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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84화 (84/379)
  • 84화

    * * *

    “도착이다.”

    태운은 저 멀리 보이는 골든 왕국군의 진채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몸을 돌려 자신을 뒤따라오던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자네들에게 할 말이 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지금 자신의 만용으로 수많은 이를 사지로 몰아넣고 거친 성품으로 권력을 휘둘러 충신들을 죽인 실버렌 12세를 단죄하고자 한다.”그 말이 끝나자 아주 잠깐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그 침묵은 깨졌고 병사들은 매우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니!”

    태운은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리를 쳤다.

    그러자 병사들의 시선이 태운에게 집중되며 병사들이 조용해졌다.

    “나의 뜻에 공감하지 않는 자는 이 자리를 떠나도 좋다. 다만, 실버렌 12세의 폭정과 무능함에 공감하고 새로운 왕국을 만들어보고 싶다면 이 자리에 남아 나와 같이 싸워주게!”지금 레오의 직할 부대의 병사가 아닌 징집당한 병사와 라이언 군의 병사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태운은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나라를 잃은 라이언 왕국의 백성들은 실버렌 12세의 폭정 아래 실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며 골든 왕국의 백성들 또한 실버렌 12세의 노예가 되어 풍요로운 삶을 꿈꾸지 못할 것이다.”모두가 태운의 말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였다.

    특히 라이언 군의 병사들은 지금껏 다른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자신과 크게 연관되어있다는 생각에 크게 반응했다.

    “하지만 실버렌 12세를 축출하고 다음 왕위에 오를 이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내가 보증하겠다.”태운은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는 야심가는 믿음직스럽게 보이지 않으니까.

    “이대로 도망쳐 어두운 미래를 살겠는가. 아니며 죽음을 무릅쓰고 후손들에게 강대한 나라를 물려주겠는가!”답은 정해져 있었다.

    “따르겠습니다!”

    “실버렌 녀석 때문에 우리 막내가 굶어 죽을 뻔했어! 그걸 살려준 분이 레오 님이다!”“제 목숨을 여러 번 살려주신 레오 님을 위해 이 목숨 못 바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와아아아!!!”””

    “““레오! 레오! 레오!”””

    한두 명이 외치자 다른 병사들도 덩달아 달아올라 레오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럼…. 돌격하라!”

    태운은 초록색 신호탄을 쏘았고 동시에 골든 왕국군의 진채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신호탄은 하이튼 왕국의 진채에서도 보였고 하이튼 왕국의 제임스 하이튼이 그것을 보고 병력을 움직였다.

    “초록색 신호탄이다. 돌격을 명하라.”

    제임스 하이튼이 말하자 장군들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며 돌격 명령을 내렸다.

    “돌격! 그동안 당해주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모두 갚아줄 시간이다!”

    “골든 왕국 머저리들을 쳐라!”

    “““우오오오!!!”””

    몸이 근질근질했던 수만의 하이튼 왕국의 전사들이 우수수 쏟아져나와 골든 왕국군의 진채를 두들겼다.

    [본체 ‘강태운’의 특성 ‘선봉장’이 발현됩니다.]

    [선봉장의 발현으로 모든 스탯이 향상됩니다.]

    [선봉장의 발현으로 지휘 아래 병사들의 사기가 대폭 상승합니다.]

    “모두 오른쪽 소매를 찢어라! 그것이 아군이라는 증거다! 하이튼 왕국군은 공격하지 마라!”태운은 돌격하며 확성 마법을 사용해 외쳤고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은 일제히 오른쪽 소매를 찢어 바닥에 버리고 돌격했다.

    “오른쪽 소매가 찢어진 골든 왕국군은 공격하지 마라! 아군이다!”하이튼 왕국의 장수들도 그 사실을 알렸고 노련한 하이튼 군의 병사들은 그것을 알아듣고 골든 왕국군과 레오군을 구분했다.

    “미니 익스플로전, 다중 소환.”

    태운은 진채의 벽과 바리게이트를 단번에 날려 버리고 병사들을 들여보냈다.

    진채 안은 이미 하이튼 군과 골든 왕국군의 전투로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실버렌 12세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작위와 영지를 내리겠다!”태운은 실버렌의 목에 포상을 걸었고 그것을 말하기 무섭게 누군가가 실버렌 12세를 찾아냈다.

    “저기다! 저기 실버렌 12세가 있다!”

    “공격해!”

    실버렌 12세는 갑옷도 입지 않고 나풀거리는 옷에 장검을 하나 들고 자신의 막사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검을 들고 있었지만 적을 겨누지 않았고 휘두를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였다.

    병사들의 눈에도 그것이 보였는지 그들은 실버렌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창과 검은 실버렌의 옷자락에도 스치지 못했다.

    촤자작!

    “끄아악!”

    “크허억…!”

    “끄…허억….”

    눈 깜빡할 새에 대여섯의 병사들이 순식간에 베어져 명을 달리했다.

    실버렌 12세가 한 일이었다.

    “레오….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이런 미친….”

    실버렌 12세의 검에서 오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라이언 왕국의 수호 기사 가펠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력한 오러가 말이다.

    “명령이다! 실버렌에게서 떨어져!”

    실버렌 12세는 단순히 왕의 아들로 태어나 왕이 되고 그 패기로 살아온 인물인 줄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의 패기와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대에게 반역죄를 물어 즉결처형을 내린다.”

    “한 번에 공격해!”

    “떨어지….”

    서-걱!

    실버렌의 공격에 달려들던 병사의 목이 달아났다.

    “짐이 자네를 얼마나 아꼈는지 아는가?”

    “헛소리 집어치워. 아끼는 장수를 독살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거까지 알고 있었군.”

    실버렌은 긴 은발의 머리를 쓸어넘기고 말을 이었다.

    “사실 난 자네가 계속 거슬렸어. 자네 영지에서는 자네가 신이 내린 사도처럼 여겨지더군. 그 인망, 그리고 실력…. 그 모든 게 나를 거슬리게 했다.”

    ‘하이 부스트.’

    태운은 실버렌의 말을 들으면서 계속 수를 떠올렸다.

    수십, 수백 가지의 전투 시나리오 중 가장 성공률이 높은 것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네가 없었어도 난 이 전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네가 나타나서 라이언 왕국을 무너뜨리고 병력을 흡수해서 데려오겠다…. 이딴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네가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 그 자리에서 죽이지 그랬나.”

    “내가 바보인 줄 아나? 데닌을 죽이고 인망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네 녀석까지 죽이면 네가 아니어도 반역도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났을 거다. 그럴 바에는 너를 보내주고 나중에 다른 방법으로 죽이는 것이 현명하지. 그리고 너도 그것을 눈치채고 계획보다 빨리 이곳에 온 것 아닌가?”역시 독살을 하려고 했던 사람은 실버렌이 맞았다.

    “그럼 잡답은 그만하고 사형 집행을 시작하겠다.”실버렌은 순식간에 날아와 태운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우-웅.

    태운이 검을 피하자 허공을 베게 된 검에서 아쉽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검성 셀이 오러를 가지면 검에 의지가 깃드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게 진짜였나 보네.’태운은 실버렌의 검을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하며 마법으로 계속 공격했다.

    전과 같은 공략 방법이었지만 검으로 공방이 불가능한 상황에선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가펠과 다른 점은 실버렌의 오러 사용 실력이 더욱 뛰어났다는 것이다.

    “크윽!”

    태운의 오른쪽 허벅지에 돌조각 박혔다.

    실버렌이 돌조각에 오러를 주입해 발로 차서 태운을 공격한 것이다.

    오러가 실려서인지 태운의 솔리드 아머를 뚫고 허벅지에 박혔다.

    “빈틈을 보이지 말았어야지.”

    실버렌은 공격에 흠칫한 태운의 머리로 검을 휘둘렀다.

    “끄아악!!!”

    태운의 왼 어깨에 실버렌의 검이 박혔다.

    “흠…?”

    태운이 자신의 어깨에 마나를 집중시켜 어떻게든 오러를 밀어낸 덕에 잘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오버 부스트.”

    콰득…. 꽈드득!

    태운은 그 상태로 실버렌의 손목을 잡고 오른팔에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 부하가 올 정도로 강도가 높은 강화를 시도했다.

    오른팔의 근육이 뒤틀리고 끊어지는 것 같았지만 태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놈이….”

    콰-앙!

    태운은 그대로 실버렌의 안면에 주먹을 박아넣었고 실버렌은 30미터가량이나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후우…. 팩 인 디바인 포스.”

    태운은 엉망이 된 오른팔과 어깨를 회복하곤 다시 전투를 준비했다.

    실버렌이 고작 이 정도로 끝날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하…. 하…. 하하하하!!!!!”

    실버렌은 다시 일어나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고 오러를 몸에 둘렀다.

    “…미쳤구만.”

    피하고 공격하는 것도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오러라는 사기성 짙은 기운이 온몸을 뒤덮고 있는데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시도해볼 만한 건 있었다.

    “스읍…. 하….”

    태운은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공기 중에 있는 마나와 천천히 교감하기 시작했다.

    지금 태운이 하고 있는 것은 찬영의 기술이었다.

    본래의 태운이라면 시도도 못 해볼 것이었지만 레오는 달랐다.

    재능충이라는 특성과 함께 마나 친화력도 높았다.

    태운은 자신이 레오의 몸에 있는 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웅.

    그 생각대로 태운의 주변으로 마나가 모여들었고 태운의 마나와 천천히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압축하고 또 압축해 검에 담았다.

    ‘마나 차단막.’

    그리고 마나 차단막으로 검의 형상을 본 떠 마나가 쏟아져 나가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집중이 조금이라도 흩어지면 마나 차단막을 뚫고 흩어져 버릴 거야.’“실망이군. 그렇게 마나를 무식하게 뭉치기만 해선 오러를 이길 수 없어.”

    “과연 그럴까.”

    태운은 자신의 방식을 가미한 마나 블레이드를 들어 실버렌의 공격을 막았다.

    챙!

    “무슨….”

    실버렌은 검과 함께 베어 버릴 기세로 공격했지만 태운의 검은 멀쩡히 남아 실버렌의 공격을 막았다.

    ‘많은 양의 마나로 오러를 몰아낼 수 있어.’방금 어깨를 공격당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마나를 집중시켰더니 오러가 잠시 밀려났다.

    태운은 그것에서 전투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챙!

    이젠 태운이 공격할 차례였다.

    “젠장…!”

    실버렌은 오러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검술 실력만큼은 레오가 두 수는 앞서있었다.

    태운은 레오의 기억이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였고 결국.

    촤-악!

    “끄으…. 쿨럭!”

    태운의 검에 실버렌의 몸통이 길게 베어졌다.

    “흐윽…. 크윽…. 쿨럭!”

    실버렌은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피를 잔뜩 토해냈다.

    “폭군 실버렌 12세, 네 녀석을 단죄한다.”

    태운은 마나 블레이드의 마나를 모두 쏟아부어 실버렌을 공격했고 실버렌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절명했다.

    “후우….”

    태운은 겨우 실버렌 12세의 목숨을 거두고 앞에 떠오른 알람을 보았다.

    [‘레오의 원한’을 클리어했습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그토록 바라던 알람이었지만 태운은 잠시 그 알림창을 내려두었다.

    아직 확인할 것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때 호프집에서 바텐더에게 들었던 이야기, 그것을 정리한 종이를 아직 읽지 못했다.

    “하마터면 까먹을 뻔했네…. 일단 처리 좀 하자.”태운은 실버렌 12세를 죽이고 다시 잔당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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