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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63화 (63/379)
  • 63화

    그때 기사단은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1등을 하나도 못 한 게 말이 돼?”

    매년 1위만 하던 기사단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달리기 종목에서는 리타이어, 과녁 맞히기 종목에서는 2위, 격파에서도 4위.

    기사단 창설 이후 유례없는 최악의 성적이었다.

    “차라리 내가 나갔으면….”

    그 말이 전쟁의 시작이었다.

    “뭐? 말 다 했어?”

    “넌 뭘 잘했다고 입을 열어!”

    기사단은 예선을 20명이나 통과했다.

    대표전에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동아리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대표전에 나가지 못한 사람은 나간 사람이 안 좋은 성적을 내면 그만큼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마나 관리도 못 하고 마지막에 헉헉거리면서 벽에 주먹질하던 놈이 뭘 잘했다고….”“하…. 인정하긴 싫은데 이번 격파는 라인업이 미쳤었다고. 2위가 전년도 신기록을 한참 넘겼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생각 좀 해라.”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기사단의 대표도 전년도 신기록과 똑같은 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다.

    그를 욕하는 기사단원은 단지 자신을 밟고 대표전으로 올라갔으면서 메달을 얻어오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욕하는 것이다.

    “다들 그만하시죠.”

    그걸 보다 못한 찬영은 그들에게 말했다.

    싸움이 나도 딱히 끼어들 생각이 없던 찬영이었지만 팀끼리 헐뜯는 꼴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화가 났다.

    “…알겠다.”

    찬영이 말하자마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가 후배긴 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공식적으로 교내 2위.

    랭킹에서 오는 위압감이 있었다.

    “다들 집중하게 조용히 좀 해주세요.”

    “…미안하다.”

    깃발 빼앗기는 단체전.

    단체전을 바로 앞에 둔 상황에 이렇게 팀원들끼리 싸워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그걸 뻔히 아는 사람들이 그러고 있으니 한심하면서도 화가 난 것이다.

    찬영은 그들의 싸움을 일단락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강유도로 출발해야 할 때가 됐으니까.

    *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2일 차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죠! 바로 깃발 빼앗기! 드디어 시작합니다!]

    깃발 빼앗기는 스타디움이 아닌 예선전이 실시된 강유도에서 진행된다.

    강유도에는 중계용 카메라와 마이크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실시간으로 구도를 잡아 영화처럼 연출하는 AI까지 준비되어 있다.

    그 덕분에 참가자들끼리 치열하고 스펙타클하게 싸워주기만 하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경기를 볼 수 있었다.

    “그게 명운전 단체 종목의 묘미지.”

    명운전이 진행될 때는 버스, 지하철 할 것 없이 모니터가 있는 모든 장소에서 명운전을 중계해준다.

    저 밑 제주도에 있는 술집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으…. 떨린다아!”

    “나 기사단에 300 걸었다고…! 제발….”

    “난 적사단에 50 걸었다가 날렸어! 이번엔 언더독에 200 걸었다. 제발….”“바보야? 어디 그딴 근본 없는 팀에 큰돈을 박냐?”제주도 작은 골목 어딘가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후줄근한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스포츠 토토에 돈을 걸고 그곳에서 손발을 떨며 명운전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돈을 잃은 사람도 있는 듯 언성이 높아지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

    덜컹.

    “음?”

    누군가 술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술집인 만큼 아는 사람들만 들어온다.

    그렇기에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들 서로의 얼굴을 알고 있다하지만 지금 들어온 사람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누구야?”

    “주인장~ 오늘 새 손님 올 예정 있었어?”

    “어…. 있긴 했는데…. 저 양반은 아니네.”

    술집의 주인은 주방에서 고개만 슬쩍 내밀고 그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뭐야?”

    “아그야~ 여기 아무나 오는 곳 아니다. 나가라~.”하지만 그는 뒤돌아 나가기는커녕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품속에서 두 자루의 검을 꺼내 들었다.

    “야…. 너 뭐냐?”

    하지만 술집에 있던 그들은 겁먹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협회에 각성 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각성자들이었고 그것을 활용해 범죄를 저지르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들은 그런 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애들아, 힘 좀 남았냐.”

    “응원하는 힘은 좀 남겨놔야 하는데….”

    “뭐, 하나 상대하는 데 힘을 남겨놓고 자시고…. 그냥 빨리 처리허자.”그들은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었던 듯이 능숙하게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문의 남자는 당황하지도, 겁을 먹지도 않았다.

    그냥 손에 든 검을 까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5만씩 걷어서 저놈 목 따…….”

    서걱.

    중앙에 서 있던 중년 남성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바, 박 씨?”

    “뭐, 뭐시여?”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상황 판단을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야, 도망…….”

    상황을 모두 알아챈 순간 살육이 시작됐다.

    초 단위로 한 명의 목이 잘려 나갔고 술집의 벽면에 긴 검흔이 새겨졌다.

    결국 수십 명이나 있던 술집에는 시체만이 즐비해졌고 술집 주인과 의문의 남자만이 남게 되었다.

    술집 주인도 과거엔 유명 길드의 2군 공격대 출신이었지만 의문의 남자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술집 주인 또한 배와 가슴에 큰 상처를 입고 벽에 기대고 있었다.

    “어…. 어윽…. 우리한테 도대체 왜….”

    “이유…?”

    츄-릅.

    의문의 남자는 검에 잔뜩 묻어 있는 피를 혀로 핥으며 말했다.

    “사람을 죽이면 내가 강해지니까…?”

    검의 피를 핥고 있는 그의 혓바닥에는 인류의 배반자를 의미하는 자색 문신이 옅게 점멸하고 있었다.

    술집 주인을 그것을 보고 경악했다.

    “배, 배반자…!”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하…. 시시해….”

    그의 이름은 김상연.

    자유 활동을 인정받은 얼마 안 되는 원로 중 한 명이었다.

    “으흠?”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게 있었으니….

    [깃발 빼앗기가 시작되기까지 10분 남았습니다!]

    그건 바로 TV에 중계되던 명운전의 화면이었다.

    “호오….”

    김상연은 시체들 사이에서 소파에 앉아 TV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 * *

    “푸르르르르….”

    박성윤은 입술을 풀며 노래하듯이 입술 마찰 소리를 냈다.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사실 긴장과 부담으로 인한 문제에 깊게 빠져 있는 사람은 김기열이 아닌 박성윤과 신동연이다.

    김기열만큼 긴장을 심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약간의 긴장으로도 몸의 컨디션이 확 떨어지는 그런 체질인 것이다.

    깃발 빼앗기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단체전 종목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그들의 긴장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단체전의 키포인트니까.

    강유도 앞의 대기 장소에 모인 참가자들은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명운전의 참가 경험이 있음에도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데 이번이 첫 출전인 언더독 멤버들은 오죽하겠는가.

    파악!

    “뭐, 뭐야…?”

    라일렌이 신동연과 박성윤의 등짝을 때렸다.

    그녀는 sns 스타답게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한지 전혀 긴장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뭘 그리 떨고 있어?”

    “아니…. 그냥….”

    “그냥은 무슨, 딱 봐도 엄청 쫄아 있는데.”

    라일렌은 그들의 앞에 서서 휴대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무언가 화면을 띄워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봐.”

    “이게 뭔데?”

    신동연과 박성윤은 그녀가 보여주는 휴대폰의 화면을 보았다.

    그 화면은 그녀의 sns 사이트에서 지원하는 채팅창이었다.

    “와….”

    그 댓글창을 본 박성윤은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올해 명운전 개 재밌다ㅋㅋㅋ

    -작년까진 단체전하고 개인 대전만 봤는데 올해는 재미없는 종목이 없네.

    -라일렌 누나 언제 나옴?

    -언더독 우승각 언더독에 30 걸었다. 언더독 우승하면 7배임.

    -라일렌 누나 나 죽어ㅓㅓㅓㅓ

    ….

    평소에 라일렌의 팬이었던 sns 사용자들이 응원 채팅을 어마어마하게 올리고 있던 것이다.

    “흐…. 쩌네….”

    “채팅 속도 봐라….”

    둘은 눈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응원 채팅을 보자 힘을 얻기는커녕 부담감에 오히려 어깨가 더 좁아졌다.

    그 모습을 본 라일렌은 태운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허…. 안 통하네.”

    태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라일렌에게 둘의 긴장을 풀어달라고 부탁한 게 태운이었으나 그 뜻대로 안 되고 반대로 긴장을 심화시켜버렸으니 말이다.

    태운은 라일렌이 미안해하는 것을 느끼고 일단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팩인 디바인 포스를 사용했다.

    “어…?”

    신동연과 박성윤의 몸에 따뜻하고 푸근한 마나가 감돌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어깨가 천천히 펴졌다.

    원래 몸의 피로가 사라지고 편해지면 긴장은 싸악 가라앉게 되어있다.

    “다들 알잖아요. 긴장하면 평소 실력의 절반도 안 나온다는 거.”태운의 말에 언더독 멤버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이 말로 긴장이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게요.”태운은 신동연과 박성윤을 바라보고 말했다.

    “방금 봤다시피 우리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욕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계시죠?”그들은 성인이긴 하지만 모두 사회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다.

    언더독의 멤버들에게는 수만 명이 보내는 기대와 응원이 부담스럽고 무서운 것이다.

    “우리가 첫날처럼 좋은 활약을 못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욕할 거 같아요?”전혀 아니다.

    물론 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년을 기대하며 계속 응원을 해줄 것이다.

    이것이 아래에 깔린 개, 언더독의 마력이다.

    “우리는 언더독입니다.”

    대중들은 약자가 성공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언더독은 멤버의 전력만 보면 기사단에 버금가는 수준이지만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덤비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우리는 언더독으로서의 성과를 충분히 냈습니다.”1차 예선 1위, 화송 괴멸, 적사단 견제, 금메달 두 개라는 신생팀답지 않은 성적을 냈다.

    기사단과 적사단의 2강 체제 사이에서 충분한 성과를 보여준 셈이다.

    “여기서 못한다고 해서 욕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린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돼요.”하지만 언더독은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상의 성적을 내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러니까 그냥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겁니다.”그렇게만 하면 우승은 따라올 것이다.

    [15초 뒤, 선수들은 강유도로 텔레포트 됩니다. 그럼 따로 시작 휘슬 없이 바로 게임을 시작합니다!]

    태운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이밍 좋네.”

    연정아는 그 말을 듣고 태운과 눈을 마주쳤다.

    말을 마무리해달라는 눈빛이었다.

    태운은 그 눈빛에 살짝 웃어준 뒤 다시 표정을 지우고 담담하게 말했다.

    “준비해요. 갑시다.”

    방금까지 긴장에 몸이 굳어 있던 언더독의 멤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흐으…. 잠깐 나 부축 좀…. 다리가 떨려서….”김기열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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