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 * *
“호외요! 호외!”
“애덤 왕국의 초신성! 기사 레오가 페헨 영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태운은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걸어가는 상태에서 정신이 들었다.
“레오 님! 감사합니다!”
“레오 님 덕분에 저희가 먹고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레오 님이 주신 약 덕분에 저희 딸이 죽다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존경도 이런 존경이 없었다.
이 정도면 종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런 인망 깊고 착한 사람이 어찌 타락한 언데드, 데스나이트가 된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레오의 기억 속에 있었다.
[레오와의 동기화율이 ‘20%’로 조정됩니다.]
[레오는 백성들의 선망을 너무 받은 나머지 탐욕스러운 왕과 관리들에게 유배당하고 유배지에서 죽게 됩니다. 그러던 중 한 네크로맨서가 레오를 불쌍히 여겨 데스나이트로 부활을 시켜줍니다. 그의 미래를 바꾸십시오.]
“하아…. 이 사람도 참 기구하구만….”
레오는 데스나이트로 부활해 원치 않는 학살을 자행해왔고 그 때문에 미치광이가 되어 의지를 천천히 상실했다고 한다.
그렇게 수많은 네크로맨서들에게 부려지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일단… 어떻게 해야 할까….”
태운은 일단 거리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어 레오의 집으로 향했고 태운은 레오의 집 옆 마굿간에 말을 대놓고 레오의 집으로 들어왔다.
레오의 집은 평범 그 자체였다.
잘 나가는 기사가 사는 집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태운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쉬기 위해 의자에 앉은 순간 집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똑똑똑
“레오 님, 약속 시각입니다.”
“약속…?”
태운은 열심히 레오의 기억을 뒤져 약속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영주의 아들에게 검을 가르치는 약속이었군.’태운은 레오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레오
LV:45
마나 총량: 183,429
체력(54) 근력(72) 민첩(52) 유연성(16) 지력(32) 감각(54)
특성
재능충(LV.M)
트롤의 피(LV.M)
스킬
상급 검술(LV.M)
상급 방패술(LV.M)
상급 궁술(LV.M)
상급 단검술(LV.M)
상급 둔기술(LV.M)
……
‘와…. 이건 말도 안 나오는 재능충인데?’
레오의 나이는 아직 스물다섯이 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기술적 성취만 보면 나이가 50에 가까웠던 가도보다도 뛰어났다.
말 그대로 완벽했다.
‘이런 사람이 착하고 인망까지 깊으니…. 왕이 겁이 안 나고 배기겠냐고….’
“기사님?”
“알겠어. 나갈게.”
태운은 옆에 있던 목검을 들고 문을 열었다.
“오랜만입니다, 기사님.”
문을 열자 17세 정도의 잘생긴 남자아이가 목검을 들고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헥터 헤일, 헤일 가문의 장남이자 후계자이다.
북방 민족의 침입이 많은 영지 특성상 영주도 무술에 어느 정도 성취가 있어야 하기에 레오가 그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럼 오늘은 저 공터에서 훈련을 시작하마.”
“넵!”
태운은 헥터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헥터
LV:19
마나 총량:126,836
체력(23) 근력(27) 민첩(31) 유연성(7) 지력(22) 감각(12)
특성
끈기(LV.M)
용기(LV.M)
스킬
중급 검술(LV.2)
중급 방패술(LV.3)
초급 궁술(LV.5)
초급 단검술(LV.6)
초급 둔기술(LV.4)
….
‘와…. 진짜 다 가르쳐놨네…. 선택과 집중이라는 걸 모르는 놈인가?’레오는 헥터에게 자신이 쓸 수 있는 체술이란 체술은 모두 가르쳐놓았다.
어찌 보면 레오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레오 정도의 재능이라면 그냥 보기만 해도 움직임에 숨겨진 원리까지 깨닫고 바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이니까.
“음…. 일단 앞으로는 검술에 집중을 해보도록 하자.”
“넵! 알겠습니다!”
태운은 헥터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 테스트를 먼저 진행했다.
“나는 공격을 하지 않을 테니 날 공격해라. 네 검이 나에게 닿는다면 거기서 대련은 끝이다.”
“알겠습니다!”
“네 공격이 나에게 닿지 않는다면 끝까지 계속된다. 그러니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나를 공격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달려들어라.”
“예!”
탁! 타탁!
‘검로 선정 나쁘지 않고…. 힘의 움직임도 좋고…. 기본기는 있군. 하지만 스텝이 엉망이야.’힘이 좋고 검로 선정이 좋아도 하체를 움직이는 스텝, 즉 보법이 엉망이면 제대로 된 검술이 나올 리가 없다.
레오는 검을 휘두르면서 자연스럽게 발을 움직이며 보법을 사용했을 테니 헥터에게 보법의 중요성을 알려주지 못한 것이리라.
탁!
“보법을 사용해라! 검의 힘은 하체로부터 나온다!”태운은 지금까지 엉망으로 가르쳤던 레오로부터 벗어나 훌륭한 스승에게 배우기 시작한 헥터를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허억…. 허억…!”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벌써 두 시간째다.
헥터는 이미 체력을 전부 다 쓰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태운은 헥터의 특성인 ‘끈기’를 믿었다.
“보법을 사용하며 30번 검을 휘둘러라! 그렇게 하면 10분간 휴식을 주겠다!”
“보법이 그게 뭐냐! 처음부터 다시 30회!”
“보법을 사용하란 말이다! 다시 30회!”
태운은 헥터를 더욱 몰아붙였다.
하지만 헥터는 지쳐 집중력이 떨어지기는커녕 계속해서 집중력을 높이고 있었다.
몸은 비틀거리며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살아있었다.
“29! 30! 휴식해라!”
“감사합니드아!”
헥터는 바로 뒤로 쓰러져 쉬었다.
태운도 땀이 뻘뻘 나는 얼굴을 닦으며 바닥에 앉았다.
‘근데 왜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이 녀석을 가르치고 있는 거지…?’
[레오와의 동기화율이 3% 상승합니다.]
“흠….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열심히 해야지.”10분의 휴식이 지난 뒤 태운은 다시 헥터를 불렀다.
“다시 대련을 시작한다!”
태운은 그렇게 헥터를 계속 훈련시켰다.
첫날은 대련 위주의 훈련을 진행했지만 다음 날은 이론 위주로 보법이 어떻게 검에 힘을 실어주는가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다.
헥터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한 표정이었지만 어느새 빠져들어 보법을 연습하고 평소에 걸을 때도 보법을 사용해 걷기도 했다.
그렇게 3일이 지나고 4일에 접어들던 날.
첫 사건이 터졌다.
“레오 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지?”
“국왕 폐하께서 전쟁을 일으키셨습니다!”
“전쟁? 자세히 말해보라.”
병사는 숨을 고르고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레오가 속해있는 골든 왕국은 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국가이다.
그 북쪽에 있는 국가는 하이튼 왕국.
하이튼 왕국은 자원은 부족하지만 사냥으로 다져진 훌륭한 전사들이 많은 왕국이다.
골든 왕국과 하이튼 왕국은 자원과 군사력을 주고받으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골든 왕국 국왕은 이 관계를 깨고 주종관계를 맺자고 제안했고 하이튼 왕국이 거절하자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답도 없다….’
이번 마정석도 곱게 흡수하기에는 그른 것 같았다.
* * *
“폐하! 지금이라도 선전 포고를 취하하셔야 합니다!”“저희의 군사력으론 하이튼 왕국의 군대가 몰려오면 막을 수가 없습니다.”골든 왕국의 대신들은 국왕에게 선전 포고를 취하해달라고 간청했다.
먼저 전쟁을 끝내자 말하는 것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렇게 되면 외교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골든 왕국의 신하들은 그러기를 바랐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두 국가가 전쟁에 쏟을 수 있는 군사력의 차이였다.
골든 왕국은 4개의 작은 국가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을 띠고 있다.
그중 가장 군사력이 강력한 하이튼 왕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나머지 3개의 국가와의 힘 싸움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골든 왕국과 하이튼 왕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하면 나머지 3개의 왕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고, 병력이 분산된 골든 왕국은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많은 영토를 잃거나 군사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다른 국가 입장에서도 척박한 하이튼 왕국보다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는 골든 왕국 쪽이 탐나겠지….’골든 왕국은 대륙 최대 규모의 국가.
4개의 국가가 나눠 먹어도 될 정도로 충분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면 골든 왕국은 계속해서 무너져갈 것이다.
하지만 골든 왕국의 왕, 실버렌 12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골든 왕국의 주변을 둘러싼 국가와의 전쟁은 어차피 일어났어야 할 일이다. 나는 그 일은 나의 대에서 끝내고 역사에 길이 남을 왕이 될 것이다.”“폐하!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해주시옵소서!”“이것은 만용이 아니다. 짐이 즉위한 후 6개월 만에 8개의 영지를 빼앗았다. 골든 왕국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는 이때가 아니라면 언제 거사를 치러야 한단 말이냐?”신하들은 어린 왕의 어리석은 패기를 원망했다.
그때, 한 신하가 중얼거리는 말에 왕의 성에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 50년간 골든 왕국만을 바라보며 충성을 맹세했거늘…. 어찌 내 한 몸 바쳐 사랑한 이 나라의 숨통을 저런 어리석은 자에게 쥐여 주셨나이까….”
“뭣이!”
그 말을 꺼낸 것은 70이 넘은 늙은 신하, 데닌이었다.
그는 50년이 넘도록 국가를 위해 헌신한 충신이다.
하지만 지금 실버렌 12세에게는 감히 자신의 심기를 거스른 괘씸한 노인일 뿐이었다.
“저 발언은 국왕인 짐을 향한 것이 분명하다! 짐을 우롱한 죄를 물어 태형 30대를 내린다!”어린 왕은 거침없었다.
나이가 70이 넘은 공신이 받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큰 벌이 내려졌고 평소 그를 존경해왔던 신하들은 일제히 고개를 박고 빌었다.
“폐하, 데닌 님의 춘추를 헤아려 벌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칠순이 넘은 데닌 님이 받기에는 너무 가혹한 벌입니다.”십수 명의 신하가 일제히 고개를 박자 왕은 더욱 화를 내었다.
“오냐, 너희들 모두 데닌 녀석과 같은 생각이로구나. 집단으로 행한 범죄는 그 죄질이 더욱 깊어지는 법, 너희를 모두 팽형(烹刑)에 처한다!”
“폐하….”
“닥치거라! 앞으로 나의 말에 대꾸하는 자가 있다면 저들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뭣들 하느냐! 끌어내라!”남은 신하들은 왕의 앞에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 *
“…대충 이런 이야기입니다.”
“허….”
태운은 헥터에게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야말로 폭군이 아닌가.
“이런 왕의 밑에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건가….”게다가 즉위 6개월 만에 빼앗았다는 영지 8개 중 6개는 레오가 한 일이었다.
심지어 나머지 두 개의 영지를 빼앗을 때도 실버렌은 출장하지 않았다.
“후우….”
머리가 아파지는 태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