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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49화 (49/379)
  • 49화

    “저 골목인가?”

    태운은 비명이 난 곳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3명…? 잡혀 있는 것 같은 사람까지 4명….’태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런 일은 급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야, 돈 내놓으라고!”

    퍽!

    하지만 그 골목 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태운이 생각한 일과는 달랐다.

    단순 학교 폭력의 현장일 뿐이었다.

    “하…. 그래도 다행이네…. 야! 너희들 빨리 집에….”태운이 그들을 대충 말리고 집에 가려 했을 때.

    “스텔라.”

    “알고 있어.”

    태운의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단 한 번 들었지만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

    성대가 녹아내린 듯한, 걸걸하면서도 공포스러운 괴물의 목소리와 매력적이고 고혹적이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여성의 목소리.

    처칠과의 첫 만남 때 들었던 그 목소리다.

    “이런 씨…. 다들 도망쳐!”

    “넌 뭐….”

    “염광.”

    여자의 입에서 염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빨간 광선이 골목길을 스캔하듯이 지나갔고 그것에 닿은 생명체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비명조차 지를 순간도 없이 사라져버린 고등학생들, 태운은 골목의 코너로 몸을 던져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미친….”

    태운은 직감할 수 있었다.

    눈앞의 스텔라라는 여자는 배반자의 전사이고 그중에서도 원로라 불리는 강자일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확신했다.

    지금 이들을 이길 수는 없다고.

    스텔라라는 여자도 범상치 않았지만, 얼굴에 가면을 쓴 근육 괴물도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3m는 되어 보이는 덩치에 손만 해도 태운의 상체를 감쌀 수 있을 것 같았다.

    “…배반자들인가?”

    태운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기로 했다.

    그건 오로지 자신의 머리가 도망칠 방법을 찾을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배반자?”

    ‘성공인가?’

    태운이 생각 없이 뱉은 한마디에 그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우린 위대한 칠죄의 악마님을 모시는 칠최신교다. 배반자? 인류가 언제부터 하나였고 한 편이었지? 우린 우리가 원하는 이상향을 찾아 떠난 사람들일 뿐이고 그 이상향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일 뿐이다. 감히 네가 그런…….”스텔라라는 여자는 태운의 한마디에 수십 마디의 말을 내뱉으며 반론했다.

    태운은 그사이에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일단 지금 마정석은 넉넉해. 하지만 내가 혼자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없어. 한 명이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둘은 무리야.’스텔라는 A급 중상위 정도의 실력을 가진 마법사로 보였다.

    방금 염광이라는 마법의 수식을 보고 그녀의 수준을 어림짐작한 것이다.

    스텔라라는 여자 하나만 해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리고 저 괴물이 문제야….’

    3m의 거인, 두꺼운 근육층과 거친 가죽,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큰 손과 발.

    움직임도 잘 잡혀있어 속도도 굉장히 빠를 것으로 예상이 간다.

    ‘저 녀석은 무슨 공격을 해야 먹힐지를 모르겠으니…. 미치겠네.’

    “알겠나?”

    태운이 자세한 상황을 파악했을 때쯤 스텔라는 말을 끝냈다.

    “어, 그래. 흥미롭긴 한데…. 전부 개소리잖아?”“그런 식으로 시간 끌려고 자극하지 마. 알면서 시간 끌려주긴 했지만 두 번은 너무 식상하잖아.”

    “젠장….”

    태운은 스텔라의 말을 들은 시점에서 마정석을 흡수해 메테리얼을 소환했다.

    “호오…? 10개라…. 재밌네.”

    스텔라는 미소를 지었다.

    “난, 30개거든.”

    “뭐…?”

    스텔라는 내내 품에 넣고 있던 양손을 꺼내 태운에게 보여주었다.

    “메테리얼 생성 반지, 두 개씩 10개니까 20개, 그리고 원래 내가 만드는 메테리얼 10개. 총합 30개.”

    “…….”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쿵! 슉!

    “끼워 줘라. 대화에…. 나도….”

    거인이 발을 한번 구르더니 순식간에 태운의 앞까지 달려왔다.

    물론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잘못 걸리면 한 번에 죽을 것 같았다.

    일단은 방법이 없으니 싸우기로 한 태운이었지만 눈앞에 캄캄해질 지경이었다.

    이들을 동시에 상대해서 이기는 이미지가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그럼 죽어. 다크 블레이드.”

    그녀의 메테리얼에서 30갈래의 검은 칼날이 날아왔다.

    태운은 어떻게든 막기 위해 하이 프로텍트를 사용하려 했다.

    “하이 프로텍….”

    “블랙 실드.”

    날아오면서 닿는 모든 것을 갈라 버리는 칼날들이 태운을 자르기 직전태운의 눈앞에 칼날보다 어두운 칠흑의 방어막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검은 칼날들은 전부 그 방패에 흡수되었다.

    “강태운, 조금만 더 버텨. 허덕륜 선생님이 A급 헌터 한 명이랑 B급 헌터들 데리고 오신다고 했으니까.”

    “연정아…?”

    절체절명의 순간 태운을 구해준 건 봉인의 강도를 50%까지 낮춘 연정아였다.

    “정아야?”

    태운은 연정아의 상태창을 보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의 봉인 강도를 낮추고 마기마저 내뿜고 있었으니까.

    “너 정말 괜찮아?”

    “괜찮아. 내가 봉인 강도 높인 것도 저 녀석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어서 그런 거니까. 저 녀석들만 죽이면 돼.”연정아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스텔라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아아…. 아스모데우스의 아이이시여…. 어찌 우릴 떠나셨나이까….”스텔라는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거 괜찮은 거 맞냐?”

    “긴장 늦추지 마.”

    연정아는 다음 레퍼토리가 뻔히 보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텔라는 일어나서 공격을 준비했다.

    “돌아오실 생각이 없다면 제가 강제로라도 모셔가야겠습니다!”

    “역시….”

    스텔라의 행동이 그저 익숙하다는 듯 전투 준비를 하는 연정아.

    태운은 그런 연정아가 왜인지 안타까워 보였다.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눈앞에 있는 적한테 집중하자.”

    “알겠어.”

    태운도 연정아를 따라 공격을 준비했다.

    ‘연정아가 합류하긴 했지만, 아직도 저쪽이 전력상 더 우위에 있어.’거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덩치에 그 스피드라면 충분히 위협적이다.

    태운은 그래도 방금의 공격에서 알아낸 것과 연정아의 합류 덕분에 승산을 점칠 수 있었다.

    “연정아, 저 여자, 메테리얼이 30개긴 한데 전부 활용할 능력이 안 돼.”“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이네?”

    “정답.”

    방금 메테리얼로 다크 블레이드를 시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마나 손실, 그건 단순히 실력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태운이 어느 정도 계산을 마쳤다는 걸 눈치챈 연정아는 태운에게 물었다.

    “그럼 이길 확률은?”

    “30% 정도.”

    “낮네. 그럼 A급 헌터가 왔을 때 이길 확률은?”

    “100%.”

    “A급 헌터가 올 때까지 우리가 버틸 확률은?”태운은 씨익 웃었다.

    “그것도 100%.”

    “넌 거기서 닥치고 있어!”

    태운에게 검은 칼날들이 날아왔다.

    “스파크 스피어.”

    태운은 창을 소환하고 필사의 창술이 알려주는 대로 움직였다.

    검은 칼날들을 전부 피하고 쳐낸 후 그것을 그대로 스텔라에게 던졌다.

    “흐아!”

    푸-욱!

    그 창의 앞에 거인이 나섰다.

    일부러 대신 맞기 위해 그런 것이다.

    하지만 태운이 그것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감전. 속박.”

    스파크 스피어를 소환한 이유는 단순히 필사의 창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던져봤자 거인이 대신 맞아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 안에 많은 양의 마나를 담았다.

    태운은 그것을 활용해 창과 거인을 속박했고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로 감전시킨 것이다.

    “거인 최소 1분 밴.”

    “그렇게 가만둘 것 같아?”

    스텔라는 창에 걸려 있는 감전 마법을 디스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스펠을 시작하자마자 그녀의 얼굴에는 경악이 돋아났다.

    “왜…. 왜 수식이 계속 바뀌는 거지…?”

    태운이 수식이 계속 바뀌도록 마법을 설계한 것이었다.

    디스펠의 귀재인 태운이 디스펠의 가능성을 배제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냥 1분 동안 혼자서 고생해.”

    “헬 플레임.”

    태운이 시선을 끌고 그사이에 연정아가 공격을 시도했다.

    스텔라는 디스펠을 중단하고 급하게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크…. 크윽….”

    “음…?”

    태운은 방어에 총력을 다하고도 마법 하나 쉽게 당해내지 못하는 스텔라를 보고 위화감을 느꼈다.

    “정아야, 이거 어쩌면 우리가 이길지도 모르겠다.”

    “…방금 나도 느꼈어.”

    스텔라는 공격 마법에 비해 방어 마법의 숙련도가 낮았다.

    아니, 낮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저 거인이 옆에서 계속 대신 맞아줘서 그런 거겠지.”저 거인의 존재 자체가 든든한 방어막이었기에 그녀는 방어 마법을 사용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저거 우리가 잡는다. 정아야. 견제 좀 해줘.”

    “알았어.”

    태운은 10개의 메테리얼로 모두 파이어 랜스를 소환했다.

    그리고.

    “고정.”

    날아가려던 파이어 랜스들이 전부 허공에 멈췄다.

    태운이 최근의 얻은 스킬인 ‘고정’의 효과였다.

    고정 마법을 사용하면 자신의 제어력이 통하는 것들을 일시적으로 멈출 수 있었다.

    태운은 마법을 고정해놓고 마정석을 흡수해 다시 메테리얼를 만들었다.

    단숨에 마정석을 흡수하느라 몸이 고통스러웠지만 괜찮았다.

    하급 마정석을 흡수하는 정도의 고통은 익숙했으니까.

    이번에도 태운은 파이어 랜스를 소환한 후 고정해두었다.

    누가 생각해도 힘으로 누르려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사실 태운은 확실한 상황에선 이상한 기교를 보이지 않는다.

    승리가 확실한 상황에서 기교를 부리는 건 여유였고 끝나지 않았음에도 여유를 보이는 건 방심이라는 거니까.

    그리고 방심은 언제나 변수로 이어진다.

    타겟에게 변수를 일으킬 기회조차 주면 안 된다.

    [정직한 사냥꾼 발동. 변수를 탐지합니다.]

    [타겟 옆 거인은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날 것. 하지만 변수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타겟의 메테리얼 소환 시간이 빠릅니다.]

    ‘그래….’

    정직한 사냥꾼의 효과를 본 태운은 연정아에게 말했다.

    “내가 방어막 깨부수면 바로 저 녀석한테 제대로 된 거 하나 꽂아줘.”확실한 마무리를 해달라는 말이었다.

    연정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운은 연정아의 대답을 듣고 바로 행동에 나섰다.

    “고정 해제.”

    스무 발의 파이어 랜스는 정확히 스텔라를 향해 날아갔다.

    스텔라의 방어막은 파이어 랜스에 닿을 때마다 깨져나갔다.

    “으아아아!!!”

    스텔라는 기겁을 하며 방어막을 추가로 띄웠지만 파이어 랜스는 기세를 잃지 않았다.

    “야! 일어나! 이 근육 돼지 새끼야!!!”

    처음 봤을 때 여유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곳에는 추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쩌-적…!

    마침내 모든 방어막이 깨졌고 남아 있는 6발의 파이어 랜스가 스텔라의 몸을 관통했다.

    “꺼…. 끄억……꺼어….”

    “흑염.”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스텔라에게 연정아가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러자 스텔라의 입안에서 검은 불이 뿜어져 나왔다.

    몸 안부터 태워 버리는 연정아의 스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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