”

    신가연은 장민의 다리를 잡고 들어 올려 역으로 넘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에 중력 강화 마법과 마나 아머를 사용하고 어깨로 장민의 명치를 가격했다.

    쿵!

    관중석에서 들어도 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끄윽….”

    장민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겨우 버티긴 했지만 신가연의 후속타는 막을 수 없었다.

    [장민 KO! 신가연 선수의 승리로 경기가 끝납니다!]

    [신가연 선수가 보여준 테이크 다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은 몸도 잘 쓴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길드들에게 신가연 선수를 어필한 경기가 된 것 같습니다.]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준 신가연은 이번 경기로 많은 길드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것이다.

    “그럼 내 다음 경기 상대는 신가연 누나네.”태운은 자신의 상대가 신가연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 TV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B블록 2경기는 대진표만 봐도 별 볼 일 없는 경기였다.

    누가 올라와도 상관없는 그런 경기.

    하지만 태운은 그 경기를 집중해서 보았다.

    만에 하나 배울 점이 있다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마령과 월령의 경기였지만 월령은 장현수 말고 강한 사람이 없는 팀, 마령의 경기 운영에 휘둘리며 월령의 패배로 끝이 났다.

    ‘음…. 신가연 누나가 마령 멤버들한테 잘 알려준 거 같네.’신가연은 태운 덕분에 성격에 변화를 맞이하고 실력도 대폭 상승했다.

    어렸을 때부터 위에만 서 있었기에 생긴 거만함도 없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마령 멤버들의 실력 향상에 주력했다.

    [올해 학생들의 실력은 전년도보다 월등히 높은 것 같습니다.]

    [예,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유망주라고 불릴 수준의 학생은 상위 3~5명 정도인데 올해는 10명이 넘어갑니다. 내년의 마스터 등급은 포화 상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들이 모두 헌터로 활동할 2~3년 뒤의 대한민국이 정말 기대됩니다.]

    태운은 사회자와 해설이 말하는 아카데미의 수준 상승에 자신이 일조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3~40년 뒤에 헌터로 활동하지 못하게 되면 선생을 해봐도 좋을 것 같네.’나중에 헌터가 되어 성공해 부모님의 평판에 대한 진실을 파헤친 후, 은퇴하면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선생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내 롤모델은…. 허덕륜 선생님이다.’그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허덕륜 덕분에 지금의 태운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나저나…. 허덕륜 선생님께 진짜 등급을 여쭤보려고 했는데….’강원도 던전화 사건 당시 허덕륜이 보여준 힘은 결코 C급의 힘이 아니었다.

    던전에서 탈출하고 물어보려 했지만, 상황이 나오지 않아 물어볼 수 없었다.

    게다가 허덕륜의 과거 행적을 보면 C급이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고 큰 사건에 자주 연루되어 있다.

    “흠…. 진짜 말이 안 된단 말이지….”

    “뭐가 말이 안 돼?”

    “아, 아냐.”

    [A블록 3경기와 B블록 3경기가 끝이 났습니다!]

    [두 경기로 기사단의 대표인 정일준 선수와 구찬영 선수의 각 블록 4강 진출이 확정되었습니다.]

    [역시 명불허전 기사단이군요. 현재 6개의 메달을 따 언더독과 함께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언더독도 참 대단합니다. 동아리 내에서 가장 강한 강태운 선수가 부상을 당해 개인 종목에 출전하지 못했음에도 기사단과 비슷한 성적을 냈습니다.]

    [언더독의 강태운 선수가 개인 종목에 나가 금메달을 하나라도 땄다면 기사단의 우승은 이미 날아갔을 겁니다.]

    신생 동아리치고 잘했다.

    언더독은 더는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대중들도 언더독의 최종 우승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그럼 다음 A블록 4경기가 진행됩니다.]

    “그럼 다녀올게.”

    A블록 4경기 다음 B블록 4경기는 연정아의 경기였다.

    “그래, 다녀와.”

    태운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TV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경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 *

    “흐음.”

    연정아는 경기장에 들어서도 긴장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상대방은 고작 익스퍼트 골드 C급.

    본래 힘의 30% 정도만 개방해도 강태운과 비슷한 수준의 강함을 보여주는 연정아에게는 하품만 나오는 상대이다.

    [그럼! 경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은 황혼 동아리의 정신우, 그는 빠르게 달려 연정아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간결하게 검을 내질러 그녀를 공격했다.

    챙!

    하지만 연정아는 손톱을 길게 뽑아 그 공격을 막아낸 후 검을 잡아 빼앗았다.

    “아….”

    연정아는 검을 뒤로 던지고 손톱을 휘둘렀다.

    정신우는 그대로 KO, 시시한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 싸움을 흥미롭게 지켜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한국 최고의 길드인 가온의 수장, 심중현이었다.

    심중현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연정아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는 연정아의 경기를 다른 경기보다도 집중해서 보았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4명의 A급 헌터 중 한 명인 심중현이 연정아를 관심 있게 보는 이유는 그녀가 탐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흠….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든단 말이지….”분명 봐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한 것도 아니었다.

    언뜻 들어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심중현이 느낀 것은 그게 아니었다.

    “한번 알아봐야겠어.”

    심중현은 비서를 불러 집무실로 들여보냈다.

    “연정아에 대한 정보를 찾아와라.”

    비서는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서류를 꺼내 심중현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실 것 같아 2일 전에 미리 찾아보았습니다. 그럼 전 이만….”

    “빠르군. 잘했네.”

    심중현은 비서를 내보내고 건네받은 서류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흠…. 부산 출신에….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고…. 일 처리를 누가 했는지 구멍이 많네.”심중현은 서류를 넘기며 별다른 정보가 없는지 살펴보았지만, 그녀의 정보는 그야말로 백지였다.

    이름, 성별, 키, 몸무게, 주민등록번호와 소속 정도를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참…. 이렇게 백지면 이상하다는 걸 알고 뭘 추적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잖아.”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서류를 넘기다 하나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고등학생들을 죽인 배반자들을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학생이 처리했다…. 이때 그곳에 있던 사람이 연정아였어? 참 대단하다.”심중현은 그렇게 마지막 페이지로 넘어갔고 그 페이지에는 연정아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음…?”

    그는 거기서 이상한 점을 하나 포착했다.

    “입학하기도 전에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마스터 기숙사에서 살았다…? 올해 입학했고 처음 들어간 던전에서 던전 에볼루션 현상이 발생…. 익스퍼트 급으로 특별 승급전 진행….”연정아와 명운 헌터 아카데미가 연관되어 있는 내용은 꼭 하나씩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전대섭…. 이거 이상한 짓 하고 있는 거 같은데….”심중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헌터 협회보다 길드의 입지를 더 높이려는 심중현을 가로막고 있는 게 전대섭이었다.

    그는 그런 전대섭을 견제할 무언가가 필요했었다.

    “이거 잘만 하면 치워버릴 수 있겠는데?”

    심중현은 전대섭을 밀어낼 실마리를 잡았다는 것에 기대감이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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