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비키시죠.”
“아…. 네.”
“거인화.”
가장 전방에서 뛰고 있던 조강현의 팔이 4배가량 부풀었다.
그의 이명은 ‘거신’.
신체 일부를 크게 만들고 그에 비례해서 힘도 강력해지는 스킬이었다.
터-억.
그는 순식간에 거대해진 팔로 배반자 전사의 얼굴을 잡았고콰-득!
악력으로 머리통을 아주 곤죽으로 만들어놓았다.
“파이널 프로스트.”
그다음은 얼음 마법이 특기인 설녀 이설아의 차례였다.
얼음의 기운이 쏘아져 날아갔지만 다른 건물이나 사람들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달려오고 있는 배반자들만 다리부터 천천히 얼어붙어 갔다.
상당한 수준의 섬세함이 없다면 불가능한 마법이다.
“다 처리했어. 근데 방어선이 노려지고 있는 걸 안 이상 이대로 둘 수는 없어.”“그래, 두 명씩 맡아서 방어선을 지키자.”
“그…. 방어선은 지금 12곳입니다.”
“위치가 적힌 지도는?”
“여기 있습니다.”
“오케이, 감사합니다.”
능숙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그들의 모습에 태운과 찬영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때 마스터 등급의 학생 중 한 명이 태운과 찬영을 발견했다.
“너희가 왜 여깄어?”
“저희도 도움이 될 겁니다. 장담하겠습니다.”“아니…. 일단 알겠어. 잘잘못은 나중에 따지자. 얘들아! 마스터키랑 구찬영도 따라왔어!”그러자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여, 마스터키. 뭔가 도움이 될 거 같아서 따라왔나?”“뭐라고 하고 싶지만 너 정도면 도움이 안 될 거 같진 않네.”태운도 스탯이 조금 낮다 뿐이지 근본적인 실력만 따지자면 이들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음…. 얘들은 소탕조에 넣기는 그러니까…. 여기, 3번 방어 초소랑 4번 방어 초소에 한 명씩 배치하자. 태운이랑 공전하, 찬영이랑 마이클 어때?”
“음…. 조합상 좋네.”
공전하는 태운처럼 마법과 근접 무기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마검사 스타일의 싸움을 했고 마이클은 화력이 뛰어난 마법사 웨퍼였다.
조합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이대로 진행하자.”
태운이 달려오면서 본 뉴스에 의하면 현재 홍대 내에서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헌터는 B급 3명, C급 8명 나머지 50명은 그 이하의 헌터들이라고 한다.
배반자 전사들의 수는 최소 100명으로 추측이 되고 있고 대부분 C급 헌터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질적으로도 딸리는데 양적으로도 부족했다. 아카데미에서 지원을 안 왔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마스터키! 우린 4번 초소에서 대기하면서 탈출하려는 배반자들을 잡는다! 긴장 빡세게 해!”부스트를 쓰고 달리다 보니 4번 초소로 가는 길에 한 명의 배반자 전사가 달려들었다.
“초속공….”
공전하가 스킬을 사용하려고 하자.
“저에게 맡기시고 마나 아끼세요!”
태운이 그를 말렸다.
태운은 4개의 메테리얼을 뽑은 후 각각 화폭과 보호막을 사용했고 라이트닝, 속박 2 융합 마법을 시전했다.
파파팍!
여전히 화폭의 위력은 부족했지만, 배반자의 속도를 느리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덕분에 전격 속박을 적중시킬 수 있었고.
“파이어 랜스.”
전격 밧줄에 묶여 아무것도 못 하는 배반자의 숨통을 끊었다.
“초소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선배님은 마나를 아끼세요.”
“……너 대단하구나.”
* * *
“크큭….”
“이런….”
마나가 전부 소모된 건 이미 오래전이다.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무기도 부러져 버린 상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지원도 불분명한데….’
버티는 게 의미가 있었을까?
가장 가까운 백운 길드의 주요 전투원이 전부 던전으로 간 상황이었고, 얼마나 버티든 지원은 올 생각을 안 하는데.
한국 헌터 협회에 속한 C급 헌터, 김수백은 홀로 20분이 넘게 4명의 배반자를 상대했다.
그의 특성인 ‘수문장’ 덕분에 여러 명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을 뿐, 더 이상은 무리다.
“하…. 좀 더 살고 싶었는데.”
그가 단념한 순간.
“선배님! 이번엔 저 혼자는 무리예요!”
“그래!”
카각!
“……?”
자신의 목을 향해 떨어지던 칼이 무언가에 막혀 멈췄다.
“뭐야?”
“뭐긴 뭐야.”
공전하는 자신의 시그니처 스킬인 초속공을 사용했다.
말 그대로 엄청나게 빠른 속공, 김수백의 목을 치려던 녀석의 목이 공전하의 검에 의해 날아갔다.
“설마…. 발도술사?”
공전하의 이명은 아주 유명했다.
그는 졸업하자마자 국내 최고의 길드인 태양 길드의 1군 전투원으로 들어가게 계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발도술사다! 도망가!”
“어딜.”
하지만 그들의 실수는 하나 더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공전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 그 실수였다.
“명중.”
태운은 방어 초소에서 챙겨온 속박구를 던졌다.
스킬 명중의 효과로 아주 절묘한 위치에 던져 한 번에 3명을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이런 씨….”
“선배님 처리 부탁드립니다.”
“너, 이 자식…. 그냥 소탕조에 넣었어도 됐을 거 같은데?”태운은 마나를 사용해 속박구의 속박을 더욱 강하게 하고 있었고 공전하는 천천히 걸어가 그들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현직 헌터도 아니고 학생이 이렇게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에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배반자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스터 등급의 학생들은 훈련 대신 파견을 많이 나가고 그곳에서 배반자 전사들의 만행으로 인생이 망가져 버린 사람들을 자주 봤으니까.
그 때문에 그들을 처리하는데 전혀 거리낌 없었다.
“많이 지치신 것 같은데 조금만 따라오세요. 저희는 지금 4번 방어 초소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만 가면 회복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혼자 4명을 맡고 계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아닙니다. 단지 막고 있었을 뿐이라….”
이동하며 있던 세 번의 전투 덕에 이곳에 있는 배반자 전사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D급 상위에서 C급 하위 정도의 수준.
종종 B급 수준의 적도 나타났다.
이곳에 있는 헌터들의 수와 수준을 보면 여태 뚫리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다.
“여기서 5분 정도만 가면 있으니까 조금만 힘내세요.”그렇게 달리다 보니 금방 4번 방어 초소에 도착했다.
방어 초소를 지키던 군인이 소총을 겨누며 말했다.
“누구냐!”
“명운 헌터 아카데미 마스터 등급 학생입니다. 적들이 방어 초소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 지원 왔습니다.”
“아, 발도술사 님이시군요! 영광입니다.”
“인사는 나중에 해야겠군요.”
공전하는 혀를 찼다.
“참, 타이밍 묘하네.”
“예…?”
“이분 데리고 멀리 떨어져 계셔주세요.”
공전하는 김수백을 넘겨주고 검을 뽑았다.
“긴장해라. 느껴지는 기척을 보면 A급이다.”
“…알겠습니다.”
공전하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무전기를 입에 대었다.
“4번 초소, A급으로 추정되는 적 발견. 10분 안에 무전하겠다.”10분 후에도 무전이 없다면 일이 틀어진 것이니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겠지.
지금 다가오고 있는 적은 공전하가 자신들이 잘못될 가능성을 점칠 정도로 강적이라는 말이었다.
“온다!”
태운의 눈으로는 적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지금 태운은 창을 들고 있었다.
필사의 창술이 인도하는 대로 몸을 움직였고 원래 몸이 있었던 자리에 사람 머리만 한 돌덩이가 지나갔다.
“이런 미친….”
맞았으면 즉사였다.
“이여~ 눈 좋네. 그걸 피해?”
그제야 저 멀리 근육질의 괴물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말 그대로 괴물.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덩치와 얼굴이었다.
“괴물 자식….”
“드디어 300명 찍고 A급에 비견하는 힘을 얻었다…. 이대로 성으로만 돌아가면 난 원로회에 들어갈 수 있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그러니까 비켜! 난 살아 돌아갈 거다!”
약 300미터에 가까운 거리에서도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이곳에 도달하자 녀석도 이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필 여기에 저런 괴물이…. 태운아 괜찮….”
“솔리드 아머.”
태운은 아무 말 없이 투명 갑옷을 자신과 공전하에게 두 겹씩 씌웠다.
“두 번은 막아줄 겁니다.”
“…너는 아무런 감상도 없구나. 그래, 먼저 간다. 지원해.”
“네, 하이 부스트, 호크 비전”
태운은 속도와 동체 시력이 좋아지는 마법을 공전하에게 걸어주었다.
둘 다 태운이 강화하거나 발명한 마법이었다.
“…진짜 대단한 놈이네.”
공전하는 뽑았던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초속공, 발도 호(虎).”
얌전하던 공전하의 주변 공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괴물과의 거리가 100미터로 줄어들었을 때
그는 검을 뽑았다.
촤-악!
검을 뽑은 순간 그의 신형은 사라졌고 괴물의 팔을 자르며 달리기를 멈췄다.
“일단 팔 하나. 다음은 목이야.”
“끄…. 끄아아악!!!”
공전하는 괴물의 등 뒤에서 나타났고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렇게 승기를 잡는가 했지만….
슈-욱! 쾅!
“2 대 1은 비겁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옆 건물 옥상에서 날아온 마법에 공전하는 벽에 처박혔다.
“뭐 해. 빨리 회복해, 돼지 새꺄.”
“쿠…. 크큭….”
괴물의 상처 부위가 꿈틀거리면서 순식간에 팔이 다시 솟아났다.
토가 쏠릴 만큼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여길 뚫고 탈출해서 둘 다 원로회의 일원이 된다.”
“크큭…. 당연하지.”
A급의 힘을 가진 배반자 전사들이 태운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후….”
그들의 공격이 태운을 향해 달려들기 직전.
“윈드 로드, 아이시클, 속사.”
“초속공.”
“얼어붙은 칼바람.”
“발도 천(川).”
뒤에선 공전하, 정면에선 강태운이 그들을 향해 공격을 쏟아냈다.
태운의 솔리드 아머 덕분에 공전하는 별 타격 없이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태운의 공격에선 수많은 얼음송곳이 바람을 타고 날아갔고, 공전하의 검에선 세 갈래의 검격이 발현됐다.
이번엔 두 팔을 잃고 등에 깊은 상처를 입은 괴물과 방어하느라 모든 메테리얼을 다 써 버린 마법사.
하지만 태운의 메테리얼은 아직 남아 있었다.
“피하세요!”
“알겠다!”
공전하는 초속공의 속도를 활용해 적들과의 멀어졌다.
“인페르노, 폭풍, 블레이드.”
과거 찬영과의 대련 당시 사용했던 그 흉악한 마법을.
“다중 소환.”
한 번에 여러 개 소환한다.
“지옥의 칼날 폭풍.”
쿠-쿠쿠쿵!!!
용암을 품고 있는 칼날의 폭풍 5개가 동시에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수십 미터 밖에 있음에도 피부가 익을 것만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폭풍이 회전할 때마다 닿는 전봇대는 깔끔한 단면을 남기고 토막이 났고 건물에도 깊고 긴 상처를 남겼다.
“허억… 허억….”
[‘상급 마법’의 레벨이 LV.6 → LV.7이 됩니다.]
태운은 방금 그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엄청나게 어려운 수식을 계산하면서도 마나의 출력을 조절해야만 했다.
순간적으로 부족한 마나를 보충하기 위해 마정석을 흡수했고 그 고통 속에서 메테리얼에 억지로 마나를 욱여넣었다.
하마터면 마법이 실패할 뻔했었다.
“야…. 너 나 대신 마스터 가라. 내가 익스퍼트로 내려갈게.”“아…. 아니에요…. 운이 좋았습니다…. 후….”어느새 태운의 옆으로 돌아온 공전하는 태운을 부축했다.
“그리고…. 저 녀석들 생사만 확인합시다.”
“그래. 확인하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