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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61화 (61/379)
  • 61화

    망나니 같은 김지열이지만 태운과 그가 시키는 훈련에 대한 공포는 확실히 각인되어 있었다.

    약 3주 전 태운과의 실전 훈련 중 김기열은 큰 공포에 기절을 했고 그때 김지열이 나와 태운의 훈련을 김기열 대신에 했었다.

    그때 태운은 김기열에게는 김지열이라는 다른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날 김기열이 했던 훈련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훈련을 시작했었다.

    이미 지친 몸을 가지고 깨어난 김지열은 훈련이 끝날 때쯤 거의 초주검이 되어있었다.

    그 이후로 김지열은 몸의 제어권을 얻었을 때 태운이 근처에 있으면 도망을 가곤 했다.

    물론 성공한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것도…… 두 배라고…? 아니, 그건 너무 불합리하잖아!”김지열이 불합리를 외치니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혼잣말을 큰 소리로 하고 있으니 스태프가 와서 김지열을 말렸다.

    “어…. 죄송하지만 좀 조용히 해주실 수….”

    “아악!!! 두 배라니!!!”

    그렇게 소리를 지르곤 무릎을 꿇은 후에 조용해진 김지열.

    “저기….”

    “됐다.”

    짧은 침묵 이후 김지열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냥 1등 해버리자.”

    * * *

    평소의 김기열은 결계나 함정 마법같이 섬세한 마법을 잘 사용한다.

    애초에 마나량이 많지 않아서 그것을 잘 활용해보려는 성향 덕분에 생긴 특기인 것이다.

    하지만 김지열은 달랐다.

    이상하게 김지열이 몸의 제어권을 얻게 되면 마나량이 23만까지 오르고 전투 스타일도 매우 과격해진다.

    [첫 선수는…. 적사단의 진용명 선수입니다!]

    [이 선수는 명운전에 처음으로 출전하는 선수군요.]

    [아무래도 적사단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신입이라도 대표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선전의 피해가 생각보다 뼈아프네요.]

    “허.”

    진용명은 중계진들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신입답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마.’

    진용명은 시저에게도 인정받은 연사력과 명중률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 자신만 있었다.

    “어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결계가 쳐졌고 그 순간 사방에서 과녁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의 생각보다 과녁이 훨씬 작았고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퍽퍽!

    어떻게든 맞추고는 있었지만 허우적거리며 과녁의 위치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쏘고 있던 것이었다.

    [92개의 과녁을 맞힌 순간 10분 경과됩니다! 진용명 선수 리타이어입니다!]

    [아…. 아쉽군요. 저 과녁이 생각보다 많이 빠르거든요.]

    [처음 해보는 사람은 적응을 못 하고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죠.]

    진용명은 충격에 빠졌다.

    1등을 못 한 것은 괜찮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도 좋다.

    진용명은 작년 학생들의 기록을 상기하곤 더욱 큰 충격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3분도 안 걸리고 할 수 있는 거지?’경기장 밖으로 나와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그의 귀에 다른 선수의 기록이 들렸다.

    [2분 41초입니다!]

    기사단의 세인도, 마령의 신가연도 아니었다.

    그냥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동아리의 대표였다.

    “말도 안 돼….”

    진용명은 절망해 그 상태로 일어나지 못했다.

    김지열은 그런 그를 보며 혀를 찼다.

    “어휴,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겨우 저 정도야?”그가 실력이 크게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처음 출전하는 평범한 학생들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리타이어를 당한다.

    김지열도 이것을 처음 해보는 학생이었지만.

    [다음 선수는 언더독의 김기열 선수입니다!]

    “가자.”

    김지열은 경기장 가운데로 들어갔고 천천히 올라오는 결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은 절대 걱정이나 염려는 아니었다.

    그냥 집중을 하기 위한 김지열만의 루틴일 뿐이었다.

    투투투툭!

    그의 한숨이 끝나자 사방에서 과녁이 날아들었다.

    “옥타 미사일.”

    김지열은 5개의 메테리얼로 옥타 미사일을 시전했다.

    40줄기의 매직 미사일이 날아갔고 그것은 단 한발도 빗나가지 않고 전부 과녁에 적중했다.

    [어…. 광역 스킬은 사용할 수 없게 되어있는데 말이죠.]

    [아, 아닙니다! 저건 옥타 미사일이에요!]

    [네…? 잠시만요…. 옥타 미사일을 5개 시전했으니까….]

    중계진의 사회자 중 한 명이 수를 헤아려보더니 경악했다.

    [명중률 100%입니다! 40발로 40개의 과녁을 적중시켰습니다!]

    “말도 안 돼….”

    “와…. 미친 거 같아….”

    “언더독 개쩐다!!!”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김지열의 인지도 상승은 물론 예선에 이어 두 종목 연속으로 반전을 일으키는 언더독의 인기도 하늘을 모르고 치솟았다.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네. 옥타 미사일.”

    김지열은 옥타 미사일을 재차 시전해 모든 과녁을 깨고 기록 발표를 기다렸다.

    [시, 신기록입니다! 32초! 어마어마한 성적입니다!]

    “이야…. 저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사실 저도요.”

    어느새 대기실로 돌아온 공진영은 중계 영상을 보고 감탄했다.

    “지열이는 진짜 천재라니까.”

    “기열이도 기열이 나름대로 잘하는데 지열이는 못 따라가.”김지열의 재능은 마나량, 암산 능력, 동체 시력 등등 많은 게 있지만 가장 압도적인 재능은 바로 센스였다.

    과연 누가 빠르게 움직이는 40개의 과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맞출 수 있겠는가.

    속도와 궤적을 정확히 계산하고 그 위치에 공격을 가해야만 맞출 수 있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일단 1등 확정이네.”

    아직 기사단의 세인과 마령의 신가연이 남아있었지만 32초보다 빨리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기사단의 세인은 작년보다 10초 앞당겨 1분 2초에 그쳤고 신가연은 1분 4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둘 모두 전년도까지의 신기록을 뛰어넘었지만 32초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이 그들의 기록을 가렸다.

    과녁 맞히기 종목 1등이 확정된 이상 이제 긴장할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나 간다.”

    “오오, 격파왕 홍유리!”

    “쪽팔려. 그런 거 하지 마.”

    그건 격파 종목에 출전하는 홍유리였다.

    * * *

    [충격 속에 마무리된 과녁 맞히기! 다음 종목은 어떻게 보면 가장 화끈한 종목이 될 수 있는 격파입니다!]

    다음 종목은 격파.

    계속해서 두꺼워지고 강해지는 벽을 어디까지 깰 수 있는지를 겨루는 종목이다.

    이 종목은 1일 차의 다른 종목에 비해 인기가 높았는데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다른 기교 없는, 순수한 힘 VS 힘의 대결이기 때문이었다.

    명운 헌터 아카데미는 그 점에 착안하고 볼거리가 없을 것 같은 경기에 여러 요소를 추가했다.

    벽에는 보석이나 마정석을 어느 정도 함유해 벽이 부서질 때 화려함을 더하고 충격량에 따라 이팩트를 추가했다.

    덕분에 대표전 중에서 한 손 안에 드는 인기 종목이 될 수 있었다.

    “홍유리 잘하고 와…? 얘 어디 갔냐.”

    “아까 갔어.”

    “선수 입장 5분 남았는데?”

    “집중한다나 뭐라나.”

    “음….”

    홍유리는 평소에 보면 그 나이대의 여자처럼 보이지만, 무언가를 해야 할 때가 되면 그 어떤 운동선수보다 뛰어난 집중력을 보인다.

    그게 선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는 과녁 맞히기 종목 때에도 김기열이 김지열로 바뀐 것을 확인하고 나서 중계화면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 후 구석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을 유지했다.

    무려 30분 동안.

    그녀의 경이로운 집중력은 그런 노력 속에서 나온 것이다.

    “뭐…. 진동류 마법 쓰려면 어지간히 집중하지 않으면 그 정도 성능 못 내니까.”홍유리가 이 정도로 집중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진동 마법은 난이도가 높은 마법인 만큼 엄청난 집중력을 요한다.

    그렇기에 진동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홍유리는 이렇게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도의 집중력은 격파 종목에서 빛을 발할 것이다.

    “안정적으로 1등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럴 것 같지만은 않을 거 같네.”태운은 격파야말로 안정적으로 1등을 할 수 있는 종목일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1등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지금 올라온 각 동아리의 대표 라인업을 보고 한 생각이었다.

    [지, 지금 라인업을 보세요!]

    중계진조차 당황하게 만든 사람이 대표 라인업 최상단에 표기되어 있었다.

    “아니…. 시저가 벌써 나온다고?”

    적사단의 아모스 시저가 격파에 출전한 것이다.

    “역시….”

    태운도 예상한 바였다.

    달리기 종목에서는 공진영에 의해 광탈, 과녁 맞히기에서도 실력 부족으로 인한 리타이어….

    현재 적사단의 순위는 최하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적사단의 위용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바로 아모스 시저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모스 시저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적사단 대표들의 성적이 좋지 못했거든요. 언더독 한 팀이 모든 금메달을 가져가기도 했구요. 그래서 여기서 기세를 꺾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적사단의 단장인 시저가 나온 것 같습니다.]

    [적사단은 본선 진출자가 적기 때문에 시저가 격파에 나온다고 해서 다른 종목에 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격파는 시저가 금메달을 못 딸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시나….”

    태운은 달리기 종목과 과녁 맞히기 종목의 결과를 보고 이를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적사단 전부 최하위.

    적사단에겐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단체전은 3개, 대표전 12개….”

    마지막 대표전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개인 대전’은 대표전 참가 여부와 상관없이 각 팀당 2명씩 출전할 수 있다.

    즉, 적사단에서는 3종목의 대표전에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 생각은 했지만 하필 격파라니….”

    격파에 시저가 나온 이상 확실한 금메달 카드라고 생각했던 종목에서 1등을 못 할 위험성이 생겼다.

    “일단…. 기다려보자.”

    격파 부문에서도 홍유리는 시저랑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으니까.

    * * *

    쾅! 쾅! 쾅!

    [아! 정진영 선수! 12번째 벽을 부수고 있습니다! 슬슬 힘에 부치는지 주먹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어요!]

    결계 안에서 설영 동아리의 정진영이 커다란 벽에 주먹을 열심히 내지르고 있었다.

    주먹이 벽에 닿을 때마다 굉음과 진동이 울려 퍼졌지만 벽은 안타깝게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5…. 4…. 3…. 2…. 1…. 끝! 종료입니다! 정진영 선수의 최종 성적은 11단계가 되었습니다!]

    격파 경기도 종반에 다다랐다.

    출전 선수가 단 두 명만이 남아있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남은 두 사람은 홍유리와 아모스 시저였다.

    [다음 선수는 홍유리 선수입니다!]

    홍유리는 천천히 경기장 위로 올라갔고 심판의 사인이 올라가자 결계가 생성되고 곧 벽이 솟아났다.

    1단계 벽은 집 담벼락을 떼어온 듯한 모양새였다.

    “흠….”

    홍유리는 진동 마법을 쓸 필요도 없다는 듯이 신체 강화 마법만 사용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뒤늦게 근력 훈련을 시작했지만 태운의 근력 훈련법으로 이미 교내 상위권 수준의 근력을 얻게 되었다.

    그 근력에 마법사였던 그녀의 마법 운용 실력을 활용한 신체 강화 마법을 한다?

    그건 혼자서 버퍼의 버프를 받은 근접 딜러만큼의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쾅!

    그녀의 주먹 한 방에 벽은 우르르 무너졌고 곧 다음 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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