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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82화 (82/379)

82화

선봉장의 특성이 발현된 덕분인지 병사들은 평소 보여주지 않았던 박력을 내뿜으며 성벽으로 달려들었다.

성벽 위에 있던 라이언 군은 그 기세에 움츠러들었다.

“겁먹지 마라! 저들의 말발굽이 우리의 가족들을 짓밟기를 바라느냐!”“저항하는 자의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마라!”태운은 떨어져 가는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소리치는 적 장군의 목소리를 확성기 마법으로 덮어 버렸다.

“하이 부스트, 제로 그래비티.”

태운은 모든 공격들을 무시하고 홀로 성벽을 뛰어올라 적 장군의 앞에 섰다.

“레오… 이놈…! 공격해라!”

“칼바람.”

태운은 달려드는 적 병사들을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으로 밀어내고 적 장군을 노렸다.

‘아이스 스피어, 고정, 명중.’

태운은 자신의 등 뒤에 얼음 창을 4개 소환하여 고정시키고 명중 스킬을 활용해 적 장군의 몸통을 조준하고 달려들었다.

“이 자식!”

채-앵!

적 장군 또한 노련하고 실력 있는 장군.

호락호락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태운의 검을 막아낸 적 장군은 검을 떼어내고 다시 공격을 하려고 했으나 태운이 그것을 저지했다.

차-락.

“이, 이게 왜….”

적장은 검과 검을 떼어내려 했으나 태운이 검에 사용한 자기력 생성 마법 탓에 검을 떼어내지 못했다.

“무슨 수작을….”

“저승에서 찬찬히 생각해보시죠.”

태운은 고정을 풀었고 얼음 창들이 적장의 몸을 꿰뚫었다.

그 후, 여지를 주지 않고 목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 확성 마법을 사용해 말했다.

“너희들의 대장은 이미 명을 다했다!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하는 자는 목숨을 살려주마!”장군은 병력의 통솔이라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이가 사라지는 순간 병력은 모두 오합지졸이 되어 버리고 자신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쟁에 나선 이들의 가장 큰 염원이 무엇일까?

열에 아홉은 살고 싶다는 것일 터이다.

통솔자의 목숨은 전장의 판도를 바꿀 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들을 통솔하던 장군이 명성이 높고 능력이 좋아 병사들의 믿음이 강할수록 더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이순신 장군이 죽어가면서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구전이 전해지겠는가.

태운이 적장을 죽일 때 마침 마법병들의 집중포화에 라이언 군의 방벽이 부셔서 수 개의 망루가 무너져내렸고 라이언 군에 사상자가 나기 시작했다.

“나, 나는 항복하겠습니다!”

“저, 저도!”

“목숨만 살려주십쇼!”

타이거 요새 공성전은 20분도 되지 않아 싱겁게 막을 내렸다.

* * *

라이언 왕국군의 사상자는 500명이 조금 넘는 데 반해 골든 왕국군의 사망자는 1명 부상자가 3명이었다.

이 사상자들도 성문을 향해 돌격하다가 넘어져 다른 병사에게 밟혀 죽거나 다친 것이었다.

타이거 요새에 남아 있던 병력은 모두 흡수해 병력의 규모가 꽤 커졌다.

전투를 마친 레오군은 타이거 요새에 남아 하룻밤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이제 중요한 건 라이언군과 골든 왕국군의 단합인데….”병력을 흡수하면 병력의 규모가 커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속력이 약화된다는 단점이 있다.

“장군님,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라.”

대충 예상하고 있던 사건이었다.

골든 왕국군 한 명이 라이언 왕국을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했고 흡수된 라이언 왕국의 병사 하나가 맞받아치면서 패싸움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하….”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사건이 벌어지니 머리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라이언 왕국군은 자신의 조국을 등졌다는 것 때문에 큰 스트레스가 쌓였을 테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골든 왕국군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뭘 깊이 생각하냐. 원래 사람이 많이 모이면 멍청이가 있기 마련이잖아.’태운은 책상에서 일어나 병영으로 갔다.

그리고 선언했다.

“라이언 왕국군, 제군들이 많이 불안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자네들의 손으로 동포를 죽이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어떻게 보면 아주 멍청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었다.

태운이 직접 키운 병사들은 질이 좋고 충성도가 높은 병사들이다.

하지만 라이언 왕국의 병사들은 충성도도 낮고 제대로 된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병력들이다.

그럼에도 태운은 라이언 왕국군의 편을 들어주는 듯한 말을 했고 그것을 지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이 어긋났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으니까.

* * *

골든 왕국군은 휴식을 마치고 바쁜 길을 걸어갔다.

“흠…. 좀 더 빨리 가야겠는데.”

태운은 하이튼 왕국 전선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일정을 잡았다.

‘뭐…. 내가 늦어지는 거 같으면 그쪽에서도 손을 쓸 테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태운은 부관에게 말했다.

“행군 속도를 조금만 늘린다.”

“알겠습니다.”

골든 왕국군은 태운의 지휘 아래에 라이언 왕국의 영지와 요새들을 박살 내고 왕도로 계속 나아갔다.

고작 일주일 만에 4개의 성과 한 개의 요새를 점령했다.

지레 겁을 먹고 항복한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라이언 왕국의 수도로 진격하기까지 하루밖에 남지 않은 날, 태운은 병영에서 자신의 작전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태운의 작전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간단하다. 마법 수준의 차이로 밀어붙이는 방법이다.

식상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골든 왕국군이 전쟁 측면에서 적보다 유리한 것은 그것뿐이었으니 별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이게 제일 확실하니까 별수 없지. 하…. 머리 아파.”태운은 다음날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에 향했다.

그 순간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어…?”

그리고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며 시야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게…. 이게 왜 갑자기….’

손발이 떨렸고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방금 먹었던 스튜가 떠올랐다.

출정 후, 첫 취사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병사들이 먹을 음식의 감시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먹을 음식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을 깜빡했다.

“끄으윽……!”

태운은 마나 회로를 빠르게 돌리며 독소를 밀어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대로 실패해야 하나 싶은 순간 레오의 특성인 트롤의 피가 생각났다.

“크윽!!”

마나를 모두 쏟아부어 신체의 회복에 집중하자 그의 특성인 트롤의 피가 활성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특성 ‘트롤의 피’가 극도로 활성화됩니다.]

[트롤의 피가 독소를 일시적으로 억제합니다.]

“후우….”

턱 막혔던 숨이 다시 돌아왔다.

“죽을 뻔했네….”

많은 양의 마나와 특성 트롤의 피를 극도로 사용한 탓인지 피로감이 어마어마했다.

태운은 한숨 돌리고 침대에 몸을 던진 순간 떠오른 알림창에 깜짝 놀랐다.

[트롤의 피로 억제한 독소가 너무 강력합니다.]

[약 10일 후 트롤의 피로 억제한 독소가 다시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런….”

10일 안에 페튼 왕국까지 점령하고 계획을 완수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죽고 다시…. 뭐…?”

[진행 기록이 세이브됩니다. 다음 마정석을 흡수할 때 여기서 시작합니다.]

이 상태로 클리어할 방법이 없어 보이자 죽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태운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하…. 미치겠네.”

10일이면 페튼 왕국까지 점령하고 일을 벌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시간이다.

“일단, 이 독이 뭔지부터 알아야겠는데.”

태운은 독극물에 대한 지식을 가진 마법병을 불러 스튜에 든 독의 정체를 파악하도록 했다.

그는 스튜를 손가락에 찍어보고 감정 마법을 사용한 후 화들짝 놀라 말했다.

“이 독은 라이트리아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독극물입니다. 극소량만으로도 성인 남성을 혼절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독극물입니다. 이 정도 양이면 즉사일 거 같은데요.”“흐음…. 이걸 트롤한테 먹이면 어떻게 될 거 같은지 알고 있는가?”“음…. 트롤이라…. 트롤은 워낙에 괴물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는지라…. 그래도 이 정도 양이면 이틀 정도 기절은 하겠군요.”레오가 특성으로 트롤의 피를 가지고는 있지만 트롤만큼의 회복력이나 면역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10일 이후에 독소가 살아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은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정도의 양을 섭취하고 기적적으로 즉사를 피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나.”“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기적이 일어난다면 30일 정도 고생하는 걸로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생이라 하면?”

“30일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발열에 호흡곤란에 근육들이 경련 일으키면서 생사의 고비를 넘기게 될 겁니다. 30일이 지나면 천천히 그 증상이 없어질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깨어나는 건 별개의 이야기죠.”트롤의 피라는 특성으로도 쉽게 이겨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극독이었다.

“흠…. 알겠다. 스튜는 잘 처리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태운은 그를 물리고 책상에 앉았다.

“이거 원래대로 갔다가 봉변 당하겠는데.”

10일 뒤에 독소가 많이 약해져서 살아난다고 해도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한다면 이 마정석의 임무를 클리어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단번에 진행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실패했다간 하룻밤 안에 클리어해 보겠다는 태운의 개인적인 목표는 깨지게 된다.

“그냥 강행해야겠어.”

결심한 태운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체일 부관!”

“예, 장군님.”

“이 편지를 하이튼 왕국의 왕에게 은밀히 전해라.”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겁니까?”

“그렇게 됐다.”

“거사를 20일 뒤에서 8일 뒤로 당긴다.”

그 말에 체일 부관의 몸이 순간 떨렸다.

태운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였으니까.

“그, 그럼….”

“8일 뒤, 나는 왕이 된다.”

* * *

태운의 계획은 당하기 전에 먼저 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차피 전쟁이 끝나고 나면 실버렌 12세는 레오를 공격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방금 나를 독살하려 한 사람도 실버렌 12세겠지.’이미 라이언 왕국을 견제하는 레오의 임무는 완수했다.

이대로 군대를 물리기만 해도 골든 왕국의 승산은 굉장히 높아진다.

‘그냥 당해줄 생각은 애당초 없었어.’

태운은 하이튼 왕국의 왕과 연락해 추후 골든 왕국과의 우호적인 관계와 페튼 왕국의 영토를 보장해주겠다는 조건으로 은밀한 연합 관계를 꾸렸다.

태운이 군사력을 키워 골든 왕국군을 치기 전까지 전선에서 골든 왕국군과 왕의 시선을 끌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사실 하이튼 왕국의 입장에서도 골든 왕국과의 전쟁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드넓은 땅을 흡수한다고 해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으며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큰 피해를 피하지 못했을 테니까.

게다가 골든 왕국의 신성, 레오가 조커로 작용할 가능성도 놓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커인 레오가 손을 내밀었는데 하이튼 왕국이 그 제안을 내칠 이유가 없었다.

하이튼 왕국의 입장에서는 군사력의 피해를 덜 입으면서 골든 왕국을 처리할 수 있고 비옥한 페튼 왕국의 땅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흠….”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빠르게 가야 할 것 같다.

“야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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