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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5화 (25/379)
  • 25화

    레일로프는 목을 움켜쥐고 무릎을 꿇었고, 태운은 자신의 의지완 상관없이 분노가 치솟았다.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2%’ 올라 ‘23%’가 되었습니다.]

    “레일로프 움직이지 마라! 목을 꽉 쥐고 있어!”스-응, 챙!

    태운은 몸을 날리며 검을 뽑아 잭에게 휘둘렀다.

    “크윽….”

    잭은 침음을 삼켰다.

    단순한 무력의 우열은 확실히 가도가 위인 것 같았다.

    태운은 가도의 기억이 보조해주는 움직임을 그대로 따랐다.

    챙! 퍼억!

    상단을 공격한 후 복부에 발차기를 꽂아 넣고, 그 이후엔 타격을 의식하는 잭의 발등에 칼을 꽂아 넣었다.

    “끄윽!”

    잭의 발등에 꽂은 칼을 손에서 놓고 그의 머리를 잡고 철로 된 징이 박혀 있는 무릎으로 그의 안면을 가격했다.

    빠각!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계기에 정신이 혼미해진 잭에게서 창을 빼앗고 그의 허벅지에 창을 박아 넣었다.

    “끄아악!!!”

    아래층에서 이 소란을 듣고는 병사 둘이 올라왔다.

    죽어가는 레일로프를 보곤 한 명의 병사가 소리쳤다.

    “의무관을 데려오게! 어서!”

    상태를 보니 레일로프는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태운이 보았을 때는 목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창이 깊게 들어갔으나, 레일로프도 그 순간 몸을 틀면서 공격을 흘려냈는지, 생각보다는 상처가 깊지 않은 모양이었다.

    빠르게 응급처치만 한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태운은 그들에게 말했다.

    “레일로프는 최대한 빨리 치료를 하고, 잭은 최소한의 치료를 한 후 감옥에 넣어라.”

    “지, 진심이십니까…?”

    병사들도 전부 알고 있었다.

    가도는 잭을 자기 아들보다도 더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이토록 가혹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태운은 그때 알았다.

    그를 많이 아꼈기에 그만큼 관심을 두었고, 그랬기에 그의 강점은 물론 약점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잭은 나를 죽이려 했다. 그의 처분은 이 전투가 끝난 후에 결정하겠다.”태운은 레일로프가 실려 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촉박했으니까.

    “부관.”

    “예!”

    태운은 레일로프의 부하를 불러 현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지시했다.

    “문터틀 요새는 반나절 전에 돌파당했습니다. 5,000이라는 군대를 이끌고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릴 것입니다. 저희는 그 이전에 선택해야만 합니다.”

    “선택?”

    “네, 이 성을 버리고 도망을 치든지. 아니면 이 싸우다 죽을지 말입니다.”태운은 또다시 의지완 상관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네놈의 머릿속에는 싸워 이긴다는 선택지는 없는 게냐!”

    “…….”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란 없는 법이다.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아느냐? 질 수밖에 없는 싸움 또한 없다는 말이다!”그의 입에서 가도의 의지가 담긴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 입에서 다시 도망이라는 말이 나온다면, 내가 자네가 도망칠 수 없도록 그 발목을 잘라주겠다.”

    “…죄송합니다.”

    가도는 능력 있는 장군이었지만 존경받는 장군은 아니었다.

    항상 선두에 서서 전열을 무너뜨리는 무력과 통솔력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지만, 병사를 다독이는 섬세함은 없었다.

    그 역할은 항상 레일로프와 잭이 대신 맡아왔다.

    ‘잠깐… 잭…?’

    그때, 마치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처럼 병사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와 무릎을 꿇고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약 100명의 병사가 탈영했습니다!”

    “젠장….”

    그새 가도가 잭을 감옥에 가뒀다는 소문이 병사들 사이에 돈 모양이다.

    그 소문을 들은 병사들이 탈영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병사들은 테렌 왕국의 명장인 가도를 따르는 것이 아닌, 잭이 따르는 가도를 따른 것이니까.

    안 좋은 일이 연속으로 일어난 태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도가 정말 명장이 맞는 거야?’

    고작 500밖에 되지 않는 병사도 제어하지 못하는 리더가 어찌 명장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일까.

    ‘잭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어야 하나?’

    ‘아니야. 의미 없는 일이야.’

    ‘그렇다고 잭을 가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잭을 설득할 수는 없을까?’

    ‘잭이 왜 나를 죽이려 했는지 먼저 알아봐야겠어.’태운은 깔끔히 포기했다.

    다음을 위해 이번 기회를.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일시적으로 0%가 됩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태운을 옥죄고 있던 가도의 의지가 사라졌다.

    “잭의 상태는 어떤가.”

    “응급처치는 끝이 났고, 대화 정도는 가능한 상태라고 합니다.”“잭을 만나봐야겠군. 참, 너희 전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예…?”

    어차피 다음에 사용할 정보를 모으기 위해 이번 기회는 포기했다.

    가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라지만, 포기한 마당에 그들에게 가혹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다. 병사들에게도 말해둬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라고.”태운은 병사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감옥 가장 깊숙한 곳에 잭이 가둬져 있다고 했다.

    “잭…?”

    태운이 감옥에 갔을 때 잭은 이미 혀를 깨물고 죽어 있었다.

    태운은 잭이 왜 자신을 죽이려 했는지, 그가 왜 지금 혀를 깨물고 죽어야 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 적국으로부터 한 상자가 왔고, 그 상자 탓에 그 의문은 풀리게 되었다.

    그 상자 안에는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어린아이의 머리가 4개 들어 있었다.

    빠드득

    가슴에 불덩이를 넣은 것처럼 화가 치솟았다.

    [감정의 격화에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다시 활성화됩니다.]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8%’ 올라 ‘31%’가 되었습니다.]

    그 머리의 정체는 바로, 잭의 동생들이었다.

    * * *

    쾅!

    가도의 의식에 너무 영향을 받은 탓일까?

    태운은 캡슐 밖에서도 분노를 참지 못했다.

    잭의 동생들의 머리가 담긴 상자 하나로 태운은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적국은 잭의 동생들을 빌미로 삼고 가도를 죽이라고 했을 것이고, 그 때문에 잭은 눈물을 흘리며 가도를 찌른 것이다.

    잭이 혀를 깨물고 자살한 것도 실패한 자신이 가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것만 같아 동생들이라도 살리려는 마음에 자살한 것이리라.

    하지만 적국은 그의 그런 노력을 봐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머리는 부패가 진행 중이었고, 이미 죽은 지 적어도 3일은 지난 시점이었다.

    그들은 잭이 가도를 죽이는 것에 성공해도, 못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었겠지.

    태운이 가도의 몸에 들어간 시점에서 그들은 이미 죽어 있었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살려낼 수 없었다.

    “진정하게. 잭은 가도의 부하지, 자네의….”“그 안에 들어가 있을 때만큼은 제 부하입니다!”자하르가 태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태운의 의식 가장자리에 가도의 의식이 자리 잡았고, 그것이 태운의 감정에 간섭하고 있었다.

    “하….”

    가도의 의식이 감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곤 하지만 태운의 의식 자체도 그에 동조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잭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태운도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동생과 살고 있다는 점 때문일까.

    동생들이 볼모로 잡혀 이용당하고 자신이 이뤄낸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배신당한 잭의 모습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자하르 선생님,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태운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빠르게 캡슐로 들어간 태운은 다시 마정석 흡수를 사용했다.

    * * *

    “장군님! 일….”

    “레일로프.”

    “부르셨습니까!”

    “나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잭을 공격하지 마라.”

    “그게 무슨…?”

    태운은 갑옷도 입지 않고 잠을 자던 복장 그대로 나와 잭의 앞에 섰다.

    “찌르거라.”

    “예…?”

    “장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잭은 당황했고 레일로프는 경악했다.

    하지만 태운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다 알고 있다. 찔러도 좋다. 하지만 네가 날 찌르는 이유가 온전히 네 동생들을 살리기 위함이라면 내 말을 들어줄 수 있겠나?”

    “그걸 어떻게…?”

    태운은 계속 몰아붙였다.

    “네 동생들을 위해 그러는 것이라면 그럴 필요 없다. 네 동생들은 모두 죽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 그대로다. 적국이 이미 네 동생들의 목숨을… 끊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잭은 그 말에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역정을 냈다.

    “아니, 네 동생들은 이미 죽었다.”

    “그럴 리 없어!”

    잭은 태운의 말에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날 죽이면 동생들을 살려주겠다? 개소리다. 그놈들이 살려줄 리가 없어!”

    “닥쳐!”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1.2%’ 올라 ‘32.2%’가 되었습니다.]

    “그럴 리 없다고!!”

    푸-욱.

    잭은 기어코 가도를 찌르고 말았다.

    이전과 달리 마나를 담지도 않고, 완력을 이용해 억지로 찔러넣었다.

    “장군! 잭! 너 이 자식!”

    “놔…둬….”

    레일로프가 칼을 뽑아 들었지만 태운은 그를 말렸다.

    “나를 죽여서… 네 마음이 편해진다면… 얼마든지 죽어주마.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얼마든지….”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1.5%’ 올라 ‘33.7%’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태운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자하르, 한 번 더 가겠습니다. 빨리 준비해주세요.”태운은 캡슐 옆에 달린 마이크를 향해 말했다.

    자하르도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는지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태운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이렇게 계획 없이 시도하는 건 내 타입이 아닌데….’어째서인지 참을 수 없어져 버렸다.

    잭과 그 동생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그것을 알고 잭의 눈동자를 보니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미친 듯이 치솟았다.

    그와 같이 감정의 깊이도 깊어져 갔다.

    ‘수십 번, 수백 번 하다 보면 잭을 설득할 수 있을 거야.’물론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

    태운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법이 없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마정석 흡수.”

    다시 태운의 의식은 가도의 몸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태운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마정석 흡수를 사용하고, 현실로 돌아오고, 다시 잭에게 죽으러 가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태운과 가도의 동기화율을 70%까지 올라갔다.

    70%가 넘자 말투가 가도처럼 바뀌는 등, 강태운의 행동의 일부에 가도의 의지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에 이르자 자하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강태운, 정말 계속해야겠나?”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는 강태운이 맞았지만, 가도의 의식이 태운의 정체성까지 흔드는 결과를 불러왔다.

    마정석 밖에 오래 있으면 동기화율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지만 태운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쉴 수 없었다.

    동기화율이 오르며 잭을 설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도와 점점 같아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기억과 그의 습관, 말투 하나하나가 잭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태운 또한 최악의 상황은 방지하고 싶었다.

    “자하르, 동기화율이 90%가 넘으면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그때는 이곳에 있는 모든 헌터들을 동원해서라도 저를 제압해주세요.”지금까지와는 다른, 가도의 의지가 전혀 섞이지 않은 오로지 태운만의 목소리가 말한 것이었다.

    “알겠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태운은 캡슐에 몸을 누이며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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