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4화 (24/379)
  • 24화

    * * *

    “왔나.”

    “네, 오늘 마정석은 중하급이라고 하셨죠?”

    “그래, 오늘은 집에 안 가도 괜찮겠지?”

    “네, 말해뒀어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급 마정석도 하루가 걸렸는데 그보다 높은 등급이라면 적어도 그 이상은 걸리겠지.

    “바로 시작할 건가?”

    “잠시만요.”

    태운은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놓은 마법들을 전부 적어둔 공책들을 펼쳤다.

    그 수가 무려 10권.

    수식 계산을 한 공책과 별개로, 완성된 마법을 아주 작은 글씨로 정리해둔 공책이었다.

    “그게 뭐지?”

    “제가 만든 마법들이요.”

    “호오…. 그걸 보게 해달라고 하면 실례인가?”“상관없어요. 어차피 나중에 위험성이 적고 효율이 높은 마법들은 제가 직접 풀 생각이거든요. 다른 사람한테 떠벌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나.”

    “그럼 저 책상 위에 올려둘 테니 제가 시뮬레이터에 들어가 있을 때 종종 보세요.”

    “고맙네.”

    공책에 적혀 있는 마법의 절반 이상은 써먹지도 못할 수준 낮은 마법이지만, 화폭처럼 기발하고 성능까지 확실한 마법도 수십 개나 있다.

    태운은 그 공책들을 읽으며 다짐했다.

    ‘내년이 되기 전에 이 공책들을 전부 불태운다.’공책에 의존하지 않고도 이 마법들을 전부 기억할 수 있게, 마법들을 몸에 익혀두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3시간이 넘도록 공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슬슬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올해 3월에 마정석 저장 마법을 얻은 후에 생긴 증상이다.

    마법의 수식들을 보고 있으면 써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곤 한다.

    원래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을 시도해보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과정에서 오는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벌써 3개월이나 지났네.’

    펜던트로부터 얻은 마정석으로 인해 내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기껏해야 골방에 틀어박혀 마법 수식이나 끄적거리고 있을 뻔했던 인생에서 학생인 시절부터 C급 헌터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춘 유망주가 되었다.

    태운은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에 뿌듯해하며 공책을 덮었다.

    “좋아, 대충 첫 번째 공책은 다 외운 거 같네. 일주일이면 이건 태울 수 있겠어.”첫 번째 공책은 가장 처음에 만든 마법들이 적혀 있는 만큼 수준이 높은 마법은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마법이 기초 마법에 버금갈 정도로 낮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고, 성능도 딱 그 수준에서 그쳤다.

    그래도 특정한 상황에서 쓰면 쏠쏠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법한 마법들이 꽤 있었다.

    “선생님, 여기 공책 두고 들어갈게요. 짬 날 때 보고 계세요.”공부는 여기까지.

    이젠 마정석을 흡수할 때다.

    지금까지는 최하급, 하급 마정석만 접해왔지만, 오늘 흡수할 마정석은 중하급이다.

    태운은 왠지 모를 긴장감에 휩싸여 새 마정석을 들고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은 준비됐다. 네가 준비되면 바로 시작해도 좋아.”“이쪽은 준비할 것도 없어요. 바로 시작하겠습니다.”태운은 눈을 감으며 마정석 흡수를 사용했다.

    그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로.

    * * *

    “장군! 일어나십쇼!”

    “어…?”

    “지금 문터틀 요새에서 대승을 거둔 적군이 기세를 타고 달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문터틀…? 윽….”

    태운은 머리가 지르르 떨리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달의 팔찌를 통해 언어통달과 백만서고를 얻었을 때와 강도만 다를 뿐 미묘하게 같은 감각이었다.

    ‘가도…? 그게 내 이름인가?’

    태운의 머릿속에 가도의 정보가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가도는 평민 출신의 명장으로 테렌 왕국의 작은 영지인 세라오니의 병권 총책임자.

    현재는 이웃 국가인 헤온 왕국이 맹약을 깨고 전쟁을 걸었고, 가장 가까운 문터틀 요새가 함락된 상황이었다.

    그때 태운의 눈앞에 하나의 알림이 떠올랐다.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20%로 조정됩니다.]

    “동기화율? 동기화율이 오르면 기억이 더 자세해지고 그러는 건가?”그런 결론을 내놓은 이유는 태운에게 들어온 가도의 기억 속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기 때문이다.

    동기화율이 높아지면 그에 대한 기억이 점점 메워질 것이라 예상하는 그였다.

    태운이 머릿속으로 들어온 정보를 곱씹고 있으니 그를 재촉하듯 하나의 알림이 떠올랐다.

    [세라오니를 헤온 왕국의 군대로부터 지켜내십시오.]

    “후….”

    하다 하다 이젠 전쟁이냐?

    “병사들에게 전투 준비를 갖추라 말해둬.”

    “하지만….”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가도의 직속 부하인 레일로프가 문을 열고 나갔다.

    “일단 상황은 이쪽이 매우 불리한데….”

    가도의 정보를 가다듬은 바로는 헤온 왕국의 병사 수는 약 5,000명, 세라오니의 병사 수는… 500명.

    수성 측이 많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10배가 넘는 병력 차이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근데 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 거지? 레일로프가 나가기 전에 물어볼 걸 그랬네. 일단 나가자.”태운은 옆에 걸려 있는 갑옷을 집어 들어 입기 시작했다.

    “이건 또 어떻게 입는 거지? 일단 가죽으로 만든 갑옷인데….”갑옷을 입어보는 건 처음이라 좀 헤맸지만 입는 게 어렵고 복잡한 판금 갑옷류가 아니라 조금만 고민해보니 입을 수 있었다.

    팍! 팍!

    갑옷을 전부 입고 갑옷 매무새를 정돈하면서 가슴과 복부를 한 번씩 쳤다.

    생각보다 충격을 많이 줄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옆에 있는 검을 허리춤에 차고 방문을 열고 나가자 경비를 서고 있던 부하가 태운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태운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아갔다.

    ‘쟤 이름은… 잭이었지?’

    13살에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 4명을 보살피기 위해 군대에 자진해서 들어와 5년이나 버티고 있는 기특한 녀석.

    또한 가도의 수제자라고 기억되어 있다.

    ‘나하고 나이도 비슷한데 대단하네.’

    가도는 이미 불혹을 한참 넘긴 중년이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은 19살의 강태운, 그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사실 이는 태운의 감정과 가도의 감정이 섞인 결과이기도 했다.

    가도는 이 청년의 의지와 결단력, 그리고 실력에 반해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기도 했으니까.

    ‘이 사람의 실력이 어느 정도길래 이 사람을 믿고 7배가 넘는 병력과 싸우려는 거지? 이상하게 잭에 대한 정보는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사라져 있어.’가도도 수십 년간 사선을 넘은 역전의 전사다.

    하지만 아무리 강해 봐야 홀로 30명을 넘게 베지는 못할 것이다.

    ‘마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공기 중 마나가 있으니 마법을 못 쓸건 아니지만, 마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태운이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푸-욱.

    “죄송합니다. 장군님.”

    잭이 태운의 등에 창을 찔러 넣었다.

    “이… 미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네가 왜…?”

    [가도와의 동기화율이 ‘1%’ 올라 ‘21%’가 되었습니다.]

    잭의 창에 찔리자 동기화율이 올랐다.

    그리고 동기화율이 올라간 순간 가도의 기억 속 구멍이 하나 메워졌다.

    그 구멍 안에는 잭이 사용하는 창과 창술은 전부 가도가 내려줬다는 사실과 가도는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윽….”

    태운은 등을 찌르고 복부를 관통한 창과 그것을 잡고 있는 잭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잭의 얼굴 아니, 그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자 온몸의 힘이 빠져 버렸고, 태운은 창과 함께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

    지-잉.

    전과 달리 깔끔해진 캡슐의 여닫는 소리완 다르게 태운의 머리는 아주 복잡해졌다.

    “강태운! 이게 뭐냐! 마정석 흡수를 하자마자 많은 양의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저도 모르겠어요. 이런 건 처음이라….”

    태운은 자하르의 말을 무시하면서 자신의 의문을 곱씹었다.

    잭이 왜 가도를 찔렀고, 찌른 후 눈물을 왜 흘렸는지.

    잭에게 찔린 후 순응하는 듯한 가도의 마지막 감정은 뭐였는지.

    마지막으로 잭이 내지른 창에 왜 ‘마나’가 실려 있었는지.

    태운은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분명 가도가 살고 있던 세상에는 마나가 존재하긴 했지만 마나와 마법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마나 운용법 중에서도 꽤 높은 난이도를 가진 무기에 마나를 주입하는 방식, 그것을 잭이 해냈다.

    이것은 불이 발견되지 않은 세상에서 혼자 불로 금속을 녹이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태운아, 이게 무슨 일이냐?”

    “모르겠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누군가의 기억이 머릿속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혼란스러웠으나 잭이 가도를 찌르면서 일어난 일들이 태운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한 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나도 이게 무슨 일인지 궁금하구나.”자하르 역시 이 사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누군가의 기억을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은 현재의 기술로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태운은 가볍게 몸을 풀어주고 곧장 캡슐 안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자하르의 OK 사인에 마정석을 꼭 쥐고 마정석 흡수를 사용했다.

    * * *

    “장군! 일어나십쇼!”

    “그래, 무슨 일이지.”

    가도의 기억에 익숙해진 태운은 전과 달리 당황하지 않고 레일로프에게 대답해주었다.

    “지금 문터틀 요새에서 대승을 거둔 적군이 기세를 타고 달려오고 있다고 합니다!”여기까지 바뀐 것은 없었다.

    “일단 나가지. 상황을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채비가 갖춰지면 불러주십시오.”레일로프가 밖으로 나가자 태운은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상태에서 마법을 사용해보려 했지만.

    “역시 안 돼….”

    가도는 예상대로 각성자가 맞았지만, 그의 나이는 이미 45.

    이 세상의 평균 수명이 60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노인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45년이라는 세월 동안 몸 안의 마나 회로를 방치해 두었으니 막힐 대로 막혀 있는 것이다.

    ‘이 회로를 청소하는 데에만 한 달이 걸릴 거야. 가도의 몸으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싸워야 한다.’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각성자를 찾는 것만 해도 수일은 걸릴 터.

    그런 사람에게 마법을 알려주려면 또 수일이 걸릴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방법도 제외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후… 그럼 남은 사람은 잭이라는 건데….”무슨 이유에서건 가도를 죽이려 드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아마 적국의 사주를 받고 움직인 것일 가능성이 높겠지.

    곰곰이 생각해 보던 태운은 결론을 내렸다.

    “일단 대화를 해보자.”

    태운은 갑옷을 입고 방 밖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내 옆에 레일로프가 있다.

    알고 있는 기습을 순순히 당해줄 생각도 없을뿐더러, 레일로프가 있으니 잭이 더욱 신중하게 움직일 가능성도 있었다.

    잭은 창을 들고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태운도 잭에게 눈길을 주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뒤에서 잭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 타이밍에 맞춰 잭에게 말했다.

    “잭,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는 알고 있다. 그만두거라.”가도의 기억에 익숙해진 태운은 말투 또한 그와 비슷해져 있었다.

    “무, 무슨 말씀을…?”

    잭이 당황하며 얼버무리려 했지만, 이 세계 속에서 그는 태운이 아닌 가도였다.

    그가 싸우는 방식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그의 스승인 가도 말이다.

    “창 쓰는 법을 너에게 알려준 게 누구지? 나다. 난 네 발소리만 들어도 네 창이 누굴 향할지 알 수 있다.”

    “전 그냥 걸어갈 뿐이었습….”

    “끝까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젠장!”

    ‘마나!’

    잭이 있는 방향에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일이 틀어지자 곧바로 기습에서 정면 승부로 방법을 바꾼 것이다.

    “레일로프!”

    잭은 수제자였지만 레일로프 또한 가도의 애제자 중 한 명이었다.

    레일로프는 잭의 태세 전환에 빠르게 반응하여 검을 뽑아냈지만.

    키-잉! 촤악!

    잭은 창으로 원을 그려 검을 치워내고 정확히 레일로프의 목을 노려 창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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