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69화 (69/379)
  • 69화

    * * *

    “아까 무슨 말 했어?”

    “그냥…. 싸움 안 나게 잘하라고 하더라.”

    공격대가 떠난 언더독과 적사단의 본거지.

    싸움을 일으켰던 김지열이 떠났지만, 그 공기는 계속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애초에 케빈의 분노는 김지열을 향한 것이 아니라 언더독을 향한 것이었으니까.

    ‘확실히 적사단이라고 하기에는 전력이 좀 빈약하네.’‘이제 시저랑 셀이 없으면 적사단은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지.’그때 그곳에는 흑단의 어쌔신 둘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과 도망치는 것만큼은 교내 탑 수준이었기에 셀이 계속 주변을 둘러보고 있음에도 들키지 않았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 여차하면 한 명은 데리고 간다.’‘오케이, 내가 적사단 깃발 노리고 언더독 깃발을 노릴게.’그들은 은신을 사용한 후 풀숲에 몸을 숨기고 각자 깃발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한 명이 새를 날렸다.

    “뭐야? 갑자기 새가 나오네.”

    “새보고 깜짝 놀라보기는 처음이네.”

    적사단원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것은 작전 개시의 신호였다.

    “3…. 2…. 1…!”

    새가 날아간 순간부터 3초를 기다린 후 두 어쌔신들은 깃발을 향해 달렸다.

    적사단원들은 그 순간까지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언더독의 김철은 달랐다.

    ‘강유도에는 생물이 없는데…?’

    김철은 불길한 예감에 깃발 쪽으로 몸을 날렸다.

    퍼억!

    그 순간, 빠르게 달려오던 흑단의 어쌔신과 몸이 부딪혔다.

    “크윽…!”

    “잡았어!”

    언더독은 김철의 감과 과감한 행동 덕분에 깃발을 빼앗기지 않았지만 적사단은 상황이 달랐다.

    적사단은 깃발을 지키지 못했다.

    “이런…! 저놈 잡….”

    “날 너무 바보로 보네!”

    적사단의 깃발을 빼앗는 데 성공한 흑단의 멤버는 자신의 그림자 안으로 숨었고 그 그림자는 숲의 그늘로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런…! 젠장! 케빈! 박성구! 가서 잡아!”

    흑단의 어쌔신은 양손, 입으로 3개의 깃발을 훔쳐 달아났다.

    깃발을 빼앗겨 다른 영역에 꽂히게 되면 점수가 60점이나 깎인다.

    그걸 3개나 빼앗겼으니 이대로라면 –180점이다.

    ‘흑단의 점수가…. 400점이고…. 그럼…. 4등으로 밀려난다….’지금의 적사단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종목이 시저의 특성을 백분 활용할 수 있는 단체전이다.

    그런데 여기서 순위권에 들지 못하면 어쩌겠는가.

    그때 언더독 영역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촤-악!

    “크윽!”

    김철이 붙잡고 있던 사람이 김철에게 단검을 휘두르더니 갑자기 스스로 리타이어당한 것이다.

    “괜찮아?”

    “깊게 베이지는 않았는데…. 좀 이상…. 으윽!”김철은 단검이 휘두르는 것을 보고 몸을 뒤로 젖혀 스치기만 했지만, 그 상처는 예사 상처들과 무언가 달랐다.

    상처 부위에서 검은색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상처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벌어지기만 할 뿐이 아니라 검은 기운은 상처 부위를 천천히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동연아 빨리 회복 마법을….”

    박성윤이 김철의 상태가 안 좋다는 걸 확인하고 신동연에게 회복을 부탁했다.

    하지만 신동연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치료를 포기했다.

    “아니, 이건 못 고쳐.”

    “왜…?”

    박성윤의 눈으로 봤을 때 신동연의 실력이면 이 정도 저주는 충분히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시도도 하지 못하고 풀지 못한다고 말한다?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비켜, 못 살리면 우리 손으로 끝내서 점수는 주지 말자고.”그때 연정아는 신동연의 의도를 파악하고 행동에 나섰다.

    신동연과 연정아의 도가 넘은 행동에 다른 언더독의 멤버들도 그들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러자 김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못 살릴 거 그냥 너희 손으로 끝내고 점수 주지 말자.”연정아는 그의 손을 잡고 전기를 흘려보냈다.

    김철은 그대로 리타이어당했고 적사단원은 그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독하다. 진짜….”

    “점수 30점 때문에 팀킬을….”

    팀킬이라도 해도 단순히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실제로 사람을 공격하는 것과 같았고 그 때문에 팀원을 리타이어시키는 전략은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어.’

    적사단은 깃발을 빼앗겼다.

    그 때문에 점수도 잃게 생겼고 말이다.

    그때 옆에 있는 팀의 전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참기 힘든 유혹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김철을 리타이어시키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느냐고 말한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김철이었기에 더 효과가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철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힘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동안 적사단의 시선이 김철에게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 상황에서 김철이 리타이어 당함으로써 적사단에게 경계의 대상이 없어진 것으로 인식될 터.

    적사단원, 특히 방어팀을 지휘하고 있는 셀을 꾀어내기에는 충분히 괜찮은 미끼였다.

    안 그래도 셀은 언더독의 깃발과 점수판을 번갈아 보면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5명 리타이어 시키면…. 150점…. 일단 우리가 배신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면 깃발은 건드리면 안 되겠지….’공격대가 돌아오기 전에 방어대를 모두 처리하고 공격대가 돌아오면 시저와 함께 나머지를 처리하고 가져온 깃발을 독점한다면…?

    ‘1등도 노릴 수 있다….’

    계산이 끝난 셀은 상대방의 전력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모두 실버 A~B등급 학생이다.

    김철도 물론 실버 A급의 학생임에도 좋은 실력을 보이긴 했지만, 그것도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셀은 생각했다.

    그리고 랭크에 비해 실력이 월등히 높은 경우는 크게 많지 않기 때문에 남은 5명이 김철처럼 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셀이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태운보다도 강할 수 있는 존재인 연정아의 실력이었다.

    ‘…추적 나간 둘이 돌아오고 체력을 회복하면 그때 바로 전투 시작이다.’결국, 셀은 태운과 언더독이 내놓은 미끼를 곧바로 물어 버렸다.

    사실 셀도 언더독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신들의 잘못이라고는 하나 언더독 때문에 적사단의 본선 진출자가 8명으로 줄어들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적대감을 가지고 언더독을 대할 수는 없었다.

    시저가 셀에게 방어대를 맡기면서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감정이 아닌 팀의 점수를 위해서 움직여라.’하지만 팀의 이득과 개인감정이 일치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움직어야 할까?

    그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젠장…. 못 찾았어.”

    “이미 산 밖으로 도망친 거 같아.”

    그때 추격을 보냈던 적사단원들이 돌아왔고 셀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신호하겠다.’

    고작 다섯 음절의 단어였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괜찮은 기회만 있다면 바로 그들에게 선제공격을 가하고 전투를 시작할 것이다.

    셀의 그런 생각을 대충 알아챈 신동연은 라일렌에게 말했다.

    “라일렌, 방금 우리 공격했던 사람들 때문에 하는 말인데 주변 정찰해보는 건 어때?”

    “어…. 음, 그래! 내가 다녀올게.”

    “그래, 부탁할게.”

    신동연은 라일렌을 잠깐 시야의 밖으로 보내려는 생각으로 말을 꺼냈고 라일렌도 그의 의도를 대충이나마 파악하고 수락했다.

    라일렌은 외국에 살다가 실적을 쌓고 편입한 재능있는 사람이다.

    셀은 그녀를 가장 경계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녀를 보낸 지금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솔리드 아머.’

    ‘곧…. 인가 보네?’

    신동연은 멤버들에게 솔리드 아머를 씌워주었고 그것을 느낀 언더독의 멤버들은 의미심장하게 눈을 마주쳤다.

    그는 언더독 내에서 방어류의 마법을 가장 잘 사용하고 아머를 씌움으로 은밀하게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

    태운이 신동연에게 리더를 맡긴 이유도 이런 것 때문이었다.

    신동연이 팀원들에게 솔리드 아머를 씌워주고 라일렌이 멀어지자 셀이 행동을 개시했다.

    셀은 검에 마나를 끌어모아 참격과 함께 가장 방어력이 낮을 것 같은 연정아에게 쏘아냈다.

    한 명을 한 번에 리타이어시키고 남은 3명에게 한 명당 두 명씩 붙여 빠르게 처리하려는 생각이었다.

    쾅!

    “음…?”

    많은 힘을 실은 공격은 아니었지만 한 번에 리타이어시키겠다는 생각으로 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연정아는 몸의 균형이 조금 흐트러졌을 뿐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다.

    신동연이 시전한 솔리드 아머 덕분이었다.

    이번에는 옵저버가 정확히 언더독과 적사단을 다루고 있었다.

    [아! 언더독과 적사단은 동맹 관계가 아니었나요? 적사단의 셀이 언더독의 연정아를 공격했습니다!]

    적사단과 언더독이 연합했다는 사실은 관중과 시청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뒤통수를 쳤다?

    그것도 인기가 치솟는 중인 언더독을 상대로?

    그를 기점으로 적사단의 이미지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와 적사단 개추하네ㅋㅋㅋ

    └ 어떻게 보면 언더독이 적사단 살려준 거 아닌가? 언더독 아니었으면 지금 3등 하지도 못했음.

    └야 ㅋ 그래도 재미는 있잖아 ㅋ

    └언더독이 봉사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서로 이용한 건데 통수쳤다고 적사단이 욕먹을 건 아니라고 보는데? 팀 이득을 위해서는 통수도 치면서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Wls

    └뭐만 하면 찐이래;;

    실시간으로 적사단의 이미지가 깍여 가는 와중에 두 팀의 전투는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작전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연정아를 맡을 테니 두 명이 한 조로 1명씩 처리해라!”

    “작전 참 뻔하네.”

    신동연은 그를 자극하면서 금이 간 연정아의 솔리드 아머를 해제하고 한 겹 씌워주었다.

    약간이긴 하지만 솔리드 아머에 피해를 줬다는 게 놀라웠다.

    적사단의 부단장을 인맥으로 단 것은 아닌 모양이다.

    “2 대 1로 끌고 가려고 했던 건가.”

    태운이 이 작전에 대해 말해줬을 당시, 최대한 힘을 숨기라고 했었다.

    그래서 4인 연합이 왔을 때도 적사단의 페이스에 맞춰 싸웠다.

    그리고 또 다른 지시 사항도 있었다.

    ‘적사단이 먼저 통수를 치고 공격을 하면 절대 봐주지 마세요’라고.

    신동연은 메테리얼을 정비하고 언더독 멤버들에게 말했다.

    “적사단의 바람대로 2 대 1 해줍시다.”

    위협적이던 시저, 김진성은 공격대에 합류해있고 셀은 연정아가 맡기로 했으니 문제없다.

    나머지는 골드 B급뿐이다.

    그 정도면 2 대 1로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

    “이게….”

    적사단의 멤버 중 한 명이 신동연의 말에 자극을 받아 검기를 날렸다.

    하지만 그것은 신동연에게 타격을 주기는커녕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너희들의 원거리 공격으로는 눈 하나 깜빡하게 하지 못할걸.”태운과 신동연의 합작인 인터셉터 미사일의 효과였다.

    태운이 최근에 얻은 스킬인 ‘고정’에서 힌트를 얻어 디텍팅 미사일의 수식에 변화를 주어 탄생한 마법이다.

    메테리얼에 수식을 걸어두면 약 10분 동안 멈춰 있다가 공격이 날아오면 그것을 맞춰 요격시키는 원리다.

    마법계가 뒤집힐 만큼 굉장한 발견이었지만 태운과 신동연은 이것을 아직은 세상에 공개하지는 않기로 했다.

    일단 자신과 내 사람들이 사용해서 이득을 볼 때까지는 놔두고 싶었으니까.

    애초에 방어 마법의 영향을 주는 특성이나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용하기 매우 어려운 고난이도의 마법이기도 했으니까.

    “뭐야, 공격해놓고 안 오기가 어디 있어.”

    그때 박성윤이 품에서 단검 두 개를 꺼내 앞으로 달려갔다.

    “난 찜해놓은 놈들 있어!”

    박성윤은 이미 싸우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자신과 똑같이 단검 두 개를 사용하는 녀석과 케빈이 화를 낼 때 같이 욕을 해주던 녀석이었다.

    슈-욱!

    박성윤은 단검을 두 개 모두 그들에게 각각 하나씩 던졌다.

    단검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미간을 향했고 그들은 깜짝 놀라 각각 자신의 무기로 막으려 했다.

    “……?”

    하지만 단검은 그들의 몸에 닿지 않았다.

    “뭐 해?”

    던졌던 단검은 어느새 박성윤의 손을 들려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