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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9화 (29/379)
  • 29화

    전 세계 헌터 랭킹 2위에 빛나는 검성 셀.

    현재 유일하게 셀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바로 오러다.

    그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공기와 물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갈라진다고 말한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오러라는 게 스스로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거였습니까…?”특성으로 타고나지 않아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오러였느냐는 질문이다.

    “물론. 원래 오러는 극한의 단련과 깨달음으로 얻는 것일세. 특성으로 타고난 그놈이 특이한 거야. 하지만 너처럼 혼자서 마나 블레이드 단계까지 도달한 녀석은 내 지금껏 한 명밖에 보지 못했는데….”처칠은 기대에 찬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열심히 해보게. 자네가 오러만 얻을 수 있다면 셀보다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수 있을 터. 또….”처칠은 태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녀석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것 같아도 너무 조바심 내지 말게. 저 녀석의 재능과 너의 재능은 아예 별개의 영역이니 말이야.”찬영이 조바심을 느낀다?

    ‘나한테?’

    찬영에게서 호승심과 목표 의식을 느꼈지만 깊숙한 내부에는 부러움과 열등감이 숨겨져 있었다.

    마정석 흡수 능력을 얻은 이후에는 열등감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결코 그를 부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찬영이 조바심을 느꼈다는 것에서 태운은 뭔지 모를 감정이 가슴으로부터 북받쳐 올라왔다.

    “쉽게 말하자면 저 녀석은 불가사리야.”

    불가사리.

    쇠를 먹으며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전설 속의 동물이다.

    “필요한 것은 모조리 집어먹으며 언제까지나 단단해지고 몸집을 불려 나가겠지. 하지만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일세. 계속해서 두드리고 갈고 담금질하다 보면 결국에는 못 벨 것이 없는 최고의 검이 되어있을 걸세.”

    “가장… 단단한 금속….”

    찬영은 그것을 듣고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처칠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태운 또한 불가사리라는 말을 듣고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면 모두 흡수해 몸집을 불린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었어.’처칠은 혜연에게도 말을 걸었다.

    “자네는…. 아주 뜨거운 불꽃이구나. 누구보다도 화려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타오르는 불꽃…. 좋은 나무를 만나 조금이라도 더 오래 타오를 수 있도록 해야겠구나.”

    “아….”

    처칠이 혜연의 차례까지 조언을 해주자 태운의 손등에서 빛이 났다.

    [대현자의 ‘운명 비유’를 들었습니다.]

    [칭호 ‘불가사리’가 추가되었습니다.]

    [불가살(不可殺)이 되어 일정 이상으로 강해지면 죽임당하지 않게 됩니다. (12/100)]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강함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칭호 불가사리의 효과는 대단했다.

    100레벨에 도달하면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그 의미는 바로 무적이라는 것 아닌가?

    하지만 태운은 그것보다 다른 것에서 경악했다.

    ‘대…현자라고…?’

    대현자, 그것이 행상인 처칠의 진짜 정체였다.

    * * *

    “너희 진짜 미쳤냐!”

    “미, 미안….”

    “나도….”

    처칠이 가고 찬영과 태운은 혜연에게 꾸중을 들었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 그 두 기술의 충돌이 그대로 일어났다면 누구도 무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난 태운이가 먼저 해서…….”

    “어허.”

    “…….”

    태운은 괜히 입을 열어 괜히 혜연을 자극한 찬영의 옆구리를 찔렀다.

    벌써 10분째 혼이 나고 있었기 때문에 혜연도 슬슬 봐주려고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칠 할아버지께서 도와주셔서 망정이지. 진짜 어떡하려고 했어?”그렇게 5분의 시간이 더 지나고 혜연은 찬영과 태운을 놔주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생각 없이 대련하자고 해봐. 그때는 이 정도로 안 끝나.”

    “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빨리 가서 할 거 해.”

    찬영과 태운은 행여나 꼬투리 잡힐세라 빨리 일어나 제자리로 가서 조용히 훈련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혜연도 한시름 놓고 자신의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태운은 이번 대련으로 융합 마법의 위용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융합 마법은 적은 마나로 고효율의 위력을 뽑아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마법을 연산해야 해서 실전에서 사용하기 힘든 마법이다.

    그래서 하위 마법을 섞어 하나의 마법 수식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렇게 하면 마나의 소모가 거의 2배에서 3배 넘게 커진다.

    이렇게 직접 연산해 시전 직전에 융합하는 방식은 마나 소모를 적게 하면서도 충분하고도 넘치는 위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좋은 방식을 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디스펠을 하며,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마법의 변형까지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경악스러운 연산 능력을 가진 태운만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한번 연습해 봐야겠어.”

    태운은 마나를 100씩 묶어 10개의 메테리얼을 만들어냈다.

    “매직 미사일, 컨벡스, 윔블, 전격, 폭발…. 윽….”5개를 동시에 연산하려니 머리에서 계산 순서가 뒤엉켰고 순식간에 마나는 공기 중으로 날아갔다.

    “3개까지 쉽게 됐는데…. 휴….”

    복잡한 마법 수식 3개보다 쉬운 마법 수식 5개가 훨씬 더 어려웠다.

    조정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후…. 하다 보면 되겠지.”

    태운이 수많은 반복을 예고하며 훈련에 돌입할 때 찬영은 자신이 만든 마나 블레이드에 대해 고민하며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마나 블레이드의 단점은 조절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은 물론 주변의 마나까지 모조리 먹어 치워야 비로소 완성되는 기술, 이것은 실전에서 쉽게 쓸 수 없다.

    사용하면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니 말이다.

    “후…. 일단은 마나 블레이드를 조절할 수 있게 하자.”마나 블레이드를 한 번의 공격에 쏟아 버리지 않고 유지하며 공격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무력은 한 단계 상승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오러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으리라.

    찬영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태운과 찬영 둘 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을 때 혜연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좋은 나무를 찾아서 오래 불타오를 수 있게….’혜연은 훈련을 하다 말고 조용히 훈련장을 나가 자하르의 연구실로 향했다.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걸어온 길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기로 정한 것이다.

    * * *

    “선생님~ 저 왔습니다~.”

    태운이 자하르의 연구실에 들어서며 전보다 한층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여자라도 생겼냐. 입꼬리 관리 좀 해.”

    모니터실에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레나, 오랜만이네요?”

    “응, 아빠가 러시아 청문회에 가야 해서 대신해서 너 좀 봐달라더라.”

    “청문회요?”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나름 국가 예산 많이 받아먹는 연구소의 소장이잖냐.”

    “오….”

    “그나저나 아빠가 너 엄청 예민할 거니까 신경 많이 쓰라고 하던데 표정 보면 그런 거 같지도 않다?”“예민한 구간은 어제 다 끝났어요. 이제 조금만 하면 클리어할 수 있을걸요?”그러자 엘레나는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다…. 내가 누구 화나게 하는 건 잘하는데 달래는 건 진짜 못하거든.”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그럼 준비하고 얘기해.”

    태운은 엘레나에게 마정석을 건네받고 캡슐실로 넘어갔다.

    “기다릴 것도 없지.”

    태운은 바로 캡슐에 누웠고 엘레나의 OK 사인을 보고 마정석 흡수를 사용했다.

    터턱.

    태운은 가도의 몸으로 넘어오자마자 다리를 헛디뎌 계단에서 구를 뻔했다.

    “하필 계단에서 세이브를 해서….”

    지금은 잭과 레일로프가 각자의 훈련을 계속하고 있는 지하 창고로 가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을 찾다 보니 그곳으로 정한 것이었다.

    태운이 지하 창고의 문을 열자 잭은 열심히 마법을 쓰고 있었고, 레일로프는 머리를 싸매면서 마나 구동의 원리를 공부하고 있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군.”

    “안녕하십니까!”

    잭은 힘차게 인사했지만 레일로프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태운이 써준 책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마나 구동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레일로프는 항상 몸을 써서 움직이는 것에서는 뛰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머리를 쓰는 것에선 평균보다 살짝 떨어졌다.

    그래서 태운은 레일로프를 잭처럼 마법을 사용하게 하기보단 신체 강화 계열로 키우려고 생각 중이다.

    ‘그래도 메테리얼을 만들 수는 있어야 신체 강화든 뭐든 할 수 있으니까….’어찌 됐든 머리를 써야 한다는 건 어떤 부분에서도 똑같았다.

    “잭, 레일로프 둘 다 짐 싸서 나와라.”

    “네?”

    잭과 레일로프는 당황해서 태운을 바라보았다.

    “설마 전쟁이 끝나서 훈련을 끝내시려는 겁니까…?”잭은 마법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고, 레일로프 또한 더욱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 찬 상태다.

    그런 그들에게 마법 훈련 중지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아니, 더 이상 이런 곳에 숨어서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전쟁 때문에 부득이하게 숨겨서 하게 되었지만 이젠 그럴 필요도 없었다.

    태운은 이 마법을 테렌 왕국의 국가사업으로 확장할 생각이었으니까.

    * * *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최소한 마나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기초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수학이다.

    마법은 마나를 계산하고 변환하고 방출하는 것, 그것에는 모두 수학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마법을 국가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필수적인 요소가 하나 있었다.

    바로 수학 기초 학습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아…. 빌어먹을 귀족

    놈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태운이 본인의 방에서 머리를 쥐어짜고 있으니 잭이 와서 물었다.

    “너는 마법을 직접 쓰고 있으니 마법의 힘을 알고 있을 게다.”

    “네,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봐라. 너 정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 100명이 적들을 폭격하고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해 황소같이 강해진 병사들이 적들을 도륙하는 모습을.”잭은 그 모습을 떠올린 순간 전율했다.

    옆에 있는 레일로프도 전쟁 당시 보았던 마법의 위용을 다시금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마법을 가르치려면 기본적으로 수학을 알아야 한단 말이지. 그런데 그걸 귀족들이 반대하고 있어….”

    “아….”

    예산 문제니 현실성이 없다느니 별의별 이유를 다 내세웠지만, 진짜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백성이 똑똑해지면 빨아먹기 힘들어져서 그런 거야.”사실 귀족뿐만 아니라 국왕도 이 건에 대해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수학 교육을 통해 백성이 똑똑해지면서 부정부패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건 국왕으로서는 고마워야 할 일이지만 국왕의 행실도 마냥 깨끗하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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