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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72화 (72/379)
  • 72화

    태운은 기사단이 진영을 저지대로 잡았을 때부터 이것을 예상했었다.

    고지대로 위치를 잡은 다른 동아리들이 모두 기사단의 동향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일이 없다고 해도 공진영을 도망 보내면 기사단에게 리타이어당할 사람도 줄어드니 어찌 되든 이득이었다.

    “너희는 기사단에게 못 가.”

    “네가 시저나 정일준인 줄 알아? 저 녀석 먼저 공격해!”공진영은 염군을 시전하고 그들의 앞에 섰다.

    정성현과 싸울 때보다 약하게 시전했지만 그들을 막아내기에는 충분하다.

    “신속.”

    공진영은 신속을 사용하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퍼-엉!

    강유 동아리의 멤버인 김동성이 공진영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공진영은 그 검을 흘려내고 간결하게 그의 명치에 주먹을 날렸다.

    그의 주먹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김동성은 뒤로 5m가량 날아가 나무에 부딪혔다.

    “크윽….”

    “야! 피해…!”

    쾅!

    나무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김동성의 안면을 가격해 리타이어 시켰다.

    빠-득.

    동시에 나무가 부러져 강유 동아리 멤버들을 반으로 갈랐다.

    공진영은 바로 뒤로 돌아 남은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순식간에 상대방의 품으로 파고 들어간 공진영은 그의 턱을 올려 쳤고 즉시 오른쪽 주먹으로 안면을 내려쳤다.

    갑자기 큰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닌 그를 뒤에 있는 적에게 집어 던지고 둘을 동시에 공격했다.

    몸에 있는 마나 1할을 사용한 공격에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그 공격에 노출된 둘은 동시에 리타이어당했다.

    “이런 미친……!”

    공진영은 남은 한 명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쾅! 쾅!

    쓰러진 상태인 그를 단 세 번의 공격으로 리타이어시키고 나무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까꿍.”

    “…미친.”

    공진영의 활약으로 기사단과 언더독의 점수 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때 태운은 정일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 하악…. 하악….”

    “대련 종목 때가 기대 되는군.”

    태운은 기사단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시저를 비롯한 아군을 모두 리타이어시킨 후 가세한 기사단원들 탓에 한계까지 몰린 것이다.

    “이렇게 결판이 나게 된 것이 아쉽군.”

    “마지막 날 하이라이트에서 보시죠. 그땐 안 질 겁니다.”

    “기대하지.”

    서-걱.

    정일준은 태운의 몸통을 베고 리타이어시켰다.

    그 시각,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0분, 슬슬 승패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태운이 리타이어됨에 따라 천천히 사라지는 결계, 그리고 결계에 가려진 점수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일준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태운이 신호탄을 쏜 이유도, 공진영을 보낸 이유도.

    자신이 강태운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는 사실까지도.

    “…큰일이군.”

    언더독의 점수는 1,440점, 그에 반해 기사단의 점수는 1,140점에 불과했다.

    언더독이 깃발을 바닥에 버려둔 게 아닌 이상 남은 시간에 300점의 차이를 뒤집을 만한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

    점수를 뒤집을 방법은 없었다.

    그때, 정일준은 빠른 결정을 내렸다.

    “유령마.”

    정일준의 허리에 찬 아티팩트에서 푸른 유령마 십여 기가 나타났다.

    “언더독의 진영으로 달려가 남은 멤버들을 모두 리타이어시켜라. 동귀어진도 좋다. 모두 리타이어 시키기만 해라.”점수로는 이길 수 없으니 언더독의 모두를 리타이어시킨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즉, 아예 탈락시켜 버린다는 의미다.

    “공진영은 반대편으로 달려갔습니다. 추격조를 따로 편성해서 추격할까요?”

    “아니.”

    정일준은 천리안을 사용해 공진영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미 그를 파악하고 달려가고 있는 구찬영도 발견했다.

    “그곳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알겠습니다.”

    기사단원의 모두가 유령마에 올라탔다.

    정일준도 가장 큰 유령마 위에 올랐다.

    “가자.”

    * * *

    “후우….”

    태운은 리타이어당해 강유도에서 대기실로 역소환됐다.

    그곳에는 이미 리타이어당한 김철, 김지열, 홍유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깃발 빼앗기 우승을 짐작하고 있던 태운과 달리 그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태, 태운아, 여…. 여기 와서 이것 좀 봐.”

    “무슨 일 있어요?”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온 김기열이 대기실에 있는 TV를 보며 태운을 불렀다.

    그 TV에선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인 강유도를 비추고 있었다.

    TV를 보자 열심히 달리고 있는 구찬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찬영이가 왜 이리 뛰고 있죠…?”

    “기사단에서 결단을 내린 거 같아.”

    “네?”

    홍유리가 상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점수 차는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졌어.”

    “진영이 형이 잘해줬나 보네요.”

    “근데 그래서 문제야. 지금 정일준이 아까 공격대를 모두 데리고 우리 진영으로 달리고 있어. 남은 멤버들 전부 리타이어시키고 우릴 완전히 탈락시키려는 거 같아.”

    “예…?”

    이건 태운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10분이라는 시간과 적사단과 언더독의 연합 공격대가 깎아놓은 기사단의 전력을 고려해보면 이렇게 빠른 시간에 결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렇게 하면 천하의 정일준이라고 해도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거지….”

    “어쩌지?”

    “일단 이런 때를 대비해서 지시한 게 있긴 한데….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라고 했는데?”

    “일단 봐요. 좀 애매하니까.”

    * * *

    “끝나기까지 7분밖에 안 남았는데…. 저 흙먼지가 심상치는 않네.”

    “태운이가 말했던 만약이 지금이려나.”

    박성윤이 멀리서 흙먼지를 피우며 달려오는 기사단을 목격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전투가 끝나고 피로가 슬슬 쌓이던 차에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사건이 터졌으니 한숨이 나오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래서 태운이가 뭐하라고 했는데?”

    “깃발 하나만 빼고 죄다 뽑아서 도망가라 그랬어.”

    “뭐…?”

    깃발을 뽑는 것만으로는 점수가 더해지지도 깎이지도 않는다.

    연정아는 3할 이상의 힘을 사용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도 정일준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되지 못 한다.

    “허어…. 이건 그 누구도 상상 못 할 작전이긴 하네.”여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물론 구경하고 있는 관객들까지 전부 깃발이 꽂혀 있는 진영을 꼭 지켜야할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장소가 아니라 깃발, 그게 없으면 진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깃발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영역은 소멸되지 않으니까.

    “놓고 가는 거 없게 싹 챙겨.”

    임시로 지휘를 맡은 신동연이 언더독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남은 사람들 중에 가장 빠른 박성윤에게 깃발을 맡기고 연정아에게 호위를 맡겼다.

    “우린 남아서 추격을 좀 늦춰볼게. 어차피 한 명이라도 살아남으면 우리가 이기는 게임이니까.”

    “오랜만에 오래 달리기하는 거 같네.”

    “잔소리 말고 빨리 튀어.”

    “네엡.”

    신동연이 장난을 치고 있는 박성윤에게 일침을 날리고 뽑은 깃발을 던져주었다.

    “직선으로 달려. 정일준은 천리안이 있다니까 어디 숨는 건 의미가 없을 거야.”

    “오케이.”

    박성윤와 연정아가 출발하고 30초도 지나지 않아 말발굽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기사단이 가까이 도달해 있었다.

    “후…. 긴장되네.”

    떨리지 않는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신동연은 상당히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김효신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꺼냈다.

    “최대한 오래 버틴다는 것만 생각….”

    서-걱!

    “뭐, 뭐야?”

    정일준이 김효신의 뒤에 나타나 단칼에 그를 베어 버렸다.

    “미친…. 왜 이리 빨라!”

    다른 기사단원들은 적어도 200m는 떨어져 있는데 단장이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은 몰랐다.

    “아니…. 그것보다 기척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내가 좀 급하네. 그러니 인사는 생략하겠다.”“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닌 거 같은데.”

    화-악!

    김효신이 반으로 갈라져 두 명이 되어 정일준의 양팔을 잡았다.

    “아이스 랜스.”

    라일렌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가슴에 얼음 창을 쏘았다.

    하지만 그 얼음송곳은 정일준의 몸에 스치지도 못했다.

    정일준은 양팔을 잡고 있는 김효신을 들어 라일렌의 공격을 막아내고 그를 내팽개쳤다.

    “64연참.”

    촤-자자자작!

    그러곤 그를 수십 번의 공격으로 즉시 리타이어시켰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역시 토막을 내면 어쩔 수 없군.”

    “미쳤네….”

    아직 그들이 떠난 지 1분이 넘지 않았다.

    지금 돌파당한다면 머지않아 잡히게 되겠지.

    “여기서 최소 3분은 버텨야겠는데.”

    “가능하다면 한번 해보게.”

    정일준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동연에게 달려들었다.

    “배리어 소드.”

    카-아앙!

    신동연은 배리어를 뭉쳐 상당한 강도를 가지고 있는 투명한 검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검으로 정일준의 공격을 막아냈다.

    “호오….”

    정일준은 짧은 감탄과 함께 추가 공격을 시도했다.

    신동연은 저릿저릿한 팔로 정일준의 공격을 받아낼 각오를 하고 있을 때

    “아이스 데블.”

    라일렌의 공격이 정일준의 공격을 멈췄다.

    “우리가 칼질 몇 번에 보낼 정도로 호구는 아니거든.”그들이 정일준을 쉽게 보낼 리가 없었다.

    언더독 내에서 강태운, 연정아 다음 가는 실력자라고 인정받고 있는 신동연과 라일렌이니까.

    “그리고 지금 나는 컨디션이 최고인 상태거든.”지금 그럴듯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덕분에 중계방송 시청자, 인터넷 방송 시청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이 전투에 집중하고 있으니 라일렌의 특성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이 정도 관심받는 거. 세 명 정도는 데려갈 수 있을 거 같은데.”

    * * *

    모두가 정일준과 언더독의 전투에 집중하고 있을 때 구찬영과 공진영이 만났다.

    “요란하게 싸우길래 와봤더니 난리도 아니네요.”

    “좀 신이 나서 말이야.”

    공진영은 강유의 멤버들과 싸우느라 그 주변을 완전히 박살 내놓은 상태였다.

    “점수판 보면 어차피 끝난 거 같은데 괜히 고생하지 말고 여기서 끝내는 건 어때?”공진영은 지금 자신이 찬영과 싸웠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강유 동아리 멤버를 빠르게 처리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체력도 마나도 많이 소모했다.

    아무것도 못 하고 구찬영에게 얻어맞다가 리타이어당하겠지.

    괜히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줄 이유는 없으니 공진영은 그와의 전투를 피하고 싶었다.

    “그건 단장이 판단할 일이죠. 저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겁니다.”

    “하…. 너는 너무 올곧아.”

    공진영은 찬영과 친분이 있었고 랭크전을 치른 적도 있었다.

    자신과 구찬영의 실력 차이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말하든 구찬영과 싸워야 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마나경.”

    “하….”

    구찬영이 마나경을 시전하자 공진영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염군을 활성화했다.

    마나경을 시전한 찬영은 반경 수십 미터 안에 있는 마나와 공명해 사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신체 능력이 두 배 이상 올라간다.

    “크읏…!”

    찬영의 창이 순식간에 공진영의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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