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6화 (16/379)
  • 16화

    * * *

    “여기… 뭐가 있다고?”

    서혜연은 태운의 뒤를 따르다가 도저히 의문을 지울 수 없어 태운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훈련 시설에 데려다준다고 해놓고는 뒷산을 오르고 있었으니까.

    나무를 얽어 만든 조잡한 훈련 시설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여기야. 도착했어.”

    “도착이라고?”

    여긴 그냥 뒷산의 어느 한 공간일 뿐이었다.

    훈련 시설은커녕 달리기하기에도 애매할 정도였다.

    “장난이지?”

    “그럴 리가.”

    태운은 서혜연이 서 있는 곳을 보더니 땅에 꽂혀 있는 각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기절은 하지 마.”

    달각.

    태운이 각목을 움직이자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리는데? 지진아냐?”

    “통과의례야.”

    “그게 뭐… 꺄아악!!!”

    드디어 땅이 꺼졌고 그 아래로 서혜연이 신명 나게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고 있었다.

    “깊기도 깊네.”

    비명이 메아리치며 천천히 사라지니 새삼 이 높이가 실감 났다.

    태운도 땅이 다시 닫히기 전에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몇 번 떨어지긴 했지만 이 높이에서 떨어지니 오금이 저리는 건 당연했다.

    서혜연에게는 혹시 몰라 화장실은 미리 가라고 해두었으니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나는 흑역사를 방지해주는 친절한 남자니까.’태운은 4/5지점이 지날 때 주머니에서 마정석을 꺼내 흡수한 후 슬로우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빠르게 떨어지던 태운의 몸이 떨어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안전하게 착지한 그는 서혜연을 찾았다.

    그녀는 비상식적인 푹신함을 가지고 있는 매트리스 위에서 오물 브레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저건 생각 못 했는데.’

    만약 다른 사람을 또 들이게 되면 아침 먹지 말고 오라고 해야겠다.

    태운은 아직도 오물을 쏟아내고 있는 혜연에게 다가가 등을 두들겨 주었다.

    “야… 우욱, 미리 말을… 우욱… 죽을… 구와아악!”진정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와, 소화 안 된 것도 있네.”

    이것만 봐도 대충 아침에 뭘 먹었는지 견적이 나온다.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윤아의 요리와 이 구토 중 뭐가 더 역겨울까 대결을 붙여보기로 했다.

    ……안 되겠다. 승부가 안 난다.

    “너… 진짜 죽고 싶냐! 미리 말도 못 해줘?!”나만 당할 순 없잖냐.

    라는 말을 곱게 씹어 목구멍으로 되넘긴 태운이었다.

    “자자, 이제 가볼까요?”

    “무시하기냐?”

    “토 밟지 말고,”

    서혜연이 움찔하더니 오른발을 거둬들이고 다시 왼발을 내디뎠다.

    말을 하지 않았으면 진짜 밟았을 것이다.

    “조심히 내려와.”

    매트리스의 두께는 상당했다.

    2M는 될 것 같았다.

    그런다고 그 푹신함이 설명되지는 않지만, 이 정도도 되지 않는다면 어떤 마법이 들어가 있던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퍽! 퍽! 퍽!

    “이거… 익숙한데.”

    “뭐가? 꺄악!”

    쿵!

    혜연의 바로 옆으로 철 조각이 들어간 샌드백이 날아왔다.

    그녀는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어? 그 친구도 데리고 왔네. 안녕~.”

    “그 친구가 너 때문에 죽을 뻔한 건 알고?”

    찬영은 괜히 뒷머리를 긁적이며 샌드백을 번쩍 들어 올렸다.

    “헐, 그거 철 조각 들어 있는 거 아니야? 손 아프겠다….”“마나 운용하면서 때리면 그리 아프진 않아. 그리고 말 편히 해도 돼.”찬영은 들어 올린 샌드백을 구석에 있는 구멍에 넣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거야? 위에 쇠사슬 부분만 수리하면 다시 쓸 수 있잖아.”“여기에 넣으면 바로 수리돼서 창고에 쌓여.”

    “진짜?”

    “또 좋은 기능 알려줄까?”

    “응!”

    이곳에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을 경계하던 찬영은 어느새 이곳의 장점을 낱낱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혜연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훈련 시설에 대한 설명을 따로 할 필요는 없어진 것 같다.

    이미 찬영이 열심히 설명하고 있으니까.

    “자 그럼 나도….”

    태운은 가져온 마정석들을 흡수하곤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마나로 인한 신체 강화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법에 의한 것이 아닌 마나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생기는 신체 강화 효과를 원하는 것이다.

    마나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건강해지며 신체 능력은 월등히 상승한다.

    옆에 있는 마법계 능력자인 서혜연도 야리야리해 보이지만 실은 프로 육상 선수 수준의 신체 능력은 갖추고 있다.

    하지만 태운은 왜인지는 몰라도 마정석에서 마력을 얻은 상태로는 그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

    일전에 있던 찬영과의 전투에서 그것의 부재를 여실히 느꼈다.

    정확한 자세로 명치를 향해 창을 내질렀을 때, 찬영은 몸을 뒤로 움직인다거나 상체를 비트는 등 충격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나름 큰 충격이 전해졌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찬영에게는 조금 아프네 하고 끝날 수준의 공격이었다.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태운의 몸은 같은 스탯 수준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편이었다.

    서혜연과 체력, 근력, 민첩 스탯의 합이 두 배 이상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으니까.

    태운은 그것의 이유를 스탯의 차이보단 - 물론 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 신체 강화 효과의 부재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완화할 방법을 고안해냈다.

    “팩인 디바인 포스”

    사 온 마정석을 절반이나 사용해 회복 구체를 만들어두었다.

    그 수가 60개에 달했다.

    “마정석 저장.”

    그동안 마정석을 흡수할 때마다 고통이 따랐었다.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을 수백 번이나 느꼈다.

    하지만 실제로 근육이 찢어진 적은 없었다.

    태운은 마나를 직접 조종해 근육 세포 사이사이에 끼워 넣었다.

    “후….”

    태운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몸에 힘을 뺐다.

    고통에는 익숙했지만 실제로 그 정도의 고통을 수반하는 수준으로 다쳐본 적은 없었으니까.

    이를 악물고 근육 사이의 마나를 빨래 짜듯이 비틀어 버렸다.

    꾸드득!

    “끄아아악!!!”

    온몸의 근육 세포들이 끊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고통에 익숙해진 것과 실제로 다치는 것은 엄밀히 달랐다.

    뭔지 모를 공포와 섞여 뇌를 찔러댔다.

    왼팔의 얼마 남지 않은 세포들을 쥐어짜 움직였다.

    만들어둔 회복 구체를 흡수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옆에 놔뒀다고 생각했으나 손도 뻗기 힘든 상황에서는 그것조차 매우 멀게 느껴졌다.

    토옥.

    겨우 회복 구체에 손끝이 닿자 안에 담긴 마나가 태운의 안에 들어와 끊어진 근육 세포들을 재생시켰다.

    근육 세포는 재생될 때 더욱 질기고 강한 형태로 재생된다.

    콰드드득.

    끊어졌을 때보다 더 끔찍한 소리를 내며 이어지는 근육 세포들그것들이 전부 이어지자 태운의 문신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스탯 ‘근력’이 ‘2’ 올랐습니다.]

    “좋았어!”

    오른 스탯이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다.

    태운은 남아 있는 회복 구체들을 훑어보았다.

    “앞으로 59회, 분발하자.”

    찬영과 혜연의 입장에서 태운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 비명을 질렀을 때는 걱정이 되어 달려가려 했지만 갑자기 멀쩡하게 일어나 좋았어! 라며 상상치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그것이 계속 반복되더니 슬슬 50번은 넘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더니 이제는 몸을 부르르 떨며 바닥에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있다.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 같았으나 어찌 신경이 안 쓰이겠는가?

    먼저 행동에 나선 사람은 서혜연이었다.

    “찬영아, 강태운한테 무슨 일 있는지 물어….”후웅! 후웅!

    집중하며 거대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찬영은 그 누구의 말이라도 듣지 못할 것만 같았다.

    “신경 쓰이는 건 나뿐이었나….”

    한 명은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비명을 지르고 한 명은 그걸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칼을 휘두르고 있다.

    둘 다 괴짜 성향이 짙게 드러났다.

    “여기 있다가 나도 괴짜 되는 거 아니야? …그건 사양하고 싶은데.”할 수 있다면 우선 여기서 도망친 후, 여기 있으면 아이큐가 낮아진다든가 미친다든가 하는 부작용이 없는지 먼저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어떻게 나가는지도 모르니 할 수 없는 일이다.

    혜연은 미친 것 같은 태운을 향해 걸어갔다.

    “태운아, 괜….”

    털썩!

    “…찮아?”

    태운은 다시 쓰러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팔을 뻗어 무언가를 잡으려 했지만, 거리가 멀었던 탓인지 팔을 뻗은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멀…어…. 으윽….”

    태운이 애처롭게 바라보는 곳에는 반투명한 구슬 두 개가 늘어져 있었다.

    “이거?”

    그 구슬을 가리키자 태운이 잘 움직이지도 않는 고개를 끄덕였다.

    혜연은 급히 구슬을 집었다.

    그것을 태운에게 건넸지만.

    “어? 없어.”

    그때 끝없는 상쾌함이 온몸을 감쌌다.

    수십 시간을 자고 일어난 듯 피로는 싹 사라져 있었고 피로가 풀릴 때의 나른함은 없었다.

    얼마 전에 다쳐 계속 욱신거렸던 곳에서도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팔다리에 나 있던 흉터도 전부 사라졌다.

    “이거 뭐야? 쩐다….”

    “야….”

    “아, 미안!”

    손으로 직접 나눠주는 건 무리다.

    바로 사라져 버리니까.

    혜연은 태운의 팔을 잡고 끌어다가 구슬에 닿게 해줄 요량으로 팔을 잡아끌었다.

    “끄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든 말든 팔을 잡아끌고 있는 혜연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냈다.

    꽈드드득!

    태운의 몸이 회복되는 소리는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는데도 확실히 들렸다.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팔을 그리 끌면 어떡하냐…. 아파 죽을 뻔했네….”

    “죽어가는 거 살려놨더니 탓하기야?”

    “그건 고마운데…. 좀 더 상냥하게 안 되냐? 염력이라든가 염력이라든가 염력도 있는데.”“아…. 음…. 암튼!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던 거야? 방금 보니까 거의 반쯤 죽어가던데.”“반쯤이 아니라 아마 5분 정도만 더 있었으면 진짜 죽었을지도.”그전에 자신이 염력을 써서 가져왔겠지만 말이다.

    태운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혜연이 당황하며 말했다.

    “야,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죽었을 거라니.”

    “진짠데.”

    “뭘 하고 있었길래 죽기까지 해? 그나저나… 너 지금 옷 좀 끼지 않아?”태운의 옷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터지거나 그런 정도는 아니었지만, 옷이 좀 낄 정도로 여유가 없어졌다.

    “그래 보여? 역시 효과는 있네.”

    태운은 팔에 힘을 줘보았다.

    아침보다 전체적으로 1.3배 정도 두꺼워진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알통만 조금 있던 팔이 지금은 잔 근육들이 꿈틀대는 이소룡 팔로 변해 있었다.

    배를 만져보니 선명한 굴곡이 느껴졌다.

    키는 8센티가량 작았지만, 이 정도면 찬영과 비교해도 그리 꿀리지 않을 정도의 몸이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강태운: 근력 스탯 - 52]

    [구찬영: 근력 스탯 - 60]

    찬영과 비슷한 수준까지는 성장했으니까.

    “너 미친 거 맞구나?”

    “내가?”

    “그럼 누가 제정신으로 그딴 생각을 해? 그걸 실행으로 옮기는 것도 미친놈이다.”지금까지 하던 훈련을 혜연에게 설명하자 그녀가 소리를 빽 지르더니 이내 몇 분이나 잔소리를 쏟아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예쁜 여자라는 것 때문….

    이 아니라 지금만큼은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기분이 상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태운은 마정석으로 마나를 저장한 후 전신의 세포 빈틈에 집어넣었다.

    지금까지 하던 근육 세포 사이사이에 쑤셔 넣는 것이 아닌 스펀지처럼 작고 많은 공간에 스미는 것처럼.

    그러자 마나 손실이 아주 조금 아니, 거의 되지 않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성공했다.

    0