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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3화 (23/379)
  • 23화

    칼을 잡고 있는 그의 손아귀에 힘이 빠진 것이 느껴졌다.

    숨이 끊어진 것이리라.

    “갈 때는 행복하게 갔겠네. 기분 나쁘게시리….”태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등의 칼을 뽑아냈다.

    이 정도 고통은 매일 느끼는 고통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팩인 디바인 포스.”

    이제 태운의 상처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3개의 구체가 그의 주변을 돌았다.

    이제 즉사하지 않는 이상 3번의 공격은 허용할 수 있다.

    태운은 가방에서 마정석을 잔뜩 흡수했다.

    저장할 수 있을 때까지 전부 흡수한 후에야 흡수를 멈추었다.

    이승겸은 그 모습을 보고 모든 마나를 모아 방어 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디스펠.”

    지금까지 밤을 새워가며 만들었던 수백 가지의 마법들.

    그것들을 만들면서 수없이 창작된 실패작들과 그 수식들은 태운의 디스펠 실력 향상에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다.

    또한 1,000개의 마법을 디스펠하는 그 시련은 태운이 디스펠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그 선을 뛰어넘게 해주었다.

    “어…?”

    이승겸은 자신의 마법이 파훼되었음을 아니, 변형되었음을 깨달았다.

    본래 전신의 근력과 방어력을 큰 폭으로 향상시키고 충격량을 절반 이하로 줄여주었어야 하는 마법이 반대로 근력과 방어력을 떨구고 충격량을 늘리는 마법으로 변형되었다.

    이 모든 게 약 8초 만에 벌어진 일.

    이건 이미 디스펠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게 뭐야….”

    “파성추!”

    쿠우우우-!

    방패와 갑옷이 전부 박살 나 뒤로 30m가량 날아간 이승겸이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해냈다.

    “씨….”

    “매직 미사일!”

    쾅!

    태운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후우….”

    털썩.

    분노로 가득 찼던 머리가 차분해지자 탈력감이 한 번에 몰려왔다.

    마법으로 회복은 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마법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희생된 72명.

    그들은 힘을 가진 능력자인 동시에 무력한 학생이고 그 이전에 사람이었다.

    “신태연…도 죽었으려나.”

    자신을 계속 괴롭혀왔던 녀석이긴 했지만, 막상 죽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슬프거나 괴로운 것도, 동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이상한 감각을 불러왔다.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관계없이, 가슴 속에서 많은 것이 지워진 감각이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끝났나?”

    “네, 어떻게든….”

    김현우는 이미 다른 배반자들을 전부 처리한 상태였다.

    B급 최고급의 실력을 갖춘 그에게 평범한 C급 4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능력이 있었다.

    애초에 그가 공격을 꺼렸던 이유도 학생을 인질로 삼으면 그도 어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으니까.

    그들의 힘은 전형적인 C급.

    배반자 집단에 들어가 힘을 기르기 시작한 지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특출나게 강하지 않으면서 큰 특징을 가지지 않는 평범한 헌터라는 말이다.

    하지만 고작 19살의 학생이 이길 만큼 만만한 상대라고 한다면?

    그건 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애초에 C급이라는 것도 재능있는 신입이 던전에서 1~2년은 굴러야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빨리 끝내고 도와주려고 했지만 이미 전부 끝나있더군. 도중에 칼에 찔린 것 같던데… 괜찮나?”

    “전부 회복했습니다.”

    “벌써? 어떻게?”

    “이렇게 했습니다.”

    태운은 둥둥 떠다니는 회복 구체를 하나 골라서 김현우의 몸에 던졌다.

    그러자 김현우의 몸에 은은한 빛이 감돌면서 그의 자잘한 상처와 피로가 모두 사라졌다.

    “……? 어떻게 한 거지?”

    “제가 만든 마법입니다.”

    “미쳤구만.”

    * * *

    “어, 저기 사람이다.”

    “저기요! 우리 좀 살려줘요!”

    그때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던 건가?”

    김현우 헌터가 휴식을 취하던 중에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아까 강동렬 헌터가 늦는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럼….”던전의 어둠 속에서 문제아 트리오 그리고 골드 A반 김동만이 나왔다.

    “허, 허어…. 언제까지 걸어야 돼?”

    신태연이 피가 흐르고 있는 배를 움켜쥐고 김동만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잖아? 너희 몇 조야?”

    “7조요! 살려주세요!”

    누가 봐도 신태연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누가 했는지 응급처치는 완벽에 가까웠지만, 워낙 상처가 깊었던 탓에 출혈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태운이 그것을 정확히 보고 급하게 신태연을 부축하고 있는 김동만을 불렀다.

    아직 만들어둔 팩인 디바인 포스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아 있는 두 개의 회복 구체를 모두 사용하자 신태연의 상처가 없었던 것마냥 완전히 사라졌다.

    온몸의 근육을 비틀어 버린 상처도 한 번에 낫게 하는 만큼 이런 상처에도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뭐야? 이제 안 아픈데?”

    “그래도 병원 가서 정밀 검사 한번 받아 봐. 상처가 강제로 붙으면서 이상하게 회복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 음… 고맙다.”

    신태연도 염치라는 게 존재는 하는지, 지금까지 자신이 괴롭히던 사람한테 목숨을 빚지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때 김현우 헌터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아까 배반자들의 말을 들어보니까, 강동렬은 그들 중에서도 특히 강한 것 같던데.”그때 정윤성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몰라요. 갑자기 목이 잘렸던데….”

    “그래도 태연이가 버텨주지 않았다면 피해가 더 커졌을 걸요?”

    “신태연이?”

    김현우가 의문을 표했다.

    그가 브론즈 C반의 헌터라는 것은 조 추첨 때 보아 알고 있었다.

    브론즈 반의 학생이라면 프로 헌터의 공격에 조금도 버티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특성도 스킬도 없는, 일반인보다 조금 강할 뿐인 학생들이니까.

    “새로운 특성을 각성한 것 같습니다.”

    “특성?”

    신태연의 말에 따르면 칼에 찔리는 순간 모든 스탯이 대폭 상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었다.

    정확한 것은 돌아가서 특성 검사를 해봐야 알게 되겠지만 태운은 궁금한 것을 참지 못했다.

    그는 신태연을 향해 관찰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중 특성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버서커라는 글자에 시선을 고정했다.

    버서커(LV.M)

    버서커: 피를 보면, 특히 자신의 피를 보면 극도로 흥분하며 신체와 관련된 모든 스탯이 대폭 상승합니다.

    ‘대박이네.’

    그의 미래를 180도 바꿔버릴 정도로 훌륭한 특성이었다.

    신체 능력만큼은 탈 브론즈급이었던 그는 이 특성을 얻고 재심사를 보게 될 것이다.

    골드 A반은 가볍게 올라가겠지.

    “각성이고 자시고 우선 살아서 나가야지.”

    “네, 빨리 나가죠. 버그 스웜 때문에 뒷조들은 전부 나갔을 테니까요.”

    “시신 수습은… 나중에 하게 되겠지.”

    그 말 이후 던전 밖으로 나가는 길에는 딱히 이렇다 할 위험이 없었다.

    좀비와 고블린이 종종 나오긴 했지만, 김현우 헌터가 빠르게 처리해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던전 밖으로 나와 김현우 헌터가 안에서 있던 일을 보고하고 10조와 7조의 생존자들이 증언하자 주변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300명 중 약 70명의 죽음

    누군가는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며, 누군가는 통곡하며, 누군가는 배반자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그렇게 현장 실습은 마무리되었다.

    * * *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현장 실습 중 대참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과거 데블스 에이지 때 만들어진 ‘배반자’라는 칠죄종의 추종자 집단이 그 범인이라고 하는데요. 또한, 던전의 등급이 상승하는 현상도 동시에 벌어져 일각에서는 이 현상도 그들의 소행이라고 보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던전 에볼루션 현상 때문에 시신의 수습이 늦어질 거라 예상되었지만, 명운 헌터 아카데미의 설립자이자 교장인 전대섭이 모든 업무를 뒤로한 채 직접 던전에 들어가 시신을 수습하여 빠른 시간에 모든 시신을 던전 밖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협회와 모든 길드가 힘을 합하여 배반자를 모두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오빠, 괜찮은 거 맞지?”

    “어, 괜찮아. 죽은 사람 중에 딱히 친한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태운은 집에 있는 소파에 누워 TV의 화면을 보고 있었다.

    모든 채널에서 명운 던전 사건에 대해 보도를 했으며, 일부 채널에서는 배반자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며 노골적인 분노를 표했다.

    “나 운동하러 간다.”

    “어, 다녀와.”

    “오늘 집에 안 들어올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

    “그럼 나 친구 데리고 와서 놀아도 돼?”

    “맘대로. 정리만 잘해 놔.”

    학교는 15일간 휴교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명운 던전 사건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바로 학생이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도 아마 그들이겠지.

    15일 동안 쉬면서 마음을 털어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내린 결정이리라.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어.’

    배반자 집단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태운을 포함한 생존자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마크할 것이다.

    게다가 태운의 아버지인 강철운은 데블스 에이지 때 수많은 배반자를 학살한 헌터.

    그는 특히 조심히 행동해야만 했다.

    ‘던전 안에서 내가 한 일을 전부 김현우 헌터가 한 일로 말해달라고 했지만….’세상에 온전한 거짓이란 없다.

    언젠간 진실이 밝혀질 터.

    홀로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힘을 가질 때까지 절대 멈출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훈련이지.”

    아직 얼마 전에 얻은 스킬인 ‘명중’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던전 안에서의 전투에서도 그 능력을 활용했다면 더욱 쉽게 전투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

    태운의 입장에선 아쉬움이 컸다.

    명중(LV.1): 3분간 같은 환경에 있었다면 원거리 공격의 명중률이 극한으로 상승한다.

    상대 마법사와의 공방에서 이 스킬을 떠올렸다면 몸을 날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들고 있던 투창을 던져 처리했을 것이다.

    그 후 염력으로 창을 회수해 전투를 이어갔다면 더욱 전투가 수월해졌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태운은 자신이 만들어둔 수백 가지의 마법을 확실하게 활용할 정도의 숙련도가 없었다.

    마법 수식을 계산하거나 마법을 시전하는 분야에서는 통달에 가깝지만, 막상 전투 상황에 들어서면 활용할 방법이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전투 상황을 준비해두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투 시뮬레이션은 구현되는 몬스터의 수도 적고 현실감도 상당히 떨어진다.

    게다가 몬스터의 인공지능에도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람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매뉴얼을 우선하여 움직이는 것에서 얻은 경험을 크게 믿었다가는 실제 전투에서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은 중하급 마정석인가.”

    태운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담겨 있는, 마정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고의 시뮬레이터를 알고 있다.

    그 생각을 끝으로 그의 목적지는 자하르의 연구소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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