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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47화 (47/379)
  • 47화

    * * *

    “후! 이제 마지막이에요.”

    저녁 8시, 태운이 자하르 연구실에 온 지 4시간이 지났다.

    태운은 지금까지 계속 사건의 패턴과 타이밍을 계속 알아내고 계산했다.

    그리고 500번이나 죽은 끝에 보스의 마지막 패턴을 알아냈다.

    “다시 갈게요.”

    태운은 기계에 들어가 마정석 흡수를 시작했다.

    [이 동굴 안에는 500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습니다. 동료에게 가일의 사기 행각을 들키지 않고 공략에 성공하십시오.]

    태운은 다시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로 돌아왔다.

    “여! 가일!”

    “저녁 시간 다 되어가는데 안 오길래 찾으러 왔어.”“내일이 개시일이니까 오늘은 든든하게 먹어야지.”

    그들의 똑같은 대사

    “그래, 가자.”

    태운도 그들의 말에 똑같은 말로 받아쳐 준다.

    “로난”

    “응?”

    태운은 로난의 팔을 잡고 말없이 잡아당겼고 약 2초 뒤에 그 자리에 종유석이 떨어졌다.

    “어, 어떻게 알았어?”

    “방법이 있어.”

    태운은 적당히 얼버무린 뒤 캠프로 이동했다.

    캠프에는 한 명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의뢰주가 데려가라고 한 마법사, 케인이었다.

    실력도 좋고 멘탈도 강해서 모두와 금방 친해졌지만….

    “야, 너 뒤에 숨긴 거 내놔.”

    “어…? 뭐, 뭐가?”

    케인은 그들이 캠프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는지 당황하며 손에 있는 약병을 등 뒤로 숨겼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태운은 두 번이나 죽으면서 그가 뭘 하는지 알아냈다.

    ‘부스트.’

    이 세계에는 신체 강화 마법이 발명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신체 강화 마법은 알아채지 못했다.

    “내놔.”

    가일의 신체 능력이 하급 용병 수준이긴 했지만 부스트를 사용하면 마법사의 손목 정도는 낚아챌 수 있는 수준은 된다.

    찰랑.

    태운은 마법사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병을 빼앗아서 그걸 셀에게 던졌다.

    “그거 감정해 봐. 갈리오, 와서 잡아. 공격하려는 거 같으면 머리통 부숴 버려.”

    “이게 뭐길래….”

    셀은 뚜껑을 열어 손톱에 찍어보더니 경악했다.

    “이거…. 리니안이라는 각성제이자 극독이야. 이건 왕국에서도 금지된 물질인데 이걸 가지고 있는 이유가 뭐지?”“…뻔하지. 저걸 들고 우리가 만들어놓은 음식 솥 앞에 서 있었던 이유.”그 물질의 이름을 듣자마자 갈리오가 그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잡고 들어 올렸다.

    “누구야? 누가 우릴 죽이라고 했지?”

    뿌-득.

    “끄아아악!!!”

    갈리오가 그의 팔을 잡고 부러뜨리며 물었다.

    그런 갈리오를 태운이 말렸다.

    “그냥 죽여. 누군지는 알고 있으니까.”

    “뭐? 누군데.”

    “의뢰주.”

    “아…. 대충 견적 나오네.”

    리니안으로 파티원들의 전투력을 일시적으로 높인 후 목표 대상을 죽이게 한 다음 리니안의 부작용으로 파티원 모두 사망.

    그렇게 되면 의뢰주는 보수를 내지 않고 길드에 10%의 수수료만 내면 된다.

    “어쩐지 보수가 말도 안 되게 높긴 하더라.”

    “하여간 부자들이 더 하다니까.”

    갈리오는 그 상태로 동굴 벽에 케인의 머리를 박아서 부숴버리려 했지만, 셀이 말렸다.

    “형 캠프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죽여줘. 시체 옆에서 자긴 싫거든.”

    “아, 오케이.”

    “이…. 개 같….”

    “어허”

    “끄아아악!!!”

    갈리오는 최고급 용병인 플래티넘, 케인은 골드 등급의 마법사였기 때문에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뒤에서 실없는 퍽 소리가 났고 갈리오는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긴장하자.”

    지금까지는 튜토리얼, 이제부터 진짜였다.

    태운은 셀이 떠주는 스튜를 건네받았다.

    고기와 야채 등의 건더기가 듬뿍 들어 있는 스튜였다.

    “일단 내일 개시라고 했던 거 취소할게. 사흘 뒤가 개시다.”

    “뭐?”

    “여기 사는 이무기는 엄청 강해. 내 생각에는 우리가 실수 없이 싸워도 이길 확률은 10%에 지나지 않아.”

    “그 정도라고?”

    “응, 우리의 전력과 저 녀석의 전력의 차이는 그 정도야. 못 이겨.”태운은 그 간단한 사실을 50번이나 죽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무기의 크기도 예상보다 거의 두 배가 더 컸고 약간이지만 마법도 사용했다.

    “곧 있으면 드래곤이 될 녀석이야. 그냥 간단한 방법으로는 잡을 방법이 없어.”

    “그럼 어떻게 잡을 거야?”

    태운은 천장을 가리켰다.

    “로난, 너도 오늘 이거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

    “음?”

    “종유석, 석순, 석주”

    이 동굴은 크고 오래되어 종유석과 석순, 석주가 상당히 크다.

    아까 로난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 종유석도 사람의 두 배에 가까운 크기였지 않은가.

    “그럼 어떻게 잡으려고?”

    “함정을 팔 거야. 로난 화약 있지?”

    “응.”

    “그게 필요해.”

    작전은 간단했다.

    화약을 설치해놓고 이무기를 유인해 타이밍에 맞게 터뜨린다.

    “내가 신호하면 로난, 네가 불화살로 설치해놓은 화약 주머니를 맞추는 거야.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뭐, 껌이지.”

    로난은 믿을 만하다.

    그녀 수준의 궁수라면 화약 주머니를 맞추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정신적인 압박이나 방해를 안 받는 상태의 그녀는 단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뭐지?”

    “너희는 나랑 같이 뛰면서 무기로 방패를 열심히 때려.”

    “……? 그게 무슨 소리야?”

    “구렁이가 오래 살아서 된 게 이무기잖아. 뱀은 진동에 예민해. 너희가 방패 치면서 달리면 유인의 효과가 좋아질 거야.”

    “네가 치면서 달리면 안 되는 거야…?”

    난 체력이 안 되거든.

    이라는 말을 겨우 삼킨 태운은 화제를 돌렸다.

    “그럼 밥 먹고 빨리 화약 설치하자. 사흘 동안 이거만 설치해야 하니까 각오해둬.”

    “오케이.”

    태운은 스튜를 먹으면서 머릿속에 들어 있는 함정의 설계도를 되새겼다.

    물론 이번에 틀려서 실패하더라도 다음 기회가 있겠지만 태운은 이번에 성공하고 싶었다.

    자하르에게 호언장담을 하고 왔으니 말이다.

    “다 먹었으면 다들 일어나.”

    “노동 시작인가.”

    “그래.”

    지금 흘린 땀 덕분에 너희는 돈방석에 앉을 수 있을 거다.

    * * *

    “가일, 다 설치한 거 맞지?”

    “설치는 다 했고…. 젖은 화약도 없고…. 로난 저격 위치 다 외웠지?”

    “응, 저격 포인트랑 순서도 다 외웠어.”

    “갈리오랑 셀은?”

    “잘 두들길 수 있어.”

    “생각해보니까 되게 멋없는 역할이야.”

    “미끼가 그렇지. 뭐.”

    파티원들은 전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완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로난은 첫 번째 저격 포인트에서 대기, 우리는 바로 진입한다.”태운은 이무기가 어디에 거처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무기는 3~4달에 한 번 먹이활동을 하러 나오는 것 말고는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잠을 잔다.

    이무기가 먹이 활동을 한 것은 불과 한 달 전, 지금은 먹은 동물들을 천천히 소화시키며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가자.”

    태운은 갈리오와 셀을 데리고 동굴의 안쪽으로 나아갔다.

    약 20분 정도 걷다 보니 동굴의 최심부까지 도달했다.

    “와…. 진짜 크네.”

    이무기를 보지도 않았지만, 최심부에 있는 방으로 이어지는 입구부터 크기가 상당했다.

    성인 남자가 10명 나란히 서야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대기, 내가 자극하고 올 테니까 신호하면 달려.”태운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창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마법으로 창을 던지는 데 필요한 근육을 집중적으로 강화했다.

    “튀……어!”

    슈우-욱!

    푸-욱!

    “키이이이이!!!”

    태운의 창은 뱀의 눈으로 곧장 날아가 눈꺼풀을 뚫고 뱀의 눈에 박혔다.

    텅! 텅! 텅! 텅!

    태운은 부스트를 사용하고 달렸고 갈리오와 셀은 방패를 열심히 치면서 달렸다.

    쿠-쿠쿠쿠!!

    직경 3미터가 넘는 굵기를 가진 수십 미터 길이의 이무기가 엄청난 속도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처음 이 녀석을 봤을 땐 다리가 풀려서 죽었었다.

    태운은 수백 번을 봤으니 적응이 됐다고 하지만 갈리오와 셀은 처음 보는 것일 텐데도 침착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

    “오케!”

    로난의 불화살은 종유석에 설치해둔 화약에 정확히 날아들어 박혔다.

    퍼-엉!

    쿵!

    폭발한 화약이 종유석을 떨어뜨렸고 그 종유석은 이무기의 머리 위에 바로 떨어졌다.

    “키이이이!”

    “좋아! 다음 저격 포인트로 이동해!”

    태운은 미리 짜둔 루트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루트는 함정 순서대로 그냥 가로지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난이 다음 저격 포인트로 이동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완벽하게 계산된 루트였다.

    “다음!”

    쿵!

    종유석이 떨어지고 무너진 석주에 깔리고, 이무기는 그럴수록 점점 힘을 잃어갔다.

    ‘슬슬….’

    “지금이다!”

    기-이잉.

    이무기는 위험을 느끼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살아남으려 한다.

    지금은 마력을 활용한 열화판 브레스로 태운과 파티원들을 모두 날려 버리려 하고 있다.

    로난의 화살은 동굴의 천장으로 날아갔고 천장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더니 어마어마한 양의 돌무더기가 쏟아졌다.

    콰아아-.

    동시에 이무기가 브레스를 쏘아냈고 파티원과 브레스의 사이를 돌무더기가 가로막았다.

    돌무더기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 버렸지만, 덕분에 이무기의 브레스를 막을 수 있었다.

    “방심하지 마! 계속 달려! 갈리오!”

    태운은 발이 느려지는 것 같은 갈리오에게 호통을 치고 자신에게 다시 부스트 마법을 사용했다.

    갈리오는 체력은 좋았지만 쉽게 방심하는 경향이 있다.

    전에도 수십 번이나 발을 늦춰서 실패했었다.

    이렇게 다그쳐야만 정신을 차리고 달린다.

    쿠구구구.

    “키이이이!”

    이무기는 돌무더기를 뚫고 돌진해왔다.

    “언제까지 뛰어!”

    “저게 죽을 때까지 뛰어! 절대 쉬지 마!”

    잠깐이라도 멈춰서 관성을 잃는 순간 이무기에게 따라잡힌다.

    절대 쉬면 안 된다.

    그다음은 이 작업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었다.

    종유석으로 공격하고 이무기가 반격하려는 것 같으면 돌무더기를 막는 것.

    포기하려는 낌새를 보이면 등에 매달고 있는 창으로 다시 어그로를 끌었다.

    그렇게 사이클이 7번 정도 돌자 이무기는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최후의 수를 준비했다.

    쿠우….

    이무기는 돌진을 멈추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매끈하게 눕혀있던 이무기의 비늘이 날카롭게 섰고 그것을 시작으로 이무기의 피부가 돌처럼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패턴이다! 준비한 대로!”

    지금 이무기는 부족한 힘으로나마 불완전한 드래곤이 되려는 것이다.

    아직 드래곤이 되기에는 부족한 힘으로 드래곤이 된다는 건 평생 부족한 반쪽짜리 드래곤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미래의 가능성을 버리더라도 당장은 살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판단은 도리어 자신을 죽이는 것이 되어 버렸다.

    “지금!”

    태운과 파티원들은 동굴 안에 설치한 모든 화약을 터뜨렸다.

    콰콰콰쾅!!!

    화약들은 연쇄 폭발을 일으켰고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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